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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방 속의 책
정진국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여행을 떠날 때에 내 여행가방 속에는 여행 가이드북까지 합쳐서 대여섯 권의 책이 담긴다. 책의 무게만해도 상당하기에 고르고 골라서 되도록 가벼우면서도 깊은 생각없이 술술 읽힐 수 있는 책을 가지고 간다.
물론, 여행지에서는 바쁜 일정으로 책을 읽을 시간이 별로 없다. 그 책들은 오고 가는 비행기 속에서 읽기 위한 책들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잠든 가운데 홀로 읽는 책은 여행을 떠날 때는 설레임을, 여행에서 돌아 오는 길에는 피곤함을 잠재워준다.
<여행가방 속의 책>은 이런 여행자들이 여행길에 가지고 떠나는 책들에 대한 가벼운 에세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읽게 되었지만, 읽기 전의 생각과는 다르게 폭넓고 깊이있는 에세이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정진국'은 미술평론가인데, 그동안 글쓰기와 사진기록을 병행하는 작업을 하기도 하고, 유럽에서 출간되는 예술가의 전기 등을 번역하기도 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와 <유럽의 괴짜 박물관>이 잘 알려진 책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여행가방 속의 책>은 해박하고 격조높고 지적인 내용들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도 문체가 딱딱하지 않고 유연해서 읽기에 편안함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자기 자신과 자신이 살고있는 시대, 사회에 대한 갈등과 고민을 하던 16명의 여행자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을 떠나서 새로운 세상을 접하면서 겪게 되는 여행의 이야기와 그들이 여행중에 읽게 되는 책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런데, 16명의 여행자들은 제각각의 모습이다.
국적, 나이, 성별, 취미, 직업, 인종 등이 모두 다르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여행지도 아프리카,, 아시아의 타클라마칸, 티벳, 아프가니스탄, 남태평양의 타히티, 서유럽의 프로방스, 아비뇽, 아를, 로마, 아메리카의 멕시코, 페루 등, 5대륙 6대양에 걸쳐져 있는 것이다.

" 그래. 참 여행자는 혼자 떠나는 법
떠나려면 가벼운 마음으로 풍선처럼
운명을 멀리 물리치지도 못하고
왜 떠나는지도 모르면서 늘 하는 말은, 가자 ! " (p98)
그러면 16명의 여행자들은 누구일까?
<사관과 신사>을 쓴 영국의 소설가 이블린 워.
헤밍웨이와 결혼을 했었던 여성 종군기자이자 언론인인 마사 겔혼.
007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영국의 기행 작가 피터 를레임.
'20세기의 오디세우스'라는 별명을 가진 프랑스의 알랭 제르보.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아르헨티나의 혁명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등이다.

영국의 소설가 이블린 워의 '아프리카의 겨울'로 이 책은 시작한다.
당시 28살의 청년이 왜 아프리카로 들어가려고 했을까?
그리고 그는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여행을 하였으며, 여행중에 어떤 책을 읽었을까 궁금해 질 것이다.
이블린 워보다 약 30년후에 홀로 아프리카에 들어갔던 최초의 여성 종군 기자인 마사 겔흔의 이야기도 관심이 간다.
그 당시에 아프리카 여행은 미친짓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이들의 여행은 쉽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아프리카 못지 않게 교통이 불편하고, 환경이 열악한 아시아의 사막지대와 티벳, 아프가니스탄을 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의 키니는 탕구르족에게 그가 가져갔던 <투르크스탄 가는 사막길>이란 책을 보여준다. 탕구르족은 지금까지 사진을 본 적이 없는데, 책 속에 그들의 고향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다.
탕구르족에게 이 책은 얼마나 경이로웠을까.
이 책의 내용 중에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중일전쟁터에서 읽은 책들"을 이야기하는데, 그 이야기들은 크리스의 일기체로 쓰여진 글이기에 일기따라 그의 여로를 함께 떠나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체게바라의 이야기는 그의 평전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접했을텐데, 의사를 지망하던 그가 혁명가로 변신하게 된 배경이 바로 여행이었고, 그 여행 중에 읽었던 책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인 것이다.
체게바라의 오토바이 무전여행은 훗날 라틴아메리가의 혁명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고, 쿠바로 건너가 바타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다.
그가 여행 중에 읽었던 책 중에 <칼 마르크스 독서>와 <국경없는 하나의 라틴아메리카>는 그의 갈 길에 신념을 심어준 책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여행가방 속의 책>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여로와 책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16 명의 여행자들은 분명히 문명의 발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장기간의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떠날 때에 책을 가지고 떠났다.
왜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곳을 떠나면서도 책을 가지고 떠났을까.
그리고 그들은 그 책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저자의 표현처럼 책은 문명의 끄나불이고, '언어의 감옥'이고, '창살없는 감옥'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책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것.
그것이 이 책의 여행자들의 공통점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 속의 여행자, 여행, 책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우리들에게 친숙한 사람, 책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소개되는 책들도 고뇌하는 지식인들에게 어울리는 깊이있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이 책에는 여행자들이 활동하는 19 세기말에서 20세기에 걸친 흑백사진들이 있는데, 이 사진들은 그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록의 의미가 있어서 더 흥미롭기도 하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 여행, 독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