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평점 :
한강이 쓴 작품들은 새로운 작품을 접할 때마다 작가의 또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한강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희랍어 시간>이라는 소설에 대한 평이 좋게 올라 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읽게 된 여행관련 에세이에서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읽게 된 소설이 <희랍어 시간>이고, 그 소설이 좋아서 읽게 된 책이 한강이 쓴 동화 <붉은꽃 이야기>와 <눈물 상자>이다.
동화 역시 읽은 후에 가슴 속에 깊은 여운이 남겨 졌기에 또 다른 작품인 <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라는 산문집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은 한강이 직접 작사 작곡하고 부른 노래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담겨 있었고, CD까지 들어 있었던 것이다.
한강은 2005년에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몽고반점>이란 소설로 이상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책이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을 보면 <몽고반점>도 읽기는 했을텐데, 내 기억 속에는 남아 있지 않다.
책 속에 담겨진 작가의 사진을 보면 느낄 수 있듯이, 그녀의 작품은 단아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의 글들이 많은데, 그런 점이 그동안 내 마음을 끌었던 것 같다.
이번에 읽게 된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전에 읽었던 한강의 작품들과는 또다른 문체의 소설이다.
한강은 이 책이 출간될 당시에 인터뷰를 통해서 "소설의 방식을 부수면서, 동시에 소설의 육체를 가진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작가가 의도했던 소설의 방식을 벗어난 그런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동안에 내가 알고 있던 소설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점들을 느끼게 된다.
우선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의 대화내용이 대화 표시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흐름이나 그들의 관계, 소설이 전개되는 방식과 문체들도 소설의 형식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소설의 시제 역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어떤 장면의 바뀜이 없이 그대로 뒤죽박죽으로 섞여서 쓰여졌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인물과 인물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이야기의 내용이 전개되는 소설이다.
이런 것들이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몰입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읽다보면 글의 내용이 대사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읽다보면 과거의 어떤 싯점으로 이야기가 돌아가 있고, 다시 현재 싯점으로 돌아와 있던 이야기는 과거의 또다른 싯점에 가 있는 것이다.
또한, 정희의 이야기인가 하면, 인주의 이야기로 넘아가 있기도, 또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한다.
소설의 앞부분에서는 소설을 읽는 속도가 떨어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런 소설의 전개 방식이나 문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소설의 전체 내용이 큰 퍼즐의 바탕이라면, 그 속의 이야기들은 퍼즐 조각이 되어서, 그것을 맞추어 나가는 작업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큼직한 퍼즐 조각이 아닌, 세밀하게 나누어진 퍼즐 조각이어서, 이쪽에서 맞추다가, 다른 쪽의 퍼즐이 나오면 그 쪽을 맞추어 나가는 고난도의 퍼즐 맞추기와 같은 것이다.
거기에 우주의 신비, 생의 기원과 같은 천제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 그림에 관한 이야기까지 폭넓고 깊이 있는 생소한 이야기와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어느날 접하게 되는 단짝 친구 인주에 관한 기사이다. 그 기사에는 인주의 삼촌이 그린 먹그림이 인주의 작품으로 소개되고, 미시령 고개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그녀의 죽음이 자살로 소개된다.
인주에 관한 모든 것을 가진 강석원이란 미술 평론가에 의해서 인주에 관한 평전의 출간과 유고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희는 인주에 대한 애증을 가지고 있는 강석원의 실체와 그가 꾸미는 일들을 밝히려고 한다.
강석원은 인주가 남긴 모든 걸 가진 자, 그림들을, 기록들을, 체취까지 가진 자이다.
인주의 작업실이었던 곳에서 밤에는 광인처럼 밤을 지새우는, 명징한 논리로 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몰아가는 자, 인주의 삶을 신파극으로 만들려고 하는 자이다.

강석원의 눈을 피해서 인주의 작업실에서 가져온 사진 뒷면에 희미하게 씌여진 글씨을 토대로 또 다른 사실을 밝혀 나간다.
소설의 초반부에는 정희와 인주와 인주 삼촌 동주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면서 그 세사람의 마음 속의 상처들을 더듬어 간다.
서로 가지고 있는 고통은 다르지만, 그 깊이는 그 누구의 상처가 더 깊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아픔들을 간직하고 있는 세 사람, 그 아픔은 그들의 이후의 삶에도 족쇄처럼 따라 다니면서 그들을 억매이게 하는 것이다.
" 내가 아픈 곳은 달의 뒷면 같은 데예요, 피 흘리는 곳도, 아무는 곳도, 짓무르고 덧나는 곳, 썩어 가는 곳도 거기예요.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아요. " (p. 219)
사진에서 발견한 희미한 글씨의 뜻을 찾아가다가 알게 되는 인물인 류인섭. 그의 사무실에서 보게되는 미시령 사진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인주의 가족사를, 그리고 그녀의 죽음의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인주의 엄마가 겪은 고통이 무엇이었는가를, 그리고 그것이 훗날 어떻게 얽히게 되었는가에 대한 것들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초반부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건들의 내막은 이 소설의 후반부에서 정희에 의해서 밝혀지게 된다.
이 소설은 작가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후에 다시 쓰기를 거듭하면서 4년 6개월만에 완성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만큼 작가가 자신의 열과 성을 바쳐서 쓴 소설인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다 읽은 후에 <희랍어 시간>이란 소설에서도 나오는 장면들이 여러 장면 겹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새의 등장, 그리고 등장인물 중의 한 여인이 다리를 절고 있다는 설정이 겹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읽었던 부분들이 나중에 어떤 의미로 다가옴을 느끼게 되는 부분들이 있기에 한 번 읽고서는 이 소설을 읽었다고 이야기하기가 좀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 한강은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또다른 새로운 면이 발견되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