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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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독자들에게 읽혀 오고 있는 소설이기에 관심이 가는 소설이었다. 더군다나 책 제목과 표지에서 느껴지는 단상들이 아주 복잡하다고나 할까. 벨라스케스가 그린 '왕녀 마르가리타'를 보고 프랑스 작곡가가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다. 이 책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벨라스케스의 작품중의 '왕녀 마르가리타'는 연작으로 책표지의 그림은 '마르가리타 왕녀와 시녀들'이다. 그리고, 그림 역시 책표지에는 짤린 부분들이 있다. 벨라스케스가 마르가리타를 화폭에 담는 모습을 보려고 정면으로 들어서는 순간을 그린 그림으로 왕 내외의 모습은 그리지 않았지만, 왼쪽으로 벨라스케스 자신이 화폭에 그림을 그리다가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과 뒷 문을 통해 나가려던 사람이 왕의 등장으로 멈칫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재미있는 것은 분명히 왕녀 마르가리타가 주인공임에도 아주 뚱뚱하고 못 생긴 (누가 보아도 못 생겼다고 느끼는) 시녀가 더 앞에 크게 부각되어서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이 그림을 보면 그 시녀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못 생긴 여자. 그녀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멸시. 차별대우. 바로 그런 여자가 이 소설속에 있다. 그녀는 자신을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서 부터 못생겼기에 친구조차 없었던. 그녀가 가장 먼저 들었던 최초의 말은 '야, 이 못난아'였고, 그의 별명은 메주, 미친 메주, 호박, 돼지, 괴물, 산돼지... 못 생겼기에 열심히 공부했지만, 취업은 예쁘고 날씬한 아이가 차지하게 되고,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실력보다는 외모가 우선이라는 기정사실.
이렇게 못 생겼기에 언제나 세상에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못 생긴 여자도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녀는 어떻게 할까? 사랑이 다가오기에 그녀가 느꼈던 감정들. 그것은 나중에 두껍고 긴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진다.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숨김없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사람들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 누구도 날 사랑해 주지 않는 거란 절망감.... (p274)
저는 세상 모든 여자들과 달리 자신의 어두운 면만을 내보이고 돌괴 있는 '달'입니다. 스스로를 돌려 밝은 면을 내보이고 싶어도... 돌지마, 돌면 더 이상해....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는 달인 것 입니다. (p283)
이런 못 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남자. 그는 아픈 가정사를 가졌다. 19살 그에게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언젠가는 말을 세우고 자신이 달려온 쪽을 바라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에겐 결국 영혼이 필요하고 영혼은 인디언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이기 때문이다. (p40)
19 살, 세상이 부럽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나이라고 하는 그 나이의 그.
그리고, 또 한 남자. 어머니의 자살로 아픈 마음을 가졌지만 그래도 밝은 듯 보이는 요한.
서로를 간호하는 느낌으로 걸어가던 길고 긴 골목도 잊을 수 없다. 인간의 골목. 그저 인생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불과한 인간들의 골목.... 모든 인간은 투병중이며. 그래서 누군가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골목의 끝에서... (214)
요한은 '세상은 거대한 고아원'이라고 생각한다. 존 레논의 딸기밭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이며,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거짓이라고 믿는다.
이 세 사람이 꾸며 나가는 사랑이야기. 벨라스케스의 화폭속의 시녀처럼 그들은 가혹한 세상앞에 들러리 선 시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그림속의 시녀가 공주보다 더 크게 부각되었듯이. 그들도 인생의 아픔을 거치기는 하지만 그들만의 인생이 있고, 사랑이 있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
이것이 의미하는 모든 것을 이 소설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결코 가혹한 세상앞에 왕녀의 들러리가 아닌, 인생에 있어서 내가 곧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그런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아쉬움이 남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다음의 문장을 곱씹으면서, 20살 청춘들의 사랑이야기를 읽은 감상을 끝내려 한다.
어둠속에서 결국 나는 살아 있는 왕녀를 위한 왈츠가 아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서의 내삶을 직시한다.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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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아이들
양석일 지음, 김응교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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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칠드런' 거리의 아이들.
1996년 유엔조사 통계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이들의 수는 2000만 명에서 3000만 명에 이르며, 15세미만이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아동의 수는 2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아동들이 은밀하게 성매매를 위하여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접해온 이야기이다. 그런데, 타이를 무대로 하여 이런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어둠의 아이들'이다. 저자는 재일동포작가인 '양재일'이다. 시인을 꿈꾸던 그는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피와 뼈' '밤을 걸고'등의 작품을 썼고, 이 작품은 2002년에 쓴 작품인데, 2008년에 사카모토 준지 감독에 의해서 영화화되었으며, 얼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개봉이 되었다.

이 책을 읽기전에 이미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는 있었고, '19세미만 구독 불가'라는 글까지 책표지에 있어서 읽기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지만, 첫부분부터 너무도 리얼하게 묘사되는 문장들과 내용들로 인해서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끔찍할 정도로 자행되는 아동 학대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이 무엇일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곤 했다.
타이의 산골마을로 부터 팔려가는 아이. 단 돈 12000바트, 한국돈으로 36만원가량. 애완견가격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아이를 판 돈으로 구입한 중고 텔레비젼과 냉장고를 자랑하듯 사용하는 그의 부모. 팔린 아동은 갓 8살 소년 소녀들이 대부분. 그들은 고대시대 노예들에서나, 아니면 흑인노예들의 신세처럼 팔에 수갑을 차고 끈으로 묶여서 담뱃불로 지져지고 채찍에 맞아가면서, 서양 관광객들과 일본인 관광객의 성노예 역할을 한다. 그리고 결국엔 에이즈에 걸린다.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은 까만색 쓰레기 봉투에 산 채로 갇혀서 쓰레기하치장으로.
또 한 방법은 부자나라의 아이들을 위한 장기매매에 이용된다. 모든 부분이 밀매의 대상이다.  
'심장 사천만 엔, 신장 2천만엔, 폐, 위, 대장, 눈, 피부, 뼈, 뇌 등 다 합쳐 칠천만 엔이다. 너무도 끔찍한 문장들. 이것이 타이의 스트리트 칠드런의 운명을 말해주는 문장이라니..... 경악과 충격에 빠져 버릴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들의 배후에는 마피아와 마약상들, 그리고 폭력집단. 심지어는 경찰과 정부, 군부까지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요즘 타이 정세가 안 좋은 것도 이처럼 그들의 정치 세력이나 사회적 가치관이 올바르게 자리잡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목숨을 마치 길위의 돌멩이처럼 취급하는 그들의 모습. 그리고, 공급에는 수요가 따라야 하기 마련인 것처럼, 타이를 여행하는 목적이 아동을 성의 노예로 삼고 싶어하는 유럼과 일본 등에서 몰려오는 아동성애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가난하고 헐벗은 가정에서 태어나서 팔린 아이들과 여기 저기에서 유괴된 아이들의 장기를 원하는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의 이기심이다. 사람의 생명은 그 누구가 귀중한 것이고 경중이 따로 있을 수 없는 것이건만, 돈이 있다고 해서 사람의 목숨을 뺏을 권리는 이 지구상의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얼마나 잔인해지면, 인간의 모습에서 가장 벗어나는 행동일까?' '인간의 욕구는 어디까지 일까?" 하는 의구심이 첫 페이지에서 끝 페이지까지 읽는 동안 내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은 모든 독자들은 '충격, 경악'이라는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내용들이라는 것에 일치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저자가 이 책을 일본에서 출간한 지가 2002년인데, 그후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타이의 어둠속의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그밖의 지역의 많은 스트리트 칠드런들은?
아마도, 별로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이었을까? 
지금도, 지구상의 '어둠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각종 사회단체의 극소수의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만족하고 있어야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은 이 책이 주는 어둠의 색깔보다도 더 짙은 어둠의 색깔로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어둠의 아이들'이 모두 밝은 세상에서 살아 갈 수 있는 그 날이 언젠가는 오기를 바란다. 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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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청춘 - 보석같이 젊은 날을 위한 15일 인생수업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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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잠시 머물렀으나
 먹물처럼 지워지지 않는 것....
 그것은 청춘! " 
(책표지에서)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이 화려하게 피어 있는 봄날에 꽃들의 향연을 볼 수 있는 창가에 앉아서 꽃을 닮은 청춘들이 이 시대의 학자이자 인생의 선배인 노스승에게 듣는 '청춘'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책은 이런 봄날에 읽으면 더욱 분위기가 살지 않을까 한다.  

저자인 김열규 님은 국문학과 민속학을 전공했지만, 문학, 미학, 신화, 역사를 두루 설렵했기에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폭넓게 전개된다.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15일에 걸쳐서 들려주는 형식으로 매일 한 개의 아이콘을 가지고 글을 전개한다. 시와 소설, 시조, 격언, 전설, 신화, 인물 이야기를 부제에 맞게 구성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주옥과 같은 문장들이다.  이처럼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은 80세를 바라보는 저자의 청년기는 우울한 시대였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이데올로기의 싸움속에서 청춘을 보냈던 것이다. 그런 암울하고 우울한 시대에서 그를 지탱해주고 그를 이끌어 주었던 것은 책속에서 얻게 되는 무수한 상징과 의미들이었다고 한다. 책 속의에서 자연스럽게 문학적 상징, 그리고 도전, 인문학적 비판과 성찰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독서는 탐닉.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노스승은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에게 책속에서 얻은,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얻은 지혜를 청춘들에게 낱낱이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자칫 청춘을 헛되이 보내지나 않을까하는 노파심에서 청춘들에게 '한 찰나가 인생의 전부인듯이' 살기를 희망하면서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책 속 내용중의 하나인 '덕파인'이 '운명적 1주일'덕에 자신이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길인 녹색환경운동을 하게 되면서 그가 가졌던 학벌, 출신, 경력 등을 모두 헌신짝처럼 내던질 수 있었던 것도 청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젊은 정열을 바쳐 지구 살리기에 올인하게 된.
그렇기에 청춘 각자들은 남들과 같을 수도 없고, 같은 자아를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만 해도 자신의 삶을 풀어나가는데 절반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원하는 일이 뭔지 명확히 깨닫고 용기를 낸 후부터 일이 잘 풀렸어요. 남들에게 보기 좋은 게 아니라 마음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았더니 쉽게 행복해지더군요.- 재미교포 김수진의 일화중에서 (p194)
청춘예찬에도 나오듯이, 청춘은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단어임에는 분명하다. 자신이 지금 그 자리에 있든지, 아니면 그 순간을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그런데, 아름답고 활기차기만한 청춘들에게 삶은 때론 고단한 길이며, 험난한 모험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험한 길에서 실패와 좌절을 미리 두려워한다면, 삶의 모습 자체가 힘들어 질 것이다. 인생의 역정에서 겪게 되는 사랑, 슬픔, 도전, 모험 .....  이 모든 것을 저자는 청춘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하면 화려하고 빛나는 청춘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아니,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있게 할 수 있는가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야기해 준다.
젊음의 시간은 폭포이다. 그래서 청춘은 질풍노도를 벗한다.
자아는 새이다. 오로지 자기완성을 위해 비상하는!
야망은 불기둥이다. 그것은 청춘을 날아오르게 하는 연료이다.
고독은 불붙지 못한 성냥이다. 그 차가움 속에서 청춘은 단단해진다.
도전은 가시밭이다. 그 너머에 청툰의 꽃밭이 펼쳐져 있는!
고통은 쓰디쓴 풀이다. 그것은 청춘의 보약이다.
결핍은 박차이다. 그것이 청춘을 질주하게 한다.
방황은 미로이다. 그것은 창조로 통하는 길이다.
슬픔은 빛나는 구슬이다. 그것은 청춘을 사색으로 이끈다.
죽음은 주춫돌이다. 그 위에 청춘의 삶이 굳건히 선다.
결단은 달콤한 입맞춤이다. 열정과 집념이 그것을 지속시킨다.
낭만은 태양이다. 그것은 삶의 신천지를 비춘다.
교양은 밭갈이다. 그 옥토에서 인격이 자란다.
사랑은 모든 것 위에 그대 이름을 쓰는 것이다. 우주와도 맞바꿀 수 없는 그 이름을!
웃음은 솟구치는 분수이다. 그것은 청춘의 화사함을 선물한다. (책 뒷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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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의 러시아 예술기행
최하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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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여러 빛깔의 이미지로 떠오르는 나라인 것같다. 로마노프 왕국의 이미지, 러시아혁명 당시의 처참하고 투쟁적인 이미지, 냉전시대에 미국과 양극관계를 이룰 당시의 이미지들이 함께 잔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생각한다면 너무도 낭만적인 동화속 궁전 모습을 떠오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러시아식 비잔틴 양식의 양파형 지붕과 그를 둘러싼 형형색색의 색깔이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예카테리나 궁전의 호박방의 호화로움, 또한 바이칼호수를 향해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까지 생각한다면, 러시아는 한 번쯤 여행하고 싶은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문학작품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낭만적인 모습보다는 러시아혁명전후를 중심으로 한 암울한 모습들이 더 많이 묘사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 최하림은 2004년과 2006년에 두 번의 러시아 여행을 하게 되는데, 러시아의 예술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을 찾아보고, 그곳에서 어떻게 예술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뒤쫒아 본다. 자작나무와 들꽃이 핀 들판에서, 예니세이강이나 네바강이 흐르는 곳에서,도스토옙스키를 찾아서 페테르부르크로, 톨스토이의 자취를 찾아서 야스나야폴라나행 기차에 올라서. 체호프를 찾아서는 멜리호보마을로.

나에게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의 도시가 아니고 에카테리나의 도시도 아니고 레닌의 도시도 아니다. 나에게 페테르부르크는 도스토옙스키의 도시다. (p43)
그러고 보니 러시아에는 기라성같은 문학인들과 예술인들이 많이도 있다는 것을 새삼깨닫게 된다. 세계적인 대문호인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체호프, 푸쉬킨, 스카초프, 예세닌, 솔제니친, 파스테르나크, 그리고 음악가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도.
그런데, 왜 시인 최하림은 러시아를 예술인들을 만나기 위해서 두 번이나 찾아 갓을까?
1960년대 초에 '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톨스토이의 생가와 묘지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이런 여행을 계획하게 된 이유란다. 톨스토이가 걸었던 그 오솔길도 걸어보고 톨스토이를 스쳐갔었을 바람도 맞으면서 그의 문학세계에 흠뻑 빠져본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워낙에 노름꾼이고 바람도 피웠다는 사실. 그러나 그런 톨스토이는 농민들에게 자신의 재산까지 기꺼이 나누어주고, 함께 농사를 지을 정도로 정이 많은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톨스토이는 '부활''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알게 된 작가인데, 최하림은 완전히 톨스토이의 문학에 심취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점차로 톨스토이에 매료되어갔다. 나는 '안나카레리나'를 읽었고, '참회록'을 읽었고, '사람에게는 얼마의 토지가 필요한가'를 비롯한 민화들을 읽었다. 그것은 토스토옙스키와는 또다른 큰 산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내속에 있는 죄와 악을 보여준다면 톨스토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라는 도덕적으로 매서운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70~80년대라는 질풍노도의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무력하기 그지없었던 나라는 존재는 그 질문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어싸. 그러니 어떻게 내가 야스나야폴랴나를 서둘러 찾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p 88~89)
그런 면에서 "위대한 작가에게 부여된 책임을 다하라"고 다그치는 편지를 만년의 톨스토이에게 보냈던 투르게네프의 심정을 나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위대한 교사보다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이 우리 삶에 기여하는 바는 깊고 크다. 위대한 작품은 시대가 흘러가고 가치관이 변해도 역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쓰다듬어준다. 위대한 문학 작품은 우리에게 등불이 되어주고 다친 상처를 쓰다듬어 줄 수 있으되 위대한 교사는 역사로밖에 남지 못한다. (p101)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하림은 푸쉬킨의 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프고 괴로운 것/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사는 것/ 그리고 또 지나간 것은/ 항상 그리워 지는 법이니/ (...)
학창시절 얼마나 좋아하던 명시인데.....
그리고 러시아의 문호중에 반가운 시인이자 소설가인 파스테르나크. 그의 시는 잘 모른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중에 '의사 지바고'에 푹 빠져서 날밤을 새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그 소설이 영화화되어서 시내 극장에서 상영이 되었을 때에 학교에서 단체 관람을 갔다. (예전에 서울의 중고등학교는 학교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끝나면 시내 극장으로 단체관람을 가곤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꽃미남인 주인공 오마  샤리프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하얀 눈이 덮힌 설원의 풍경. 이 책에서도 소개되는 장면인 페레델키노의 2층집. 창문에 하얀 성에가 잔뜩 낀 유리창. 시를 쓰는 그의 귀에 들리는 늑대소리. 특히 여주인공 라라의 주제곡이 너무도 아름다웠던 기억들. 그런데, 러시아의 예술기행을 통해서 그곳의 모습을 접하게 되니 새삼스럽게 옛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 때 읽었던 '의사 지바고'의 시대적 배경을 난 그때 잘 알지 못했다. 그 시대적 배경이 1905년의 러시아 제1차 혁명과 1917년의 10월 혁명,그리고 그 혁명들이 현실화되어가고 있는 시기였음을 알지 못했다. 어렴풋이 어떤 사회적 혁명이라는 것 밖에는. 우리는 대부분 세계적인 고전들을 학창시절에 많이 읽는다.



그렇기때문에 제대로 작품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줄거리 위주로 읽는다는 것을 이제와서 생각하면 많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읽었다는 생각에 다시 그 작품을 읽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제대도 된 작품 이해는 많은 문학 작품을 읽고, 역사적, 사회적 인식이 정립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최하림의 러시아 예술기행'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직까지도 모르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도 조금씩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어느 정도의 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야만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작가들을 알고, 그들의 문학세계를 이해하고, 문학작품을 읽어 보았다면 이해가 쉽고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최하림의 여행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이제부터라도 오래전 읽었던 고전들을 한 달에 한 권씩이라도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러시아의 모든 작가와 시인들은 시베리아의 검은 몽상을 경험하고서 러시아의 대작자가 된다. 도스토옙스티도 체호프도 스카초프도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하거나 시베리아에서 살거나 시베리아를 경험했다. 그들은 수백 리 자작 나무 숲을 헤맸다.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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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어느 지하생활자의 행복한 책일기 1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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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사회로부터 격리될 수 있는 가장 큰 위헝인자인지도 모른다. '좋은 이별의  '김형경' 작가는 독서에 몰입하다가 독서라는 자페공간에 갇힐 수도 있다고 했고. 조정래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를 '황홀한 글감옥'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와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독서에 빠지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것인지 모르고 날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는 것이 바로 책과의 인연인 것이다.  젠틀 매드니스 (Gentle Madness). 책에 미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바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저자인 윤성근은 책에 미쳤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책과의 남다른 인연을 쌓아 갔던 것이다.


독서가라면 추억속의 한 부분을 차지했었던 종로2가의 '종로서적'(몇년 전에 폐업)을 정릉에서부터 약도만을 가지고 3시간을 걸어서 갔을 정도였다면 책을 읽고자 하는 의욕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초등학생이 걸어서 3시간, 다시 걸어서 3시간을.....
이런 책에 대한 열정은 마침내 헌책방을 열게 만들었고, 그 헌책방은 정말로 이상하고 이상한 헌책방이다. 헌책이라면 모두 파는 책방이 아니다. 파는 책과 팔지 않는 책이 있다. 팔지 않는 책은 교과서, 참고서, 수험서, 학습교재, 어린이 전집, 유야용 책, 자기계발서, 처세술, 돈버는 책, 대중소설, 로맨스 소설은 팔지 않는단다.
'어휴~~ ' 성격도 특이하시네~~~
그럼, 무슨 책을 파세요? '내가 읽은 책중에서 권할 만한 책을 팔자.' 바로 이것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파는 책이랍니다.
'헌책방'
내가 어릴적에는 헌책방이 학교근처에는 한 두군데 정도는 꼭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2월경에는 다쓴 교과서, 참고서 등을 헌책방에 갖다 팔았다. 깨끗하게 쓴 참고서중에서 유명 교재들은 값이 나갔지만, 그밖의 책들은 별로 돈도 안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헌책을 팔고 받는 돈은 공돈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헌책방에서 나는 헌책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헌책이라면 고물상 폐지, 싸구려같은 느낌이 들지만, 결코 헌책은 그런 의미는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한 번쯤 읽었을 책들이지만, 책은 새책이든지, 헌책이든지 모두 그 책만이 가지는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점을 저자 역시 이야기한다.

책은 숨 쉬는 생명이고 하나 하나가 모두 귀하다. (p53)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헌책만을 사고 팔 수 있다면, 이상할까?
물론,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책방'이면서 '꿈을 꾸는 책방'것이다.
차을 마시면서 책도 읽을 수 있고, 강의도 들을 수 있고, 노래 연습도 하고, 독서모임도 갖는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청소년 문화제를 열기도 한다.
"이 곳이 헌책방이 맞아요? " 하고 물어 보고 싶을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오프라인 북카페인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쓴 글처럼 산다는 게 더 힘든 일이다. 글처럼 살고, 사는 것 그대로 정확하게 글로 쓰는 사람은 영혼이 맑은 사람이다. 그 영혼이 수정처럼 투명하고 맑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안에 들어 있는 걸 다 볼 수 있다. (p69)
이 책중에서 가장 관심이 많이 가는 것은 목차중의  헌책방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책읽기, 사람읽기' 인데, 평범한 독서인들은 대하기도 힘든 책들이 다수 소개되고 있다. 그 책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자신이 그 책을 읽게 된 동기라든가, 그 책에서 떠오르는 단상들, 그리고 읽은 후의 감상까지 독서목록에 따라 개인적 사색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정말로, 책을 좋아하고, 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은 단순히 책만을 사고 파는 책방이 아니기에. 많은 사회활동과 봉사활동까지를 겸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해 보았지만, 이처럼 생활 그 자체가 책인 사람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중심으로 한 그의 책사랑은 계속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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