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끝내는 재무제표 사용설명서 - 기업의 건강한 자산 증식과 관리를 위한 재무제표의 바이블
홍성수.김성민 지음 / 새로운제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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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느 직장이든 업무 강도가 높아져서 소속 부서가 어디이든 기본적인 회계 지식을 갖추어야만 적응에 무리가 없습니다. 한 십오년 전만 해도 CPA의 전유 지식 정도로나 여겨졌던 회계 분야를,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 유관 사항으로 기본 베이스를 깔고 들어가야 동료들과 말도 통하고 일도 제대로 해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뿐 아니라, 평생 직장 신화가 일찌감치 깨진 요즘은 다방면으로 자신의 미래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주식 투자(널리 채권, 선물 등 포함)을 안 하는 이들이 또 드뭅니다. 어리석은 소문에 휘둘리다 범죄자 신세가 되기 일쑤인 못난 투자를 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기업의 재무제표 정도는 읽을 줄 알아야 이 험한 세상에서 최소한의 자기 방어가 가능합니다.

힘들게 공부를 하고 소양을 갖추고 자질을 향상시켜도 어떤 큰 성과나 혜택이 따르는 게 아니라 그저 평균을 맞춰 나갈 뿐이라는 현실이 다소 답답하기도 하지만, 여튼 공부해서 남 주는 법 없다고 애써 익힌 기예와 지식은 다 내 것이 되는 셈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노련한 회계사분들이 단 한 권으로 잘 정리한, "한 권으로 끝내는", 재무제표 사용설명서는, 제목이 말해 주듯 그저 수동적으로 정확히 읽어 내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읽어낸 내용을 바탕으로 어떻게 "창의적으로 사용해 낼지"의 고민에까지 그 효용이 미치는, 'a splendid little book' 입니다.

남의 돈을 한 푼도 안 빌리고 살면 어디서 붉은 차업(압류) 딱지 날아올 걱정은 없겠으나 (이른바 레버리지 효과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어떤 고수익의 큰 사업을 벌일 기회 역시 함께 줄어듭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약 20년 전에 그룹 해체가 되어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어느 대기업처럼 도대체 자기 밑천은 하나도 없이 남에게 꾼 돈만 굴리면서 곡예를 펼치는 경우도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재무재표를 볼 때에는, 이 기업이 남(은행이 보통이지만 제2금융권, 사채업자 등도 있겠죠)으로부터 얼마나 돈을 빌리고 사업을 운용하는지 그 적정 수준을 먼저 체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서는 p75 등에서 "금융비용부담률" 등의 개념을, 먼저 친절히 설명합니다. 이는 매출액에서 금융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을 가리키는데, 쉽게 말해서 "금융비용/매출액"의 공식에 따릅니다. 이는 "부채비율"과는 구별되어야 하는데, 부채비율은 "타인자본(부채)/자기자본(협의의 자본)"이므로 당연히 그 값이 2(즉 200%)가 넘어가는 게 보통입니다(혹은, 그래야 재무구조가 건전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금융비용부담률은, 이 책에서 드는 예에서도 그렇고, 대개 3~4%를 오르내려야 정상으로 여겨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출액"이란 항목이 워낙 큰 양의 분모이기 때문이죠(작다면, 그런 기업이란 벌써....).

금융비용부담률과, "순(純)"금융비용부담률은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후자는, 은행에서 빌린 돈 그 자체로부터 일정 수익이 났을 때, 그를 빼고 난 나머지 금액을 매출액으로 나눈 것입니다. 만약 이 수익이 (운이든 실력이든) 예상 외로 컸다면 이 비율은 마이너스(陰)가 될 수도 있습니다(실제로는 드물겠습니다만). 저자들은 "금융비용이란 대개 고정비 성격이 강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설립 초기의 기업들(아직 정상 궤도에 못 오른)은 대개 이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고, 초기 고정비의 압박을 잘 관리해야 살아남고 성공하는 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우리 같은 외부 투자자의 입장에선 이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파악하는 한 유력 지표로 활용할 수 있겠고요.

"이자 보상 배율"은 신문이나 TV에서 자주 언급하는 지표이므로 알게모르게 그 성격이 일반인에게도 친숙합니다. 구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해서, 영업이익(매출액이 아닙니다!)을 그저 이자비용으로 나누기만 하면 됩니다. 1(즉 100%)라면, 남한테 1억씩 갚아 나가면서 그 동안 딱 1억 벌었다는 소립니다. 책에서 예를 드는 삼성의 경우 이 비율이 81.8인데, 저자들은 이 수치를 두고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82번이나 갚을 수 있다는 뜻"으로 좀더 실감나게 설명(해석)합니다. 삼전 같은 우량기업은 원체가 이익을 높이 올릴 뿐 아니라,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비용을 조달할 필요가 없겠으므로 이런 극단적인 수치가 나올 수 있겠습니다. 책 저 뒤 p339에서는 "이자 보상 배율이 높으면 상환 능력이 좋다"고 단적으로 이 지표의 활용 방향을 알려 줍니다.

이익을 내었으면 1) 사외 유출을 할 것인지, 혹은 2) 사내 유보를 할 것인지, 딱 두 가지 길이 있을 뿐이라고 책 p90에서는 설명합니다. 사실 "유보"라고 하면 괜히 어렵게 느껴지는데, 어차피 번 돈은 주주에게 나눠주거나(배당), 세금을 내거나(법인세) 하는 게 사외 유츌이고, 그 반대로 사내에 남겨 두는 게 사내유보입니다. 이렇게 보면 매우 간단하죠. 용어 개별에 집착하지 않고 먼저 큰 그림을 그려 준 후 각론과 디테일로 들어가며 독자의 부담을 줄이는 게 이 책의 가장 멋진 점 중 하나입니다.

어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너무 사내에 쌓아 두기만 해도 (주주 입장에서는) 매력적이지 못합니다(당연한 게, 명색이 주주인데 내 손에 들어오는 게 뭐 있어야죠). 반대로, 너무 주주에게 퍼 주기만 해도 (당장은 좋을지 모르나) 장래의 성장을 위한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투자자들은 이 주식의 가치를 낮게 평가한 나머지 보유하지 않고 팔아치우려 들 수 있습니다. 일러면 주가가 내려가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사실 모를 수는 없지만) 생돈을 날리는 셈입니다. 그러니 유출/유보 비율은 적정 수준이라야 합니다. (앞에서 본 몇몇 지표는 아무리 높거나 낮아도 괜찮지만)

"이익"은 이를 "처분"한다고 하며, "손실"은 "처리"한다는 표현을 씁니다(p95). 재무제표 많이 본 분들도 이런 미묘한 용어의 구분은 역시 정통으로 공부하고 자격을 갖춘 회계사의 언어 감각을 못 따라가기가 쉽습니다.

기업에는 유동자산이 있고 비유동자산이 있습니다. 1년 기준으로 얼마나 빨리 현금화가 가능한지를 두고 가르는데, 이들을 깇초로 한 지표인, 유동비율과 비유동비율은 구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먼저 유동비율은, 유동자산을 유동 부채로 나눈 비율입니다. 반면, 비유동비율은 비유동자산을, 분모를 달리하여 자기자본으로 나눕니다. 분모가 비유동부채가 아니라, 자기자본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서는 연관 개념을 바로 이어서 설명하는데, 비유동자산을 "비유동부채+자기자본"으로 나눈 비율은 "비유동 장기 적합률"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비유동 장기 적합률은 언제나 비유동비율보다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책에서는 "유동비율과 비유동 장기 적합률은 언제나 반비례한다"고 설명(p136)합니다. 사실 반비례라기보다는, 두 비율의 합이 언제나 2(즉 200%)이므로, 어느 하나가 늘어나면 다른 하나가 산술적으로 줄어드는 정도입니다(반비례는 두 변수의 합이 아니라 곱이 일정한 관계이니까요). 이어서 저자들은 독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하나가 100%를 초과하면 다른 하나는 100% 미만으로 줄어든다고 일러 줍니다. 왜 이런 결과가 항상 성립할까요? 그것은 자산= 부채(유동+비유동) + 자기자본의 등식을 전제로 삼고 이 모든 논의가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지나치게 이자 지불 압박에 시달리지도 않아야 하고, 여차직하면 바로 비용을 조달할 수 있게 유동성도 충분히 확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 외부적 지표에 지나지 않으며, 기업의 진짜 내실을 정확히 재려면, 이 기업이 자본 일정액을 투입함에 따라 얼마나 많은 수익을 더불어 내는지 그 "생산성"을 가늠해 봐야 합니다. 어쩌면 학자들 사이에 그토록 논의가 분분한 "내재가치"와도 직접 연관을 맺을 수 있는 수치입니다. 책에서는 이를 두고 "자본생산성"으로 표현하며, 특히 그 중에서도 "총 자본 투자 효율"이란 지표를 강조하는데, "부가가치 산출량/총 자본 투입량"으로 계산합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그래도 각종 지표가 뭘 말하는지 한눈에 잘 이해가 안 되는 독자들을 위해, "A라는 지표가 좋다는 건 회사의 어느어느 부문이 좋다는 뜻이다"라고, 마치 수험서처럼 결론만 딱딱 요약해 놓은(예컨대 pp323~327 등) 부분입니다. 일단 여기부터 먼저 읽고 결론을 정리한 후,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 다시 앞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되새겨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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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하다 - 이기적이어서 행복한 프랑스 소확행 인문학 관찰 에세이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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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땐 부모님들이 "얘가 다 클 무렵엔 추석이니 설이니 하는 전통 풍습이 다 사라지고 없을 거야." 같은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제 추석을 고작 몇 주 남긴 시점이고,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 같은 게 한반도의 늦여름, 초가을 분위기를 몇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이 풍기긴 합니다. 그러나 현대 한국 대다수 사회인들은, 여튼 어떤 전통적 방식 같은 걸 서서히 잊거나 자진해서 버려 가는 중이 아닐까 생각도 해 봅니다. 근래는 옷 입는 스타일이나 먹거리 등의 취향, 몸 담는 회사 조직 등의 구조뿐 아니라, 유머의 개성이나 대인 관계 등의 패턴(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그 DNA의 특질에 밀접히 기대고 의존할, 어떤 정신 심층의 개성)도 미국인들의 그것을 너무도 닮아가는 추세가 확연합니다.

조승연 작가는 프랑스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이 신간에서는 "프랑스식 삶"의 짙고 독특한, 그러면서도 어쩌면 전세계가 선망의 눈길로 볼지도 모르는 "모두스 비벤디"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그가 프랑스인들의 모두스 비벤디에 대해 규정한 한 마디 키워드는 "시크:하다"입니다. 잘 아는 주제일 듯하지만, 날카로운 지성, 유독 교육에 열성이었던(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한국 중산층 평균을 감안하더라도) 집안 분위기, 작가 특유의 사회 계층 구조에 대한 관심, 통찰 등을 우리 독자들이 익히 알고 있으므로 책에 대한 기대를 좀 높이고 읽어 나갔습니다.

프랑스인들의 "시크한 삶"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잘 압니다. 정말 뭘 잘 안다기보다는 그들 민족이 오래 전부터 잘 가꿔 온 (어찌보면 대외용 같기도 한) 자유롭고 우아하며 세계 동시대의 트렌드를 멀찌감치 앞서가는 그 독특한 스타일에 대해, 우리는 정작 실체와 내력과 구체적인 양상을 이해도 별반 못하면서 지레 찬사부터 베풀고 드는 건지도 모릅니다. 프랑스다운 게 뭔지도 모르고 솔직히 뭐가 "시크"한 건지도 모르면서, 여튼 프랑스인들은 시크하다고 "인정"부터 하고 봅니다. 자기 관점 뚜렷하고 실제 오랜 기간 현지에서 살아도 봤으며 똑똑한 한국인이기까지 한 저자의 설명과 논평이라면 한번 따라가 볼 만하죠.

요즘은 우리도 "나는 자유연애주의자"란 표방을 주위에서 아주 드물지는 않게 듣습니다. 부모님이 정혼해 준 상대방과 맺어져야만 한다는 관념과 반대인 "연애결혼" 등을 뜻하는 게 아니고요. 애초에 결혼도 안 하고, 사귄다고 공인된 상대와 만나는 중에도 다른 상대가 나타나면 거리낌 없이 잠자리도 함께하는 풍조를 그리 부른다고 하는군요. 아직 중매결혼이 대세였던 세대 어르신들이 버젓이 살아계신 현대 한국에 대놓고 이런 풍조가 생긴다는 게 좀 충격이기도 합니다. 헌데 이 책에서, 조승연 작가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유연애주의자들이었던" 프랑스인들의 시크함을 좀 길게, 또 작가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곁들여 우리 독자에게 소개합니다.

조승연 작가의 책 장점 중 하나는, 어느 한 가지 주제를 벼락치기로 공부하여 그야말로 책 쓰기 책 내기를 위한 단발성 주제를 얕은 지식으로 (짜깁기 포함) 논하는 게 아니라, 비교적 긴 숙고를 거치고, 사실(fact)를 깊이 공부한(=직접 체험한) 후, 여러 다른 논자들의 견해를 충분히 공부한 후에 한 마디를 꺼내어도 꺼내는 데에 있습니다. 성(性)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언제나 관대했는데, 그 배경을 저자는 풍요로운 삶, 경제 여건 등에서 찾습니다.

본래 유럽은 여러 작은 소국, 공령 따위의 모임이었습니다. 독일만 해도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듯 무려 300개가 넘는 작은 정치 단위들이 모인 영방(領邦)체였고, 이탈리아 반도에 십 수개의 공국, 공화국, 자치도시 등이 모여 옥신각신해 온 내역은 천 수백 년이 넘습니다. 스페인? "두 가톨릭 군주"의 치세 수십 년을 제외하면 각 주(州)가 내내 분열에 가까운 자치를 누려 왔으며, 그 극단적 취약상이 20세기 전반에 노정되었고, 지금도 까딸루냐가 독립해 나간다고 아우성입니다. 영국은 18세기 초에서야 스코틀랜드와의 물적 통합이 간신히 완료되었지만 다시 심각한 분열을 마주합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그저 한 유서 깊은 가문의 개인 영지에 불과했습니다. 영토, 인구 면에서 그나마 큰 덩치를 이루고 통합 국가 단위를 오랜 동안 일궈 온 나라는 서유럽에서 프랑스가 거의 유일합니다.

이런 프랑스였기에, 산업 혁명 이후 간신히 일정한 경제적 풍요를 이루고 생경한 성 윤리를 정립한(그나마 오래 가지도 못한), 예컨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사회 같은 (급조된 엄숙, 경건) 분위기를 프랑스인들은 아주 우습게 봅니다. "졸부의 호들갑" 정도로 폄하하는 겁니다. 과연 그런 통찰이 옳았는지, 영국 사회는 이른바 "서프라지" 운동 등을 계기로 여권의 범위 획정을 두고 큰 내홍을 겪었으나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이 이슈에 대한 갈등이 덜했습니다. 프랑스는 1968년 이른바 "5월 위기(이것은 보수 매체에서 부르던 명칭이고, 현대 프랑스인들은 자랑스럽게 "68혁명"을 논합니다)"를 통해 사회 구조의 적폐를 꽤 큰 폭으로 떨궈 내었는데, 이때 이 거대한 "실험장"에서 시도된 건 정치 형태뿐 아니라 전통적인 가정의 족쇄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의심과 부정, 회의였습니다. 작가는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을 잠시 인용하는데, 여기서 다뤄진 "남매 간 연애"는 그저 감독 개인의 추잡한 소재 터치가 아니라 실제로 근친 상간의 금기에 도전한 "68세대의 미친 모험"을 실사(實寫)한 의도였다고 합니다.

p80에서 저자는 폴 클로델의 시 한 편을 인용합니다. "와인은 세 가지 성찬식이다..." 태양과 땅이 결혼하여 낳은 아이인 와인(이하 이 단락 대부분의 특이 표현은 모두 이 책 pp.80~81에서 인용한 것입니다)은, 유독 프랑스가 세계에 높이 자랑하는 특산물인데(물론 다른 나라 와인도 좋은 게 많고 우리 한국인들도 슬슬맛을 들여가지만요), 이 중에서 '코미뇽"에 대해 저자는 그 어원을 거론하며 성찬식 외에 "하나됨"의 뜻이 있다고 합니다. 영어에서도 가톨릭을 신앙 배경으로 삼는 이들(미국 이민자들 중)은, "퍼스트 커뮤니언"을 매우 중시하는데 한국말로 옮기면 "첫영성체"입니다. 어디 성찬식뿐이겠습니까? 공산주의를 뜻하는 "커뮤니즘", 공동체인 "커뮤니티" 등 이 계열의 어휘 대부분이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축복받은 대지를 일구고 자라난 프랑스인들이 음식 문화에 각별히 긍지를 가지는 건 사실 당연합니다. 식재 혹은 메뉴 간의 조화, 궁합을 뜻하는 "마리아주(mariage. 영어와는 철자 하나가 다른)" 역시 본래는 결혼이란 뜻이며, 바로 위 문단 인용 "태양이 땅이 결혼하여 낳은 아이...." 같은 표현에서 그 연유와 맥락이 너무도 잘 이해됩니다.

남들이 인정하는 기준에 맞춰 자신을 적응시켜 살아가는 삶이 한편으로는 성실하고 올곧고 질박하며 도덕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너무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특히나 한국처럼 인간 관계에서 큰 스트레스를 주고받는 사회에서는 종종 "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복해지는 대로 살면 안 될까?" 같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프랑스인들의 삶은 물론 우리네 한국인들의 전통적 삶의 방식과 큰 차이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 방향, 기계적 성과 수치만 추종하는 미국식 자본주의 의 한 대척, 대안이기도 해서 새삼 우리들의 주목을 끕니다. 명절도 다가오는 이 시점에,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과연 이대로도 괜찮은지 이 책을 읽고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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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 명예훼손이란 무엇인가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77
안상운 지음 / 살림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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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고 있습니다. 허나 헌법 조문 37조 2항에서도 이미 일정 요건 하에, 국회에서 제정한 형식적 의미의 법률로 이를 제한할 수 있음을 예비, 명정합니다. 범죄적 성향이 강하고 무지한 계층 출신은, 어떤 텍스트 하나를 놓고서도 최대한으로 아전인수식 해석을 합니다. "아 여기 이렇게 나와 있으니 맞는 거 아닌가요?" 근거라는 게 학자, 전문가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한 해석이 아니라 그저 천박한 자기 느낌입니다.


혹은, 애초에 죄의식 같은 게 없습니다. 비천한 환경과 자질 부족 탓에, 자신이 터무니없이 키워 놓은 눈높이와 그 현실이 전혀 매칭을 못 이루니, 타고나기를 못되게 타고난 심뽀가 더욱 뒤틀려 분노를 자연스럽게 키웁니다.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아 내가 이렇게 화가 나서 한 행동인데 무슨 잘못이냐?"라든가, "남들 다 하길래 나도 따라서 했다"는 식으로 나옵니다. 어찌 보면, 이렇게까지 사고 능력이 부족하고 인성이 결핍되어 있으니, 장애인, 심신상실자, 주취자에 준하여 책임 조각, 무죄 판결을 내려야 마땅하지 않나 생각도 듭니다. ㅎㅎ

소셜 미디어에서의 명예훼손 양상은 생각 외로 심각합니다. 더군다나 한국 법원은 종래 "전파성 이론"을 채택하고 있으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이 이런 경우를 특별법 자격으로 규율하고 있으므로 인터넷에 글 하나 올릴 때에는 각별한 조심이 필요합니다. 어떤 몰지각한 사람은 자이 남의 명예를 훼손해 놓고, 그 상대방을 두고 "악플러"라며 자신이 이용 가능한 모든 채널을 통해 명예훼손을 상습, 지속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근데 이 정도로, 상식과 판단 능력이 몹시 부족한 사람의 행태를 두고서도, 어떤 밑바닥은 마치 중고생들이 연예인 공방 뛰듯 매우 부러워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그런 명예 훼손 행태를 마치 제록스 카피나 하듯 그대로 따라하면서 엄청 뿌듯해하기도 합니다. 웬만큼 상식이 있다면 남의 말을 그저 따라 옮기기만 해도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받는 법현실을 알 법도 한데, 부족해도 너무 많이 부족한 인간이 도대체 자신이 어떤 운명에 처할지를 까맣게 잊고 그저 자신만의 환각 속에서 아주 거품을 물고 날뜁니다.

이 범죄에서 그 보호법익이 "외적 명예"라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자(전혀 관련 전문성, 경력, 지능, 소양을 못 갖춘 사이비)에게 "너는 IT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평가를 내려도, 그것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데다 "IT 전문가"라는 게 순전히 자신의 망상 속에서만 규정하는 정체성이자 범주인 이상 조금도 명예가 훼손되지 않습니다. 대체 "명예"라는 게 있기나 해야 무슨 훼손 여부를 따질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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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와 범죄
조철옥 지음 / 21세기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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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각칙에서는 여러 "태양"의 범죄행태를 다룹니다만 유독 307초 1, 2항을 두고서는 각별한 학설 대립이 있습니다. 즉, 자신이 누군가의 험담을 한 그 상대방이,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평소에 잘 알던 지인 한 명뿐이라고 해도, "그 한 사람"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을 때에는 이 "공연성 요건"이 성립한다는 견해입니다. 판례를 보면 이 전파성 이론에 의거하여 공연성을 인정한 경우가 꽤나 광범위합니다.

심지어, 전화로 한 사람에게만 알렸을 뿐이나 그 사람이 여러 명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이 공연성을 충족했다고 본 판례가 있습니다. 하물며, 불특정 다수가 얼마든지 가입하여 게시물을 열람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 특정 목적을 지닌 커뮤니티 등에 범죄적 성격 다분한 악질의 덧글, 게시글 등을 올렸을 때에야 새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저능한 자들이 자신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혀 이해를 못 한다는 점입니다. 평소에 무슨 벼슬이나 되는 양 피해의식을 몸에 달고 살며, 그런 피해의식에 몸에 배게 된 데에는 어느 정도 개인적 요인 같은 게 있으며(불우한 환경, 태어날 때부터 비뚤어진 심성,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일종의 장애, 극단적으로 추한 외모 등), 이런 열등감이나 정서 불안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인격 수양이나 자기 반성 등을 전혀 거치지 않은 채(연구 대상입니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의 왜곡이나 터무니없는 과대망상, 도를 넘는 허세와 과장, 병적인 거짓말 습성 배양, 반복, 강화에만 의존한다는 사실입니다.

명예훼손죄의 경우 좀 특별한 위법성 조각사유를 법문에 명정해 두었다는 게 특이합니다. 즉,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310조입니다. 모든 범죄는 외견상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막을 뜯어 보면 결코, 어떤 사회의 도덕관념으로도 처벌할 수 없는 일정한 사정이 (예외적으로나마) 발견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꼭 조문에 없더라도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위법성 조각"으로 형법적 판단을 미리 면하게 하는 게 원칙인데, 이 명예훼손죄는 특히 언론, 출판의 자유와 저촉되는 결과를 가능한 한 피하기 위해 이런 예외 조항을 특별히 마련한 것입니다. 물론 주관적으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우기기만 해서 바로 적용의 혜택을 받을 수는 없고, 축적된 판례는 일정 정도 패턴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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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범죄론의 이해
문형섭 지음 / 전남대학교출판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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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법학서적에서도 한자 병기가 많이 생략되는 추세입니다만, 조금 나이드신 법조인들에게 여쭤 보면 대체로 한자 없이 쓰여진 텍스트를 꽤나 불편해하는 반응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절도죄의 한 구성요건을 형성한다고 여겨지는 "영득의사"의 경우, 한자로 쓰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식입니다. 절도죄의 경우 물론 남의 물건이라는 인식, 그 물건을 훔쳐서 나의 수중에 넣는다는 인식(고의)가 있어야 합니다만, 이와는 별개로 "그 수중의 물건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의사"가 따로 있어야 한다는 거죠. 형법각칙의 구성요건 중 주관적 요소로 이 같은 것을 요구하는 예는 절도죄의 경우를 제외하면 매우 드뭅니다.

며칠 전 TV를 보다, 나체로 실외에 드러누운 사람에 대해 경범죄 위반은 별개로 하고, "공연음란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란이 이는 장면에서 잠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전문가의 의견은, 이 조문은 특정 성향을 갖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체 노출 따위를 특별히 즐기고 만족을 느끼려는 (다소 정상이 아닌) 사람들만을 염두에 두고 제정되었으므로, 그 외의 경우에는 적용이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범죄자, 전과자 양산이 줄어들 수는 있겠지요. 이처럼, 주관적 구성요건 외에도 별개의 "성향"을 요구하는 범죄를 "경향범"이라고 합니다. 다만, 일반성범죄에 이 요건을 요구하면, 범죄자 중 상당수가 풀려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여관방 같은 데서 못된 것만 보고 배워, 추한 육체를 아무데서나 드러내려 드는 못된 노파가 이에 해당할 수 있겠습니다.

명예훼손의 경우 "공공연히"라는 행위의 태양(어려운 말이긴 하나 여튼 법학자들이 즐겨 쓰는 용어이므로 존중할 필요는 있겠습니다. 쉽게 풀어쓰자면 "방식"이죠)이 별도로 요구됩니다. 즉 불특정 다수의 많은 이들이 알 수 있을 방식으로 타인의 명예가 훼손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지능 떨어지고 못된 인간은, 같은 잘못을 두 번 세 번 저지르면 아무것도 아닌 보통의 행위로 둔갑, 위장이라도 될 수 있다는 착각, 망상에 사로잡혀,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을 태연히 되풀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 범죄의 상습성이 오히려 드러나 가중처벌이 가능하다고 하는군요. 하긴, 나쁜 환경에서 자라난 틀린 싹수 인생이 굴리는 잔머리의 한계란 빤하지 않겠습니까. 죄를 지었으면 감옥에 가서 그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죠^^

이름난 어떤 법학자의 경우, 상습범의 처벌 특례에 대해 "운명과 책임을 혼동한 결과"라며, 상습범 처벌 규정을 없애고 그저 양형의 문제로 취급하면 충분할 것이라고 주장도 하십니다(후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 있음). 그러나 현실적으로 같은 범죄를 자꾸 저지르려 드는 밑바닥 인생으로부터 선량한 시민이 그 피해를 모면하려면, 사회 방위의 차원에서 어떤 법적 근거가 마련될 필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게, 유소년 범죄 피해자들이 한결같이 외치는 "소년법 폐지" 주장이 있습니다. 어린 게 무슨 벼슬이라고 태연히 범죄를 저지르며 죄의식도 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게 얼마나 큰 문제냐는 거죠. 그것도 그렇지만,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셍각이 어린이의 단계에 머물러 유치하고 퇴행적인 짓을 반복하는 게 "젊게 사는 것"으로 착각하는 행태가 더 큰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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