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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2 - 7月-9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1Q84'1권을 읽고 1개월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1Q84'2권을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전에 읽었던 하루키의 다른 소설들을 대충 훑어보았다. CF장면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읽었던 '상실의 시대'에서는 잔잔한 사랑이야기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별 커다란 감동을 주지 못했었다.'해변의 카프카'를 읽은후에야 작가의 작품세계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밖의 몇 권의 다른 소설과 에세이를 꾸준히 읽어가면서 하루키의 문학에 조금씩 접근했던 것이다. 1권과 2권을 읽는 중간에 읽었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읽고는 하루키 소설의 방대한 이야기들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루키가 날마다 달리기를 하듯, 차곡차곡 쌓여진 것이며, 평소의 체력단련도 한 몫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출간될 때마다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거기에 대한 답을 작가는 '1Q84' 2권에서 책속의 소설인 '공기번데기'가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것에 대한 것으로 답을 해주는 것이다.
'아오마메는 이 소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널리 읽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 베스트셀러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생생하고 적확한 묘사가 의심의 여지없이 이 소설의 매력이었다. 독자는 소녀를 둘러싼 세계를 소녀의 시선을 통해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특수한 환경에 처한 소녀의 비현실적인 체험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거기에는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데가 있었다. 아마도 의식의 저변에 있는 뭔가를 환기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독자는 자기도 모르게 빨려들어 차례 차례 책장을 넘기고 만다. (P495~496)
1권, 2권을 합쳐서 1200 페이지가 넘는 대작은 세세한 장면 설정과 문장의 표현의 섬세함이 엿보이며, 하루키 소설 특유의 독특한 캐릭터와 특별한 상황들, 그리고 그속에 깔린 복선들이 얽히고 설켜서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추리력을 가지고 접해야 한다는 것이 매력적인 것이다.
'1Q84'1권에서 내가 가졌던 많은 의문점이 속시원하게 2권에서는 풀릴 수 있을까?
1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10살의 소년, 소녀에게는 수치심을 느낄 수 있었던 비슷한 환경이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겼던 덴고와 아오마메, 교실에서 잠깐 스쳐지나가듯이 잡았던 손길이 그들을 운명처럼 어떤 끈으로 잡아당기고 있다. 이 끈의 하나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아오마메는 이제 '신포니에타'를 구석구석까지 모두 기억했다.'(P70)
그러나, 그것보다 더 강하게 그들을 잡아 당기는 것은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은연중에 깊숙이 그들의 속으로 들어온 '선구'라는 존재이다. 덴고는 선구의 실제 이야기가 토대가 된 후카에리의 '공기번데기'의 리라이팅작업으로 부터 시작되었으며, 이 작업이후에 강하게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쓰고 싶어지면서 새로운 의욕안에 아오마메를 원하는 마음이 포함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해질녁 동쪽 하늘에 달이 두 개가 나란히 떠 있는 세계의 풍경을 그는 그려나갔다.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곳에 흐르는 시간을. '(P115) 덴고가 생각해낸 '달이 두 개가 나란히 떠 있는 세상' 그것은 바로 아오마메가 들어간 1Q84의 세계이다.
그러면, 아오마메가 들어간 1Q84의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네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1Q84년이고 그건 진짜 1984년이 아니다. 그런 말인가요?" "무엇이 진짜 세계냐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문제야." 리더라고 불리는 사내는 엎드려 누운 채 그렇게 말했다. "그건 결국 형이상학적인 명제가 되지, 하지만 이곳은 진짜 세계야.(...) 이 세계에서 맛보는 고통은 진짜 고통이야, 이 세계에 찾아오는 죽음은 진짜 죽음이지, 흐르는 건 진짜 피야. 이곳은 가짜 세계가 아니야, 가상의 세계도 아니지. 형이상학적인 세계도 아니야, (...) 이곳은 자네가 알고 있는 1984년이 아니야" (...) 1984년은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자네에게도, 나에게도, 지금은 1Q84년이라는 시간 외에는 존재하지 않아." (P320~321)
'선구'의 리더는 아오마메가 자신을 살해할 것을 이미 알고, 고통없는 죽음을 부탁하면서 그녀가 들어온 1Q84 세계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리고, 리더를 죽임으로써 아오마메는 죽을 것이며, 이로인해 덴고는 살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아오마메에 의해서 리더가 살해되는 순간, 덴고는 후카에리에 의해서 1Q84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 세계는 달이 두 개 떠 있는 세계이다. 열 살때의 단 한번의 스쳐가듯이 잡았던 손길이 덴고와 아오마메를 항상 따라 다녔고, 그것은 서로가 느끼는 보이지 않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것을 다시 연결시켜주는 것은 바로 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이다. 덴고는 후카에리가 아주 가까운 곳에 아오마메가 있다는 말에 그녀를 찾아 나선다. 그날 그때의 기억에 달이 떠 있었듯이.... 공원의 놀이기구에 올라가서 하늘에 떠있는 두 개의 달을 본다. 바로 그순간 아오마메도 그 달을 보는 덴고를 발견하지만 그들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1Q84년에서 1984년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없다. 이 세계에 들어오는 문은 한 쪽 방향으로 밖에는 열리지 않는다. 고. 그래도 아오마메는 자신의 두 눈으로 그 사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그녀의 본성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실을 확인했다. 끝. 증명은 끝났다. Q.E.D. (p 539)
과연, 다른 작가가 이런 소재의 소설을 써내려 간다면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공감을 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단 한 번 잡은 손이 그들의 사랑이었고, 현재도 사랑하고 있으며, 그 사랑을 위해서 여자가 죽음을 선택한다면....
그러나, 하루키만의 거대한 상상의 세계속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너무도 황당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소설이 허구의 세계를 그린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다양하고도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빈틈없고 탄탄한 구성으로 짜여진 하루키의 소설이라면 독자들은 지루한 줄 모르고 빠르게 소설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작품내내 흐르는 덴고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 자신의 아버지도 아닌 사람이 자신을 키웠고, 어릴적의 기억속의 어머니의 '불륜'의 모습.... 여기에서도 작가는 '상실'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치매 노인이 된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에 읽게 되는 독일 작가의 소설' 고양이 마을' 이다. 나중에 아버지에게도 읽어줌으로써 아버지와 덴고와의 관계를 재정립해보고 자신의 어머니를 용서(?)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고양이 마을'을 아들에게 들은 아버지와 덴고의 대화이다.
"설명을 안 하면 그걸 모른다는 건,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는 거야" "나는 공백 속에서 나온거예요?" 대답은 없었다. 덴고는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깍지 끼고 아버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텅 빈 잔해같은 게 아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서서히 퍼져가는 공백과 어쩔 도리없이 공존 할 수 밖에 엇다. 지금은 아직 공백과 기억이 뒤엉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이윽고 공백이. 본인이 그것을 원하건 원하지 않건, 남겨져 있는 기억을 완전히 삼켜버릴 것이다. 그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가 이제부터 맞서려는 공백은, 내가 태어난 곳과 똑같은 공백일까? (p217)
액자소설 형식으로 '고양이 마을'과 이 소설의 핵심이기도 한 '공기번데기'의 내용이 중간에 소개되면서 그 이야기들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그런데, 확실히 '1Q84', 이 소설은 쉬운 소설은 아니다. 뭔가 뚜렷하고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은 없다. 독자들의 상상의 세계에서 나름대로의 해석과 감동을 받아야 하는 소설인 것이다.
'사랑'의 의미도, '상실'의 의미도.... 모두 독자들의 수준과 눈높이에 따라 맞추어야 할 것 같다. 이 소설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은 풍부한 상상력과 추리력의 세계에 푹 빠졌다가 나온 느낌이다.
흥미롭게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