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더 높은 세상을 향한 배움과 창조의 즐거움
적지의 최전선에서도 언제나 배움을 멈추지 않았던 선생은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닌 “자기의 삶을 창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할 것을 당부한다.
“배운 것을 취합해서 묻는 것”이라는 학문의 본질로 돌아가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끝없이 질문”하라는 것이다.
선생은 “이 물음이 창조의 하나의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종래의 패러다임을 바꿔” 뜨는 것에 그쳤던 우리의 삶을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도, “지혜는 지식 속에서, 지식은 정보 속에서” 죽어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여러분은 사실상 어렸을 때 전부 천재들이었어요.
왜? 끝없이 물었어요.
어머니한테 묻고, 아버지한테 묻고, 사람들한테 물었는데 그 물음을 누가 죽였나요?
어른들이 다 죽여버린 거예요.”(276p)(…)
“여러분이 나이가 들고 학교에 간다는 것은 질문하는 방법을 잊어버린다는 거예요.
새가 왜 우냐고 어린애들이 물으면 답변을 못 하면서도 부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인간의 모든 창조는 질문에서 나오는 것이지요.(277p)”
이와 함께, 선생은 “문화의 힘, 언어의 힘, 예술의 힘이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앞서 나갈 수 있는 창조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바로 ‘눈물’과 ‘외로움’이다.
세종대왕도, 아인슈타인도, 퀴리 부인도 울부짖음과 상처가 있었기에 위대한 발명이 가능했음을 밝히며, 자신의 내면에 있는 고통과 외로움을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여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는다면 우리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임을 이야기한다.
세종대왕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퀴리 부인, 이러한 천재들을 죽여왔느냐를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창조적인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다.
창조적인 사람을 따돌리고 못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결국에 비슷비슷한 사람들만 남았기 때문에 창조적인 발상을 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태 교류’를 통해 교감하는 종족이 오늘의 젊은이입니다.”
배움과 창조를 통해 젊음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전하지만, 결국에는 ‘생명’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창조해도 그 안에 “생명의 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어령 선생은 이 세대의 젊은이들을 “‘생태 교류’를 통해 교감하는 종족”이라고 표현한다.
신체감각을 활용해 개발된 아이폰(iPhone), 위(Wii) 등을 사용하고, 영화 〈아바타〉를 보며 “지구인보다는 나비족”의 편을 드는 세대.
선생은 이 세대가 기계와 산업이 “당연시된 현 문명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생명 중심으로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물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도 남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은 생명에 굶주려 있다.
살고는 있는데 사는 게 아니다. (…)
자기가 살아 있다는 걸 체감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사람을 죽인다.
피가 분출되는 그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 존재를 느낀다.
그들의 일상에서는 자아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이게 아날로그 결핍증이 낳은 병폐라고 말한다.
이어령 선생은 생명으로 가득한 세상을 꿈꿨다.
“리빙(living)을 라이프(life)로” 바꾸고 “산업 기술이나 기계 기술의 패러다임, 금융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을 생명 시스템으로 바꾸”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선생은 “평범한 생명의 생동력을 사랑하고, 울고 환호하는 생생함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을 만들라”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모든 것은 계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던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컴퓨터나 과학이라는 이름 밑에” 의존하지 말고 “38억 년의 기나긴 세월 속에 축적된” 자연의 지혜를 배우며, 이를 인간의 기술과 융합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야 함을 강조한다.
과학을 맹신하는 사람이 인간의 지혜로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만들고 나서 보니 그 결과는 괴물이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자연이 만든 생명체는 아름다움과 조화가 있는데 인간이 만든 생명체는 괴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1백 년, 2백 년밖에 안 되는 인간의 과학기술로 만든 생명이 신이 만든, 적어도 38억 년 동안의 긴 세월을 통해 만들어진 생명과 비교가 됩니까?
“우리는 멋있는 삶을 살아낼 멋진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멋있게 사세요.”
우리는 코로나를 통해 “디지털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앞당겨 학습하게 되었고, 동시에 살결 냄새나는 오프라인의 아날로그 세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배움, 창조, 생명, 이 세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선생은 그 무엇보다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주어진 것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폭”을 넓히는 것. 이것이 가능해야 생명 가치를 바탕으로 한 배움, 창조가 가능하며, 비전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우리의 젊은이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남을 따라가는 삶”이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삶을 살기 바랐던 이어령 선생.
『이어령의 강의』를 통해 언제나 젊은이들이 잘 살기를 소원했던 그의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아마도 10년 후, 20년 후 나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때 여러분은 필록테테스처럼 마지막 영광의 승리를 가지는, 상처와 함께 당당하게 트로이전을 승리로 이끄는 그런 숨은 활의 재능들을 꽃 피우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