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품절


13세기 코카서스 지대에 진군했던 몽골군의 후예 칼무이크인은 아주 멀고 먼 친척 몽골을 뜨겁게 동경하고, 18세기에 러시아에 거주하던 독일인의 자손은 경제가 악화일로를 걷는 구소련을 버리고 속속 독일로 이주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현실은 오히려 '가까운 이웃은 먼 친척만 못한'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인이 흔히 말하는 "이웃은 이사가지만, 이웃 나라는 이사가지 않는다, 이웃나라는 선택할 수 없다."라는 표현은 썩 그럴듯해 보인다. -34쪽

물론 화려한 꽃다발에서 죽음의 기색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홀로 되었을 때, 꽃다발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눈에는 보이지 않은 죽음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다. 허공으로서의 죽음, 혹은 영원성으로서의 죽음을 말이다. 그리고 삶의 가능성이 다 발현된 아름다움으로서의 죽음을. 장례식에서 꽃을 바치는 풍습은 죽음이 삶의 정점이며 완성이기도 하다는 사실의 비유는 아닐까. 참고로 덧붙이자면, 인류와 꽃의 관계에 대한 가장 오래된 흔적이 확인된 것은 아라크 북부의 샤니달 동굴이다. 6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 지층에서 매장된 네안데르탈인이 발결되었는데, 거기에 수레국화와 톱풀과 접시꽃 등의 꽃이 바쳐져 있었던 것이다. 구석기 시대 사람이 구애의 징표로 꽃을 보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159쪽

이탈리아의 롬바르드 주를 친구와 여행한 때는 11월 하순이다. 완만한 기복을 이루는 초원 여기저기에서 양들이 갈 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풀을 뜯어먹는 모습에 반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빨갛고 주황색을 띤 꽃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 추위에 설마...' 하며 차를 세웠다. 꽃을 따서 향기로운 냄새를 들이마셨다. 그건 그렇고 가엾은 꽃이다. 수선화 비슷했지만, 좀 더 닮은 꽃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사프란이야, 가을 화초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양들이 낮 잠을 잘 때 편안히 꿈을 꿀 수 있게 꽃의 여신 플로라가 준 카펫이라고들 하지 -223쪽

기억력이 희미해져가는 인간은 얼마나 순수하고 맑아지는 것인가. 어머니를 관찰하면서 곰곰 그런 생각이 든다. 멋을 부리거나 뻗대는 것, 욕망과 원망에서 해방된 어머니는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한없이 상냥하다. "많이 힘드시죠?" 라고 주위 사람들이 동정을 표하지만, 어머니랑 살면서 내가 얻게 된 마음의 평온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다.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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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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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솟는듯한 지식의 탐구와 재치넘치는 이야기가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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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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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지식 탐구의 무한함과 번뜩이는 재치가 어우러진 음식에 관한 에세이였다. 그런데, 작가가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글을 이젠 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 책소개 글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글들을 모아서 출간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우리곁에 '요네하라 마리'의 신간 서적이 출간되었다. 



 '문화편력기'는 '요네하라 마리'의 생전의 글들 71편이 실려 있다.
작가인 '요네하라 마리'는 일본인이지만 아버지의 직장일로 어린시절(초등학교~중학교 2학년까지 약 5년간) 프라하에서 자랐으며, 인문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이며, 러시아 동시통역사로 일했기때문에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서 문화를 보는 관점이 대단하다. 또한, 하루에 책7권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기에 그녀의 글들은 다른 에세이에 비하여 풍부한 지식이 담겨져 있다.

 

'미식견문록'의 부제가 '유쾌한 지식 여행자의 세계음식 기행'으로 주제가 음식에 국한 된 것에 반하여 '문화편력기'는 '유쾌한 지식 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의 부제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동서양의 문화, 역사,교육, 음식, 정치, 일상생활까지의 모든 분야의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그녀만의 샘솟는듯이 넘쳐 흐르는 지식탐구 능력과 읽다보면 어느 순간 독자들을 웃게 만드는 독특한 위트로 읽는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작가의 '언어 유희'는 상당히 위트가 넘쳐 흐른다. 책뒷표지에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의 저자 '곽아람'님의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일본의 드라마 '꽃보다 남자'라는 제목이 일본속담의 '꽃보다 경단'에서 나왔다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동원된 각나라의 속담들은 그녀의 독서편력에서 나왔음을 보여준다.'꽃보다 경단', '꽃 밑보다 코밑', 영어의 '새의 지저귐보다 빵', 러시아의 속담 '휘파람새를 이야기로 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늘을 나는 학보다 손아귀의 박새'. '미남미녀로 태어나기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태어나라', '집의 매력은 건물의 화려함이나 아름다움이 아니라, 파이의 맛에서 결정된다.' 등이 소개되는데, 이것은 독일의 낭만파 시인 "노발리스의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의 소설도, 푸른 꽃을 추구한 결과 시적 재능이라는 열매를 얻는다는 이야기이다. "(p31)라는 글을 쓰기 위해서 인용된 글인 것이다. 이 한 주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의 속담 실력은 " 당신을 속담의 달인으로 임명합니다."라는 말을 해 주고 싶을 정도이며, 그녀의 '언어 유희'도 작가의 언어적 감각과 재치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각종 서적의 내용을 뒤져서 독자들에게 설명해주는 지식 탐구의 노력이 가져다 준 결과인 것이다. 속담 한 마디가 인간의 존재 본질까지 파고 드는 이야기들은 책의 곳곳에서 읽을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읽는 묘미이며, 이런 글을 접하게 되는 독자들은 그 순간부터 그녀의 열렬한 팬이 되고, 그녀의 글에 매료되는 것이다.

                
 이 책의 '옷갈아 입기도 일이라서'(p38)의 경우로 그녀의 글의 구성을 생각해 보면: 계절의 변화를 느낀 작가 옷정리-개,고양이 털갈이- 공상(그 털로 양탄자를 만들면)-속담소개(러시아속담)-지인이야기(주재원k씨의 빨래이야기)- (위트- 웃지 않을 수 없는 엉뚱 대답) 이와같이 어떤 이야기가 그녀에게 쓰여지게 되면 실타래가 술술 풀려나가듯이 풀려서는 끝없는 지식탐구와 톡톡튀는 재치로 다시 짜여진다.
난데없이 팡팡 터지는 웃음에 도저히 웃지 않고는 넘길 수 없는 재치만점의 이야기에 읽는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내가 '문화편력기'를 읽으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이야기는 '이야기덕분에 산다.'(p69~72)이다. 작가가 '올가의 반어법'을 쓰기위해서 유태인 여죄수 전용 강제수용소에 관한 자료를 얻던 때의 이야기이다. 수용소 생활의 갈리나의 이야기를 통해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그 곳에 갇혀있던 여배우가 '오셀로'를 혼자 모든 배역을 재현하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되고, 그후에는 힘든 노동에도 불구하고 각자 기억속의 책구절을 서로 보완해 나가면서 즐기게 되는데, 장편 대작인 '전쟁과 평화', '백경'등의 소설까지도 거의 문장 그대로 재현하기도 했고, 그런 비참한 상황속에서도 '안나카레리나'를 동정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열두개의 의자'를 듣고는 포복절도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수면부족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더 생기있고, 삶의 생명력이 넘쳤다는 내용인데, 얼마나 감동적인 글이었다.
이 내용에서도 우리와의 문화의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책을 좋아해서 나의 리뷰를 읽는 사람들은 '책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두뇌의 공황상태가 오지 않을까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요리와 먹이의 경계선'은 '미식견문록'을 생각하면 글의 내용이 짐작 될 것이다.

 

마지막 장인 '드래건 알렉산드라의 심문'편은 대부분의 글이 작가의 추억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맞선보던 이야기, 실연한 이야기, 프라하시절 이야기,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다양한 꽃(라일락, 왕벚나무, 석류꽁, 사프란, 아네모네, 민들레, 수유나무, 마가목)에 얽힌 이야기들이어서 이 책중에서는 가장 정서적이고 추억이 담긴 이야기들이다.
이중에서 또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글로 '맞선남 이야기'- 그는 더욱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큰 거예요, 작은 거예요?" 가게 여기 저기에서 실소가 새어나왔다. "왜 그런 거까지 당신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하죠?" "부탁이니까 말해주세요!" 큰거예요, 작은 거예요?" '이사람하고는 오늘로 끝이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말했다. " .... 작은거."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 그런가요."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p190)
이 글을 읽고 무슨 상상이 드는지 궁금하다. 맞선남과 대화인데....
웃음이 '팡'터지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아빠 사랑해요', '어느 날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 '아버지곁으로 여행을 떠난 어머니'는 가족애가 느껴지는 잔잔한 이야기들인데, 역시 자녀에게는 언제나 부모라는 존재가 느끼게 하는 애틋한 마음이 있는 것이다.

자식에게는 '뚱뚱하고 공산당'인 아빠, 16년간 지하에 숨어 사는 아빠도 자랑스러운 존재이고, 당당하던 어머니가 치매 노인이 되신 것도 귀찮은 존재가 아닌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주는 존재인 것이다. 책 속의 글에 나타난 어머니를 향한 작가의 마음이다.



기억력이 희미해져가는 인간은 얼마나 순수하고 맑아지는 것인가. 어머니를 관찰하면서 곰곰 그런 생각이 든다. 멋을 부리거나 뻗대는 것, 욕망과 원망에서 해방된 어머니는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한없이 상냥하다. "많이 힘드시죠?" 라고 주위 사람들이 동정을 표하지만, 어머니랑 살면서 내가 얻게 된 마음의 평온은 무엇과도 바꾸기 어렵다. (p245)
'요네하라 마리'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작인 '문화편력기'는  일본인이지만,어린시절의 프라하 생활과 러시아 동시통역사라는 이력이 성장과정에서 '코즈모폴리터니즘'과 '내셔널리즘'의 균형을 맞추어 가야 했다. 그래서 작가가  '문화'를 접하는 태도나 느낌이 다른 사람들보다 독특하였던 것이다. 또한,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의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그로 인한 그녀만의 '사유'가 작품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글 속에는 언제나 위트가 함께 한다.
'문화편력기'로 '요하네스 마리'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은 아마도 그녀의 팬이 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 '미식견문록'을 통해서 '요하네스 마리'를 처음 알게 되었지만 이제는 그녀의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검색을 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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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아 54
에프라임 키숀 지음, 이용숙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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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역전의 황홀한 판타지, 명랑만화같은.....' (책 뒷표지의 소설가 '김종광'님의 서평)
책을 읽기도 전부터 '확'끌리는 느낌이 든다.
연말이라 왠지 서글픈 느낌이 드는 이때에 스트레스를 확 날려 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읽어볼만 하지 않은가? 책의 내용이 '인생역전'이라면 더욱 더 관심이 갈 것이다.

어제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오늘이 있다면,풍선에 잔뜩 바람을 불어 넣어 두둥실 하늘로 올라 가는 그런 느낌이 든다면 인생이 참 즐거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바로 '행운아 54'이다. 제목부터 인터넷 사이트의 아이디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어느날 갑자기 뜻하지 않은 행운을 잡은 54세의 남자 이야기'를 주인공이 55세에 쓴다.
이 책의 저자는 풍자소설의 대가인 '에프라임 키숀'이다.원래 그는 헝가리인이고 유태인이어서 2차세계대전때는 강제수용소에서 혹독한 시련을 치렀고, 전쟁후에는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로 망명했다. 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대학에서 예술사와 조각을 공부했기때문에 예술비평서인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를 썼는데, 이 책 역시 현대 예술의 난해함에 거침없는 풍자의 펀치를 날린 작품이다.미학자 진중권은 어떤 책에선가 '에프라임 키숀'을 좋아한다고 했다.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개를 위한 스테이크'가 있는데 이 책 역시 풍자소설이다. '행운아 54'는 작가가 2005년에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전에 쓴 그의 마지막 작품이면서 그의 유작인 것이다. (2003년에 쓴 책)

주인공인 '칼 뮐러는 삼류배우(?), 당나귀역(단역)을 맡았던 것이 마지막으로 지금은 백수, 뷰티크 경비일을 맡았으나 잠이 드는 바람에 그날로 쫒겨났다. 아내와는 22년전에 결혼, 아내는 대학을 졸업한(이를 강조하는 것을 보아 뮐러의 학력은 그보다는 낮다) 사회과 교사. 딸(23세), 그는 마음이 약한 것인지 울기도 잘한다.
이런 심상치 않은 인물이 어느날, 에이전트의 전화를 받고 미니시리즈에 출연을 하게 된다. 제작자인 '줄츠'는 부도덕한 인물로 '카를라'에게 마음이 있어서,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황당한 설정의 어설픈 TV 미니시리즈를 제작하게 되고 그과정에서 하루 일당 15달러인 '칼뮐러'를 섭외한 것이다. 물론,'뮐러'는 대사도 제대로 못하는 울렁증(?)배우라서 3회정도의 외과의사역을 주었다. 그런데, 간호사역의 '카를라'는 '뮐러'와의 접촉조차 싫어해서 배역을 바꾼다.
첫날 촬영 실패, 우울한 '칼 뮐러'는 계단에 앉아 울고 이를 본 심리학자 '뵘'은 '스포크'박사의 책을 소개해 준다.
우여곡절끝에 미니시리즈'파일럿'(방영전에 보여주는 예고편) 이 촬영되고, 파일럿의 방영이 두려운 '칼 뮐러'는 자살을 하던지, 외국으로 도피를 하려는 찰라에.....
행운은 찾아온다. 미니시리즈 '파일럿'을 본 저명한 비평가인 '게르숀 그라스코프'의 리뷰 덕을 톡톡히 본다.
'스타탄생'- 카밀로 L 로마노프,무명의 배우, 하룻밤사이에 전국을 점령하다.
진짜로 이것은 당치도 않은 해설이다.
" 무명 배우와 특정 장르의 명성 있는 영화 제작자가 우리에게 영화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선사했다. 그리고 이들은 연극에 관련한 기존의 사고 방식을 폭발적으로 전환시겼는데, 그 중요성은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P69)
이런 해설이 나온 방송 내용의 촬영은 어리없게도 여자 배우의 말 한마디에 배역이 왔다 갔다하고, 드라마 내용도 수시로 즉석에서 뜯어 고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냥 3회정도 방영하다가 끝내 버릴 생각의 작품인 것이다. 제작자인 '줄츠'는 여배우인 '카를라'의 환심만 사고 그녀와의 외도밖에는 생각이 없었으니까....
'칼 뮐러'의 대사 역시 펠리니(칼 뮐러가 대사 암기 능력이 없어서 자기 맘대로 지껄이도록 하고 나중에 편집처리하는 방식)처리이다.
그런데, 그 엉터리 대사가 그대로 편집없이 방영된 것이다.
참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저명한 비평가의 리뷰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다. 신인 연예인를 띄워주기 위해서 인터넷 곳곳을 궁금하지도 않은 그들의 소식으로 도배를 하는 일이라든가, 노이즈마켓팅으로 궁금증을 자아내서 검색하도록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설정은 그정도를 넘는 기막힌 이야기들이 독자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렇게, '칼 뮐러'는 리뷰의 힘으로 승승장구 그야말로 '대스타'로 발돋움한다. 빈 풍선에 바람을 잔뜩 넣은 것처럼, 화제의 화제인물이 되어 두둥실 올라간다. 하늘 높은줄 모르고....
'뮐러'의 아내 '힐데'여사도 두둥실 덩달아 춤을 춘다. 사회과 교사가 '뮐러'의 매니저로 변신, 집은 '집'겸용 '사무실', 아내는 '아내'이자 '매니저'....
딸도 한 몫을 한다. 케이블 tv로 진출, 미국 흑인과의 사랑으로 시도 때도 없이 돈만 요구한다. 딸의 입장만 생각한다.
인기절정의 '칼뮐러'는 '줄츠'의 즉석 생각으로 러시아 황족 가문의 '로마노프'로 탈바꿈되고, 이런 가운데, 여자 배역인 '카를라'는 '칼뮐러'에게 관심을 보이고, 카메라 여기자 '베티'역시 그에게 관심을 보이며 '칼 뮐러'의 인기에 편승을 하려는 속셈을 보인다.
그야말로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속이다.'
그런데, 잔뜩 부풀어 오른 '거짓말로 가득찬 풍선'은 언젠가는 터지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도 않은 인터뷰 기사가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카를라'와의 관계를 밝히려는 파파라치(?)의 카메라 공세, 새로운 장르의 연기라는 호평에 대한 악평이 거듭되면서 사면초가에 놓이게 되는 주인공 부부.
어떤 상황에서든지, '칼 뮐러'는 자신의 멘토격인 스포크박사의 심리학책을 열심히 탐독한다. 결혼한지 119개월의 서구 남자의 경우에는 이런 경우에 이렇다 하는 책의 내용을 지침삼아서 '카를라'와의 만남도 이어가고, 연애의 경험도 배워가면서 책에 의존한다. 그 모습 역시 참 웃기면서도 재미있다.
최악의 상태로 터질듯하던 풍선이 조용히 바람만 살짝 빠진다.
해피엔딩이다.
나는 이 소설을 몇 가지 관점으로 생각해 보았다.
(1) 인생역전
인생역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평범한 직종이 아닌 특별한 직종에 있어서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도 있다. 그런데,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땅꼬마 '칼 뮐러'는 남편으로서, 배우로서, 심지어는 야간 경비로서도 낙오자였다. 아내의 수입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그런 남자였다. 사랑에 있어서도 낙오자였던 그가 아리따운 여배우의 사랑까지 받게 되는 것은 '에프라임 키숀'의 기막힌 상상의 세계에서나 이루어 질 법한 이야기인 것이다. '칼 뮐러'의 기발한 인생을 통해서 작가는 '인생의 황홀한 판타지'를 대리만족으로 느껴 보면서 웃음을 자아내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2) 미디어 문화의 허구성
미디어 매체들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사실들이 왜곡되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어떤 사실들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여론의 향방에 좌우되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다. 최근의 아이돌 가수의 퇴출은 정확한 파악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넷을 통해 속사포처럼 퍼져 나갔고,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자 그의 귀향으로 마무리지어졌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한데, '에프라임 키숀'은 '행운아 54'를 통해 너무도 재미있게 이런 문제를 파헤쳤다.
(3) 비평가들의 글
이 소설에서도 모든 문제의 발단은 '게르숀 글라스코프'의 터무니없는 리뷰 기사때문에 일어난다. '비평'이라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책, 연극, 드라마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비평이 과연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가하는 생각들을 많이 해 보았을 것이다. 모든 매체는 그것을 접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그대로가 중요한 것이지,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느냐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같다.
☆ 연말로 접어드는 요즈음, 날씨도 을씨년스러운데, 한바탕 마음으로 웃을 수 있는 책으로 '행운아54'를 읽어 보면 좋을듯하다. 소설가 김종광작가는 공공 장소에서 읽다가 배꼽빠진 사람으로 오해받는다고 했는데, 그 정도의 큰 웃음은 아니고, 마음으로 웃고 지나가는 정도의 웃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인 '에프라임 키숀'의 '개를 위한 스테이크'도 대표적인 풍자소설이니까 함께 읽어보면 좋을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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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12-08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와 '개를 위한 스테이크'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제목의 54가 나이를 뜻하는 것이었군요.
사진을 곁들여 꼼꼼한 리뷰들로 가득한 서재 구경 잘 하고 갑니다.

라일락 2009-12-09 09:53   좋아요 0 | URL
약간은 좀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에프라임 키숀'이 워낙 풍자 소설의 대가이시니까 읽는 재미가 있을거예요....
 
그 여자의 여행가방 - 내가 사랑한, 네가 사랑할 여행의 순간
이하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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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람'-  라디오 구성작가, 방송구성 작가, YTN에서 리포터, M.C.아나운서 등으로 활동을 하였다. 인터넷 기자활동도 몇 개월했으나, '이기자'보다는 '이작가'가 되는 쪽을 선택하였다. 현재는 '여자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는 '여행로드다큐'에 출연 및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에 대해서 처음부터 장황하게 늘어 놓는 것은 그녀가 누구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모르기 때문이다.

 

'이하람'- 평범한 이름은 아닌 것같은데, 책 내용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께서는 손수 여권 투명비닐밑에 '네 이름이 하람이잖아, 하늘하고 바람만 그리기엔 허전할까봐 꽃도 그려봤다.'하시며 손수 그리신 그림을 끼워 넣어주시는 분이니까.....
글의 내용 여기저기에 그녀를 믿고 여자 혼자의 여행을 흔쾌히 암묵적으로 승낙하시는 아버지이신 것이 느껴진다.                                                         
 
 
'그 여자의 여행가방'은 이하람 작가가 홀로 떠났던 여행의 이야기를 담은 여행에세이이다. 아니, 언제나 홀로 떠났던 것은 아니다. 터키와 이집트는 친구와 단둘이서, 그리고 몽고는 오빠와 그밖의 몇 명의 사람들과의 여행이었다.
그녀의 여행은 특별하거나 색다르지 않다. '한비야'처럼 지구 세바퀴 반을 걸어서 오지 여행을 하면서 그 지역의 사람들속에서 같이 생활하고 웃고, 울던 이야기도 아니고, 세계적인 유명 관광지에 대한 정보나 문화유산 탐방의 기록들도 아니다.
작가가 '그 여자의 여행 가방'에서 소개하는 자신의 여행은 아주 평범한 해외여행이다. 젊은이들이라면 배낭을 메고 길을 물어 물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그런 흔한 관광지이고, 나이가 드는 분이라면 패키지 여행으로 깃발을 따라 다니던 그런 곳들이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 퐁네트 다리, 파리의 에펠탑, 야경, 독일,런던, 브뤼셀,그리고 터키의 탁심광장, 갈라타다리, 블루모스크, 이집트의 룩소르, 아브심벨, 일본의 규슈지방의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 등이 모두 그런 곳이다.
그밖의 몽골 지방은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여건상 꺼리는 지역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녀가 돌아본 지역은 이처럼 여행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그런 곳들이다.
그곳에서 작가가 본 것들, 체험한 것들 역시 아주 평범한 여행의 이야기이고 여러 책들에서 많이 소개된 에피소드인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작가의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책속으로 빠져든다.
책에 실린 사진들이 너무 아름답고, 느낌이 있어서.....
그리고, 사진들의 구성이나 소녀적 감상으로 사진에 그려 넣은듯한 꽃, 별 등의 그림에 끌려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세세한 느낌보다 더 이 책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작가의 글이다.
작가는 참 글을 맛깔나게 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글을 읽으면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이 순수하고 아름다우리라는 느낌이 든다.
또한, 그녀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잔잔하면서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을 가지게 한다.
사실 나는 '떠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왠지 모를 쓸쓸함과 함께 일종의 도피와 무책임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준비할 때마다 주문을 왼다. 내 여행은 From이 아닌 to. 떠나고 싶은 게 아니라 그곳에 가고 싶은 거라고.
그러나,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떠나왔다고 느끼는 내 스스로의 모순을 수없이 만나게 되고, 너는 왜 떠나왔나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의 표정 역시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집으로부터, 어제로부터, 아침으로부터, 계속되는 떠남의 연속, 어쩌면 그 쓸쓸해 보이는 내밀한 나만의 시간이 지독히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p53)
작가의 여행 스타일은 첫 유럽 여행을 단 일주일만에 결정할 정도로 대책없고 무계획적이고, 닥칠 일에 대해서 미리 겁을 먹지 않고, 여행지에 대한 아무런 기대없이 떠나는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조금은 황당한 여행 계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작가와 같은 생각을 하기에 마음껏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계획적이기에 그 속에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이 쌓이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일생에 몇 번밖에 못 떠나는 여행이기에 많은 기대를 하고 꼼꼼한 계획을 세워서 떠나야 하겠지만, 젊다면 그녀의 여행 스타일을 따라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작가도 자신의 여행 체험을 통해 새로운 여행 스타일에 대한 생각을 하게된다



 내 안에 여행이 겹겹이 쌓여갈수록여행을 하는 방식도 달라지는 것 같다. 배낭만 짊어지고 떠나왔으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겠다는 생각은 청춘의 열정이 아니라 청춘의 아집이었다. (p177)
그리고, 우리는 흔히 여행을 통해 새로운 곳을 아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작가에게 여행의 의미는 '여행은 기억되는 장소가 아닌 기억되는 순간을 만드는 일. 여행을 알아갈수록 사진으로는 담기 힘든 순간들이 내 여행가방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p195)라고 표현하고 있다.
 



 " 떠나보니 여행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사랑도 사람도 인생도 모두 여행 안에 있었다."(에필로그 중에서)
"누군가 이 책으로 인생에 한 번뿐인 긴 여행을 꿈꾸게 된다면 좋겠다. 누눈가 이 책으로 책상 서랍 구석에 처박혀 있던 여권을 다시 만지작거리게 된다면, 그래서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당신도 불현듯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에필로그 중에서)
작가의 에필로그의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어떤 새로운 여행의 정보를 주고자 하기보다는 자신이 무작정 떠났듯이 독자들도 불현듯 자신의 삶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떠남으로써 그 속에서 인생의 활기를 얻었으면 한다는 생각이 든다.
   " 떠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작가의 목소리이다.)
☆ 여러분도 새로운 여행을 꿈꿔 보세요, 그리고 과감하게 떠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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