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 헤드 철도 네트워크 제국 1
필립 리브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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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4차 산업혁명이 흔히 이야기되지만, "기차, 철도"는 제2차 산업혁명을 이끈 중요한 혁신이었죠. 새로이 발명된 철도가 그전까지 서로 떨어져 있던 여러 지점을 연결하자, 일부에서는 "온갖 악을 전파하는 악마의 도구"로 폄훼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엄청난 하중을 지고서도 쾌속으로 운행하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이 철도의 마력에 흠뻑 빠져 열광하는 층도 새로 생겨났죠. 현재까지도 소위 "철덕(철도 덕후)"들이 많은 건 (다른 오타쿠층과 달리) 제법 오랜 문화적 연혁과 내력을 지닌 셈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는 "엄마를 잃고 영원한 생명을 찾아 헤매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은 "은하철도 999"가 잠시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미국 웨스턴 장르 영화를 봐도 기차는 꼭 무법자들에게 피해를 입거나, 낯선 고장에 설치된 정류장에서 큰 사고의 발단이 생기거나 같은, 다소 불안하거나 어두운 이미지, 심상과 곧잘 연결됩니다. 그러나 바로 눈에 띄지 않는 여백의 공간에 훨씬 많은 희망을 숨겨 두기도 했고, 그걸 떠나서도 그 힘차게 뿜어대는 기적과 엔진음만으로도 탑승자들에게 가능성과 꿈을 품게 하는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기존의 SF(뿐 아니라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지만)에서 철도, 기차가 그저 사람의 운전과 조종을 받아야만 하는 무정물, 수동적인 도구에 불과했다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녀석들은 (우리 시대가 새로 가지게 된 비전에 힘 입어) 인공 지능이 장착된, 더 특별한 존재로 거듭납니다. 물론 주인공들, 주로 어린 층이 감정이입할 수 있을 멋진 인물들도 많이 나오지만, 이 소설에선 스스로 판단하고 느낄 수 있는 기차들이 캐릭터의 자격으로 대거 등장한 게 큰 매력입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젠 스탈링은, 마치 <스타 워즈>에서 스스로(혹은 몇몇 스승들의 도움으로) 각성하여 광막한 우주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루크처럼, 지혜롭고 용감한 성격입니다. 단, 루크와는 달리 젠은 그간 속해 있던 나쁜 환경 때문에 좋지 못한 습관과 성격에 물들어 있기도 한데, 마치 <은하철도 999>의 메텔처럼(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그의 부족한 부분만을 딱 채워줄 수 있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이런 장르에서 우리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기대할 만한 "성장"을 이뤄 나가게 됩니다. 어디까지가 타고난 천품의 덕택이며, 또 어디서부터가 후천적 의지, 혹은 주변의 도움일지는 작품마다 제각기 다른 선택이긴 한데, 일단 이 1권에서 우리 독자들은 젠의 거침없고 (불량청소년다운) 경쾌한 행보에 속으로 쓴웃음을, 겉으로 통쾌하게 응원을 함께 반응하게 되더군요.

예전에 <은하철도 999>를 보며, 저 키 작고 충성스러운 차장은 열차 자신의 화체가 아닐까 생각해 본 적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인체형 아바타" 없이도 기관차가 스스로 행동과 판단과 개성을 지니고 인물들과 소통합니다. 인체형이 아닌 유닛에서 작동이 원활한 모습을 봐야 비로소 AI의 진가를 평가할 수 있는데, 이때 성능과 가치란, 거기다가 인간적 존엄까지를 우리가 (진심에서) 부여할 수 있을지까지가 포함되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여러 녀석들은 "무력과 가차 없는 성격" 때문에 힘 없는 하층의 부스러기 같은 부류에게는 그런 여유를 허용도 아예 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스타워즈>를 보면 외양도 가지각색이지만 그 출신 배경 역시 천차만별인 여러 캐릭터들, 생명체들, 로봇들이 등장해서 관객을 매혹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도 마찬가지죠. 질서도 흔들리고 사회악은 19세기에서 별반 나아질 바도 없이 여전하고, 소설 내내 암시되듯 뭔가 심상찮은(불길한) 일이 분명 배후에서 꾸며지는데도 이 우주가 아름답게 다가오는 건, 바로 캐릭터들이 제각각의 개성을 뽐내며 세계를 점유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하게도 되는 체험이었습니다.

"다들 모토릭에 지나지 않지."

젠이 이 대목에서 당황한 건, 저 말을 하는 노바가 마치 자신은 그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는 투였기 때문입니다. 젠이 되묻죠.

"넌 네가 모토릭이라는 걸 알아?" (몰라?라고 묻지 않는 게 좀 특이한데, 영어에서는 이 경우 뉘앙스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난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만, 그들은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해."

피와 살을 지닌 인간이라고 해도, 그저 대세에 따라 움직이고 이익을 위해 영합하며 때에 따라 말과 소신이 바뀐다면 그의 존엄은 어디서도 찾을 근거가 없습니다. 모토릭으로 태어났어도 후천적으로 제 의지에 따라 존엄을 가꾸었다면, 그런 존재야말로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불로불사의 존재 레이븐은 유독 이 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거기서 빠져 나오려면 총까지 쏴야 하나요?"
"준비해 둬서 나쁠 건 없지."

사람의 생각이란, 혹 100이 필요하다고 할 환경에서, 고작 3, 4 정도를 예견하고 살피는 데에 불과합니다. 그 정도도 자신에게는 꽤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 정도만으로도 200 이상의 준비가 마쳐졌다고 착각(자기 기만)하는 게 또 타고난 생리입니다. 하지만 레이븐은 이 정도의 준비로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며, 다만 어린 젠에게 괜한 부담을 줄 필요야 없음도 꿰뚫기에 저 정도로 얼버무립니다.

앞에서 기차의 경적 소리만으로도 철도 덕후, 혹은 철도에 아무 애정 없어도 무엇인가 이유가 있어 이 거대한 탈것(vehicle)에 오른 모든 이들에게 괜한 설렘을 느끼게 한다고 적었습니다. 덕후건 아니건 이 순간만큼은 기차가 노래를 부른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이 소설 속에서는 정말로(비유가 아니라) 기차가 운행 중 노래를 부릅니다. 황제와 그 일가들이 탑승한 기차에서 이제 뭔가 일을 벌여야만 하는 젠은 잔뜩 긴장해 있고, 그런 젠을 노바는 계속 다독입니다.

"이 기차, 정말 좋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현금을 받아 주는(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가 필수겠지요) 상점을 찾아다닌 젠은, 3D 프린터로 총 한 자루를 뚝딱 만들어 구입합니다. 웨스턴을 보면 마침내 자유를 찾은 무법자가 대뜸 처음 발견한 총기 소매점에 들러 이것저것 쑤셔 본 후 마음에 드는 걸로 (부품 몇을 교체해 가며) 고른 후, 돈도 안 내고 총포상을 엉망으로 만든 후 유유히 빠져나오는 장면이 많죠. "3D 프린터"라고 이름은 안 붙었으나 여태 SF 장르에선 그 비슷한 설정이 많았습니다. 일개 좀도둑에서 총기도 슬슬 만져가며 더 간 크고 실력(?) 좋은 무법자로 성장(!)하는 젠을 보며, "어차피 세상은 거친 곳이니 사소한 불편과 고통에 굴복하지 말라"며 애들(젠보다 훨씬 어린 꼬마 때부터)을 강하게 키우는 저쪽 동네 분위기가 새삼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아나이스 식스의 인터페이스가 벌떡 일어났다. 낮은 천장 아래에 서니 훨씬 더 키가 커 보였다."

인터페이스란 개념은, MS가 GUI를 만들어 전세계 가정과 개인에 일상 용품으로 보급한 이래 SF에도 역수입되어 더 자주 만나는 듯합니다. 아바타가 있고 그 아바타를 통해서만 소통하면, 유비쿼터스의 시대에 사실상 본체와 대리인을 구별할 필요가 없을 텐데요. 유독 이 작품에서는 이걸 칼같이 따지고 드는 게 돋보였습니다. 젠은 아마도 가짜와 진짜를 가르는 길고도 힘든 투쟁에 필수 전력으로 이미 (자의든 타의든) 끼게 된 것 같습니다. 2권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무래도 주 독자층을 어린 쪽에 주안을 둔 게 역력하지만, SF 장르 자체에 아직 부담을 느끼는 성인 독자라면 이 쫄깃한 모험담을 자신만의 입문서로 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공부 잘하는 틴에이저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게, 혹시 너무 재밌어서 이 소설 기반 게임이라도 이후 출시되면 아주 위험할 것 같아서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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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분석대로 미래는 이루어진다 - 국내 유일 트럼프 당선을 정확히 예측한 우종필 교수의 구글 빅데이터 기법 공개!
우종필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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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론을 놓고서도, 그 이론의 궁극적 효용이란 결국 어떤 모델을 그로부터 도출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빅데이터 역시 이를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선 데이터의 정제, 해석을 통해 멋진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많은 이들은 "이 역시 앞으로는 AI가 대신하게 되는 미래"를 예견하고, 또 완성도 높은 AI라면 그 정도가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현 2018년 시점에서 보면 그저 SF적 상상력, 기껏해야 혁신을 향한 패기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까닭에, 구체적으로 빅데이터를 다뤄 보고 HADOOP등 최첨단 솔루션도 돌려 본 분들의 주장, 모범 사례 등에 경청하는 게 일단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꿈 꾸는 젊은이들의 우선 순위 과제인 듯합니다. "추상적인" 빅데이터 만능론보다, 실제로 업무를 시행해 본 분들의 체험담이 훨씬 그들에게 유용하고 반갑게 와 닿기 때문이죠.

빅데이터 시론은 요즘 경영학과 교수님들 사이에서 부쩍 의욕적으로 제안되며, 또 참고할 만한 시사점, 인사이트가 많이 발견되기도 하죠. 이 책도 말하자면 그런 부류에 속하는데, 일반론도 길게 나오지만 교수님(즉 저자)의 실제 연구와 적용을 바탕으로 한 경험담이 흥미로웠습니다. 책은 작년 3월에 출간되었는데, 이때면 아직 한국에선 대선이 치러지기 전이며 미국에서는 전년도 11월에 있은 선거 결과에 따라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두어 달이 지난 시점입니다. 얼마 전에도 모 정당이 여론 조사 결과의 공정성에 시비를 거는 일이 있었는데, 저 무렵이면 한국에서의 여론조사는 대체로 실제 결과와 맞아떨어지고 반대로 미국에서는 크게 어긋나서 이의 해석을 두고 논란이 분분할 때입니다.

2016년 7월 저자 우종필 교수는 매경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예견하는 언급을 해서 주목을 끌었고, 이 예견은 4개월 뒤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6&no=508898 이 링크로 가 보시면 흔히 교수들이 취하는 태도처럼 "그럴 수도 있다, 가능성이 적지 않다" 같은 모호한 화법이 아니라, 구글 트렌드에서 몇 가지 시도를 해 보고는 "이대로라면 트럼프가 이긴다"는 결론을 선명히 내놓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상 징후는 이뿐이 아니라, 당시 내한했던 한국계 지식인들 여러 명이, 특정 지역 특정 계층에서 트럼프의 지지세가 어마무시하다는 현장에서의 느낌을 그대로 전함으로써, 낡은 기법에 집착하는 여론조사가 미처 보지 못한 민심의 민낯을 엿볼 수 있게 도왔습니다.

FIFA 월드컵에서도, 소위 "돈은 거짓말을 않는다"는 속설 때문에, 특정 경기의 승패는 도박사들이 가장 정확히 맞히곤 하죠. 헌데 2년 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는 이들조차 헛다리를 짚었고, 대신 구글 트렌드가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구글 트렌드가 물론 "영국이 EU에 남는다, 아니다"를 점쟁이처럼 맞히는 건 아닙니다. 해석은 역시 사람이 해야 하는데(생각해 보니 점괘도 스스로 말하는 건 아니고 점쟁이가 해석을 해 줘야 하는군요), 우 교수는 해당 지표를 보고 다른 결론, 해석이 나오기가 힘들다고 관측하신 거죠.

"많아야 1000명 안팎인 표본을 두고서는 제대로 민심을 읽을 수 없다." 물론 전통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통계학자들은 크게 반발할 겁니다. 1000명 안팎의 표본으로도 얼마든지 모집단의 경향을 추측할 수 있음은 이미 수학적, 통계학적으로 확립된 이론이라면서요. 하지만 표본의 추출, 심지어는 "보정" 과정에서 많은 오류가 낄 수 있음도 이미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뒷받침됩니다. 게다가, 표본의 수에서 상대가 될 수 없는 빅데이터 기반의 연구, 결론 앞에서야 이런 주장이 설 땅이 대단히 좁아지는 것도 명백하죠. 서로 다른 무기를 갖고 붙는 게 아니라, 같은 종류의 도구를 지니고 싸우는데 한 편이 다른 편에 비해 스펙이 월등하다면 승부는 더 보나마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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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가 만드는 제4차 산업혁명 - 개인과 기업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김진호 지음 / 북카라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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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세 차례의 산업 혁명보다,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을 (더)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다." 거의 모든 경영학자들이나 4차 산업혁명 전도사들이 주장하는 바이며, 이 책 저자 김진호 박사님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헌데 4차 산업혁명의 내용 함의가 무엇인지 그 각론에 대해서는 또 학자들, 기업들 사이에 입장이 크게 다르기에, 뭘 급하게 하긴 해야겠는데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혼란은 여전히 대중들, 또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가시지를 않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파괴력은 아마도 2016년 상반기에 열린 알파고 對 이세돌 9단의 대결 덕분에 더 대중적으로 인식이 확산된 듯합니다. 한국은 유독 장노년층에서 바둑 애호층이 두텁고, 지난 세기 말에 체스는 이른바 IBM의 딥 블루 개발로 인간 플레이어의 수월성 신화가 깨어졌으나 바둑은 또다른 차원이라는 믿음이 이어졌기에 이 충격이 더 큰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사실 따지고 보면 바둑 역시 언젠가는 소프트웨어의 능력 범위, 주특기 등으로 포섭되리라는 전망이, 그 반대 입장보다는 훨씬 우세했죠.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도, 엄청난 전력 소모 문제를 극복하지 않는 이상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기엔 다소 무리가 따릅니다. 구글도 이게 신경 쓰이는지 대외 발표 자료에서 계속 이 문제를 언급은 합니다(얼마씩이나 개선이 이뤄졌다면서).

"숫자가 정보다" 사실 데이터란, 그 자체로는 어떤 효용도 인간 생활에 가져다 주지 못하는, 마치 사막에서 갓 캐어낸 원유와도 같습니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은 그저 "한번 불이 붙었다 하면 좀처럼 꺼지지 않는, 더럽고 성가신 검은 기름" 이상으로 여겨지 않았습니다. 데이터 역시 마찬가지라서, 가공과 해석이라는 단계를 못 거치면 아무 의미 없는 공해 같은 부호의 더미에 불과합니다.

통계 쪽에 종사하는 이들이 궁극적으로 넘어야 할 산은, 공식 하나만 알면 획일적 처리가 가능한 표준화라든가 최소자승법 같은 게 아니고, 이름만 거창하게 어려운 회귀분석도 아니며, 확률, 그 중에서도 베이지언(한국에서는 조건부 확률, 혹은 주관적 확률이라 부르죠) 케이스를 어떻게 능수능란히 다루느냐에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그저 곱사건인 경우와, 특정 사건을 전제로 한 후 이와 연관된(혹은 무관한) 다른 사건이 연이어 터질 확률 개념 사이를 벌써 헷갈려합니다. 저자는 이를 가리켜 "문맹보다도 더 심각한 수맹"이라고 지적합니다.

빅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바로 "시각화"입니다. 그래프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것도 저자의 요긴한 충고 중 하나인데, 그림 도표의 왜곡과 과장에 쉽게 오도되는 것도, 차트라고만 하면 뭔가 그 안에 특별한 비밀이라도 숨은 양 착각하는 대중의 미신 때문이죠. 뭘 모르는 사람 기 죽일 때 "차트나 읽을 줄 알고 하는 소리냐?" 같은 손쉬운 수법이 횡행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사례입니다만, 책에는 유유제약의 리포지셔닝 전략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뭔 소린고 하니, 처음에는 영업사원들이 약국마다 돌아다니며 "베노플러스 겔"을 홍보했다고 합니다. 맨소레담이나 안티푸라민(상표명 그대로 쓰겠습니다)하고 같은 과라는 데에 홍보의 주안점이 놓였는데, 사람들 생각은 그럴 것같으면 이름 외우기도 힘든 후발주자를 구태여 약국에서 찾겠냐는 거죠.

그래서 이 회사는,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멍을 빼는 데에 일반인, 특히 다리를 드러내는 옷을 입기 쉬운 젊은 직장 여성들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를 찾아 보았습니다. 계란으로 문지른다 등등 그야말로 효과가 의심스러운 민간 요법이 대다수! 베노플러스 겔은 소염 효과 외에, 직관적으로 "멍 빼는 약"으로 얼마든지 활용 가능했죠. 동일 상품을 포지션만 새로 정했을 뿐인데 매출은 급상승했고, 어느새 (전에는 없던 카테고리, 틈새 시장) 최강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빅데이터 분석 위력을 잘 증명한 사례이지요.

벤포드 법칙이란, 어떤 자료라 해도 숫자의 첫자리 수는 대개 동일 밀도로 분포되며, 예컨대 5 등 특정 숫자가 자주 나오거나 1, 2, 3, ... 등의 빈도가 큰 차이를 보이면 그 자료는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리한 조작자는 이런 사정까지를 다 감안하고 더 구체적인 지침 하에 조작을 시도하겠고, 그렇지도 못한 멍청한 범죄자라면 허점과 의도가 뻔히 드러나는 헛수고를 하면서도 혼자만의 환상에 취해 눈가리고 아웅을 하겠지요. 여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실을 발견하고 남다른 가치를 찾아내는 능력은, 바로 숫자의 세계 그 비밀과 법칙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책의 결론은 두고두고 곱씹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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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은 어떻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나 - 리테일 비즈니스, 소비자의 욕망을 읽다
석혜탁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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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은 어떻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나" 정말 그러게나 말입니다. 뭔가 스트레스가 쌓이면 대개들 "나에게 선물한다" 등등의 핑계를 대며 무엇인가를 "쇼핑"합니다. 소비하고 싶은 게 많고 누려 보고 싶은 게 워낙 많은 세상이니, 쇼핑은 어찌 보면 엔터테인먼트 그 이상의 "어톤먼트(atonement):"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다니 참으로 나쁘게 든 버릇이라며 호되게 나무라려 들 분도 있겠으나, 이 책에서는 그런 걸 따지지 않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편의점 차리는 게 어느덧 아주 흔한 풍속도가 된 현실에서, 작금의 한국 리테일의 구조와 생리와 내밀한 소비 심리(소비자들 자신도 정작 모르는)가 어떠한지 간파하는 건 이제 보편적인 관심사, 숙제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기에,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는 귀가 솔깃해지는 게 많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결국 리테일 비즈니스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될 것이다. 만사'유통(流通)'의 시대이다(p6)." 4차 아니라 설령 두 자리로 차수가 넘어가더라도, 사람이 특정 재화를 소비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고, 순간이동 기술이 개발이라도 되지 않고서야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 그 무엇을 다른 곳에서 들여와야 할 필요는 있으며, 이 중에서도 센스 있는 리테일러는 동네 사람들 자신도 모르는 기호를 미리 알아채고 근사한 셀렉션을 남들보다 앞서 꾸립니다. 소비 센스는 그저 친구들에게 부러움 받는 정도지만, 리테일 센스는 시장에서 최종 승자로 살아남아 남들보다 앞선 재력을 갖추게 돕는 산업적 무기이기까지 합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하는군요. “이 한 권에 유통뿐만 아니라 여러 산업의 근본적인 생존 전략이 담겨 있다.(책날개와 띠지)”

저자는 유통업계가 고려해야 할 근본적인 지형 변화 다섯 가지를 우선 꼽습니다.

①인구의 감소(특히 대도시)
②고령화
③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 및 1인 가구 증가
(이 둘이 한데 묶인 이유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주부층" 감소를 설명하기 위함이겠죠. 이 항목에서 저자는 "독신"과 "싱글턴"의 차이도 언급합니다)
④국내 유통업체의 해외 진출
⑤모바일 커머스의 성장

백화점은 전통적으로 그 나라, 사회의 화려한 소비 수준 척도를 알려 줄 만한 공간이었습니다. 책에서는 1980년대부터 서서히 세를 불려 나간 현대백화점의 경우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이해를 얻기까지 무척 어려운 과정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신세계의 경우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설립되어(미쓰코시. 三越)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직영점 체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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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스타워즈
가와하라 가즈히사 지음, 권윤경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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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에 대해 뭐라고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존 윌리엄스의 유명한 테마와 함께 세계의 영화 팬들의 뇌리에 영원히 기억될 만한 걸작입니다... 라고 말하기엔 약간 어색하거나,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기까지 하는, 묘한 마력(아주 헐하게 평가한다 쳐도)을 지닌 프랜차이즈이자, 이 책 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현재 진행형으로 (아직도) 형성되어 가는 중인" 슈퍼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 이십 년 가까이 조지 루카스가 본편의 제작을 미루던 기간 중에도, 미국, 서유럽, 일본 등지에서는 이의 팬덤이 지속적으로 성장세였고, 그토록 오래 별러 왔던 "에피소드 원"이 1998년 드디어 공개되었을 때 열성 지지자들은 마치 제의나 거행하는 마음가짐으로 상영관(사실 미국에선 3D 프로토타입이라 불릴 만한 특수 시설이 갖춰진 곳들에서 제한적으로 상영되는 곳이 많았습니다)을 찾았지요. 영화 관런하여 이른바 "굿즈"라 불리는 관련 기념품, 장난감 등이 이만큼이나 많이 제작, 판매되는 컨텐츠도 유례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팬픽이나 팬아트의 볼륨도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다른 브랜드가 그저 그 판권을 소유한 제작사의 전략적 고려에 따라 거창하게 붐업되거나 (마땅한 이유도 없지 싶은데) 오래 동면 상태인 사정과는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죠.

사실 몇 년 전 에피소드 7의 경우, 열성 팬이 아닌 중립적 관객 입장에선 다소 실망스럽다는 느낌을 표현하는 층이 많았습니다. 에피소드 넘버링이 이어지고 전작들의 세계관이 그대로 이어지니 그저 전형적인 속편 기획일 뿐, 이걸 두고 "리붓"이라 부를 수는 결코 없습니다. 리붓은커녕 이전 에피소드의 여러 매혹 요소를 별반 진지한 고려 없이 그대로 답습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죠. 팬이 아닌 일반적인 영화 애호가 입장에서, <스타워즈> 같은 이례적인 브랜드가 세월의 침식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턱도 없을 듯 보였던 "에피소드 7, 8, 9"의 약속을 지켜 가는 과정, 세월이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여전한 호응 등은, 그저 구경만 해도 마음이 흐뭇한 경사스러운 분위기에 가깝습니다. 그런 호의적인 시선을 기본으로 깔고 보았건만, 적어도 <깨어난 포스>는 그리 만족스러운 수준의 "약속 이행"은 못 되었습니다.

반면 작년에 개봉한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는 꽤 호응이 좋았고, 이보다 앞서 만들어진 <로그원>도 흥행에 성공한 편이었죠. 이런 저력은 조지 루카스 사단의 죽지 않는 창의력, 활력에 기댄 바도 있겠으나, 신기할 정도로 충성을 바치는 팬덤의 견고함, 응원의 덕택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신기한 "현상"의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책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책은 스타워즈의 팬이라면 일단은 한번 집어들고 내용을 일별하고 싶은 마음이 꼭 들만한 구성이고, 진짜 팬이라면 제목에 "스타워즈" 네 글자가 들어가기만 해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겁니다. 이번에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개봉 과정에서도 자막 오역이 문제가 되었는데, 저자는 <스타워즈>의 일본어 자막을 감수한 경력이 있습니다. 해당 언어에 대해 정확한 지식과 감각, 종합적 구사 능력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팬들(글로벌 시대에, 이미 영어 정도는 자유롭게 이해하고 말하는 이들이 많죠)의 까다로운 요구도 만족시키면서 "가슴에 와 닿는 번역"을 하려면 "시리즈의 팬임"은 아마 필수 자격일 것입니다.

"사가(saga)"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기도 힘든 게 스타워즈 연작입니다. 2016년 드디어 에피소드 7이 공개된다고 했을 때, 해리슨 포드나 캐리 피셔, 마크 해밀 등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직접 출연한다는 소식에, 시리즈 팬이 아닌 저 같은 사람도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릅니다. <대부>도 3편만 좀 잘 만들어졌다면 이에 버금가는 "에픽, 사가" 소리를 들었을지 모르는데, 4편 나온다 소리가 십 몇 년 전부터 소문만 무성하고 기어이 성사가 안 되는 것만 봐도, 이 스타워즈 팬들이 얼마나 순수한 열정에 불타는 이들인지 짐작 가능합니다. 스타워즈 연작이야말로 진정한 "사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리붓" 규정은 당치도 않고요)

스타워즈의 성공 비결에 대한 분석은 여태 여러 번 이뤄졌고, 그 중 "웨스턴과 동양식 무술 전수 등 이색적인 요소가 SF와 미래의 옷을 입고 절묘하게 결합되었으며, 기본 서사 구조는 아주 익숙한 패턴, 즉 버려지고 미숙한 주인공의 성장을 통해 원수를 갚고 신분을 되찾으며 일신의 이익이나 명예가 아닌 모든 이들의 자유와 권익을 옹호하는.... 등등의 단순함에 기대었다" 같은 말이 정설처럼 통하며, 그 정설의 타당성에 대해서도 우리 대중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입니다. 이 책 역시 그런 통설적 입장에서 별반 벗어나지 않고, 차분하고 겸손하게 모두의 컨센서스를 되풀이하는 편입니다. 사실 스타워즈 팬들은 파격적이라거나 과격한 주장, 해석으로 평지풍파를 일으키지도 않습니다. <매트릭스> 등의 팬덤(물론 상대도 안 되지만)과는 이런 점에서도 차이가 크게 나죠. <스타워즈>의 기본 서사 역시 어떤 기발한 굴곡이나 트위스팅은 없습니다. 이른바 "내가 네 애비다."가 당시 영화팬들에게 충격이라면 충격이었지만(특히 이 책 p45의 서술을 참조하십시오), "사악한 부친과 대립하는 버려진 아들"의 화소 자체는 문예 전반을 놓고 볼 때 아주 오래 전부터 개발되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스타워즈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이처럼이나 성공하고, 반 세기가 지나도록 활력을 유지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 브랜드는 더욱 신비함을 더하는 겁니다. 하도 이전 세대부터 스타워즈 스타워즈 해 대기 때문에, 미국의 젊은이들도 크게 위화감을 갖지 않고(오타쿠나 나잇값 못하는 꼰대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의식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이 즐겁고 뭔가 권위까지 풍기는 컬트에 기꺼이 동참하는 겁니다. <스타워즈>에 대해서는, 이게 더군다나 SF 장르인데도 (미국 기준) 전혀 시대에 뒤처졌다거나 특정 세대 소속이란 느낌이 없습니다. 미국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도 관련 "굿즈"를 모으거나 담론에 참가해도 별로 촌스럽다는 느낌이 안 들고, 반대로 뭔가 글로벌 트렌드에 합류한 듯한 뿌듯함(착각일 수도 있으나)마저 공유하는 듯합니다.

스타워즈는 그저 특정 크리에이터의 지적 재산도 아니고, 이상 열기를 이어가는 특수층의 편협한 기호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문화"인데, 서브컬처로 보기에도 그 스케일이 너무도 거대합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10억인의 유대감"으로 표현하는데, 이를 연인원으로 계산한다면 50억으로 잡아도 된다고 저 개인적으로는 평가합니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3편(즉 에피소드 6) 상당수 시퀀스에서 민망할 정도의 유치함을 느꼈고, 일부 장면에는 불필요한 선정성까지 가미되었으며, 시원격인 에피소드 4에도 명백한 구성, 촬영상의 구프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팬덤 참가(유무형 불문)라든가 열성 지지층에 낀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스타워즈만이 빚는 이런 "문화 현상"이 더 대견(?)하고 경이롭게 다가오는 겁니다.

2부 전반부에는 "스타워즈" 개별 연작을 떠나, 대체 대서사시형 흥행작이라든가 블록버스터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제작이 결정되고, 역사를 남을 히트를 치거나 반대로 대재앙에 그치는지 제법 심도 있는 분석이 이뤄집니다. 독자로서 저는 이런 분석도, 영화 산업 전반이나 미학적 구조에 대한 일반론 이해가 선행된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스타워즈> 개별 컨텐츠에 대한 애정이 워낙 깊다 보니 상위 영역에 대한 소양까지 절로 형성된 소산이라고 봅니다.

저자는 "한정적인 일본 문화의 영향"이라고 규정하지만, 사실 조지 루카스 본인부터가 공공연한 재퍼노파일인데다, 제다이들이 걸치고 다니는 헐렁한 도복(?)하며 멀쩡한 강력 화기 놔 두고 광선검으로 설쳐 대는 설정 하며,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일본 풍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건 너무도 명백합니다. 이걸 얼버무려 "동아시아 스타일"로 호도하려 들어도 그(조지 루카스)의 작가적 배경(p161)이 너무도 뻔하기에 반박 근거가 취약합니다.

저자 가와하라 가즈히사 씨는 자신이 소속한 세대도 그렇고(본래 이쪽 팬 1세대는 이만큼이나 나이 드신 분들입니다. 개인적 체험에 바탕하여, 할 이야기를 많이 풀어 내려면 넉넉한 중산층 이상 집안에서 성장해야 했겠고요) 거쳐 온 경력도, 딱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다 할 만한 분입니다. 이쪽 산업의 뒷이야기도 잘 아실 만하기에, 처음에 잘못된 결정을 내려 (결과적으로) 큰 손해를 보았다가 드디어 정신 차리고 이번의 후 3부작 제작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디즈니 사의 전략적 선회에 대해서도 자세한, 그리고 믿을 만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분량이 길지는 않고 스타워즈 팬들이라면 다 알 만한 화제들이긴 하나, 역시 진짜 팬들이라면 들은 이야기 듣고 또 들어도 여전히 흥겹지 않겠습니까. 소장할 만한 아이템이고, 일반 영화팬들에게도 전문가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통찰이 자주 보여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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