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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영웅들 ㅣ 김영사 모던&클래식
윌 듀런트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역사 속의 영웅들>의 마지막 장을 닫으면서 나는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좋은 책을 만났다는 기쁨을 느낀다.
그동안 많은 역사서들을 읽어 보았지만, 이 책처럼 읽기 편안한 책은 처음 접해 보는 것이다.
많은 역사서들은 그 구성에 있어서 인류의 발생, 고대문명, 그리스 로마시대... 이런 식으로 목차가 구성된다. 그리고 천편일률적으로 고생인류부터 설명하듯이 내용을 이끌어가니, 학창시절의 세계사 시간에 배운 내용과 별다를 것이 없는 딱딱하고 고루한 이야기들의 나열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역사서를 기피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 20세기 가장 탁월한 철학자이자 사학자인 윌 듀런트" ( 책 뒤표지 글 중에서)는 이런 형식을 깨트려 버린 것이다.
1885년에 미국에서 출생하여 1981년 9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인류의 문명과 철학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하였기에 20세기를 대표하는 문명 사학자인 윌 듀런트는 "역사는 사례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라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도 그의 철학관과 역사관, 문명관 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자칫하면 이 세상에 빛을 발하지 못하고 묻혀 버릴 수 있었던 원고를 그의 사후에 (2001년 겨울) 그의 아들이 존 리틀이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서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윌 듀런트의 마지막 원고이자, 유고작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Chapter 21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으로 끝맺게 되니 이 시대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이니 17세기 초의 내용까지 담고 있는 것이다.
그 이후의 내용들을 저자가 담아 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고, 그것은 인류의 본성이 진정 어떤 것인지 찾아 내는 곳이다( 책 속의 글 중에서)라는 말에 따라 책 속으로 들어가 본다.
역시 이 책은 역사 속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류의 문명사를 찾아 보는 것이니, 고대의 4대 문명에서 이야기는 시작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 인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부터.
그런데, 저자는 그들 문명의 발자취에 주안점을 두기 보다는 그 속의 어떤 인물을 통해서 그때의 역사, 정치, 사회, 예술 등의 이야기를 폭넓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특히, 동양의 이야기에서 서양의 이야기를 찾고, 그때의 이야기에서 저자가 살았던 때까지의 이야기를 찾아 나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넘나드는 이야기인지라,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매료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그의 필체가 유려하여 읽는 내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마력까지 발휘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내용인 Chapter 2- 공자와 추당당한 신선 을 통해서 중국을 이야기한다.
중국인의 사유는 성자가 아닌 현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이 특징이며, 그래서 주로 선의가 아니라 지혜를 이야기한다. 그 예로 공자는 새로운 길을 찾아 자신이 맡은 몫을 다하고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있는 철학자였다는 내용과 함께 중국 역사 속의 인물이 이태백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태백은 공자가 남긴 모든 책을 공부하고 불멸의 시를 쓴 당대 최고의 시인인데, 그의 남루했던 삶의 이야기가 애처럽게 들린다.
돈을 별로 벌지 못해서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져 살아야 했던 그가 쓴 시들이 여러 편 소개된다.
그 시 속에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풍겨난다.
" 침상 머리에서 달빛을 보았네.
달빛이 땅에 내린 서리가 아닌가 생각했네.
머리를 쳐들고 산 위에 뜬 달을 바라보았네.
머리를 조아려 멀고 먼 고향 집을 생각했네." <고요한 밤에 생각하다 靜夜思> (p40)
저자는 그런 내용끝에 1932년 중국에 관하여 몇 문장의 글을 덧붙인다.
" 군사적 승리도 외국 금융의 폭정도 자원과 생명력이 이토록 풍부한 한 민족을 오래 억압할 수는 없다. 중국의 허리가 그 생명력을 잃기 전에 침략자들이 먼저 자본이나 참을성을 잃어 버릴 것이다. 100 년이 지나기 전에 중국은 그 정복자들(당시 일본인)을 흡수하고 현대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기술을 모두 배울 것이다. 도로와 통신이 중국을 통일시킬 것이고, 경제와 근검은 자본을 가져 올 것이며 강력한 정부가 질서와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 혁명이 쓰레기를 제거하고 불필요한 것을 도려낼 것이다. 많은 것들이 죽어야 할 순간에 혁명이 나타난다. 중국은 전에도 이미 여러 번이나 죽었다. 그리고 여러 번이나 다시 태어났다. " (p43~44)
이를 통해 독자들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였던 중국의 고대에서부터 1932년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리 길지 않은 글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의 현대사를 보는 눈과 그가 예견하는 앞으로의 세상까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를 거쳐서 그리스, 로마의 역사 속의 인물들을 따라 가면서 역사를 비롯한 문명사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르네상스 시대를 3 장, 종교개혁 2장 , 가톨릭의 종교개혁 1장으로 구성할 정도로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의 제목이 <역사속의 영웅들>인데, 결국에 역사는 영웅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이 책에서 말하는 영웅이란 꼭 정치가, 장군을 일컫는 것이아니라 사상가, 예술가, 시인까지를 아우르는 것이다.
" 이 책의 의도는 문명의 역사를 한정된 지면에 요약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에 의해 남겨진 사상과 표현의 걸작을 탐구하고 그 예를 살펴 보는 것이다. " (p79)
로마의 카이사르를 저자는 "고대 세계가 배출한 가장 완벽한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죽음에 얽힌 내용 중에서 카이사르는 죽기 전인 3월 14일 저녁에 자신의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죽음이란 무엇이냐'는 주제로 토론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때 카이사르는 '갑작스러운 죽음'이 가장 좋은 죽음이라고 답했다고 하니....
이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 책을 읽는 묘미인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유려한 문체와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이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세계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전개되는 책의 내용은 재미있게 엮어졌으며, 그 내용 속에는 그 시대에서 담아 내야하는 정치, 사상, 예술의 흐름까지 놓치지 않고 설명해 준다.
더군다나 이 책이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문명이야기 > 시리즈는 11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926년이후 약 50년에 걸쳐서 쓴 인류의 문명사에 관한 책이라고 하니, 그 열정이 대단한 것이다.
<역사 속의 영웅들>은 <문명이야기>시리즈에서 인물을 중심으로 압축하여 정수만을 모은 책이지만, <문명 이야기>에서 그대로 발췌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따로 쓴 원고들을 책으로 엮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역사가 가르쳐 준다고 믿었던 많은 교훈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종교, 정치, 계급 갈등과 같은 사회문제에서부터 역사가들이 잘 거론하지 않는 정치, 종교문제까지도 그 자신의 생각들을 솔직하게 펼쳐 보이는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책이 17세기초의 내용까지만 실려 있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역사 등의 인문서를 기피하기 보다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들을 꾸준히 읽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책은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어서 그 누구가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