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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얼마전까지도 '한강'이란 작가를 알지 못했다. 2011년이 끝나갈 즈음에 <희랍어 시간>이란 책이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중에 <나는 우연을 끌어 안는다 / 노지혜, 바다봄, 2011>를 읽게 되었는데, 그 책 중에 노지혜가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서 다니던 문예창작학과에서 만나게 되는 선생님이 한강이고, 그 선생님은 노지혜에게 한 권의 책을 선물한다. 자신이 쓴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눈물상자>이다.
그래서 읽게 된 <눈물상자>는 '그 눈물이 닿는 것만으로도, 아무리 단단하게 얼어 붙었던 마음도 천천히 녹기 시작하는' (눈물 상자 중에서) 순수한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이었다.
'우린 그런 순수한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한강의 <눈물상자>는 짧은 동화이지만, 마음 속에 큰 여울을 만들어 주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어떤 작가의 작품이 마음에 든다면 그 작가의 작품들을 한 작품 한 작품 조심스럽게 읽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 독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노지혜의 글쓰기 선생님인 한강의 작품을 읽기로 했던 것이다.
한강을 알기 전에는 중년 정도의 남자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녀는 한승원 작가의 딸인 것이다.
( 사진 출처 : Daum 이미지 검색)
한강의 글은 시인으로 등단하여서 그런지 어떤 작가의 글에서도 느낄 수 없는 평범하지 않은 문체가 돋보인다. 어떤 문장들은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의 내용도, 주인공도 평범하지는 않다.
인문학 아카데미 희랍어 수업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남자와 여자.
남자는 유전적으로 할아버지, 아버지, 그렇게 대를 이어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게 되는 것이다. 마흔 살이 다가오면서 그는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
남자는 독일에 건너가서 살다가 홀로 한국에 오게 되고, 지금은 희랍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희랍어....
오래 전에 죽은 말, 구어(口語)로 소통할 수 있는 말이다. 그가 희랍어를 공부하게 된 것도 독일 학생들 사이에서 희랍어를 잘 하는 동양 학생이 되기 위함이었다는 것은 그의 독일 생활에서의 어려움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는 한때 사랑을 느꼈던 사람이 있었지만 그녀를 잃게 되었다.
" 그곳은 이곳보다 일곱 시간 늦게 해가 뜨지요. 이제 멀지 않은 날에, 내가 정오의 태양 아래에서 필름 조각을 꺼내 들 때 당신은 새벽 다섯시의 어둠 속에 있겠지요. 당신 손등의 정맥을 닮은 검푸른 빛은 아직 하늘에서 다 새어나오지 않았겠지요. 당신의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고, 타오르며 글썽이던 두 눈은 눈꺼풀 아래에서 이따금 흔들리겠지요.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가 걸어 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p 49)
여자는 태어나기 전부터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엄마가 임신중에 의사 장티푸스에 걸려서 약을 복용해야 했기에 엄마는 그녀를 유산시키려고 했었다. 그런데, 유산 직전에 태동을 느끼게 되고....
" 하마터면 넌 못 태어날 뻔 했지" 이 문장이 품고 있는 섬뜩한 차가움은 그녀에겐 마음의 아픔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십대에 그녀는 말을 잃어 버렸었다. 그리고 말을 찾았지만, 결혼, 그리고 이혼,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기게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또다시 말을 잃어 버리게 된다.
그녀는 아카데미 희랍어 강좌의 수강생이다.
"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이 입을 열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소름끼칠 만큼 분명하게 들린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하챦은 하나의 문장도 완전함과 불완전함,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을 얼음처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혀와 손에서 하얗게 뽑아져 나오는 거미줄 같은 문장들이 수치스러웠다. 토하고 싶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 (p15)
" 조각난 기억들이 움직이며 무늬들을 만든다. 어떤 맥락도 없이. 어떤 전체적인 조망도 의미도 없이. 조각 조각 흩어졌다가 한 순간 단호히 합쳐진다. 무수한 나비들이 일제히 날개짓을 멈추는 것처럼. 얼굴을 가린 냉정한 무희들 처럼 " (p 100)
두 사람이 각각 신체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공통점이기도 하겠지만, 남자가 시력을 잃어가는 것은 운명적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고, 여자가 말을 잃어 가게 된 것은 마음의 상처가 가져다 준 의지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어쨌든 마음에 큰 멍울이 한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들의 왜 희랍어 시간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희랍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이다. 그리고 구어로만 소통할 수 있는 문자라고 한다.
이 작품에서도 두 사람의 이야기는 지금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기 보다는 그들의 지난 날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는 희랍어 수업을 통해서 만났고,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그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희랍어 시간을 통해서도 어떤 공감을 느끼지도 않았었다.
그들에게는 흘러가 버린 시간들, 지나간 세월 속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흔적들은 사라져 가야만 하는 것들일 것이다.
어느날 두사람이 새의 출현으로 겪게 되는 장면들에서 그들은 새로운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고, 서로가 상대방의 모습에서 서로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새로운 인연의 기쁨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 당신은 아마 짐작하지 못했을 테지만, 이따금 나는 당신과 긴 대화를 나누는 상상을 했는데.
내가 말을 건네면 당신이 귀 기울여 듣고, 당신이 말을 건네면 내가 귀 기울여 듣는 상상을 했는데.
텅 빈 강의실에서 희랍어 수업의 시작을 기다리며 함께 있을 때, 그렇게 실제로 당신과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p173)
책의 내용중에는 희랍어의 이탤릭체 문장들이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흥미롭기도 하다. 중간 중간에 나온는 철학적인 사유들 또한 낯설기는 하지만, 이 소설이 가지는 특색이기도 한 것이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3인칭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독자들은 남자와 여자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기도 한 것이다.
나는 별로 길지 않은 장편 소설인 < 희랍어 시간>을 덮는 순간 한강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