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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속삭여줄게 - 언젠가 떠날 너에게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정혜윤의 글은 독특하다.
그건 그녀에게서 책은 삶에서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는 필요불가분의 존재이기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책과의 연관성이 내재되어 있다.
이미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 푸른숲, 2008>를 통하여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등 11 명의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과 책과의 이야기를 인터뷰하였었다.
저자가 인터뷰했던 사람들이 삶에서 가장 결정적이었던 순간들에 만나던 책과의 인연.
그 이야기 속에는 정혜윤의 독서 이야기도 한 몫을 하였던 것이다.
얼마전 <여행, 혹은 여행처럼 / 정혜윤, 문학동네, 2011>을 통해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충자, 이명재 할머니, 그리고 사진작가, 진딧물박사, 나무박사 등의 삶을 여행이라는 주제에 맞추어서 인터뷰한 내용이었는데, 이 책 역시 상당히 신선하면서도 특색있는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정혜윤의 책들을 읽으면서, 그녀의 삶에서 책과 여행은 삶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런던을 속삭여 줄게>는 여행 에세이지만,
여행이 그렇듯 여행 중에 만나는 곳들에 대한 문학과 역사, 심지어는 과학이 어우러진 에세이라고 해야 될 듯싶다.
정혜윤에게는 어떤 사물이나 인물 등이 곧 책 속의 이야기와 연결되는 것이다.
풀어도 풀어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나오는 이야기들.
그녀는 진정한 교양인인 것이다.
이 책의 '런던 여행을 마치며'의 나오는 고흐와 고갱을 헷갈리는 어떤 아버지가 아닌 진정한 교양인.
그녀의 해박한 지식은 런던을 곳곳을 둘러 보면서 이어진다.
" 이야기들도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고 추억은 또 다른 추억을.
여행은 또 다른 여행을 품고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 )
이 책은 한 장의 런던 지도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독자들은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비단 런던만을 위한 여행서가 아니라는 것을.
런던이 될 수도 있고, 파리가 될 수도 있고, 도쿄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그리고 런던 다음의 이야기는 독자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녀가 지도를 따라 런던의 곳곳을 이야기한다.
웨스트민스터사원, 세인트 폴 대성당, 대영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트라팔가르 광장,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런던탑, 그린니치 천문대.

이곳들은 런던의 여행자라면 그 누구라도 가는 곳들이다.
그런데, 저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바이런, 셀리, 키츠 뉴턴,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찰스 디킨스 등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서 그렇게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으며, 어떻게 그렇게 많은 문호들의 책 속의 글들을 기억해 낼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는 넬슨 제독과 화가 터너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대영박물관에서는 로제타석, 사자의 서, 그리고 미노스의 꽃 화병 등을 보면서 또 이야기를 이어간다.
700 만점 유물을 통해 유물너머의 어마어마한 문명과 도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특히, 악명높은 피의 역사를 간직한 런던탑는 그 모습만큼이나 음울한 이야기가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런던탑에 갇혔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헨리 5세, 에드워드 5세와 그 동생, 천 일의 앤 블린, 캐서린 하워드 등이 떠오르는 것이다.
불꽃처럼 화려하게 불붙었다가 불꽃처럼 사그라진 앤 블린.
그녀의 목표였던 '최고로 행복한 여자가 되자'는 생각은 마지막 불꽃처럼 사라졌다.
여행에세이는 같은 도시를 이야기하지만, 저자들의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한다.


만약에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변종모, 달, 2009>의 저자인 변종모가 런던을 속삭여 준다면 안개 속의 런던만큼이나 짙은 외로움을 분위기있는 사진과 함께 이야기했을 것이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정태남,21세기북스, 2011 >의 저자 정태남이 런던을 속삭여 준다면 음악이 흐르고, 공연이 펼쳐지는 그런 이야기와 함께 정태남만의 프레임에 잡힌 독특한 사진이 실렸을 것이다.
<송동훈의 그랜드 투어/ 송동훈, 김영사, 2010>의 저자 송동훈이 런던을 속삭여 준다면 근세의 유럽 문화와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보편적인 런던의 사진과 함께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이처럼 여행 에세이는 같은 곳이지만 어떤 사람이 쓰느냐에 따라서 모두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역시 정혜윤의 런던은 책이 있고, 문인이 있고, 역사적 인물이 있는 그런 런던을 속삭여 준다.
언제 읽어도 흥미로운 이야기.
그리고 읽으면 진정한 교양인이 될 수 있는 그런 이야기.
저자는 그렇게 런던을 속삭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