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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강민호 지음 / 턴어라운드 / 2018년 6월
평점 :
시장에서 잘 팔리는 것은 분명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반면, 안 팔리는 아이템에 대해서는, 성능이나 효과가 뛰어나도 마케팅이 부진해서 시장에서 큰 빛을 못 보고 사장되는 경우도 있겠거니, 동정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 강민호 대표는, "여러분의 상품과 서비스가 잘 안 팔린다면, 그것은 그만큼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아주 잘라서
말합니다. 사실 요즘은 회사원이든 자영업자든 어떤 에고로 자신을 보호하려 들지 않고,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냉정하게 "주제 파악"을 하는 습관이 다들 들어가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예컨대 강대표 같은 분이 이런 직설적 충고를 해도 "맞는
말씀"이라며 대체로는 수긍을 하는 분위기가 대세입니다. 나쁜 점 안 고치고 계속 자기 합리화만 하려 들면 그 사업체는 평생
그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뀌어야 할 건 (세상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뿐이었다." 미국 영화배우 캐서린 헵번의
유명한 말이죠.
"마케팅의 본질은
진정성에 있다." 아주 나쁜 습관이 든 사람들은 실제보다 부풀려 과장하고, 없는 장점도 앞에 걸고 내세우며, 듣기 좋은 번지르르한
말로 치장하는 작업이 제대로 된 마케팅인 줄 착각합니다. "진정성은 하층민의 속성"이라고 말하는, 단단히 잘못된 어느 하층민의
말도 들은 적 있습니다. 기가 찰 뿐이죠. 영국의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일약 스타로 부상한 폴 포츠라는 이는, 그 특유의
성량과 가창력뿐 아니라, 보잘것없이 살아온 라이프스토리 덕분에 더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배경을
내세운 이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출중한 실력을 뽐내었으나, 그의 이력이 다소 과장된("불우한 환경" 운운) 사실이 드러나고부터
대중의 관심은 급격히 식었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진정성"이란 요소의 중요도가 얼마나 큰지 잘 드러난다고 주장합니다. 인간 못된
놈일수록, 잘해주는 사람한테 더 기어오르고 속보이는 잔머리를 굴리기 마련이죠.
<히든
싱어>애서 가수 거미보다 더 그녀의 개성을 잘 살려 노래한다는 평을 들을 만큼 뛰어난 소질을 보인 출연자가 있었습니다.
확실히 한국에는 노래 잘하시는 분들이 참 많다는 점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음원을 구매할 때, 거미와 (어쩌면 오리지널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르는) 모창가수의 음원 중 무엇을 사겠습니까?" 질문의
답도, 의도도 명백하며, 오리지널의 아우라란 그만큼이나 무섭다는 걸 이 간단한 질문 하나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습니다. 한편,
"과연 그렇겠구나" 하고 바로 독자의 공감을 유도하는 이런 저자의 능력에도 다시 감탄하게 됩니다.
여기서
마케팅의 핵심, 본질이 무엇일지는 어느 정도 답이 나온 셈입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오리지낼리티의 중요성, 또
과장이나 허위가 없는 진정성, 이 둘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대중, 소비자라도 마음에 품고 구매를 원하는 가치임에 틀림
없습니다. 얼마 전 장장 7년을 끌어 온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소송 초기에 애플은 삼성더러 "우리는 애플의
카피캣이었다"는 한 마디 성명만 발표하면 손해배상금 요구 없이 합의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걸었습니다. 삼성 역시 그 말을
들을 만큼 바보가 아니었기에 소송을 끌어 왔고, 이제 양측은 더 이상 싸움을 계속할 실익이 없어 긴 싸움을 끝낸 것입니다. 애플
역시 그간 삼성이 2인자로서건 뭐건 그 나름의 입지를 시장 속에서 확보했다고 봤기에 현실적인 결단을 내린 셈입니다.
기능이
단 1%만큼이라도 우수하면 그만큼의 대접을 시장에서 받게끔 될까? 저자는 미소한 기술우위는 본원적 우위가 결코 아님을
강조합니다. 경제학 철칙 중 하나인 "효용 체감의 법칙"이란 게 있으며, 두 배가 나아진다고 해도 소비자가 체감하는 바는 결코 두
배의 체감이 못 된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또한, "어디까지나 기술은 모방하기 쉬움"을 지적합니다. 벤치마킹이든 역공학이든
산업스파이의 도용을 통해서든요.
경제학에서
입문자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개념 중 하나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구분"입니다. 공기는 단 몇 초만 결핍되어도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지만, 다이아몬드는 어떤 생리적 편익을 제공하는 바 없어도 천정부지의 가격을 시장에서 형성합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정서적 편익"으로 정리합니다. 가격 싸고 성능 좋은 상품을 외면하고, 그저 명품만 바라봐도 마음이 설레는 건 모두 이 정서적
편익"에 해당합니다. 애플은 영리하게도 자사 제품(기껏해야 가전제품 영역일 뿐인데도)에 이 확고한 이미지를 심어 놓았던 것입니다.
애플의 제품이야 최종소비재라 또 그렇다 치더라도, 1990년대 중반의 앤디 그루브는 일개 중간재(부품)에 불과한 CPU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직접 각인시켜, "인텔 인사이드" 로고가 붙은 PC라야 시장에서 안심하고 팔리게끔 만드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했습니다(물론 지금은 타업체의 약진으로 그때와는 시장 상황이 크게 다릅니다. 애초에 부품은, 소비자에게 "환상"을 심어 주기
어려운 존재죠).
이처럼 편익은
다양한 방향으로 형성됩니다. 소비자는 기능-정서-경험-사회 등 여러 요소를 모두 고려하여 효용을 재므로, 성공적인 마케터는 이
모두를 전략에 반영하여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편익이 이런 4요소로 이뤄진다면, 편익을 반드시 밑돌아야 할 "비용"은 어떨까요?
"경제, 시간, 신체, 심리"의 4요소를 역시 꼽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시간과 신체 비용이란, 아무리 좋은 상품,
서비스라 해도 이를 판단, 결정하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면 소비자가 기피하는 경향을 말합니다(신체 비용은 그 반대로,
이케아 가구처럼 체험을 위해 일정 시간 비용은 내[소비자]가 떠맡겠다고 나서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심리적 비용은, 지출하는 편이
훨씬 이익인데도 "이것만은 못 내놓겠는걸"하고 소비자가 끝까지 미련을 갖는 영역을 뜻합니다(반대로, 알고보면 큰 지출인데도 이건
기꺼이 써야 한다며 소비자의 마음을 현혹하는 경우 역시 여기에 속하겠습니다). 마케터가 언제나 염두에 둬야 하는 건, 소비자의
"심리 비용을 낮춰 주기"입니다. 같은 현상을 두고도 말을 이처럼 그럴싸하게 표현하는 일 역시 마케팅의 자질임에 분명합니다.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란 말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팔 때에는, 처음부터 모든 옵션을 포함한 가격을 기본으로
제시(디폴트 옵션)하는 방식입니다(p88). 사람은 누구나 제시된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하며, 내게 필요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변화가 생기는 걸 본능적으로 싫어한다는 거죠. 반면, 제로에서 시작하여 하나하나 포함시켜 나간다면, 고객은 자신에게 긴요하지
않은 옵션을 비교적 냉철하게 걸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세일즈맨의 경우, 성과급을 지불하기보다, 목표 미달시 애초에 주었던
급여를 뺏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더 필사적으로 업무에 매진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구체적 업장의 환경에 따라 차이가 날
것이며, (세일즈맨이 자영업이라곤 하나) 근로 윤리 문제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예시가 그러하다는 취지겠죠.
아무리
치밀한 마케팅 전략과 모델을 고안해도, 현대의 소비자들은 영리하기 때문에 이른바 체리피커 문제를 피해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전 잡지의 고가 부록 이슈에서도 드러났듯, 어떤 마케팅은 분명 배보다 배꼽이 더 큰데도 기업들이 무리하게 비용을 지출하기도
합니다. 2011년 당시 3G 무제한 요금제가 이슈가 되었을 때, 모 회사는 "이 문제는 마케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다른
2사가 반대할 때 요금제 존치를 주장했습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기업들이 고객 생애 가치, 혹은 브랜드 레버리지 효과를
노려서라고 합니다. 한번 좋은 인상이 남으면, 사람들은 다른 더 좋은 기회를 탐색하는 수고를 아낀 채 현상에 머무르려 듭니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된) "현상 유지 편향"과도 관계 있으며, 혹은 "시간 비용" 개념으로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모두를 위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저자는
현대 마케팅의 요체가 STP, 즉 시장 세분화(segmentation), 타깃 선정, 고객 마음 속의
위치(positioning)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합니다. 주먹보다는 송곳, 송곳보다는 바늘이라는 원칙을 명심하며, 거래보다
"관계", 유행보다는 "기본", 현상보다는 "본질"을 중시할 줄 아는 깊은 통찰과 수양, 내공이 필요합니다. 근본 없고 겉멋만 든
얼치기일수록 이 모든 원칙과 진실에 거스르기 마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