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기회와 타이밍이다
위민훙 지음, 정유희 옮김 / 새로운제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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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은 "창업은 기회와 타이밍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인) 독자인 제 생각으로, 창업뿐 아니라 모든 경제활동의 키 팩터는 바로 타이밍이 아닐까 하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느 특정 지역의 부동산가가 오른다 내린다, 주식이 이게 유망하다 아니다 등은 일반론으로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거시적으로 "이제 부동산은 끝났다, 비트코인은 위험하다" 같은 진단을, 아무리 많은 근거를 들어 내려봐야, 현실에서 당장 오늘도 어제도 큰 재미를 봤다는 사람이 속출하는데 어쩌겠습니까. 그저 운이 좋아서다? 수익을 올린 이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해당 분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 앞에 가서, 어디서 어설프게 주워들은 지식으로 이게 끝났네 저거 못 믿네 떠들어봐야 상대도 안 해 줄 뿐더러, "돈도 없는 게 사고방식도 꼴통이구나" 하고 아예 사람 취급도 못 받습니다.

공부한다고 다 성공한다는 게 아니라, 해당 분야에 대해 공부를 통해 소양을 쌓는 게 필요조건이라는 뜻입니다. 그 필요조건을 충분조건으로 좁혀 나가는 건 바로 타이밍의 정확한 포착이고, 타이밍이란 뭘 위한 타이밍이냐 하면 바로 (순식간에 내 앞을 스쳐지나가는)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 안 하는 사람한테는 이 기회와 타이밍 자체가 오지를 않습니다. 얼토당토 않은 자기 합리화 타령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저능한 실업자한테야 말할 것도 없죠.

저자 위민훙(한국식으로 한자를 읽어도 꽤 발음이 비슷한 "위민홍"이니다)은 처음에 학원 강사로 주요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중국이나 우리나 (일본이나) 자녀 교육 시키는 걸 무척 중시하는 풍조라서, 신흥 개발 도상국으로 막 발돋움할 무렵(혹은 전후 복구 시기)에는 자녀 교육 섹터에 무척 돈이 많이 쏠리나 봅니다. 한국 같은 경우 더 이상 계층 이동이 가능하지 않은 단계로 사회가 이행하다 보니 자녀 교육 투자에도 열기가 시들해지는 분위기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교육 바람은 잦아들지 않습니다. 다만 승자 독식 현상이 두드러져서 경쟁력 없는 학원들은 점차 문을 닫는 추세인데, 애초에 안이하게 특정 지역 건물에 입주만 하면 알아서 학생이 모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을 벌이니 이렇게 되는 거죠.

저자 위 회장의 경우 처음에 (인기) 학원 강사와 페이 협의가 잘 되지 않으면 아예 나가라고 배짱을 부렸다고 합니다. 만약 수업이 비면 자기가 알아서 채웠는데, 본인 자신이 실력이 있다 보니 운영에 아무 문제가 없더라는 거죠. 이처럼, 경영자란 사실 유능한 사람을 부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부리는 사람들의 재주를 어느 정도는 본인이 장착을 하고 모범, 시범을 보일 수가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촉한의 소열제처럼 인덕이 무한해서 웬만한 잡놈 도둑놈들도 다 인격으로 감복을 시킬 수 있든지 말입니다. 그런데 이 역시 하늘이 허락한 자질이라야 한다는 게....

이분도 이과 출신이다 보니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 묘사된 앨런  튜링의 사연에 큰 흥미를 보이는 대목이 책에 나옵니다. 튜링의 이론 중 정작 핵심이 되는 대목은 전혀 이해를 못 한 채, 몇 개 중에 몇 개만 통과하면 인공지능으로 볼 수 있다는 이른바 "튜링 테스트"만 사골뼈처럼 울궈먹으며 사기를 치는 어느 사이비하고는 큰 차이가 나죠.

위 회장이 책 서두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자칫하면 사회에서 사장될 뻔한 젊은 인재를 후원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 영화를 보고 새삼 깨달...은 건 아니고, 그전부터 후원 사업을 해 왔지만 그 영화를 보고 새삼 동기를 더 굳혔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위 회장은 이 말을 하는 중, "애플의 로고에 베어먹힌 사과가 들어간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루머"라고 하며 다소 배경 사연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데, 이 이야기가 한 이십 년 전에는 대학가나 인터넷에서 아주 인기 있기 떠돌았으나 현재 해당 회사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지식과 이치를 정확히 이해하기보다 아침드라마 막장 사연 같은 뒷공론거리에만 열을 올리는 사이비 풍조는 지양되어야 마땅하죠.

"신둥팡은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이다." 일개 학원 원장님으로 시작하여 오늘날 거대 자금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 위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법인체에 대해 이 같은 자부심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저 말에서 포인트가 놓인 곳은, "거대한"이란 형용사도 형용사이지만 그보다는 "플랫폼"입니다. 플랫폼이란, 자신이 깔아주는 거대한 장터에, 제각각의 재주를 보유한 다양한 인재들이 몰려와 저마다의 좌판을 벌이고 흥겹게 생업을 이어가는 광경을 연상하면 되겠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거의 매일 같이 보는 폰 속의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 같은 걸 연상하면 됩니다. 플랫폼이 지나친 갑질을 일삼아도 문제지만, 애초에 플랫폼이 없었으면 갈데도 없었을 사람들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마음이 다르다는 식으로 룰을 무작정 무시하고 드는 풍조도 곤란할 것입니다.

위 회장은 말합니다. "지금은 자기의 재능과 개성을 과시해야만 살안남는 시대이다." 물론 아무 재능도 없이 남의 말이나 베끼면서 사기를 강박적으로 치고 다니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 회장이 여기서 경계하는 건, 맨날 신세 타령 남 탓이나 하고 억울하다는 소리나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요즘 같은 세상에 남까지 해롭게 하므로 당장에 퇴출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자신이 부당한 대우나 강요를 받고 있다고 여긴다면, 그는 자신의 위치를 잘못 설정했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같은 학원인 출신인데도 어쩜 이렇게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칭화 대학 재학 중에 외모가 나보다도 형편 없으면서 인기 듀오 가수로 활동 중인 슈이무옌화 이야기를 해 보겠다(p194)." 참고로 위 회장은 북경대 출신입니다. 위 회장의 버전으로 이 책에서 설명되는 저 듀오의 사연이란, 칭화대 재학 중 가뜩이나 적은 여학생 수(공과대 계열이 어느 나라나 사정이 비슷하죠)였던 데다, 외모까지 저러니 어디서 청춘 사업을 벌일 여지도 못 찾던 불쌍한 형편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던 울적한 소회를 노래로 풀어대던 게 느닷 대박이 나서 오늘날 연예인으로 입지를 굳혔다는 건데.. 여튼 위 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는 거고요. 얘기의 결론은 "능력이란, 그 사람만이 지닌 내적인 자격이다."입니다.

위 회장은 비단 여기서뿐 아니라 책 저 앞에서도 유독 외모 거론(?)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p134에서 자신이 지금 재무담당으로 거느리는 CFO 셰둥잉(謝東螢. 사동형. 아마 중국어 원서에는 간자로 萤이라 인쇄되었을 텐데 출판사에서 용케 정자체로 고쳐 주셨네요. 이런 성의를 봐서라도 책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습니다) 얘기를 꺼내는데, 지독하게 못생겼지만 머리 하나는 기막히게 좋다며(세상은 이래야 공평한 건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안되는 오탈이는... ㅠ), "나를 1년만 딱 고용해 주면 신둥팡을 보란 듯이 상장시켜 주고 나가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시절을 회상합니다.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안 나가고 버틴다"며 지레 불평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너무 고마워서 계속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행간에서 다 배어납니다(반어법). 이처럼 지도자(경영자)는 냉혈한처럼 머리만 좋아서 되는 게 아니라 푸근한 인간적인 매력이 배어나는 타입이라야 합니다.

영어에서 자기부정(self-denial)이란 말을 종종 하는데, 사실은 이게 우리 동양인들에게도 아주 눈에 익은(오히려 더 친숙한) 개념입니다.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손 감독이 낙오자들을 이끌고 무인도에서 지옥 훈련 하는 걸 떠올리면 됩니다. 요즘은 이런 게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경원시되기도 하지만, 사람이 극한의 고행으로 자신을 스스스로 몰고가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건 차라리 감동작이기까지 합니다(이런 걸 아주 싫어하여 퇴행을 거듭하면 뭐 지금 저 바보오탈이처럼 되는 거죠).

위 회장은 자기 지인 중 한 사람이 완전 초보였는데 감옥에 4년 수감되었을 때 영어 공부 하나만 파서, 나올 때에는 전문가가 된 사례를 소개합니다. 이와 바로 비교할 건 아니지만 좀 비슷한 예로, 한국에도 수감 기간 중 영어 공부만 들입다 파서는 텝스 만점 받은 사례가 있다는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위 회장이 여기서 또 드는 다른 예는, 투르게네프의 단편 <도박>입니다. 위 회장은 아마 제목이 기억 안 났는지 "투르게네프의 어느 작품"이라고만 하는데 저도 고등학생 때 이 작품을 매우 감명깊게 읽어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서평 중에도 종종 인용합니다ㅋ). 못난 오탈이도 도박을 참 좋아하지만 인생에 접목시키는 패턴의 방향성은 서로 극과 극이라고 봐야죠.

대학 졸업장이 과연 중요한가? 위 회장은 이 책 곳곳에서 저 칭화대 출신 가수 슈이무옌화 이야기라든가, p54에서 빌 게이츠, 잡스, 저커버그 등 모두 대졸자가 아니라면서 능력 앞에 졸업장이란 아무 소용 없다는 말까지 합니다. p194에서는 "무능자가 자기 무능을 가리는 수단이 바로 대학 졸업장"이라고까지 극언합니다(졸업장마저도 시원찮은 오탈이는 어쩌라고). 그러나 제 생각에는, 능력은 능력대로 개발하더라도 졸업장은 챙겨야 이후 사회에서 쓸데없는 일을 안 겪는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에는 실력이 좋으니 고액과외만 하며 돈 펑펑 벌고 아무 부족한 것 없이 살다가 정작 학교로 돌아와보니 적성에도 안 맞는 전공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서(그렇다고 돈 많겠다 취업 필요도 못 느끼겠고) 졸업을 아예 포기한 케이스가 많은데, 이 역시 곤란한 겁니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사교육 병폐를 거론하는 일이 좀 줄어들었는데, 위 회장은 "온라인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가 교육의 보편화"라고 지적합니다. 쉽게 말해서, 양질의 인강이 널리 싼 가격에 보급되다 보니 예전처럼 기회의 불균등은 그닥 심각하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거죠. 여튼 위 회장은 이걸로 떼돈을 벌어 청년 창업(그 중에는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도 많을 겁니다)을 지원하는 엔젤투자가(angel investor)로까지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위 회장은 앞으로 자신의 신둥팡을 잘게 쪼개어 개별 벤처 기업으로 다 독립시키고 심지어 일부는 지분까지 다 처분하는 통큰 경영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한국 재벌사도 일부 이런 패턴이 눈에 보이지만 이 레벨까지 가려면 멀었는데 북경대 출신 엘리트 답게 참 막힌 데 없이 호탕하다는 생각입니다.

p181에선 마윈 회장을 잠시 거론하는데 마윈은 학원 하다가 다 말아먹었지만 자신은 여기서 벌써 성공했었다며 은근 자신감을 드러내네요. ㅋ 그런데 다음에서 바로 이런 말도 합니다. "나도 마윈처럼 실패했었다면, 다른 시장으로 곧바로 옮아가서 또다시 도전하고, 마침내 성공했을 것이다." 지금 이 책을 위 회장이 쓴 취지는, 남의 돈을 지원 받으려는 청년이라면 이 정도 자질을 갖춰야 한다는 어떤 사업가상을 밝히기 위해서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단 한 마디로, 아무리 실패해도 바로 일어설 패기와 근성이 있는 "바로 위 회장 자신 같은 타입"을 원한다고 이 책 결론(bottom line)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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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하반기 단기 합격 해커스 NCS 직업기초능력평가 + 직무수행능력평가 - 자기소개서 작성부터 면접까지 NCS 합격 전략을 한 권에 담은 통합 기본서, 공기업(공사·공단)통합편 - 코레일, 한국전력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근로복지공단, 한국수력원자력, 서울교통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최신 개정내용 수록
김소원.김태형.윤종혁.해커스 취업교육연구소 지음 / 해커스공기업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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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S라고 하면 나이 드신 분들은 아직 생소해할 만한 개념입니다. 르그러나 현재는 채용의 한 표준으로 자리잡혀 가는, 포괄적인 적성 테스트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연배가 좀 있으신 분들도 PSAT이라고 하면 "아!"하고 느낌이 올 수도 있는데 십 수년 전 그 시험의 좀 진화된 형태라고 간주해도 아주 틀리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NCS류의 시험은 다양한 독서, 시사에의 꾸준한 관심 축적, 여기에 기초 통계나 수식을 다루는 소양과 능력 등이 결합하여 고득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하루아침에 "진짜 실력"이 길러지기는 힘든 시험이겠는데, 그렇다고 해도 현재 공사, 공기업에서는 이 NCS를 표준으로 채택하여 일차로 인재를 전형하니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과거에는 어느 공기업이라 해도 단순한 영어 필기 시험, 서류 전형 등으로 신입공채를 실시했으나 현재는 그런 방식은 아닙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공정성 제기에 전혀 문제가 없는 방식이라야 뒷말이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천편일률적이고 인재의 지극히 단순한 적성 하나만을 보고 뽑는 식이라면 매우 곤란합니다. 따라서 NCS도 개발 유형이 매우 다양해지고 있으며, 종전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되 수험생들이 익숙해진 패턴에서는 또 살짝 변형을 가하는, 그런 얄미운 형식으로 바뀌어간다는 점 이 2018 하반기 최신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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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 하세국 - 광해군의 첩보전쟁
박준수 지음 / 청년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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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 사회에서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이를 십분 발휘하거나 체제의 인정을 받고 성공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도 일단 유명세를 얻어 흐뭇해하는 일탈 분자가 많은 현대와는 큰 대조를 이루죠. 역관은 본디 고관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일개 중인의 신분이었으나 명, 청 등 대국들과의 외교를 원활히 유지하는 데 이들의 기능은 필수 불가결의 요소였으므로, 집권 세력은 언제나 각별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은 광해군 연간을 배경으로 다룹니다. 작품 속에서 중심 캐릭터 중 하나로 등장하는 정충신은 물론 실존 인물입니다. 그는 천출이라서 온전한 대접을 받기 어려웠는데, 목사(성직자가 당연히 아니고 지방관) 시절의 권율을 어린 시절 훌륭히 보좌하여 출세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과연 막강한 군사력을 행사할 깜냥이 되었는지는 의심스러우나, 여튼 대륙의 중국은 엄청난 동원 능력(광대한 영토와 자원, 인력 등)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소국 조선으로서는 그들과의 의사 연락이 원활히 이뤄져야 체제 안전 보장이 가능했습니다. 이러던 게 갑자기 요동 지방에서 누르하치의 건주의 세력이 기존 여진 진영을 모조리 통합하고 명과 대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조선으로서는 (동족도 아니고 누백 년 동안 천시, 비하하던 상대이긴 하나) 이 여진 보기를 마치 현재의 북한이 미국과 대립하는 양상을 지켜보듯 했을 겁니다. 제아무리 야무지고 간 큰 지도자를 만나 사회 구조를 잘 정비했다고는 하나 대국을 어떻게 상대하겠냐는 거죠.

여진이 명과 조선의 오랜 교통로를 차단하자, 모문룡이 무단 점령한 철산 가도는 무척 중요한 성격을 띠게 됩니다. 우리가 후대에 역사를 배우기로는 변방을 지키는 타국(그러나 상국)의 일개 장수에게 영토를 점유당한 치욕을 거론하지만, 이처럼 국제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므로 일일이 국제 규범과 민페상을 지적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또, 원숭환 장군이 황명을 받들어 해당 군기 문란자(물론 모문룡)을 처단하고 질서를 회복한 일을 극구 찬양하지만, 역시 긴 관점에서 보면 무엇이 국익을 위해 최선이었는지는 역시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의사를 결정할 때에는 올바른 정보의 수집, 분석이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당시의 조정은 이념 논쟁에나 휘말려, 평생을 현장에서 봉직해 온 노련한 역관이 열성으로 정리해 상신한 팩트를 직시하지 못하고, 제멋대로의 정세 판단을 일삼아 끝내 국치를 맛 보고 말았습니다. 어리석은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이 책은 참으로 중요한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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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DELF A2 - 프랑스어 능력시험 대비, 한 권으로 끝내는 한 권으로 끝내는 DELF
정일영 지음, Meure Eloise 감수 / 시원스쿨닷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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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교육으로 유명한 시원스쿨에서 프랑스어 교재, 그 중에서도 DELF, DALF 수험서를 펴내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예전 EBS 제2외국어(중 프랑스어) 담당 명강사인 정일영 선생님 저자 명의를 보고 "아, 그렇겠지." 싶었습니다. 사실 프랑스어는 괜한 선입견과는 달리 진정성을 갖고 차근히 기초를 닦아 나가면, 중급 단계까지는 별로 어렵지도 않고 오히려 학습자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언어입니다. 책에는 "전(前) EBS 수능 대비 강의"로 쌤 경력이 나오는데 작년에도 해설 강의를 하셨고 EBS에서 수능용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DELF 클래스로 그대로 갈아(올라)타곤 합니다. 프랑스어에 관한 한 특정 세대가 아는 가장 유명한 강사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학에 한석원 선생님이 있다면, 프랑스어에는 막힘 없이, 확실한 자기 리듬으로 수험생들의 혈을 뚫어주는 정일영 선생님이 있다 해도 과언 아닙니다.

DELF에 대한 응시생들의 체감 정서는 이 책 머리말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활용도가 높은 데 비해 통과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으나, 막상 시험을 쳐 보면 "생각보다는" 어렵더라는 게 중론입니다. 특히 한국 학생들이 힘들어 하는 건 작문과 구술 파트입니다. 문법이나 단어는 특히 이 A2 레벨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응시자들을 힘들게 하는 건 바로 이 구술, 작문입니다. 주변에 보면 독학으로도 A2 정도는 넉넉히 합격한다고들 하는데, 제 생각으로는 그래도 학원을 다녀야 네 파트 모두에서 균형 있는 점수를 얻을 수 있을 듯합니다.

전공자 제외하고, 학부에서 교양 과목으로 듣거나 고교 시절 제2외국어 이수 정도로 프랑스어를 만난 게 고작인 이들에게는 이 A2에서도 모르는 단어, 표현이 수두록할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단기에 A2 디디플로마를 따야 하는(DELF의 d가 바로 그 d죠) 이들에게는 정말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최소 수고, 최대 효과) 필요한 만큼만 딱 정리해 준 책이 필요한데, 정일영샘의 이 책이 현재로선 그런 책에 가장 근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A2만 해도 초보자를 못살게 구는, 변별력이란 명분으로 수험생을 소 몰듯 끌고 다니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영어도 패턴으로 공부를 하는 방식이 유행입니다. 일정 구문 묶음을 외우고, 손으로 써 보고, 입으로 소리내어 암송하는 제법 고달픈 절차를 거쳐야 오픽이나 토플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데(토익과 텝스는 성격이 좀 다르고요), DELF야말로 패턴 학습이 정말 중요합니다. 안정적으로 4개 영역 모두 통과를 하려면 이 책을 뗀 후에도 몇 가지 책을 더 보고 보충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독학자의 경우).

만약 영단어 공부가 충실히 된 분이라면 프랑스어 어휘 접근을 보다 손쉽게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저 DALF만 해도, A가 approfondi(영어의 advanced죠. 심지어 둘 다 과거분사형이라는 점까지 닮았습니다)의 약자인데, 이는 영어의 profound와 핵심어근을 공유합니다. 이 책만 해도 suffisamment(충분히), distribuer(배부하다) 등은 영어와 너무도 닮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들 프랑스어로부터 해당 영단어가 파생하거나 아예 그대로 차용하는 역사적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DELF를 준비하는 분들은 이미 기초 문법은 다 마스터하고 시험에 임하는 게 보통인데, 정말로 프랑스어 생초짜라면 처음에, s'entrainer연습하다, 훈련하다) 같은 재귀대명사 목적어가 왜 오는지(그것도 동사 앞에)를 몰라서 혼란을 겪습니다. 그런데 영어도, 어떤 동사는 반드시 재귀대명사를 목적어로 가져옵니다. seat oneself 같은 걸 보십시오. 이거는 사실 불어의 s'asseoir를 그대로 차용한 흔적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때 배우던 숙어 avail oneself of는, 불어의 se prévaloir (de)와 똑같은 거고 말입니다. Amusez-vous bien를 따라한 것이 Enjoy yourself입니다. s'intégrer(동화되다) 같은 표현은 그러나 영어와는 경우가 좀 다릅니다. 러시아어 공부해 보신 분들은 프랑스어 동사의 이런 구조가 상(相. aspect)과도 비슷하단 생각 드실 겁니다.

구술에서 인터뷰할 때 물론 말 그대로 인터뷰이기 때문에 무슨 암송 웅변대회하듯 판에 박힌 패턴만 외워서는 통과가 힘듭니다. 그래도 일단 말을 알아 듣기 위해, 또 내 의사를 어느 정도 표현하기 위해 익혀야하는 (좀 뻔한, 그러면서도 필수인) 구문 패턴은 반드시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책 중에서는,

je voudrais prendre un rendez vous+(temps): 저는 (어느어느때에) 약속을 잡고 싶습니다. (p155)

처럼, 마치 영어의 "파인 땡큐 앤지유" 처럼 너무도 뻔한 패턴, 그러나 A2 합격(admis. 이 역시 과거분사형입니다)을 위해서는 달달 외워서 입에서 손끝에서 자유자재로 나올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하죠.

p295를 보면 해설에서 ".... 캠페인의 목적을 묻고 있는데 장소명 Kerguelen은 다른 단어로 대체되기 어려우므로 그대로 언급되는 부분을 빠르게 찾는다..."고 하십니다. 정말 DELF에도 요령이나 노하우가 있다면 바로 이런 대목들이죠. p297을 보면, "지금 A2레벨이므로 안전하게 가는 게 최선이다. 진위 판별 등에서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면(OX를 맞힌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입증 근거를 제대로 지적해야만 합니다. 이 책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최후의 방법으로 단어가 그대로 제시된 부분이 혹시 있는지 찾아 봐야 한다"고 하십니다. 어디까지나 지금 이 시험이 A2 레벨이기에 통하는 방법인데, 제가 여러 명의 사례를 보았습니다만 절박한 수험생은 그렇게라도 해서 통과를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들 대부분은 기초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단단한 실력을 기른 후 그런 급박하고 서글픈 경우를 안 겪어야 하겠죠.

B레벨이나 그 이상인 DALF로 넘어가면 독해고 듣기고 쉬운 게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프랑스에 유학 가서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도 없습니다. 어학 공부에는 특히나 듣기 음원 청취가 보물 중 보물입니다. 책의 앞날개 부분 coupon scratch 꼭 하셔서 정성스레 제작된 음원이나 단어장도 꼭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어학만큼 다채널로 접근해야만 빨리 정복되는 영역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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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텝스(TEPS) 최신기출유형 실전모의고사 해설집 - 텝스 최신 시험 출제경향 반영 / TEPS 문제+스크립트+해석+해설+어휘 수록 / 들으면서 외우는 단어암기자료.정답 녹음 MP3 제공 해커스 텝스 최신기출유형 실전모의고사
해커스어학연구소 지음 / 해커스어학연구소(Hackers)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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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스 시리즈의 장점은 해설집에 있다고 누구나 다 인정합니다. 이 책의 본권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집에도 듣기 스크립트와 해석(해설이 아니라)이 실려 있지만, 이 해설집을 같이 봐야 출제자의 의도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텝스(뿐 아니라 영어 자체)를 대하는 시야가 넓어집니다.

테스트 4의 듣기 22번에서는 두 친구의 대화가 나옵니다("친구"라고 일부러 강조를 해 주네요). 여성의 대사 처음을 들으면 I'd like to라고 아주 또렷이 말합니다. 이런 대목도 그저 이 표현을 텍스트로만 공부한 분들은 이처럼이나 분명히 발음해 주는 데도 "그게 바로 그것"이었음을 눈치 못 채더군요. 그래서 해커스 공홈에 가서 단어장 같은 것도 반드시 음원을 다운 받아서 공부해야 합니다. 공짜인데 독자 입장에서 활용 안 할 이유가 없죠. 여성분의 다음 대사에도, make amends for 라든가, 요즘 출제 빈도가 부쩍 높아진 fallout(이 단어는 뜻이 무척 많은데 여기서는 "다툼"이란 뜻입니다) 같은, 어찌 보면 어휘 전용으로 공부하던 항목이 그냥 듣기 테스트에서 바로 활용됩니다. 사실 특정 평가 영역에 한정된 단어/숙어가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여튼 이런 부분이 다 키워드 구실을 해서, 답 자체는 아주 쉽게 찾아집니다.

듣기 29번 같은 것도, 오답인 (d)에서 license라고 하는지 buy some이라고 하는지, 괜히 상황의 맥락에서 연상되는 다른 단어로 오판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이처럼 "추론(inferred)" 문제의 교묘한 포인트 역시 텝스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다음 30번은 경관과 운전자 사이의 대화라고 역시 그 "맥락"을 안내자가 먼저 응시생들에게 알려 주고 시작합니다. 텝스의 경향을 치밀히 연구하고 잘 반영한 해커스 시리즈의 장점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여성분이 경관인데, 세번째 대사가 Not too worried인지 Not to worry인지 좀 헷갈린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런 건 딱히 해결할 방법이 있다기보다, 전자 같은 표현은 잘 쓰지를 않습니다. "루틴 체크" 등은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보면 경비원, 경찰 등이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워낙 자주 쓰이는 표현이라 누구 귀에도 익을 듯합니다. 교통 위반 딱지도 그저 ticket이라고만 알고 있는데, 답에는 citation이라는 보다 격식을 갖춘 표현이 등장합니다 하필 이게 또 답이라서, 응시자들이 확신이 없다면 이걸 바로 고르기가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36번 역시 (두 번씩 들려 주는) 내용을 모두 이해했다 쳐도 논리적으로 타당한 답을 고르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생각외로 텝스는, 영어에서 걸리는 게 아니라, 영어 외적인 사고 알고리즘, 체질이 시험과 안 맞아서 고생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충고는, 일단 내 생각만 맞다고 고집하면서 감정 상해할 게 아니라, (어차피 사람도 아니고 책을 상대하는 건데, 또 나보다야 보편타당한 입장에서 공정하게 사고하는 전문가들이 쓴 책인데) 한 번 정도는 물러서서 "이게 더 맞지 않을까?"하고 차분히 자신을 반성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다 자기 자신이 상황에 최선을 다해 왔다면서 남부끄럽지 않은 소신을 가졌다고 여기지만, 그 중에는 불공평하거나 편견에 가까운, 나 말고는 그리 많은 이가 동의하지 않는 것들도 제법 됩니다.

이 문제에서도, 이 청원자(사람들 앞에서 연설하거나, 아니면 어떤 안건을 회람시키는 듯하죠)는 특정 건설회사가 법을 어겼다는 의심이 드니 시 당국에 호소하자는 취지이고, 아직 "객관적으로" 법을 어겼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단, 화자는 그리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도 그냥 화자에 바로 감정이입해서, 지금 말하는 사람이 회사에 의심을 두고 비난하는 중이니 바로 (a)가 답 아니냐고 그냥 찍고는 자기 생각으로 굳혀 버리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런 마인드로는 어떤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못 냅니다. 아무리 문제 중에서 화자가 특정 방향으로 생각을 고집했어도, 밖에서 보는 우리는 관찰자의 특권으로 사태를 재구성할 줄 알아야죠. 이처럼 기존의 내 생각을, 한 번 정도는 의심도 해 보고 교정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인격 수양(영어 공부 외에)도 이뤄지는 것 아닐까요.

테스트 5에서 어휘 22번 같은 경우 좀 헷갈릴 수 있습니다. 무슨 상황인 줄은 알겠는데, (d)나 (a)도 답이 안 될 건 없습니다. 지금 불법으로 영화 파일을 복제, 전송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이 경우 (a)는 매우 어색합니다. (d) emulate 같은 경우 과거 E-Mule이라고 유명한 P2P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에 더 헷갈릴 만합니다. 그런데, 답은 (c)밖에 될 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위법한 행동으로 체포되었다는 거니까 괄호 안에는 그 자체로 범죄가 될 만한 동사(의 동명사형)가 들어가야 합니다. (a)나 (d)는 정황에 따라 합법이거나 당연한 업무 과정일 수도 있거든요(제작사가 프린트를 뜬다거나). (b)와 (c)가 범죄 관련 개념이긴 한데 (b)는 문맥과 전혀 무관합니다. (c)는 또, 유명한 붕법 파일 사이트 간판(의 일부)이기도 하기 때문에 ㅎㅎ 이걸로 찍은 이들도 아마 있지 싶습니다.

테스트 4의 어휘 25을 보시면 시의적절하게도 올해초에 열렸던 평창 동계 올림픽이 소재로 나와 있구나 짐작했는데, 그건 아니고 2013년에 개최되었던 지적장애인 올림픽(스페셜 올림픽스)이더군요. 평창 올림픽이 열리기 전 2017년에도 오스트리아에서 직전 대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차기 대회가 베이징 주최이므로 패럴림픽과는 달리 정규 대회와의 연관성은 없는 듯하네요. 답은, 선지의 단어들이 다 모양이 비슷해 보여도 (d) 말고는 답이 될 게 없습니다.

테스트 5의 문법 25번을 보면... demand, require 같은 이른바 "요구동사"의 경우 이의 목적절에 조동사 should나, 혹은 동사원형(정확하게는 원형부정사)가 온다는 건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런데 동사가 아닌 형용사꼴로 imperative가 오고(물론 그 앞엔 be 동사가 와야죠), 이 뒤에 진주어 가주어 구문으로 따라오는 that 이하에서도 비슷한 원칙이 적용되는 건 모르는 이들이 많죠. 여튼 답은, 요구동사의 원리를 유추해서 (a)입니다.

파트3의 28번처럼 한 패러그래프로 모인 문장들 중에서 오답 찾는 걸 유독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런 걸 보면 전부 다 답 같아서 도저히 답을 못 찾아내겠다고 합니다. IQ 테스트에서 패턴 분석은 잘해도 (더 쉬운) 숨은그림찾기를 못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 문제는 Had it not been for 같은 구문 공부가, 수험생이라면 터치를 않거나 잊고 지나간 사람이 없을 만큼 널리 이뤄졌으므로 아마 이 문제를 틀린 이는 드물 것 같습니다.

테스트 6의 독해 5번에서, "피처링"이란 단어는 알아도 "feature film"이라고 하면 무슨 소린지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영어권에서는 아주 자주 쓰는데 한국 학원에서는 표현의 pool이 고정되어 있어서. 익숙한 단어 둘의 조합인데도 전혀 뜻을 감 못 잡곤 하죠. 이 지문에서는 장편 극영화와 다큐를 나란히 설명하며, 산업과 각 상품의 특성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답은 (a)밖에 될 것이 없습니다. 나머지 선지들은 누구라도 극영화의 특성인 줄 알아차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테스트 6의 독해 17번 같은 걸 보시면, 이 해설집에서는 일일이 본문에다 선지 (a), (b), (c), (d)의 각 항을 매칭시켜서 왜 어떤 게 답이고 어떤 건 틀렸는지 수험생이 한눈에 알아보게 표기해 놓았습니다. 물론 타사 책들도 이런 시도는 하지만 해커스는 기계적으로 편집하는 게 아니라, 제 느낌으로는 좀 열심히 공부한 수험생들 기준으로 정말 이런 편집이 필요하겠다 판단되는 문항들에다 이렇게 처리하는 듯하더군요.

32번은 네안데르탈인의 새롭고 놀라운 측면을 발견해 낸 최근의 인류학 연구성과가 그 주제입니다. 대중서에서도 이 토픽으로 재미있는책이 여러 권 나왔으므로 상식이 풍부한 이들은 지문을 읽기 전에도 내용 파악이 손쉽게 이뤄질 겁니다. 비단 인류학뿐 아니라 역사, 철학, 종교 등 모든 주제가 마찬가지인데, 혹시 선지식을 가진 이들(역사 덕후라든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까봐 실제 시험에는 이런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사항 말고 좀 덜 알려지고 덜 인기를 끄는 사연이 다뤄지더군요. 아무튼 여기서 early human은, 휴머노이드 전체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만을 제한적으로 지칭한다는 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 그러면 지문을 정반대로 해석하게 됩니다. 또 이 지문은 과거형과 과거완료형의 용법에 대해서도 단 한 문장(복문)먼으로 차이를 알 수 있는, 문법적으로도 유익한 발췌문입니다.

해커스 시리즈 중 마지막으로 실전을 대비할 이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고난도 문항(그렇다고 전 문항이 고난도는 아닙니다. 실전에 맞게 적절히 난이도가 안배되어 있습니다)이 요소요소에 잘 실려, 시간 배분해 가면서 전략도 짜고 감각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게 책이 참 잘 만들어진 듯합니다. 문제를 다 풀어냈다고 해도 과연 출제자의 의도에 맞은 바람직한 과정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우연히 다다른 행운이었는지는 학습자의 냉철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 치밀한 해설집을 보고, 그저 내가 아는 지식을 재확인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피아노 조율하듯이 어떤 보편적인 상식과 감각에 내가 혹 어긋나는 부분은 없는지, 해설을 꼼꼼히 읽고 마지막으로 실력을 가다듬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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