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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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10년 만의 후기'가 인상적이다.

이 책이 간행된 것은 약 10년전이다. (...) 어떤 작품을 써도 팔리지 않고 찬사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여러 분야에도 도전했다. 아이디어를 짜내기보다 소재거리를 찾아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한심한 짓을 하기도 했다. (p268)
저자는 그래서 자신이 한때 자동차 부품회사 엔지니어였던 경험과 자동차하면 '교통사고'라는 생각에서 자신의 주변의 경험을 토대로 쓴 작품이고, 그것이 다시 10여 년이 흘러서 중판이 된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자신도 참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며, 문학지망생들도 꿈을 이루기 위해서 희망을 가지시길 바란다.
우리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자신이 교통사고에 연관된 적이 있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교통사고라는 것이 자칫하면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기도 한다. 특히, 사망자가 있고 목격자가 없으면 그런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교통사고의 목격자들은 경찰서에 불려 다니면서 귀찮아지는 것이 싫어서 신고를 기피하기도 한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교통법규에도 문제가 있어서 가해자가 억울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바로  '교통경찰의 밤'은 이런 교통사고 현장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처리하는 경찰의 모습과 함께 사고 뒷이야기들이 소개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에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 한마디로 '한치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가 한 편, 한 편을 읽을때만다 소름끼치듯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한 두 작품을 읽다보면 섣부른 결말을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추리소설의 대가의 글을 읽는 묘미라고나 할까?



☆ 천사의 귀: 교차점에서 일어난 경차와 외제차의 충돌, 오빠는 사망했지만 장님 여동생을 살았다. 사고 직전에 라디오를 통해서 들었던 음악의 가사와 오빠와 나누었던 대화의 시점까지 모두 기억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여동생, 사고후 목격자에 의해서 촬영된 캠코더의 영상에 남아 있는 신호등 색깔. 그속에 함께 남아 있는 건물의 시간. 이것을 가지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별하여야 한다. 여동생의 기적의 힘과 같은 장님 특유의 소리에 대한 감각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누구도 장담하지 마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니까.

"그녀의 기적의 귀는 진실을 호소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지 경찰을 농락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 아니다." (p56)
왜, 교통경찰 지나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분리대 : 앞차가 급정거와 함께 중앙분리대를 박고 마주오던 차와 충돌했다. 사고후 쏜살같이 앞을 빠져 나가던 차를 목격한 뒷차의 운전자. 앞차는 운송차였고, 자세한 상황판단은 힘들었지만 사망자의 아내는 자신의 끈질긴 추적과 고등학교 시절의 교칙위반이라는 억울한 경우를 당했던 것과 자신의 남편의 사망이 같은 이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교통법규의 모순을 이용하여 가해자는 아무런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없다. 피해자의 부인인 '스기누 마아야코'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법률은 조금만 어긋나면 때로 적이 되기도 하고 아군이 되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던져서 법률의 분리대를 넘은 것이다. (p100)
♠위험한 초보운전: 골목길에서 앞차가 '초보운전'이라고 속력을 내면서 겁을 준 뒷차 운전자때문에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처리도 없이 가버린 가해자. 피해자는 '단기 기억상실'이란다. 초보 운전자를 놀린 죄, 사고를 방치한 채 내뺀 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날밤, 저는 살해될 뻔했어요, 운전하고 있을 때, 누가 뒤에서 공격했어요.(p118)
♡ 불법주차 : 눈이 펑펑 내린 날, 골목길에 불법주차를 했다. 다음날 보니 누군가 차를 긁어 놨다. 그런데, 며칠후 자신이 한 행동이라면서 순순히 나타난 가해자.
"아싸" 피해부분이 아닌 부분까지 이 기회에 수리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꾸 친절을 베푼다. 과연 " 아싸" 하고 소리질렀어야 할까? 당신이 한 불법주차로 인해서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때론 누군가의 생명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 보았는가?
★ 버리지 마세요 : 차창밖으로 던진 쓰레기, 그것이 흉기가 될 수도 있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것이다. 캔커피를 창밖으로 던져서 결혼을 앞둔 여자가 한쪽 눈이 실명이 되었다. 가해 차량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하얀색 볼보, 뒤에 유리창에 작은 가스등, 그 차가 지나갔던 그 길.... 이들에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 거울속으로: 자동차와 자전거의 충돌사건, 그 차에는 올림픽을 앞둔 유명한 마라톤 선수였던 코치가 타고 있었다. 그들은 순순히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다. 그런데, 뭔가 석연치 않다. 왜? 올림픽을 앞둔 선수들과의 연관성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눈에 교통사고 현장이 발견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작품들에는 작가의 재치가 넘쳐 흐른다. 반전의 묘미, 그가 '10년만의 후기'에서 썼듯이 이 작품들을 쓸 당시에 꼼꼼하게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한 작품에 들인 뜨거운 열정은 그 어떤 때와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소설 작법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지금이야말로 커다란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흔히 말하지 않는가? 초보운전일 때보다 운전에 익숙하다고 자만심을 가질  때 사고를 일으킬 확률이 가장 높다고.... (p273)
저자의 이야기처럼 자만심은 교통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재치 넘치는 작품 구성과 작품 내용은 자만심이 들어가지 않은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만큼 재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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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멀라마 자이, 꽃을 보며 기다려 다오 - 네팔의 어린 노동자들을 찾아 떠난 여행
신명직 지음 / 고즈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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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잠깐 이야기 해보련다. 몇 년전에 김혜자씨가 쓴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와 박범신의 소설 '나마스테'가 생각났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는 전쟁과 가난으로 헐벗고 굶주린 곳을 찾아다니면서 구호사업을 하면서 그곳의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점들을 쓴 책이었는데, 읽는내내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 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나마스테'는 아름다운 히말라야 마르파 지역의 젊은이가 우리나라에 와서 외국인 노동자로 겪는 아픔과 사랑 이야기였는데, 주인공 카밀의 죽음이 너무도 슬펐지만,훗날 아버지의 나라인 네팔을 찾는 자식의 이야기가 아름다웠던 소설이다.
바로, 네팔의 어린이들의 현실이 이런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작품 이름마저 생소한 '거멀라마 자이, 꽃을 보며 기다려 다오' 우리나라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혼란을 겪던 1970년대후반에서 1980년에 연세대학교를 다니고, 그 시절 '연세춘추'에서 활동을 하던 그 시대의 한국을 가장 잘 안다고도 할 수 있는 세대인 신명직의 에세이이다. 한때는 '부천노동법률사무소'를 만들기도 했고, 현대문학과 만화, 영상을 공부한 사람이다. 저자가 네팔에서 보고자 했던 것은 바로 1987년에 한국노동조건이 향상되어 우리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처참한 노동 현장이 시대와 장소를 건너뛰어 파키스탄, 네팔, 필리핀 등의 아시아 일대에서 그대로 행해지고 있기때문에 그 현장을 가서 보고 그 현실을 책으로 펴내고자 한 것이다.
 
 

희뿌연 길 건너편으로부터, 사라졌다고 굳게 믿었던 난장이들이 하나둘씩 나에게 다가왔다. 필리핀 쓰레기 산의 신의 아이들이, 방글라데시 다카의 봉제공장 아이들이. 동아시아의 난장이들이 전태일의 손을 잡고 뚜벅뚜벅 근대의 국경을 넘어 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p10)

갑자기 '난장이'(올바른 맞춤법은 난쟁이 - 작품명이라 난장이로 한다) 가 왜 나오는 것일까? 여기에서'난장이'는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난장이'이다. 우리나라 1970년대의 사회상에서 볼 수 있었던 '난장이들'  바로 노동 현장에서 착취당하고, 인권이 무시당하고, 힘없는 노동자, 특히, 이 책에서는 아동 노동자들의 지칭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파키스탄의 '이크발 마시흐'라는 아동은 카펫공장의 아동 노동자였는데, 카펫을 만드는데 아동 노동자들이 동원되는 현실을 전세계에 알린 장본인이라고 해서 카펫 마피아에 의해서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파키스탄을 찾아가서 아동 노동자들을 만나보려고 했으나, 정세가 안 좋아서 네팔의 어린이 노동자를 찾아서 떠난 여행의 기록이 바로 이 책의 이야기인 것이다.
빨간 색의 코카콜라 광고판이 어떤 마을에 들어서게 되면 그 마을의 어린이들은 시골마을을 떠나 큰도회지로 간다는 말이 네팔에는 있다고 한다. 가난에 찌들었던 아이들, 부모로부터 매를 맞으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문명이 밀고 들어오는 속도와 같이 돈을 벌기 위해서 자신의 고향을 등지고 수도인 카투만두로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카투만두의 뉴버스터미널은 이런 어린이들의 유입창구이며, 이들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어린이들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아침 6시부터 비닐더미에서 비닐을 하루종일 주워서 100루피를 벌거나 (1루피는 16원정도),템포(버스같은 교통기관)에서 보조역할을 하거나, 채석장에서 돌을 깨거나, 벽돌을 만드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다. 아니면 거리의 궂은 일들을 도맡아 하고 고작 60~150루피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것이다. 잠자리는 사원근처의 도로변, 아니면 쓰레기더미, 비닐더미.... 그래도 이 어린이들은 시골 고향집에서 죽도록 얻어맞고, 죽도록 일했던 기억보다는 지금의 도시 생활을 더 즐거워 한다.
그들에게는 빵을 먹을 수 있는 일을 원하는 것이다. 그런 어린이들이 그들의 형이나 누나정도가 되면 가는 곳은 중동의 도하, 한국, 일본 등의 돈을 벌 수 있는 '해외이주 노동자'의 길이 되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이크발 마시흐'의 일이 있은 후에 카펫 공장에서 일하던 아동들은 거의 사라졌다. 유럽에서 아동들이 만든 카펫의 구입을 원하지 않고, 아동이 만들지 않았다는 인증까지 원하기 때문이다. 카펫 공장의 어린이들은 어디로 감추어 진 것일까? 바로 이렇게 채석장, 쓰레기더미, 비닐 더미, 도시의 구석 구석에 새로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좀더 성장하면 '해외이주 노동자'로....
'아동 노동'과 '해외이주 노동'은 이와같이 동전의 양면가 같은 존재인 것이다.
망치를 든 여자아이- 아스팔트를 만드는 돌을 작게 부수는 일을 한다. 표정만은 너무 밝지 않은가?



그 아이들이 들려 주는 노래가 '거멀라이 자이, 꽃을 보며 기다려 다오'이다.
거멀라이 자이는 네팔어로 흙그릇에 핀 꽃이란다.

흙 그룻에 꽃을 심어서, 꽃이 피었어요, 거멀라이 자이. 아름다운 꽃을 보면서 기다리라고. 거멀라이 자이. 나는 떠난다고......나는 가는데, 기다려 달라고.... (p104~106)
네팔에는 이런 아동들을 위한 '씨윈'이라는 아동 보호기관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위한 일들을 하고 있다. 민간 단체로는 벨기에인이 운영하던 '달뜨는 집'도 있다. '달뜨는 집'의 경우에는 식사 5루피, 숙식 10루피를 아동들이 낸다. 물론, 영리보다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힘으로 먹고 잔다는 의식을 일께워주려는 것이다. 벨기에인은 아이들의 돈을 맡아주는 뱅킹시스템과 아이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멤버십카드까지 발급해주었는데, 얼마전에 그의 고향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보호단체로는 원불교가 세운 마을회관인 '비하니바스티'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조그만 일에도 불평 불만을 일삼고, 자신의 처지에 힘겹다고 떠들던 사람이 있다면, 네팔의 어린이들을 생각해 보라. 아니, 그보다 더 힘겹게 하루 하루를 살고 있는 지구촌의 사람들을 돌아보라. 아직도 투덜거리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어린이들의 사진들을 모아보았다. '아이들의 눈' 똘망똘망 맑은 눈동자들, 장난기가 어린 눈동자들.....


저자는 힘든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이런 아이들의 눈동자들을 사진으로 함께 실어서 그들에게 희망이 남아 있음을 전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전세계적으로 5~17세에 이르는 어린이 노동자의 수는 2억 4천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할 문제는 이런 어린이들의 노동을 막으면, 결국에는 그들은 그 수입마저도 없어서 더욱 굶주린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네팔의 어린이들도 말했다. 일을 하는 것은 막지 말아달라고... 빵을 얻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고.... 누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무능한 정부도 아닐 것이고, 민간 단체나, 세계 구호단체의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인데..... 참 많은 생각이 든다. 공정무역, 공생무역도 이야기하지만 그것도 해결방안에는 못 미칠 것이다.
누가 이 어린이들을 학교에 가게 해 줄 수 있을까?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의무이며, 권리이건만....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는다.
이 책에는 DVD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생동감있는 영상으로 책의 내용은 내레이션으로.
가족들과 함께 감상해도 좋을듯 싶었다.
♡ 도와주세요 ♥
지구상의 어린이들이 어린이답게 자랄 수 있게....
그리고, 헐벗고 굶주리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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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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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책을 펴드는 순간....
'아차 ! 순서가 바뀌었구나! '
그렇게 인터넷에서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많이 접했었는데도, 별 관심이 없었기에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을 읽으려고 집어 들은 것이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라는 책을 참 많이들 읽는구나 하는 정도로만 여겼기에 같은 작가의 작품인 줄은 알았지만, 그 후속작이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그 후속을 기다리고, 예약판매를 기다렸다는 것도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책의 내용도 전혀 모를 수 밖에.... 책제목만 보고 얼핏 '장미의 이름'처럼 규장각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어떤 것을 찾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무지(無知) ?
이 책의 저자인 정은궐은 로맨스 전문 사이트 '로망띠끄'의 연재 작가 출신이며, 필명  "은궐(銀闕)은 ‘은빛 대궐’이라 하여 달(月)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로맨스 소설이었단말인가?

 
조선시대 F4, 바로 '잘금 4인방'의 사랑과 우정이야기 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안 읽었다고 해도 처음부터 내용파악에는 별 지장이 없다. 물론, 많은 독자들이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더 재미있게 읽었다는 평도 있지만, 다만, 전편에서의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알고 있다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노론 벽파, 시파, 남인 등이 등장하는 것을 보니 시대는 조선 중기이고, 작품에 나오는 임금의 이미지가 권위적인 면보다는 인간다운 면이 부각되고, 이들의 행동을 은연중에 지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조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장 여인인 대물 김윤희, 그녀와 결혼을 약속한 장원급제자인 가랑 이선준, 대사헌의 자제인 걸오 문재신, 어딘지 임금과의 어떤 연관성이 엿보이는 여림 구용하.
자신의 동생 김윤식의 행세를 하기에 규장각에 들어가기 보다는 외직을 원하지만, 임금은 그녀의 실체를 아는듯, 그녀의 마음을 아는듯, 4인이 함께 가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시킨다. 임금이 윤희의 결혼식에 보낸 하사품 '가채' 그것은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러기에 선진의 아버지인 좌의정 이정무는 규장각의 인사권에 관여할 수 없는 우의정이 되는 것이겠지.
"김윤식, 아니 그 누이, 과연 이정무의 약점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나의 약점이 될 것인가?" (P96) 왕과 이정무의 눈에 보이는 갈등.
그리고, '4인방'의 규장각 업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조선시대의 정치 풍속.
과거급제만 하면 화려한 앞날이 펼쳐진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독자에게, 뇌물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맞다. 부정부패와 권력남용, 뇌물수수....
그당시의 정치, 사회 현실이었다.
일부러 임금이 대루원에 뒹굴게 만든 상소문, 그 상소문은 규장각 철폐의 글을 쓴 학자의 글에 임금이 조목조목 틀린 문장부터 내용까지 고쳐서 보란듯이 대루원에 버렸다.  신참례를 둘러싼 승문원, 홍문관, 예문관, 홍문관의 각종 시험과 그를 통과하기 위한 4인방의 이야기, 때론 그것을 아무도 몰래 살짝 도와주는 임금.이처럼 임금의 성격은 여기 저기에서 권위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왜 자꾸 문근영이 생각날까? 윤희의 대사는 왜 문근영의 입을 통해서 들리는 것일까?
그렇다. 그동안 조선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비밀의 화원'에서의 신윤복이 남장 여인이었기때문이다. 그외에도 '미인도'등을 통해 소설, 드라마, 영화에서 조선시대의 남장여인을 많이 소재로 삼았던 것이다. 이런 소재는 처음에는 신선하고 충격적이지만, 거듭되다보면 식상해지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이 소설이 넘어야 할 딜레마는 아닐까?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 1, 2부를 거쳐 쓰여졌다면, 그것으로 끝마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후속작으로 거듭나게 되면 결국에는 식상해지게 마련이다. 오히려 남장 여인 윤희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구성면에서도 좀 단조롭다는 생각이 든다. '신참례'의 이야기도 좀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반전이 있었다면, 그리고 임금의 활약이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된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2권이 남았으니,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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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슬리퍼를 신은 남자
벵상 드 스와르트 지음, 오영민 옮김 / 세계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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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가 말하기를 '이 소설은 뻔뻔하고, 참아주기 힘든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읽는 이마저도 뻔뻔하고 능청스럽게 만드는 우리의 속 이야기이자, 여러모로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p267) 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읽어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황당하고 민망한 내용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작품이다.

저자인 '벵상 드 스와르트'는 프랑스 작가로 아동소설인 '바다의 회전목마'로 데뷔한 후에 소설 및 콩트 등을 여러편 발표했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은 다음과 같다.

'매혹적인 문체를 통해 탐정소설과 역사소설이 표방하는 기존의 형식들을 전복시킨' 소설가라는 평을 받는 그는, 기발한 상상력과 전복적인 글쓰기에 뛰어난 작가이다. 특히 여러 신화들과 타 장르들을 소설의 주요한 소재로 즐겨 사용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작가소개 글 중에서)

'아내의 슬리퍼를 신은 남자'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작품세계는 확실히 기발한 상상력이 물씬 풍겨난다. 이 소설은 자전적 소설형식을 빌린 환상소설이다.
주인공은 바로 자신의 이름과 같은 벵상, 그리고 직업도 전에는 광고 카피라이터, 지금은 소설가. 읽는 독자들은 그의 소설이 어디까지가 작가의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가 소설인지가 혼동될 정도로 능청스럽게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써내려 간다. 아니, 어느정도는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소설의 모티브는 아리스토파네스의 <반쪽 신화>이다. 인간이 네 다리와 네 손을 가졌었는데, 둘로 분리되어 자신의 반쪽을 찾는다는...
벵상이 말하는 '그 사건'이후에 벵상은 성이 바뀌어 간다. 점점 여성이 되어간다.
기발하기보다는 황당하다고 해야 할 상상력이 아닌가?
아내에게 언제까지 숨길 수 없는 상황에서의 절망감과 잃어버릴 사랑에 대한 생각들에 힘겨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지만, 의외로 그 절망은 희망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벵상이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소설의 프랑스판 원제는  "Elle est moi(엘 레 무아;그녀는 나)"인데 문장의 발음이 "Elle et moi(엘 에 무아;그녀와 나)"의 발음과 간혹 혼동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그녀는 나" 또는 "그녀와 나" 의 중의적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녀가 되는 이야기, 또는 그녀와 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벵상의 재치가 엿보이는 제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중에는 주인공 벵상의 나이는 자신의 나이인 마흔살이다. 그러면서 평균적인 통계로 볼 때에 자신은 인생의 중간정도를 살아 왔음을 여러 차례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족력인 암에 대한 이야기도... 어머니와 그 윗 세대에서 부터 내려오는 암의 가족력.
그런데, 역자가 이 소설을 번역하던 2006년에 저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마흔 두 살의 젊은 나에로, 급성암 후유증으로. 그래서 결국 이 소설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의 유고작이 되었다고 하니, 인생의 무상함이 여기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2005년에 프랑스에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에,평단은 '기괴한 상상력과 휴머니즘의 결정체'라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이중의 찬사를 바쳤다. (p269, 옮긴이의 글중에서)
프랑스의 문단의 반응처럼,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자서전적 소설형식을 비린 환상 소설이라는 생각에 접하게 된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는 것은 당황스러우면서도 뻔뻔함이 있어야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벵상이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한 것을 확실하게 잡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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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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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맛을 표현할 때 상큼하다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내 기억속의 사과는 참 다양한 맛이었다. 겨울이면 창고방에 사과가 몇 궤짝씩 있었는데,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품종이었다. 껍질까지 부드러우면서 연노랑색이었던 골덴사과는 나이드신 분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맛으로 과질까지 부드러웠다. 껍질색이 푸른색이면서 과질은 딱딱하지만 달작지근했던 사과, 그리고 빨간 사과인 홍옥은 신맛이 많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외에도 스타킹이라는 사과도 생각이 난다. 이처럼 같은 사과인데도 그 맛은 어린 입맛에도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사과밭을 본 것은 봄에 떠난 수학여행길에서 기찻속에서 보았던 경상도 지방의 사과밭.... 아름다운 하얀 꽃들이 온천지를 수놓은듯 아름다웠다.
그런 추억속의 사과에 대한 단상을 떠올리면 '기적의 사과'를 읽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기무라씨의 이야기는 2006년 12월에 NHK '프로페셔널 - 프로의 방식'이란 프로그램의 '사과 농가 기무라 아키노리 씨'편으로 방영된 이야기를 논픽션 작가인 '이시카와 다쿠지'가 취재하는 형식의 글로 기무라씨와의 대화 내용이 그대로 실리기도 한다. 기무라씨는 책날개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앞니가 빠진 채로 웃는 모습니다.

'잘 웃는 기무라 씨'

기무라씨의 웃는 얼굴 뒤에는 깊은 고뇌와 다른 사람에게 이루 달 말할 수 없는 과거가 감춰져 있다. (...) 인생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오며 고난을 이겨낸 기무라씨의 미소 (머리글 중에서 P9)
지금은 그의 사과밭에서 생산된 사과는 작고 볼품은 없을지 몰라도 어떤 사과보다도 단 맛이 강해서 판매 개시 3분만에 품절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맛이 문제가 아니라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농약가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기무라씨의 사과밭에는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은 사과들이 달려 있으며, 그의 밭에는 수많은 벌레들이 살고 있으며, 개구리가 알을 낳고 새들이 지저귀고, 나비와 벌들이 날라다닌다.
바로 이 사과밭에서 나온 '기적의 사과'는 기무라씨가 자신의 30년 세월을 고스란히 바쳐서 이룩한 성과이며, 가족들의 희생이 담겨있는 곳이다.
아마도, 우리들이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과일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과일들과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배와 사과가 그럴 것이다. 사과를 보고는  왜 이렇게 작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 볼 것이다. 그것이 바로 품종개량이 안 된 사과이기때문이다. 농업기술의 발달을 품종개량이라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만큼 농사짓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19세기를 전후로 그이전의 사과와 그 이후의 사과는 전혀 다른 사과이다. 윌리암 텔의 사과, 뉴튼의 사과와는 다른 크고 윤기나고 단 맛의 사과로 개량되었지만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다량의 농약과 비료가 필요한 것이다. 개량된 사과는 무농약으로 재배를 하면 2년이면 사과수확이 제로 상태가 된다.
그런데, 바보 기무라씨는  무농약, 무비료로 사과를 재배하기 위해서 자신과 가족들의 희생을 사과밭에 받친 것이다. 품종개량된 사과는 병충해와 벌레에 약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사과밭에서 벌레를 하나 하나 잡는 일을 계속했으며, 각종 실험을 통해서 병충해를 막으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간다.
한 가지에 미치면 언젠가는 반드시 답을 찾는다. 그 말은 기무라 씨의 인생 그 자체이다. (P31)
기무라씨의 네군데 사과밭에는 800그루의 사과나무가 있었는데, 그중에 400그루가 죽게 된다. 너무도 혹독한 현실에 죽기로 결심하고 산에 올라 자살할 끈을 나무위로 던지나 잘못 연결되고 그 순간에 그의 눈에 비친 '달빛 아래에 사과나무가 서 있었다.' 그건 도토리나무의 환상이었지만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6년가 끝없이 찾아 헤매며 찾던 답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숲 속 나무는 농약 같은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P156)
나무를 덮고 있는 무성한 잡초.... 거기에 답이 있었다. 그는 사과나무만을 보았지, 흙을 보지 않았던 것이다.  잡초가 땅을 부드럽게 만들고, 나무는 그 부드러운 빵에 뿌리를 깊이 내려 튼튼한 사과나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유지시키자. 그후 3년의 세월이 흐른후에 12그루의 나무에 7송이의 사과꽃이 핀다. 그 사과꽃은 2개의 사과가 되고.....
그후 9년만에 기무라씨의 사과밭에는 사과꽃이 만개한다.
기무라 씨가 거쳐온 인고의 세월은 결국온 마음으로 사과나무와 마주서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무라 씨가 "바보가 되면 좋아."라고 한 말은 그런 의미에서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 그러나 사람이 진정으로 새로운 뭔가에 도전할 때, 가장 큰 장벽이 되는 것이 그 경험과 지식이다. (P144)


   

누군가 말했던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루어진다'고....
이 책은 기무라씨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과정이 그대로 대화와 함께 실려 있는데, 취재기자는 독자들에게 무리하게 감동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가감없이, 때로는 기무라씨의 대화를 통해 투박하게 그대로 적어 나가고 있다.
인간은 얕은 사람의 생각으로 얼마나 많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가?
곱고, 아름답고, 크고, 맛있는 것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파괴하고 있는가?
기무라씨의 사과나무에 대한 열정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나무만보고 뿌리를 보지 못하는 오류를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행하고 있느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있는 그대로를 보아야 한다.
자연의 생태계가 홀로 형성되지 않듯이 인간의 삶도 그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주변 자연과의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9년만에 만개한 사과꽃. 그것이 기무라씨의 역경의 끝은 아니었지만, 성공으로 가는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기무라씨가 30년의 세월을 바쳐 이룩한 무농약 사과, 이것은 자연과 사과나무, 그리고 인간의 합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가족들의 가난과 희생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흔히,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삶에는 가족의 희생이 있듯이, 기무라씨가 지쳐서 이제 그만두려고 할 때에 자녀가 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울린다.
기무라씨의 행동은 집념일까? 아니면 왕고집일까?
'이제 포기할까? 아버지의 말에 딸은 반응한다. '그건 말도 안돼, 우리가 뭣때문에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데!' 그 한마디로 아버지는 느낀다. 아버지의 꿈이 딸의 꿈이었다는 것을 ~~~

겪어보면 알겠지만, 바보가 되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거든. 하지만 죽을 마음정도라면 그전에 한 번 바보가 되어 보는 것도 좋아. (P31)

수없는 실패와 끝없는 헛수고에도 견딜 수 있었던 기무라씨와 같은 바보가 이 세상에는 몇 명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 희생이 너무도 엄청나기는 하지만, 바보가 있기에 세상은 새롭게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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