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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27 - 팔도 냉면 여행기
허영만 글.그림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내가 먹어 본 냉면 중에 가장 맛있고 추억이 담긴 냉면은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광화문의 골목길에 자리잡은 허름한 학생 전용 냉면집에서 먹곤 하던 비빔냉면이다.
여름날 방과후에 몇몇 친구들과 함께 안국동을 지나, 광화문을 거쳐서 세종문화회관(당시:시민회관) 근처의 골목길에 들어서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냉면집이었다.
그 맛이 얼마나 매운지 입안이 얼얼할 정도였다. 그래서 냉면을 먹고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어주는 센스가 있어야 했다.
아마도 그 집에서는 비빔냉면만을 팔았었던 것인지 내 기억에는 그 입안이 얼얼한 느낌만이 생각난다.
그리고는 엄마가 직접 해주시던 물냉면.
그런데, 사실은 비빔냉면이니, 물냉면이니 하는 냉면의 종류는 없다고 한다.
함흥냉면, 평양냉면이지....
이런 추억 속의 냉면을 생각하면서 읽게 된 책은 '식객27' 냉면편이다.
'식객'은 영화, 드라마까지 나왔으니 모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만화책이지만, 만화라고 가볍게 생각하기에는 허영만 화백의 열정이 너무도 많이 담겨 있는 책이다.
그는 식객에 나오는 음식을 책상위에서 그린 것이 아니라, 작품 속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면서 보고,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그대로 책에 옮겨 놓았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식객27'은 '식객'의 마지막 편인 것이다.
허영만 화백이 2002년에 '어머니의 쌀'편으로 식객을 시작하여 2010년 '밀면' 편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더 아쉬운 것은 '식객'이 연재되던 신문에서 연재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31화 - 진주냉면
132화 - 승소냉면
133화 - 평양냉면
134화 - 함흥냉면
135화 - 밀면
작가가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데, 중단된다는 것이 정말 아쉽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식객27'편을 가장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평양냉면, 함흥냉면 하는데, 이 책에서 소개되는 진주냉면, 승소냉면을 생소하다.
진주냉면은 육수가 참 다양하게 들어간다. 소머리, 사태살, 대멸치, 디포리, 건새우, 황태, 바지락, 홍합, 특히 해물육수의 감칠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육수를 끊일 때에 쇠막대를 집어넣어서 육수의 비린맛과 잡내를 없애는 방법도 특이하다.
진주냉면은 조선시대 권번가에서 야식으로 즐겨먹었다고 하니, 고급음식에 속한다. 그래서 냉면 위에 올리는 고명도 다채롭다.
다음으로 승소냉면은 더 생소하다.
그렇다. 승소냉면은 사찰에서 스님들이 별미로 드시는 냉면이기에 동물성 재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깔끔한 그런 맛의 냉면이다.
그리고, 우리가 많이 접해 본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이것들 역시 그 지방에 맞는 식재료로 그 지방의 특색이 살아 있는 냉면이다.
마지막으로 밀면은 육수의 기본인 사골, 돼지고기, 닭고기, 그리고 한약재가 들어간다.
이런 음식들이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 맛을 간직한 음식점에서 대를 이어서 맛을 전수시켜 주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허영만 화백의 담백한 만화로 그려진다.
오랜 세월에 거쳐서 화백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인 '식객'.
그의 마지막 식객을 읽으면서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허영만 화백은 4년동안 구상하고 준비중인 사극으로 찾아 뵙는다고 한다.
또다른 허영만 화백의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