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날짜변경선 ㅣ 문학동네 청소년 9
전삼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더 이상 백일장을 나가지 않게 된
스물 셋의 여름에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썼다.
스물 다섯, 이제 그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 소개글 중에서)
<날짜 변경선>를 쓴 전삼혜는 1987년생이다. 그는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백일장 키드'였다.
백일장 키드들이 전국에서 열리는 백일장을 찾아 헤매듯이 그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지금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제8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경력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문청들의 로망인 문학동네에서 책까지 출간하게 된 것이다.
그가 풀어나가는 <날짜 변경선>의 이야기는 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현수, 우진, 윤희.
현수는 고등학교 2학년생, 특별히 문학적 소질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백일장을 찾아 다니지만, 수상자 명단에 끼는 일은 거의 없다.
이제 백일장을 찾아 다니면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글을 쓰는 자체가 힘겹다.
그래서 백일장 키드들의 카페인 날짜 변경선에서 다음 백일장에서 같이 밥을 먹을 사람들을 구하던 중에 한솔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한솔은 백일장마다 수상을 휩쓸고 다니는 윤희였던 것이다.
그리고 카페 형인 우진과 윤희가 안 좋은 일로 얽힌 사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우진과 윤희는 같은 학교에 다녔었고, 지금은 우진이 예고로 편입을 했으며, 어떤 백일장에서 우진이 윤희의 '나무'라는 작품을 도용하기도 했고, 윤희의 흉터있는 팔의 사진을 카페에 올렸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윤희가 한때는 누군가에 의해서 왕따가 되기도 했고, 여기에 학급 학생들이 모두 동조를 했지만, 어느 순간 없었던 사실처럼 학급 학생들은 윤희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 사실을 침묵하는 것이 윤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이다.
어느날 현수와 우진은 백일장을 가던 중에 그것을 포기하고 바다를 보러 여수에 간다. 그곳에서 우진은 윤희와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어 나가게 되고,
우진은 윤희에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미안하다는 말 들어 본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 예의상하는 말 말고, 정말로 잘못 한 사람이 미안한 망음에 하는 말 있잖아. 1학년때 학교에서 따돌림 당할 때도 그렇고, 사진 때문에 백일장에서 애들이 수군거릴 때도 그렇고, 누눈가 잘못을 했으니 내가 피해를 입고 있는건데, 아무도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안해서 무서웠어." (p156~157)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백일장에서도 스쳐가는 인물들이었지만, 그들은 우정을 쌓아 나가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백일장을 찾아 다니는 이유, 그리고, 대학입시를 앞두고 그들이 선택하는 진로.
그것은 같은 듯하나 또 다른 것이다.
글을 잘 쓰기에 예고로 편입하여 문창과를 선택하는 우진.
그러나, 그도 자신이 좋아하는 시쓰기는 대학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항상 백일장에서 수상을 거머쥐는 윤희는 자신을 왕따시키는 학교에서 외롭게 지내기가 힘들어서 백일장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글 솜씨가 뛰어나지도 않은 현수는 글쓰기가 좋기에 그 길을 가고자하는 것이다.
<날짜 변경선>의 이야기는 긴 호흡의 글은 아니다.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문학청년들의 일상의 한 단면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속에 학교에서 벌어지는 왕따 이야기가 가미된 것이다.
왕따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 절절한 내용들이고, 왕따라는 존재는 그 누군가에 의해서 정해지지만, 결국에는 학급의 모든 학생들의 암묵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누군가 왕따가 되어야 내가 왕따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가슴 아픈 이야기이기도 하고....
입시를 앞둔 문학 청년들이 겪게 되는 학교의 일상, 백일장 순례.
백일장에서 수상을 하는 경력이 있으면 문예창작학과에 특전이 주어지는 실태.
이것이 문학청년들의 현주소인 것이다.
이 책에서의 날짜 변경선은 아마도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문학의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글을 게재하던 카페 이름이기도 하고.
우진이 윤희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전하던 날이 공교롭게도 윤희의 생일, 날짜가 바뀌는 순간이었는데,
그 말 한 마디는
그 '미안해'라는 말은 아주 긴 시간을 거쳐, 어쩌면 지구를 한 바퀴를 돌아, 일 년이 지나 윤희 누나에게 도착한 것 같았다. (p156)
태평양 상에 그어진 날짜 변경선.
그것은 아주 가까우면서도 먼 하루인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반대편으로 넘나들 수 있는 선이지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루를 넘는 높은 벽이기도 한 것이다.
우진의 '미안해'라는 한 마디가 넘기 힘든 벽을 넘어 말로 전해졌듯이.
자신이 문학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혼란에 빠지려는 현수에게는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이 정말 어떤 길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기도 했고, 자신에게 가로막힌 날짜 변경선과 같은 벽을 넘어가고 싶은 욕망을 일깨우는 것이기도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넘어 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날짜 변경선인 것이다.
입시를 앞두고 흔들리는 문학 청년들에게는 날짜 변경선이라는 벽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마음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날짜 변경선은 넘으려는 마음만 있으면 넘을 수 있는 선인 것이다.
<날짜 변경선>의 이야기는 이 책의 저자가 지나왔을 그런 이야기들이기에 좀더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이야기가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예리한 글솜씨가 돋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정래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고향의 지명이나 자신의 체험을 쓰지 않으려는 생각(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한 두편의 글을 쓰지만 이것은 상상력의 고갈을 가져온다는 생각에서)- 황홀한 글감옥 중의 내용에서"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직은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첫걸음이기에 당연히 자신의 체험이 녹아 있는 글을 쓸 수 밖에 없었겠지만, 앞으로는 폭넓은 소재와 주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작가의 글은 그리 녹녹하지 않은 길이기에.
쉽게 (?) 읽히는 글을 써서 인기를 누리는 작가들도 있기는 하지만, 김홍신 작가의 말처럼 <대 발해> 10권을 완간하고 " 쥐어짜고 말라 비툴어진 제 영혼을 다독이고 싶었습니다. (p116) - 인생사용 설명서 2권 (p116) 중에서" 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 대하소설을 여러 권 썼던 조정래 작가는 그의 글쓰기 작업을 "황홀한 글감옥"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작가의 도전, 열정, 심지어는 자기희생적인 삶이 있기에 좋은 작품들은 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작가들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신예작가인 전삼혜도 이런 작가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날짜 변경선>이 문청들의 이야기이기에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