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여자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5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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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여자』​​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강초롱 (옮김) | 민음사 (펴냄)

솔직히 말해서 이런 결말을 예상하지 못했다. 전혀 다른 결말이었다. 나는 그냥 프랑수아즈가 영원히 그자비에르를 떠날 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프랑수아즈가 그자비에르에게 보인 집착 혹은 성정은 강렬했다. 오히려 둘은 서로가 원래가 하나인 양 생각이 된다. 최초에 하나인 자가 둘로 갈라져서 둘 중 하나를 없애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아닐까도 싶다.

소설 [초대받은 여자]를 쓸 때 보부아르의 심정은 어땠을까? 한편으로는 고통스럽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원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능력 혹은 성정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주인공인 프랑수아즈는 해냈고, 해낼 것이니까 말이다. 그것도 그 자신의 능력과 선택으로 말이다. 보부아르는 유독 글을 쓸 때 그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자신의 선택, 자기 선택의 능력을 말이다. 아마 철학적 생각을 어릴 때부터 즐겨 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추구해온 성향상 그녀는 무언가 한 가지를 할 때도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왜 이러지? 이건 뭐지? 왜 안돼? 뭔가 잘못된 거지?... 아... 한마디로 생각이 너무 많다. 그 생각 많음은 자기 자신으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외부에서 오는 것일까? 보부아르는 끊임없이 그런 유들을 고민하고 실험하고 관찰하는 여성이었다. 절대 한순간도 허투루 살기 싫어하는 사람이랄까? 그러기에 이런 소설도 쓸 수 있었을 것이리라.

프랑수아즈는 그자비에르에게 무언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 스스로 그녀를 선택했고 그녀를 망가뜨렸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기에 그자비에르는 프랑수아즈 자신의 못 본 척할 수 없는 말썽꾸러기 자식이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그녀 스스로 낳았으니 그녀가 해결해야 된다. 그것만이 프랑수아즈 자신과 그자비에르를 원래대로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깨달은 점이 인간이란 존재가 과연 그렇게 위대한가이다. 보부아르가 실험했던 그 어떤 제약도 없는 삼각연애란 그녀 스스로에게는 치명적인 고통이었다. 과연 이런 실험이 맞는가? 인간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아니었나? 아니면 실험을 기꺼이 제안하고 응한 그녀 자신 스스로에 대한 자만심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 관계는 이기적이다. 둘의 관계는 오직 둘만이 알 수 있다. 최근 획기적인 가족 실험을 여기저기서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다섯 명의 여성과 사는 한 명의 남성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평온하게 말이다. 생각할수록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 속을 더 들여다보고 싶기도. 보부아르라면 과연 어떤 말을 해줬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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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여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4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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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여자 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강초롱 (옮김) | 민음사 (펴냄)

소설은 꽤 흥미이었다. 유독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자전적인 이야기와도 같은 내용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으며 그녀가 생각했던 사랑과 존중의 의미 등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세 인물 프랑수아즈, 피에르, 그자비에르는 현실 속 인물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어가고 있는 사랑과 연애를 둘러싼 모든 모순적인 이야기들의 삼각관계들을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프랑수아즈는 보부아르를 연상시키고 피에르는 샤르트르를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이 보부아르의 첫 장편소설임을 짐작하게 할 때 역시 아 그렇구나 하는 수긍도 가는 것이다. 샤르트르와 제자 올가 코사키에비치는 흡사 피에르와 그자비에르를 떠올리게 하니 말이다. 그 삼각관계의 현실적인 삶 속에서 나 홀로 분투하는 자는 프랑수아즈, 즉 보부아르 자신이다. 흡사 자신이 벌어놓은 관계의 판에서 자신 존재의 심판자가 된다고나 할까... 열다섯 살에 철학으로 마음을 굳히고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 어린 소녀의 이미지가 여기서 떠올려진다. 그리고 난 왜인지 이 판에서 주인공은 프랑수아즈이고 피에르와 그자비에르는 프랑수아즈의 실험대 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의미를 사랑과 존중과 더 나아가 인간의 모든 긍정이든 부정이든 감정에 대한 모든 것을 실험하려고 애쓰는 철학자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 시절 사랑의 이해라고나 할까...

초대받은 여자로 일컬어지는 그자비에르는 프랑수아즈 본인이 데려온 여자이다. 유독 마음을 써가면서 말이다. 아마도 그녀의 저돌적인 성질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불도저 같은 매력에 오히려 피에르보다도 먼저 빠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결국 피에르와 그자비에르의 관계를 방관하는 처지를 초래한 것일 수도...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은 과연 프랑수아즈가 결국 깨달았던 사랑의 이해는 무엇이었을까이다. 프랑수아즈가 피에르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왜 그녀는 인간의 감정이 변덕스럽고 이기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그로 인해 그녀 자신이 고통스러울 거라는 것도... 어쩌면 그녀는 그 고통 역시 고통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이해해 보려 했을 듯하다.

아... 피에르와 그자비에르는 사랑이란 것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축복을 프랑수아즈에게 강요한다. 결국 프랑수아즈에게 남은 것은 선택뿐이다. 그리고 그녀 자신 스스로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 그녀의 마음을 말이다. 어쩌면 그녀 마음의 거울은 피에르와 그자비에르가 이미 비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2편으로 넘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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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세 자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288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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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ㆍ세 자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펴냄)

내가 체호프에 대해서 생각한 것은 처음에는 왜 이렇게 사람들은 다들 좋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매력을 잘 못 느낄까 하는 부분이었다. 다들 단편소설의 아버지라느니, 체호프를 빼놓고서는 러시아문학을 논할 수 없다고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더 나아가서 그의 많은 희곡들이 상영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다시 그의 연극이 새롭게 각색해서 영화로도 탄생하는 것. 모든 것의 어쩌면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나의 눈에는 한편으로는 과대 포장되어 있는 과자 봉투와도 같았다. 하지만 결론은 내가 체호프를 많이 몰랐다는 것...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왠지 러시아 문학하면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대작을 위주로 생각하게 되고 그 풍경 역시 광활하게 연상이 되어 소소하게 일컬어지고 잔잔한 이야기는 왜인지 내 눈 한편으로 비켜나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네 삶에서 진작 중요한 이야기는 이런 유의 이야기들인데 말이다.

세 자매는 우선 유명하다. 러시아에 가면 어느 극장에서나 체호프의 희곡으로 극을 올리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유독 인기가 있는 것은 바로 세 자매이다. 러시아 말기 지방 소도시를 배경하는 이 작품은 프로조로프 일가의 세 자매의 일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1주기이며 막내 이리나의 명명일인 어느 봄날이 배경이다. 나는 이 작품을 뻬쩨르부르크에서 연극으로 본 적이 있는데 흐드러진 벚꽃 나무 아내로 연극배우들이 무대를 펼치고 향기 비슷한 것들이 주위로 올라왔는데, 유독 그 분홍색 벚꽃과 더불어 코를 매혹시킨 향은 아직까지 기억에 박혀있다.

올가, 마샤 이리나... 세 자매의 삶. 올가는 삶이 힘들다. 매일이 고단함의 연속이다. 올가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면서 먹고 살 다른 방도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쉽사리 그만두지도 못한다. (꼭 현대인의 삶과도 같다.) 일찍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마샤는 결혼 생활에 지쳐있다. 그러던 중 베르시닌과 눈이 맞게 된다. 하지만 사랑을 맹세한 베르시닌은 군대와 함께 도시를 떠나게 된다. 노동만이 희망이라고 여기던 막내 이리나는 일에서 환멸만을 느끼게 된다. 결국 사랑이 배제된 결혼을 하면서까지 모스크바로 떠나고자 하지만 좌절되고 만다. 그들이 극 내내 말하고 있는 아직 인생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 결국 살아가야 한다는 말은 왠지 희망보다는 공허에 가깝게 들린다.

이 책에는 세 자매뿐만 아니라 아내라는 글도 실려있다. 모두 체호프의 삶에 대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왜 체호프를 현대인들이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글들은 모두 옛 시절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대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말이다. 다 우리와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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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1~3부 세트 - 전3권 (2024 리뉴얼)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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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이세욱,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펴냄)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만일 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당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하겠는가? 적대적인 세력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품겠는가? 등등에 대해서. 하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묻는 듯하다.

당신은 당신이라는 신이지 않는가? 이미 당신은 신이라고 말이다. 당신은 할 수 있고, 스스로 하고 있고, 그 결정은 오로지 살아있는 당신 스스로의 몫이라고.

어쩌면 우리는 이미 신인지 모른다. 그 사실을 본인 스스로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이런 말들을 한다. 한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온 우주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사실이다. 그 사람은 모든 것이다. 그 사람 자체로서 모두일뿐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부터 파생된 사람들 역시 한 가지로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고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것들에 마음을 뺏기면서 살고 있는가? 부수적인 하찮은 것들로 인해서 스스로의 능력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한다. 진짜 본질, 진리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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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제3부 (2024 리뉴얼) - 신들의 신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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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 제 3 부 신들의 신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이세욱,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소설을 읽으면서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지도 못한 방식의 상상력을 쓰면서 나는 누구인지, 인간이란 존재는 어떤 존재인지,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등등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다. 그는 운명을 믿는 듯하다. 절대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이란 필연적인 숙명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말이다. 절대 그냥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개개인의 존재는 필수적인 동시에 필연적이다.

3부에서는 그야말로 대단원이 펼쳐진다. 하지만 1,2부에서 이미 방대한 설정으로 이야기가 뿌려졌으니 이제 그냥 편하게 베르베르의 상상력을 받아들이면 된다고나 할까? 신들의 게임에서 결승전을 치르게 된 미카엘 팽송은 고전하지만 그가 다스리는 돌고래족은 끝내지고 만다. 어쩌면 질 것은 예정된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백성인 돌고래족의 죽음을 목격하는 순간 미카엘은 이성을 잃어버린다. 흥분한 팽송은 자신의 백성들을 괴롭힌 경쟁자 신을 살해하게 된다. 급기야는 신 후보생이었던, 인간으로 신의 지위에까지 올라갔던 미카엘 팽송은 벌을 받는다. 그 벌은 바로 18호 지구로 떨어져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 그에게 어떤 진실의 문이 열릴 것인가? 과연 이 형벌을 팽송이 견딜 수 있을까? 아마 나라면 치욕스럽다고 여겼을 듯하다. 아예 삶의 의지를 잃었을 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신에서 순식간에 인간으로 추락한 미카엘... 그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제우스는 미카엘에게 이런 말을 한다. 미치고 싶지 않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항상 기억하라고 말이다. 영적 체험의 목적은 오로지 한 가지로 통한다고. 바로 자신의 본질, 물질과 시간 너머에 위치한 자신의 본질을 항상 기억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 책을 쓴 목적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신이든, 신이 인간이든지 간에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바로 중요한 것이 숨 쉬는 나 자신이다. 바로 지금이다. 독자로 있는 지금,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고 있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의 나의 생각과 존재 자체가 본질이 아닌가?

흔히들 물질 속에서 살아가면 물질과 스스로를 동일시한다. 돈이 많고 적음이 인간 지위의 사다리 같기도 하고, 어떤 특정 물건이나 음식이 꼭 내 손에 들어와야지만 내 존재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저 현상일 뿐이다. 스스로의 존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본질과 정수... 그래, 이것이다. 이것에 집중하자.

왜 전쟁을 하는가?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 왜 죽고 죽이는가? 사실 그 본질 자체를 생각하면 아무런 의미 없는 짓을 인간은 하루하루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 살아야 살아남는다. 그런데 기어코 남을 죽이고 스스로 조차 절멸케한다. 이제 벌들이 점점 사라진다고 한다. 벌이 사라지면 꽃도 사라지고, 과일도 사라지고, 식물들이 사라진다. 아마 언젠가는 인간조차도... 베르베르가 말한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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