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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백영옥의 첫 장편소설인 <스타일>을 읽은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그후에 몇 편의 소설들이 출간되기는 했지만 <스타일>이외에는 읽지를 않았다.

<스타일>은 패션잡지 기자인 주인공의 일과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 젊은 여성들에게는 흥미로운 소재와 주제였겠지만, 나에게는 주인공의 직업부터가 거리감을 느끼게 했고, 사랑 이야기라는 것도 그리 큰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백영옥의 신작 소설인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도 큰 기대를 갖지는 않았다.
청춘들의 사랑, 이별, 실연 후에 느낀 감정들, 그리고 새로운 사랑.
이 정도의 이야기가 펼쳐지리라는 것과 책제목이 다소 길면서도 생뚱맞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모임 : 조찬모임 ?
시간 : 오전 일곱시 ?
대상 : 실연당한 사람들?
오전 일곱시가 얼마나 이른 시간이며 소중한 시간인지는 이 시간에 활동을 해 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실연당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은 절대 아닌 것이다.
정재계 인사도 아니고 일곱시 조찬모임이라니...
장난하냐? 라고 묻고 싶다.
꿀맛같은 아침의 단잠을 포기하고 조찬모임을 하다니, 그것도 실연당한 사람들끼리.
" 실연은 슬픔이나 절망, 공포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함으로써 누군가로부터의 거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 (p. 31)
트위터를 통해 모인 21명의 사람들이 오전 일곱시에 레스트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영화관으로 가서 실연에 관한 영화 4편을 보고, 자신들에게 한때는 소중한 물건이었으나, 이제는 처치곤란한 실연의 기념품이 되어 버린 물건을 버리고, 그 버린 물건 중에서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골라서 가지고 간다.
이렇게 특이한 이야기가 신선하게 마음 속으로 들어 오게 되는 것은 이 책의 2부를 읽고 나서부터이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소설의 내용은 흥미로워지기 시작한다.
" 애인을 잊지 못해서 과거의 연인과 유령처럼 동거 중인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생각보다 많아요. " (p. 137)
실연의 아픔!
실연이후의 삶을 "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너무 조용해요" (p. 51)라고 이야기하듯이 실연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이 특효약일 수도 있기에 결혼 정보업체의 커플 매니저인 정미도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조찬 모임이 이루어지게 되고, 거기에 참석했던 윤사강, 이지훈, 정미도의 사랑과 실연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유부남 기장과의 사랑이 실연으로 끝을 맺은 사강의 이야기 속에도,
컨설턴트 강사인 이지훈의 실연 속에도 가슴 아픈 가족사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들이 조찬 모임에서 버린 사랑의 기념품이자, 지금은 실연의 기념품이 된 물건들이 다시 이들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 모두 꽃처럼 향기로운 물건들이었다. 지금은 처참하게 시들어 버렸지만. 한 때, 너무나 아름답던." (p. 274)
책을 읽으면서 실연이란 꼭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꿈꾸었던 것들에게서도 실연당할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남과 사랑, 헤어짐, 그것은 꼭 연인들끼리의 문제가 아닌, 가족과 가족간의 문제들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책 속의 인물인 윤사강, 그녀의 이름은 아버지가 좋아하던 '프랑소와즈 사강'에서 따온 것이고, 그래서 '프랑소와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란 책이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많은 부분에서...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기에 그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책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더 더욱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슬픔이여 안녕>의 안녕이란 'good bye' 가 아닌 'hi' 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독특한 발상의 이야기라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지만, 생각외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 (...)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의 노래처럼 '감히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감히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감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감히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며, 감히 닿을 수 없는 저 밤하늘의 별에 이른다는 것'은 꿈을 가진 사람의 깃발이 아니었을까. 자신은 평생동안 꿈과 목표를 혼동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p. 401)
" '미안해'로 끝나는 사랑보다 '고마워'로 끝나는 사랑쪽이 언제나 더 눈물겹다." (p. 417)
그리고 마지막 8부와 9부를 접하면서는 가슴을 두드리는 울림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저 남녀간의 사랑, 이별, 실연의 상처, 상처의 치유가 아닌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게 해 준다.

<스타일>보다는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 장소적 배경이나 이야기의 소재 등이 좀더 폭넓어지기도 했으며, 문장력도 한층 돋보이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래서 백영옥 작가에 대한 인식이 훨씬 좋아지게 되는 소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