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나긴 하루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1970년,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등단하여 40 여년이란 세월을 작가로 살았고,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작가로 남기를 원했던 작가 박완서.
그의 작품들은 발표될 때마다 거의 따라 읽을 정도로 빼놓지 않고 읽어 왔는데, 어쩌면 박완서 작가의 글이라는 것이 많이 작용했던 것같다.
몇 년전에 작가의 에세이인 <잃어버린 여행가방>을 읽을 때에는 많이 실망스럽기도 했다. 국내외 여행을 갔을 때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는데, 그 여행중에는 원하지 않았던 여행들도 있었는지, 불편했던 심기가 씌여지기도 했는데,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나이들어가는 작가의 까탈스러운 성격이 그대로 책전체에 전달되는 것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느낌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리고, 작가도 평소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말할 정도로그녀는 한국 전쟁의 아픔을 작품에 많이 써왔다.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 " 6.25를 소재로 한 작품들에 대해선 비극적인 가족사를 반복적으로 우려 먹는다는 평' (p34)을 들어 왔는데, 나 역시 그동안 작가의 작품들을 읽어 오는 가운데 그런 점을 많이 느꼈었다.
한국전쟁이 가져온 불행한 오빠의 죽음, 그리고 작가 어머니의 유난스러운 교육열, 그이후에는 같은 해에 남편과 아들을 떠나 보내야 했던 아픔의 흔적들이 여러 작품들에 등장하게 되면서 식상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 박완서의 작품들을 많이 읽다보면 신선함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언젠가 읽었던 작품을 또 다시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 속에는 속물스러운 등장인물들이 많이 보인다. 어쩌면 보편적인 우리 일상 속에서 접하는 인물들이지만, 그런 인물들도 어느 시점부터는 싫증이 나기도 한다.
그런데도, 박완서의 작품들을 읽게 되는 것은 평소 접할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작가는 그 속에서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졌고, 그것을 글로 맛깔스럽게 옮겨 놓을 수 있는 날렵한 필치가 돋보이기 때문인 것이다.
<기나긴 하루>에 수록된 단편소설은 6편이다.
앞의 3편은 발표는 되었지만, 책으로 묶이지 않았던 작품이고, 뒤의 3편은 작가와의 연관이 있는 평론가 김윤식, 작가 신경숙, 김애란이 추천하는 작품이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현대문학, 2010년 2월)
현대문학 창간 5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발간한 책에 실린 박완서의 마지막 소설이다.
이 책에는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9명의 작가가 쓴 자전 소설을 한 권의 책에 담았는데, 자전 소설이라는 말과같이 여기 실린 박완서의 소설은 이미 그녀의 소설을 통해서 잘 알려진 얼굴 조차 기억할 수 없는 아버지, 그리고 그 빈자리를 메워준 할아버지, 유난한 교육열로 아들을 데리고 서울살이를 시작하는 어머니이야기, 그리고 어느날 남편을 떠나보내고 아들까지 먼저 보내야 하는 자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른 작품들에서 접했던 이야기들이 많아서 새로운 작품이라는 생각보다는 작가의 일대기와 같은 느낌을 준다.
빨갱이 바이러스 (문학동네, 2009년 가을)
얼마전의 홍수로 인하여 버스 운행시간이 변경된 것을 모르고 버스정류장에서 네 여인이 만나게 된다.
화자는 세여인을 근처 자신의 어렸을 적의 집으로 안내하여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세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는데, 남자들때문에 받은 상처와 그 사연들이다.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여인들. 그들은 자신의 내면 속에 감추어 놓았던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는다.
그런데, 화자에게도 이 집과 관련된 어릴 적에 우연히 보게된 비밀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온 삼촌을 아버지가 삽을 쳐서 죽이고 마당에 묻던 끔찍한 기억.
그러나, 세 여인이 자신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말하는데도, 화자만은 그 비밀을 밝히지 않는다.
세 여인이 자신이 이야기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신분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 소설에서도 한국전쟁, 빨갱이, 이런 소재가 들어있는 것이다.
아마도 박완서에게는 빨갱이 바이러스는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도 치명적인 바이러스이고, 그녀가 평생 동안 짊어가야만 하는 것이었으리라.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문학의문학, 2008년 가을)
박완서의 소설 속에는 투덜거리는 여자, 까탈스러운 여자, 자신이 가진 것들을 자랑하는 여자들이 등장하곤한다. 그들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부러워하기도 하는 여자가 있기도 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것을 상대를 통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너무도 사실적으로 끄집어 내는 통찰력이 독자들에게 공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 심리적 표현이 잘 나타난 작품이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라고 생각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딸과 친정어머니, 같은 나이지만, 며느리 입장일 때와 딸 입장일 때가 다르고, 같은 여자이지만, 시어머니일 때와 친정어머니일 때가 다른 것이다.
딸이거나, 며느리, 시어머니거나 친정어머니라면 누구나 느꼈을 그런 소통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소통할 수 있는 입장과, 소통이 단절될 때의 입장.
그 핵심의 원류를 잘 잡아내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소설이다.
카메라와 워커 (한국문학, 1975년 2월,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문학동네>에 수록- 김윤식 추천작.
한국전쟁과 개발독재라는 시대상이 들어가 있다. 역시 한국전쟁에서 오빠, 새언니가 죽게 되어 고아가 된 조카에게 유난한 사랑을 베풀던 화자가 조카의 앞날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조카가 고등학교 시절 문과를 선택하려던 것을 이과를 선택하도록 하여 공과대학 토목학과에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이에 별다른 반응이 없던 조카는 졸업후에 취직을 하지 못하고, 고모의 알선으로 영동고속도로 건설현장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단편소설에서는 한국전쟁을 거친 세대와 그이후의 새대가 한국사회의 구조 속에서 혼란스러움을 겪는 이야기이다.
고모의 욕망과 그것에 순응하는 무기력한 조카의 이야기가 1960년대에서 1970년대의 사회상이기도 하고, 한국 전쟁의 아픈 산물이기도 함을 느끼게 해준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상상, 1993년 창간호 - <나의 자강 나종 지니인 것/ 문학동네 수록>- 작가 신경숙 추천작.
박완서의 작품 중에서도 많이 읽힌 작품이다. 작가가 아들을 잃은 후에 그 아픔으로 집필을 하지 못하다가 그 심경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손윗동서와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끊는 순간까지 화자의 통화내용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엄마가 오빠를 향해서 광신에 가까운 애정을 보냈듯이, 작가 자신도 아들에게 애정을 쏟았건만, 어느날 홀연히 떠난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물론 소설 속의 어머니는 아들을 민주화과정에서 잃게 되는 것이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어머니에게 아들을 생각할 것같은 이야기나 경사스러운 일에 초대하는 것에 조심스러움을 보이게 되고....
어느날 친구는 위로를 받으라는 의미에서 아들의 동창생 중에서 사고로 하바신 마비에 치매에 걸린 청년을 같이 찾아가게 되는데....
짧은 소설 속에서 박완서 작가의 심경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소설 속에서 가슴이 찡한 여운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질투가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닮은 방들(월간중앙, 1974년 6월- <부그러움을 가르칩니다/ 문학동네 수록> - 김애란 추천작.
집장만할 돈을 모으기 위해서 친정살이 끝에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고, 옆집 사람과 친해지게 되는데.
아파트란 같은 평수면 같은 구조, 같은 인테리어,비슷한 생활 수준.
아파트로 이사가게 되면서 독립성을 가질 수 있다고 좋아했건만, 옆집과 동일시되어 버리는 생활.
평범한 일상같은 이야기이기에 공감을 가질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후반부에 예기치 못한 전개는?
1970년대 작품에서 2010년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단편 소설 6편이다.
특별히 새롭게 느껴지지 않고, 박완서의 작품의 경향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마도 3편은 기존의 작품이고, 나머지 3편도 이미 발표되어서 많이 읽힌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박완서의 작품은 한 페이지만 읽어도 그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익숙함이 익기도 하기때문일 것이다.
벌써 작가는 세상을 떠나신지 1년이 지났고, 앞으로는 새로운 작품을 접할 수 없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