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그비 교차로
찰스 디킨스 외 지음, 이현숙 옮김 / B612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머그비 교차로』​​

찰스 디킨스 외 (지음) | 이현숙 (옮김) | B612 (펴냄)​

내게는 참 헷갈리는 작가 두 명이 있다. 바로 본 [머그비 교차로]의 저자인 찰스 디킨스와 또 다른 작가 마크 트웨인이다. 왜 인지 이 두 인물이 난 참 헷갈린다. 톰 소여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 작품인데 왜인지 찰스 디킨스가 떠오르기도 하고, 올리버 트위스트는 찰스 디킨스 작품임에도 마크 트웨인이 떠오른다. 아마도 이 두 인물 모두 소년의 성장, 가난, 자본주의의 모순 등을 묘사하는 글쓰기를 했고, 작품들이 모두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더군다나 이 두 작가의 작품에는 위트와 해학이 있다. 단순히 줄거리의 흡입력이나 이야기의 힘을 넘어서서 사회 현상을 아우르고 그 폐부를 꼬집는 듯한 작품 활동을 남긴 두 인물이다.

찰스 디킨스의 [머그비 교차로]는 1866년 주간 잡지 [올 더 라운드]의 편집을 맡고 있는 중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서 특별판을 준비했는데 바로 철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보통의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칠면조, 눈사람, 만찬, 크리스마스트리.. 이런 것들이 먼저 떠오를만한데 느닷없이 철도라니... 아마도 이것은 그 시대의 사회 분위기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법하다. 철도에 가득 선물을 싣고 달리는 광경을 묘사한 작품이나 애니메이션도 있었고, 눈 내리는 따뜻한 풍경이 아마도 크리스마스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크리스마스 오르골만 해도 열차 오르골이 인기가 있으니 말이다.

디킨스의 작품에는 19세기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이미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올리버 트위스트나 위대한 유산을 말하지 않더라도 단편들 역시 캐릭터들 간의 묘사나 상생이 뛰어나다는 생각이다. 책 [머그비 교차로]는 디킨스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당대에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그 시대상을 언뜻 들여다본 것도 좋고, 작품의 형식이 다양하게 어우러져 있어서 흥미가 있었다.

가상의 공간인 머그비 교차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철도와 연관시키고 모두의 전체성을 통일 시키는 것... 작품들은 모두 저마다 다르면서도 닮아있다. 현실적이기도 하면서 미스터리한 면도 있어서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품은 역시 찰스 디킨스의 [시그널맨]이다. 그 속에 등장하는 묘한 설정과 결말의 아득함을 생각할 때 우리 모두의 삶이 반추되는 측면도 있다. 과연 왜 신호수는 그런한 예시를 받고서도 끝내는 그것을 피하지 못했을까? 과연 진정한 유령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우리 안에 도사리는가? [시그널맨]은 디킨스가 실제 1861년에 발생한 클레이튼 터널 열차 충돌 사건을 이야기의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유명하면서도 여러 연극, 뮤지컬 등으로 각색이 많이 되었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직접 연극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다소 철도와 연관이 모호한 작품인 듯한 느낌이 들었던 [보상 하우스] 역시 흥미로왔다. 거울을 보지 못하는 한 남성에 대한 설정이 찰스 디킨스의 작품이 아님에도 [시그널맨]과 연관성이 지어졌다.

[머그비 교차로]는 무엇보다 기차 여행을 가는 사람에게는 선물같은 책일 것 같다. 그리고 기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디킨스의 작품 중 상당수는 잡지나 신문 등지에 연재되거나 일부분의 내용으로 출가로 디는 형태로 나왔다고 한다. 많은 소설이 연재물의 형태였다고 한다.

디킨스의 생애에 대해 찾아보다가 그의 죽음에서 꼭 [시그널맨]의 신호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길을 가다가 뇌졸중으로 쓰려졌는데 어떤 사람에게 땅바닥에 누워달라는 말을 듣자 On the ground?!라고 외친 후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왠지 소설 같은 죽음이다. 그는 죽기 전에 과연 무엇을 본 것일까? 한 사람의 창조물과 한 사람의 일생은 좀처럼 무관하지가 않은 것 같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석 전 시집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전 시집
백석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석 전 시집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백석 (지음) | 스타북스 (펴냄)​

예전에 박해일이 경성 모던 보이로 나온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다 보고 나서 박해일의 역의 모델이 백석이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 바람에 날린 머리하며, 댄디한 옷차림들... 아, 영화에서 보면서도 매력적이면서 눈에 띄고,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백석을 그 시대로 가서 직접 본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간다.

이상이 여름의 이미지라면 백석은 겨울의 이미지이다. 둘 다 연인을 사랑했고, 천재적인 면이 있는 유사함을 지닌 이상과 백석.. 백석은 언어적으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 작가로 6개 국어에 능통했고 독일어, 영어, 러시아어는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백석의 시는 뭔지 다르다. 이상 역시 여타의 시들과 다른 시들을 썼는데 말이다. 게다가 둘 다 이름이 외자이다. 물론 본명은 둘 다 김해경과 벽 기행이지만서도.

백석은 사랑의 시인이다. 그리고 그의 시어들은 날뛰는 생선과도 같다. 삶에 직접 닿아있는 생생한 시어들을 골라서 시를 썼다. 비록 글밖에 몰라서 농사일을 제대로 못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친절하고 다정한 그를 만나면 아마도 그의 품성을 다들 칭송했을 것이다.

이상이 단명한 데 반해 백석은 노환으로 1997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비록 그가 세상에 남긴 글은 지금 우리가 접하는 것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가난했지만 고결한 시인, 찬 겨울 시기에 태어난 뜨거운 불같은 시인이었다. 그의 글들을 다시 읽으면 다가올 가을과 겨울을 맞아본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 전 시집 : 건축무한육면각체 - 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전 시집
이상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 전 시집 '건축무한육면각체'』​​

이상 (지음) | 스타북스 (펴냄)​

학창 시절에 이상의 권태를 읽은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에게 이상은 시인으로 유명한 것보다도 산문에 으뜸인 자였다. 운문도 걸작이지만 산문 역시 수준급인 작가였다. 이상의 아쉬운 점은 그의 짧은 생과 그로 인해 그 안에 갇혀있을 많은 작품들을 만나보지 못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천재성이 그 속에 똬리로 남아있을까? 더 많이 더 넓게 뻗어갔어야 할 그 천재성이 무척이나 아쉽다.

이상은 천재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보성고보 재학 시에는 미술전람회에서 <풍경>이라는 유화를 그려서 1등으로 입상하고,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 졸업했으며 조선건축회 학회지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도 응모해서 1등과 3등 모두를 싹 쓸었다. 또한 그는 장편소설도 발표하였던.. 실로 진정한 박학다식의 삶을 산 천재였다.

왜 항상 이상하면 이해 못 할 정신의 소유자인 프레임이 나에게 씌었나 모르겠다. 그저 어렵고, 난해하고, 뭔가 현실에서 붕 뜬 것 같은 세계관을 지닌 인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다시 본 그는 그저 한 시대를 살다 간 우리네 청년이자 문학인이었다. 현실에서 아파하고 끝없이 고민한 예민한 사람... 그런 그가 이런 세상에서 온전한 정신을 갖고 살기란 무척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처서가 지나서인지 아침나절이 몰라보게 상쾌하다. 옛사람의 절기란 어쩌면 이리 정확한지 감탄할 일이다. 이런 날 이상의 권태를 읽는다면 올여름이 더 잘 기억되리라... 권태 이상의 권태... 그리고 삶 이상의 삶... 일상이란 권태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사실상 그것이 삶의 중심이 아닐까 싶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어버린 집 - 대한제국 마지막 황족의 비사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잃어버린 집』​​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펴냄)) ​

마지막이란라는 것은 얼마만큼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솔직히 마지막 자존심, 마지막 직계손, 마지막 왕자, 마지막 황제 등등의 것들은 다소 허무하고도 애잔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다가도 무엇이든 마지막이 있다는 것, 시작은 역시 끝을 동반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덤덤하게 모든 것이 보이는 것 같다.

소설가 권비영은 직전 소설인 덕혜옹주와 하란사를 통해 알고 있던 작가였다. 전작 덕혜옹주가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고, 한편으로는 역사적 사실의 진위와 왜곡 등에 대한 논쟁도 불러일으킨 켰다는 것... 특히 영화로 만들어 진 후 잡음을 말이다. 영화는 그런 모든 것들을 떠나서 많은 사람이 보고 공감을 얻었지만 말이다.

사실 역사소설가는 엄청난 고뇌의 시간을 홀로 보내야 하는 듯하다. 기존 세간에 알려진 진실을 호도하지 않으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을 알려야 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덧입혀 허구의 장치로 완성해야 한다. 거기에 따른 호불호를 감당하는 것은 오직 작가 자신의 몫인 것이다. 물론 독자 역시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읽어야 한다. 소설책은 역시 소설이라는 것... 역사 소설 역시 소설이라는 것 말이다. 물론 이 역시 어려운 부분이다.

권비영 작가의 특별한 능력이라면 우리가 세간에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인물을 현실로 소환시켜서 상기한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모두가 잊힐 뻔한 인물과 역사지만 작가의 손길로 다시 태어나고 생명을 얻고 세간에 회자되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다.

이번에 우리 현실로 작가가 불러온 인물은 조선,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족인 영친왕에 대한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은, 그리고 그의 아들은 이구이다. 이은이라고 할 때 왠지 덕혜옹주에서 그려진 잘생기고도 훤칠한 인물이 생각났다. 조선의 독립운동에 이바지하고자 애쓴 인물, 덕혜옹주를 아끼고 감싸준 인물...

이은은 순종의 일곱 번째 아들로 덕혜옹주의 오라버니이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황족인 마사코와 혼인을 한다. 일본 정부의 압박으로 인한 볼모성 혼인일 것이다. 그저 조선 황족의 핏줄을 일본 황실과 연관시키는 순수하지 못한 의도를 가진 결혼이었다. 하지만 이은은 마사코를 진실로 대했다. 마사코에게 결혼이라는 것, 특히 조선인과의 결혼은 모험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녀가 다른 일본인과 결혼했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마사코 역시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결혼이 아니었기에 이은과 마사코의 결혼은 어찌 보면 운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몰랐던 사실은 영친왕의 아들 이구에 대한 것이었다. 소설은 이구와 그의 아내 줄리아 멀록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후에 조선의 독립으로 모두들 돌아왔으나 마사코는 훌륭히 적응했지만 줄리아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조선의 독립으로 그간 대한제국 황실로 지원되었던 지원금은 모두 끊기게 되었다. 이제 영친왕이 아닌 인간 이은으로, 황태자가 아닌 그저 한 범인으로 살아야 한다. 순식간에 황족의 옷이 벗겨지는 기분...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은 아마 느끼기 힘든 마음일 것이다.

소설에서 말하는 [잃어버린 집]은 무엇일까? 일제에 의해 점령당한 조선일 수 있고, 사라진 대한 제국이라는 이름일 수 있다. 그리고 후원이 끊기자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했던 이은 개인의 집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다시금 옛 인물을 소환시키고 상기할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아마 이런 독서가 아니었다면 옛 인물이 다시 내 마음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남양주에 위치한 홍유릉에 가보고 싶다. 영친왕과 황세손 이구가 잠들어 있는 곳... 산책하기도 좋다고 하니 그곳에서 다시 이들의 삶을 반추하고 싶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특별판)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카이 버드.마틴 셔윈 지음, 최형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카이 버드, 마틴 셔윈 (지음) | 최형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펴냄)​

표지만 보고 웬 영화배우인 줄 알았다.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라고는 생각이 안될 정도의 강력하고도 매력 넘치는 외모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것은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매달린 담배는 왠지 그의 말년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1967년 세상을 떠난 오펜하이머...그의 사인은 바로 후두암이었던 것이다. 아마 그의 끊임없는 애연이 말년의 풍경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리고 영화로 회자되기 전까지)사실 원자폭탄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누군가, 물리학자들과 화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어쩌면 우연히 개발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여기에는 천재적인 물리학자 오펜하이머가 존재했다. 어쩌면 이 세상에 그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원자폭탄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지 모르며, 행여나 만들어졌더라도 시일이 좀 오래 걸렸을 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원자폭탄이 동방의 작은 한 나라의 독립의 앞당겼으니 우리나라의 미래의 모습 역시 바뀌었을 것이다. 흡사 이 모든 것이 나비 효과와 같다. 오펜하이머의 일대기가 나의 미래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한민국 태생이고 이 나라는 과거 일본으로부터 강제 침탈을 당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일본을 2차 세게 대전의 패배로 인정하게 만든 것은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때문이다.

전에 히로시마 원폭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한 일본인의 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참으로 끔찍했다. 원폭은 떨어지자마자 이상하리만큼 주변이 고요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굉음... 흡사 놀이공원 자이로드롭처럼 말이다. 공중에서 매달려있는 그 짧은 순간, 정말 내가 왜 여기 있나 하면서 후회하는 그 공포스런 순간처럼... 그다음에는 가차없다. 자이로드롭이 땅 밑으로 꼬꾸라지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게 원자폭탄은 광풍을 밀고 오면서 말할 수 없이 뜨거운 열기로 주변의 모든 것을 초토화시킨다. 곳곳에 시체들은 다 녹아있고, 피부는 순식간에 벗겨진다.

아마 오펜하이머가 자신의 말년에 고민했던 것은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아니면 어쩌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괴로움과 한탄이었을까? 그 자신이 개발에 성공한 원폭이 한편으로는 전 세계 전쟁을 막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거대한 위력을 세상에 보임으로 너도 나도 그것을 원하도록 만들었다. 원자폭탄만 있다면 모든 것이 굴복할 터였다. 반면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멸망할 터였다.

세상에 인간만큼 어리석은 존재가 또 있을까? 스스로의 자멸을 재촉할 무기를 개발하는 자는 말이다. 하지만 그 개발을 돕거나 일조한 과학자가 과연 잘못일까? 어쩌면 이것은 그저 인간의 숙명이 아니었을까? 책 오펜하이머 평전에서는 인간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한다. 그의 가족사에서 시작해서 물리학자가 되기까지의 여정, 소소하게 혼자서 노는 것을 좋아했던 내성적인 소년이 어떻게 해서 맨해튼 프로젝트를 거쳐서 트리니티 원자폭탄 실험에까지 참여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원자폭탄을 만들었지만 끝까지 수소폭탄 개발은 거부했던 오펜하이머... 어쩌면 그가 가지고 온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스스로가 원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운명으로 밖에 설명될 수 없는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생.... 한 인간의 위대함을 여실히 느낀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