해방정국의 풍경 - 인물로 돌아보는 대한민국 현대사
신복룡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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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36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족의 철제 하에 신음하다가 1945년 해방의 기쁨을 맞이했습니다. 그 기쁨도 잠시, 남북이 분단되고 좌우가 대립하여 급기야는 동족 상잔의 비극까지 이어졌습니다. 1945년부터 1948년 단정 수립까지를 보통 해방공간, 해방 정국이라 부르는데요. 신복룡 박사님의 이 묵직한 책을 보면 우리 민족이 그 기간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장래를 모색하고 민족의 앞날을 설계하려 노력했는지 그 생생한 단면을 개관할 수 있습니다. 분량도 풍성하거니와 대석학의 원대한 통찰까지 지면 곳곳에 숨어 있기에 독자로서는 너무도 행복하면서도 유익한 독서가 가능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역사는 대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간 쟁패의 연속으로 채워졌습니다. p29를 보면 저자께서도 버나드로 몽고메리의 말을 인용하여 "결국 해양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패권자가 된다"고 소결론을 내십니다. 일본은 왜 그리도 잔인하거나 호전적이었나? 이에 대해서는 무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도 언급이 있다고 하시며, 이렇게 호전적이고 냉혈 기질이 다분한 그들, 집단의 명예와 가치를 위해 (자신을 포함하여) 개인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것을 당연시하는 그들의 심성이, 바다를 지배하는 실력과 결합되었을 때 이웃 반도에 위치한 우리 겨레에 어떤 피해가 닥쳤는지는 이미 역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한 바입니다. 

언변 좋고, 부티 나고, 사회적 지위도 번듯한,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사람, 아마도 우리 모두가 이런 유형이 되고 싶어하며 혹은 그런 사람과 친분을 맺길 원할 것입니다. 저자는 몽양 여운형을 가리켜 그런 축복 받은 인물이었겠다고 추정하며, 다만 이런 분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처럼, 해방공간에서처럼 좌와 우가 극렬히 대립하는 국면에서 과연 어떤 포지션을 취하는지, 양자를 조화롭게 중재하는 게 가장 바람직했겠으나 그런 고상하고 숭고한 시도가 좌절했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 실감나게 보여 준 위인이 바로 몽양 아니었겠냐는 취지로 말씀하십니다. 합리적인 중도가 설 자리가 없었다는 게 해방공간 비극의 한 국면이었음은 우리 모두가 통감하는 바입니다. 

p147을 보면 저자의 참으로 심오한 통찰이 담긴 말씀이 나옵니다. 해방공간은 과연 좌우의 대립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방울뱀도 동종의 공격에 대해서나 생사를 걸고 싸우지, 이종과의 대치 상태에서는 상대가 강하다 싶을 때 적정선에서 꼬리를 미리 내리는 게 보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우파 내에서, 또는 좌파 안에서의 권력 투쟁이 더 심각했으며, 이승만과 백범의 갈등도 두 사람 모두 (각각의 이유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대표하는 이들이었기에 더욱 심각성을 띠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두 사람이 대등한 위치에서 대립했는지에 대해 저자는 회의적입니다. 백범은 올곧은 지사형 인물이었지 권력투쟁 쪽에는 무관심했으며 실제로 한 살 연상이었던 이승만에 대해서도 대체로는 형님 대접을 하며 양보하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반면 이승만은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권력욕의 화신 같은 권위주의적 성격이었습니다. 

"용서해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과거의 원한을 간직하고 살아야 할까요? 대체로 사람은 아무리 지독한 악몽에 대해서도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면 잊기 마련인데, 이는 머리가 나쁘거나 사람이 물러터져서가 아니라, 나쁜 기억을 갖고 사는 게 자신의 생리적 건강 유지에 해롭기 때문입니다. 전후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색출 처단은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었으나, 그저 생계 유지를 위해 적군에 몸을 허락했던 매춘부 등에 대한 린치, 마녀사냥, 사력구제 등 한심한 분풀이에 그쳤던 일부의 행태에 대해서는 이걸 자랑스러워할 게 아니라 반대로 자성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 칼 야스페르스 역시, 뉘른베르크 재판은 진정한 전범자를 가리는 정의의 심판장이 아니라, 거꾸로 크고작은 공범자들이 자신만은 가담의 책임을 면하려고 더 큰 범죄자를 지목하기에 바빴던 위선의 퍼레이드였다는 취지로 말한 적 있었다고 p199에 나옵니다. 

김일성은 과연 진짜 독립 운동가였을까요 아님 가짜를 덧칠한 과장일까요? 일단 나이 서른을 갓 넘긴 젊은 나이였다고 해서 그 많은 공훈이 그것만으로 부정될 근거는 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북측에서는 만주 일대의 가혹한 기후, 지형 조건을 고려할 때 오히려 젊은이라야 그런 행적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옹호하기도 합니다. 반면, 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혁혁한 공적은 1920년대까지도 거슬러올라가는데, 그 많은 전승이 심지어 10대 시절의 김일성에게 낱낱이 귀속되는 게 과연 물리적으로 가능하냐는 상식 선의 반론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한국전은 과연 남침을 유도한 미국의 음모 같은 게 개재했었나? 이 역시도 근 70년 동안 불씨가 꺼지지 않고 이어지는 오래된 논쟁거리입니다. 미 국무성에서 유엔 담당 업무를 맡던 D W 웨인하우스가 이미 한국전이 발발하기도 전에, 침략자로서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이미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수정주의도 두 갈래 입장이 있는데 하나는 브루스 쿠밍스(=커밍스)의 주장처럼 미국의 압도적인 구조적 유도 끝에 북한이 필연적으로 남침을 감행한, 사실상의 북침설이며, 다른 하나는 이 신복룡 박사님처럼 미국이 어설프게 뭔가 함정을 파 두기는 했었는데 우연도 다분히 개재하여 북한이 덜컥 미끼를 물었다는 입장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신복룡 박사님의 이 주제에 한정된 어떤 압권(壓卷)이 하나 나왔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었는데 마침 딱 맞게 이 멋진 신간이 출간되어 독자로서 너무 행복하고 책을 받아들어 읽게 된 자체가 영광입니다. 원래 주간조선에 연재되던 아티클을 모은 2017년 지식산업사판이 있었고, 이 신간은 그에 여운형, 김규식론, 남북협상 등의 화제가 더 보강되었습니다. 두고두고 읽으며 제 마음의 양식과 교양의 원천으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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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MZ(엠지) 스피릿 - MZ세대 세대 교체의 선두를 점하는 마인드셋
손동민 지음 / 라온북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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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로부터 이런저런 말도 많이 듣습니다만 누가 뭐라해도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는 MZ가 이끌어갑니다. 엠지와 소통이 안 되면 그 회사에는 밝은 미래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관리직들도 어차피 이들과 함께 조직의 비전을 만들고 실천해야만 합니다. AI다 뭐다 해도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며 MZ를 이해 못 하고 그들 사이에서 겉돌면 종국에는 본인이 나가야 한다는 게 저 개인적 생각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저자 손동민 대표는 본인이 MZ이며, 그야말로 1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어려서는 엘리트 축구 선수였으며, 선출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정면으로 비웃기라도 하듯 프로구단 현직 피지컬 코치와 브랜드 론칭 엑스퍼트를 겸하여 활동 중이며 4개 국어에 능한 분이라고 책날개에 나옵니다. 책날개에는 "축구에 재능 없음을 (스스로) 인지" 같은 대목이 있으나 이는 사실 겸손의 말이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도 프로 진출의 문이 너무도 좁기 때문에 실제로 1군, 나아가 2군 선수로까지 활동하는 경우가 극히극히 드뭅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의대 진학하고도 비교가 안 될 만큼 경쟁이 치열하죠. 운동 선수도 머리가 좋아야 프로에서 성공하며, 과거의 무하마드 알리나 현대의 메이웨더나 전성기에 한 대도 안 맞다시피 하던 영리한 스타일의 복서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손 대표도 두뇌가 우수한 타입 같아 보이며 4개 국어를 할 줄 안다는 말만 봐도 그 지능이 짐작됩니다. 

이분 소속이 삼성 블루윙스인데 사실 팀 자체는 좀 분발을 해야 합니다. 관중은 전에 비해 폭발적으로 눌었는데 성적이 강등권이니 말입니다. 반면 좀 죄송한 말씀이나 지역 내 라이벌인 야구단 라이온즈는 올해 갑자기 성적이 좋아져서 지금(2024. 10.13 오후) 플레이오프 1차전 진행 중이죠. 여튼 p78을 보면 콜라보 케이스에 팀명 로고 인쇄가 잘못되어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했던 사례가 소개됩니다. 독자들 중에는 "아니, 고작 띄어쓰기인데 그냥 쓰면 되지"라고 할 분이 있을지 모르나 그렇지 않습니다. 디자인은 뜻만 전달이 된다고 다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이미지가 통일적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구조죠. 팬들이 가만있지 않습니다. 또 영어에서 띄어쓰기 하고 안 하고에 따라 뜻이 확 달라지는 예가 많죠. every day(매일), everyday(일상적인), long live(만세), livelong(전체적인) 등등. 사소힌 뉘앙스까지 포함하면 그 예는 끝도 없습니다. 

여튼 여기서 저자가 하고자하는 말은, 하나의 실수로 의기소침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기소침은 오히려 완벽주의자, 능력자 들이 더 자주 빠지는 함정입니다. 무능자한테는 일상이 실수이기 때문에 타격이 오히려 없어요. 내가 의기소침해지면 팀원 전체가 같이 분위기가 다운되는데, 이는 저자가 팀스포츠인 축구 선수라서 더 잘 알 아는 부분입니다. 내가 침체되면 그게 나 하나의 고립된 저성과에 그치는 게 아니라 팀 구성 부분의 장애로 이어져 전체로서의 플레이가 모두 슬로우다운됩니다. 축구뿐 아니라 어떤 회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내가 바로바로 탄력적으로 회복하여 풀 펑션으로 가동되면, 그건 팀 전체의 효율 제고로 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에이스엠지에게 노력은 당연한 것이고(=디폴트고), 계획하는 능력이 필요하다(p100)." 스스로를 에이스엠지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벌써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 페이지에도 재미있는 일화가 나오는데, 저자는 연초에 사주를 보러 간다고 합니다. 사주에서 길한 풀이가 나오면 현재 구상 중인 프로젝트를 그대로 밀어붙입니다. 만약 사주에서 안 좋은 말이 나오면? 그때는 현재의 구상에 어떤 문제가 있지 않은지 면밀하게 검토한다고 합니다. 검토한 다음에는? 그대로 밀어붙입니다. 이건 완전 답정너 아니냐 할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진행측의 능력과 가망성이 중요하지, 그럼 고작 점쟁이 말을 듣고서, 애써 여태 준비했던 사업을 그냥 접겠습니까? 정해진 건 디테일이 혹 수정될 수는 있어도, against all odds,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게 엠지의 정신입니다. 

요즘 자영업이 위기라고 합니다. 근데 자영업만 위기겠습니까? 한국 최고의 기업 삼성전자가 레귤러하게 420조 찍던 시총이 지금 350조대로 내려왔습니다. 국부의 17%가 1년 새 사라졌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게 그저 불황이다 아니다가 문제가 아니라 경제 구조 자체가 평생직업 신화를 털고 가는 단계에 진입해서인데, 엠지는 이럴수록 여러 재주를 몸에 익혀 (본업 주업이 있으면 더 좋지만) 복수의 부업으로 먹고 살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요즘은 강남 건물주도 쉬는 시간에 배달해서 용돈 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책에서 우리는 상황에 잘 적응하는 기민성, 유연함, 불굴의 의지 등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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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부자인 아이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 행복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정서 육아법
박소영 지음 / 북크레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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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성장과정이라는 게 그래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서 올바른 양육을 받지 못하고, 심성에 크나큰 상처를 입은 채 엇자란 영혼은, 사회에 나와서도 남을 배려할 줄을 모릅니다. 아무 말이나 생각없이 던지고, 상대가 항의하면 "내가 극T라서 그렇다'는 둥 말도안되는 변명을 뻔뻔스럽게 늘어놓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처구니없는 꼬드김에 넘어가 거액을 손해보는 등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질 실수를 저지르고도 여전히 자신이 속지는 않았기를 바라며 자기위안 중입니다. 남에게나 자신에게나 공히 해로운 인간이라면 공동체에는 그라는 존재가 없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꼭 돈이 있다고 행복한 게 아닙니다. 돈이 있어도 그를 다룰 깜냥이 부족하면 차라리 가난하게 사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이 책은, 어떻게 해야 아이가 성장과정에서도 행복하고, 커서도 내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를 가르칩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부모 역시도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동시에 인생에 있어 무엇이 최우선의 가치인지 절로 깨닫게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고기를 직접 입에 떠먹여 주는 방법이 있고, 고기 잡는 근본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방법이 따로 있다고도 합니다. p56을 보면 저자께서는 세상에 참으로 많이 나온 게 (육아)기술서이며, 너무도 이런 기슬서가 많다 보니 내 아이에게 잘해주려는 엄마들이 그로 인해 피로감까지 느낀다고도 지적합니다. 이 중에는 올바른 방식을 독자들에게 가르치는 책도 많겠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책도 있어 독자를 오도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는 각각 지시하는 바가 서로 모순되어 독자를 실망시킨 사례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께서는 "기술서는 열심히 읽어 내고, 바로 잊으라"고도 합니다. 사람을 위기에서 구해 내고, 기로에서 바른 방향을 가르치는 것도 지식이지만, 너무도 많은 기술적 지식에 매몰되는 것도 곤란합니다. 기술적 지식(의 수집)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아이가 행복하고 올바르게 자라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 포유동물은 어려서 어머니와의 애착 관계가 무척 중요합니다. p108을 보면, 6살 때 아이의 두뇌 기본 골조가 세워지는데 이때 만들어진 신경망의 밀도, 정서적 건강도가 거의 평생을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면 인상도 참 좋고 정서가 안정되어 보이는 사람이 누구 눈에도 그리 보이는데, 아마도 어려서 그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겠구나 절로 짐작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사회 생활도 잘하고, 대체로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하는 수가 많습니다. 반면 혹여 운 좋게 많은 돈을 손에 넣었다 해도, 뭔가 자존감이 부족해서 엉뚱한 언행을 한다거나, 열등감 때문에 관계를 그르치는 수가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특정 발달 단계에서 주어진 과업을 제대로 해 내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합니다. 

p144를 보면 슬아엄마라는 분의 사례가 나옵니다. 이분은 어려서 아빠를 일찍 잃고, 친척 집에서 눈칫밥을 먹다가 나중에 다시 엄마(즉 슬아의 외할머니)와 합쳤는데, 이때에는 이미 엄마 옆에 새아빠가 생긴 후였습니다. 이러니 어떤 문제가 생겼을지는 우리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슬아는 아직 두 살인데 설령 문제가 있다 한들 아직 드러날 리 없고 전문가가 보기엔 방긋방긋 잘 웃는 등 아무 문제 없는 예쁜 아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아엄마는 아기가 혹시 자폐는 아닌지 내내 불안합니다. 엄마의 근본적 걱정은, 아기가 혹시 "상처 많은 자신"을 닮지는 않을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성장과정에서의 여러 문제점은 대를 이어 그 자녀에게까지 수직 전파가 이뤄질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호모 루덴스라는 말도 있듯 인간은 본래가 놀이를 좋아합니다. 파충류나 양서류가 장난친다는 이야기는 잘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인간은 특히나 놀이라는 과정을 통해, 그저 쾌감만 취하는 게 아니라 타인과 교감하고, 사회적 지능을 발달시키며, 자연과 사물에 대한 지식을 얻기도 합니다. p195에는 이른바 playfulness라는 엄청난 자질을 아이에게 어떻게 심어주는지에 대해, 아빠와 엄마가 자연스러우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약자로 PACE라고 해서, 아이에게 심어 줘야 할 미덕이 playfulness, acceptance, curiosity, empathy의 네 가지 요소가 있는데, 이 넷을 구체적인 설명으로 독자에게 가르쳐 주는 점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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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 - 나로 살아갈 용기를 주는 울프의 편지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신현 옮김 / 북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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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법이나 사조, 유파로서 "의식의 흐름"이라고 하면 우리는 대뜸 난해하다, 난삽하다 같은 선입견을 발동하며 지레 멀리하려 듭니다. 그러나 조이스의 작품은 잠시 논외로 하고라도, 얘기가 버지니아 울프의 경우라면 그녀 고유의 촉촉한 스타일, 절실한 말투 덕분에라도 그리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편이죠. 영문학과 불문학에 두루 능한 박신현 선생의 이 편역본만 보더라도, 작가의 한없이 다정다감한 심성과 감수성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해지기에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를 한결 더 친숙히 받아들이고 교감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은 그녀가 남긴 여러 서신을 편집한 내용입니다. 작품과 서신은 물론 장르가 다르며 아무리 광의의 문학에 서신이 포함된다 해도 편지의 일차 목적이 (특정 상대방을 향한) 의사의 사실적 전달에 있기 때문에, 서간문의 표현양식이 소설에서처럼 난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편지는 여전히 그 작가의 육성을 담았으며, 당시는 현대처럼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로 소통하는 세상이 아니었기에, 작가의 인격적 진면목을 향한 중요 단서를 편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게 또한 사실입니다. 이 편지들을 통해 우리 독자들도, 버지니아 울프가 구사한 언어 체계의 키를 슬쩍 수집할 수 있고, 인간적 친밀감도 흠뻑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한 명의 위대한 작가를 낳기 위해, 주변에 얼마나 많은 능력자들이 포진하여 그(그녀)를 도와야 하는지도 실감됩니다. 작가들은 때로 사회성이 부족하고 통속적 의미에서의 생활 감각이 떨어질 수 있기에, 엄연히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는 도서 시장에서 성공한다거나 그 성공의 과실을 자신의 것으로 챙기는 데에 서투를 수도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버지니아 울프의 편지들을 보면, 편집자나 출판사대표야말로 그(그녀)의 첫째가는 팬이어야 하며, 동시에 작가의 내면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통찰을 갖추어야 함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독자층의 기호와 트렌드에도 신경써야 하니, 출판사의 사회적 역할이야말로 공치사도 못 받으면서 섬세함과 지성은 그것대로 당대 최고 수준이어야 함도 확인이 가능했네요. 

아무리 작가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조주라 해도, 그 피조물에 대한 해석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며 작가의 의도와 독립된 영역이라고 하겠습니다. p57을 보면 울프는 본인 역시도 캐서린 맨스필드의 작품을 읽으며 이런저런 주관적 해석을 가하지만, 동시에 해밀튼, 매카시(일반 독자를 가리키는 임의의 호칭인 듯합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이름이 몰리인 걸로 봐서 그녀의 주 독자층이 여성들이었음도 추론 가능합니다) 등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각양각색의 해석을 시도하는 데 대해 그녀 자신이 신기해합니다. 여기서 서간의 수신인인 클라이브 벨은 영국의 평론가였으며 울프와 비슷한 또래입니다. 뉴질랜드의 맨스필드도 우리가 <The Garden Party> 등으로 잘 아는 바로 그 사람이며, 태생은 뉴질랜드지만 영국에서 성장기 교육을 받았기에 보통은 영국 작가로 알고 있죠. 울프보다 몇 살 아래지만 작풍(作風)이 좀 전통적(?)이라서 울프보다 훨씬 이전 시절 사람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맨스필드의 시대에 뉴질랜드는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나라가 되기도 했죠. 

우리들은 백여년 전의 사건을 역사로 추체험하며 다분히 객관적으로 거리를 둘 특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특히 버지니아 울프 같은 지성인들이 전간기에 남긴 소통의 흔적을 보면, 그토록 명민한 지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라든가 동시대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의미에 대해 다분히 감성적으로만 접근하는 게 눈에 띕니다. 이런 경향은 사조와 스타일, 살아온 경력이 판이한 헤르만 헤세(나잇대는 비슷합니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직접 엮였거나, 지근거리의 사람들이 치른 경험에 대해서는 "초연함"의 유지가 어렵나 봅니다. 그토록 초연함의 미덕에 대해 강조했던 버지니아 울프였기에 이 점이 더 재미있는데, 그래서 역시 이런 분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음을 알고 새삼 안도도 하게 되네요. 

책의 마지막은 히틀러를 몸서리치며 싫어했던 울프가 미국의 어느 진보 저널에 기고한 글이 장식합니다. 이런 글을 읽어 보면 울프와 어떤 세대 차이 같은 게 전혀 안 느껴지며, 자유를 갈망하고 획일성을 거부하는 시대정신이 이미 성숙한 형태로 저들 지식인들 사이에 공유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평화를 희구하는 저 열렬한 외침은 이미 21세기 채식주의자를 자처한 어느 동아시아 여성 작가의 육성도 고스란히 승계했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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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캐나다 : 밴쿠버·토론토·몬트리올·퀘벡·로키 - 최고의 캐나다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가이드북, 2024~2025년 개정판 프렌즈 Friends 35
이주은.한세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품절


프렌즈 시리즈는 이처럼 개정판이 자주 나오는 점도 좋습니다. 제가 작년(2023) 10월 하순에 최신판을 읽고 리뷰를 쓴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다시 최신개정판이 나왔네요. 이 새 책도 여전히 이주은, 한세라 두 분이 집필했고 독자 입장에서 언제나처럼 만족스럽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작년 판과 비교했을 때 큰 틀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제가 작년판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책은 광대한 캐나다를 곧이곧대로(?) 커버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프렌즈 시리즈를 리뷰하면서, 이 책들은 작은 인문서 기능을 겸한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행서를 읽으려는 독자한테 과한 부담을 혹시 준다면 그건 또 곤란합니다. 이 캐나다 편은 노스웨스트, 유콘, 서스캐처원 등 북부 오지는 최소한도로만 다룹니다. 대신 태평양에 면한 브리티시 컬럼비아(이른바 BC), 앨버타, 온타리오, 퀘벡 등 한국인이 즐겨찾거나 널리 좋아할 만한 지역에 포커스를 두는 실용성을 뽐냅니다. 프렌즈 시리즈 중 캐나다 편은 20년도부터 출간되기 시작했는데 그때도 애틀랜틱 캐나다 편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미국도 그렇지만 캐나다도 본래 대서양에 면한 동부가 근본이죠. 게다가 한국인들도 너무 좋아하는 <빨강머리 앤>의 무대가 되기도 한 곳이 PEI인데 이 책 후반부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됩니다. 

캐나다 편은 특히 대도시 중심으로 시원시원하게 짚어나가는 게 독자 입장에서 보기 편합니다. p130 이하에는 밴쿠버의 명물 중 크래프트비어를 사진과 함께 설명해 주는데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보통 수제맥주라고 부릅니다. 한국도 흔한(또 맛도 없는) 병맥 대신 시원하고 뭔가 고소하기까지한 수제맥주를 서비스하는 펍에 사람이 더 몰리는데, 밴쿠버를 다녀온 많은 한국인들이 한결같이 이 크래프트비어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아마 이 프렌즈 캐나다판이 작은 기여라도 했을 수 있겠습니다. 5월말에 열리는 축제도 있고, 이 책에 실린 여러 유명 펍은 한 번쯤 들러볼 가치가 있겠네요. 

캐나다 대도시들은 전철 노선이 깔끔하게 정돈된 편이라서 현지에서 막 헷갈리고 어쩌고 할 걱정은 적은 편입니다만 그래도 믿고 참조할 수 있는 노선도가 바로 곁에 있으면 더 좋죠. 프렌즈 시리즈는 (여행서의 기본이긴 하나) 커버하는 어느 도시이건 간에 가장 최신 사정을 반영한 노선도를 빠뜨리지 않아서 또 좋습니다. 캘거리는 계획 도시답게 구조가 단순하지만 잘못하면 방향을 그르게 잡고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저처럼 심하게 길눈이 어둡다면). p218의 깔끔한 노선도가 그런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많은 여행자들을 도와 줄 것입니다. 프린스 아일랜드라는 이름은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만 캘거리의 저 명소는 프린시즈(Prince's) 아일랜드(Island)가 정확한 이름(p224)이며 그 명명자(namesake)도 무슨 왕족이 아니라 피터 앤서니 프린스라는 19세기 사업가입니다(프린스가, 왕자라는 뜻이 아니라 성씨입니다). 이 사람은 미국 위스콘신에까지 기반을 나중에 넓혔기에 그곳에도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로키 산맥은 미국 중서부를 가로지르는 험한 지형입니다만 그 40% 가량의 끝자락이 캐나다에도 뻗쳐 있습니다. 그 중 유명한 곳은 밴프(Banff) 국립공원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일 뿐더러 한국인들도 즐겨찾는 곳입니다. 이 책 p248 이하에 선명한 컬러 사진과 함께 자세히 다뤄지는데 프렌즈 시리즈는 이처럼 사진자료도 질적, 양적으로 빼어나다는 게 독자를 행복하게 합니다. 밴프 가는 길은 책 p251에 나오듯이 렌터카를 사용할 경우 밴쿠버, 캘거리 두 방면에서 다 가능한데 개인적으로는 밴쿠버 발(發)이 훨씬 편했던 기억입니다. 잘 이용들 않지만 버스나 기차편도 잘 마련되었는데 역시 책에 설명이 잘 나옵니다. 이 책은 타 여행서에 비해 이 밴프 국립공원(과 인접 다른 국립공원들)이 다각도로 잘 소개된 점을 최고로 꼽고 싶습니다. 

캐나다의 국기(國技) 하면 또 아이스하키입니다. p348에는 토론토의 명소 중 하나인 하키 명예의 전당이 나오는데, 그저 이런저런 선수 개인 기록이나 팀 연혁만 나오는 게 아니라 아이스하키 초보자들도 절로 그 매력에 푹 빠지게끔 종목 자체에 대한 입체적 안내가 갖춰진 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점이죠. p350에는 세인트제임스 성당이 나오는데 원래 St. James Cathedral이라고 하면 미국 플로리다 올란도, 태평양에 면한 시애틀, 시카고, 심지어 뉴욕의 브루클린에도 있습니다. 이들 중 어떤 곳은 로마 가톨릭 대성당이며 어떤 곳은 에피스코펄이니 주의해야 합니다. 물론 캐나다 토론토의 성제임스는 영국 국교회 소속입니다. 

한국에도 사파리 투어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물론 용인 에버랜드가 그곳이며 생각보다 역사도 오래되었습니다. 캐나다와 사파리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토론토는 의외로 없는 게 없는 도시이며 용인에버랜드와 비슷한 시기에 개설된 Toronto Zoo(p364)가 관광객들을 기다립니다. 그런가하면 맛집도 의외로 많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p368에 나오는 트라토리아 네르보사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p380에 나오듯 토론토에서 120km 정도 이동하면 나이아가라 폭포에 닿을 수 있는데, 클리프턴 힐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p393)입니다. 

세인트로렌스 강은 18, 19세기 미국이나 캐나다 양국에게 매우 중요한 수운(水運) 지형이었습니다. 이 강에 천 개의 섬들이 떠 있다고 해서 이름도 사우전드 아일랜드(Thousand Islands)인데, p425를 보면 이곳을 즐기는 세 가지 방법으로 크루즈, 헬기 투어, 전망대 등이 소개되네요. 많은 이들이 헷갈리지만 캐나다의 수도는 인구 백만의 오타와입니다. 외인들이 재미없다며 간과하지만 사실 오타와도 어트랙션이 풍부한 도시이며 두 분 전문가가 속속들이 잘도 그 매력을 짚어냈습니다. 캐나다 자체만큼이나 매력적이고 예쁜 책이라는 말로 리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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