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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1 - 가난한 성자들 ㅣ 조드 1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평점 :
김형수의 <조드>는 그동안 출간이 되기를 많이 기다리던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이미 2010년 11월 15일부터 2011년 8월 9일에 이르기까지 181회에 걸쳐서 예스 24 블로그에 연재되었다.
물론, 그 연재소설이 그대로 출간된 것은 아니고, 연재가 끝난 후에 작가는 또 많은 날들에 걸쳐서 작품을 손질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조드>의 출간은 늦어졌다.
예스 24 블로그를 통해서 <조드>가 연재될 때에 소설의 앞부분은 읽었지만, 그 이후에 소설을 따라 읽는 흐름이 끊어지면서 읽기를 중단했다.
그러나, 작가의 블로그에는 <작가노트>라는 란이 있었는데, 거기에 올려지는 글들은 모두 따라 읽을 수 있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라든가, 몽골 답사기가 주요 내용이었는데, 10 개월에 걸쳐서 집필을 한 공간, 저녁 노을에 물드는 유목민의 게르, 몽골 전통 결혼식 장면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요 무대인 헤를렌 강 근처, 오논 강, 젖통호수 들의 풍경도 아름다웠다.
<조드> 1권에 나오는 물다람쥐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다.
아마도 <조드>는 김형수 작가의 몽골 사랑, 몽골 문화에 대한 천착, 글쓰기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몽골인들에게 칭기스칸은 그 누구보다도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존재이지만, 그만큼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고 한다. 그래서 몽골인 조차도 칭기스칸의 이야기를 쓰기를 힘들어 하는데, 몽골인이 아닌 한국인이 칭기스칸의 이야기를 쓴다고 하니, 집필 당시부터 몽골인의 관심이 집중되었기에 그 곳의 신문에 대서특필될 정도였다. (작가의 블로그에 그당시 기사가 실린 신문의 사진이 올려져 있다,)
또한 올해는 칭기스칸이 탄생한지 85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그러니, 850년만에 새롭게 재조명되는 칭기스칸의 이야기가 한국 작가에 의해서 씌여진 것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만큼 빠르게 읽혀지는 <조드>이지만, 책을 읽어 갈수록 너무도 아름다운 문장들과 몽골인들의 삶의 이야기가 속도를 줄여가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어가면서 읽게 된다.
이야기는 " 옛날도, 아주 옛날. 대지가 처음 모양새를 갖추고, 이제 해가 뜨는가하면 나뭇잎이 깨어나고 달이 솟는가 하면 창포가 푸르러지게 된 후의 일이다." (p. 8)로 시작된다.
성경이 "태초에~~"로 시작되듯이, 우리의 전래동화나 건국신화가 "옛날, 옛날에, 아주 옛날에~`"로 시작되듯이....
늑대족의 서사는 늑대족 사내와 사슴족 처녀의 사랑으로,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 알란고아의 이야기로,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예수게이의 이야기로 물흐르듯 흘러간다.
주인공이 테무진이 예수게이의 아들이고, 그가 인류의 영웅인 칭기즈칸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내용이기는 하지만, 작가는 결코 <조드>를 통해서 영웅 칭기즈칸의 이야기를 쓰려고만 하는 것은 아니다. 테무진이 키야트 족장의 아들이기는 했지만,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타르타르족에게 독살당하게 되자 넓고 넓은 초원을 숨어다니면서 헐벗고 굶주리고,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초원을 통일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조드>1권에서는 테무진이 버르테와 정혼을 하자마자 이런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되어서 숨어 다니다가 그를 도와주는 자무카와 보오르추, 젤마와의 인연을 맺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버르테를 아내로 맞고, 얼마 되지 않아서 메르키드에 아내를 빼앗기게 되고, 아내를 찾기 위해서 전투를 벌이는 모습이 그려진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 속에 몽골의 신화와 전설, 민담, 민요들을.
그리고 유목민들의 삶의 모습을 생각을. 그리고 몽골의 광활한 초원의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다.
작가가 1998년에 몽골을 처음 여행하게 되고, 그후에 여러 차례에 걸쳐서 몽골을 가게 되고, <조드> 집필 기간동안에 그곳에 체류하면서 몽골의 구석 구석을 다니면서 수집한 몽골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이 이 소설 속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몽골의 풍경처럼 아름답기도 하고, 몽골인의 기질처럼 강하기도 하고, 아뭏튼 다양한 색채를 띤 그림처럼 여러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 언니, 이슬은 별들이 슬퍼해서 생기는 거야?"
"아니, 가축들이 울어서 생기지." (p. 266)
"헤를렌 강 상류에 아침마다 안개가 끼는 언덕이 있었다. 보르기 에르기! '물안개가 피는 언덕' 이라는 뜻이다. 보오르추는 그곳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테무진의 게르 두 채를 곱게 않혔다. 밖에서 보면, 막 털갈이를 끝낸 백조 한 쌍이 쉬는 풍경처럼 정다워 보였다. 또한 안에서 보면, 저녁 연기가 피고 노을이 질 때 제 길을 찾아 돌아가는 기러기 떼 너머로 빼어난 산봉우리들이 어슴푸레 보이곤 했다. 버르테는 주위가 너무 좋아서, 물을 길을 때마다 강물에 목가적인 꿈을 실어 머나먼 초원으로 떠내려 보냈다고 한다." (p.264)
서정적인 시인의 섬세함이 여성스럽게 나타나는 문장들이 소설 속에는 많이 담겨있다.
그런 반면에 <조드 >1권의 초반분에 등장하는 늑대들이 자무카의 말들을 추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어찌나 리얼하게 표현했는지,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나도 함께 화면에 빨려 들면서 쫒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3 D 영화로 보는듯한....
아니, 어떻게 이런 묘사를 할 수 있을까?
아마 <조드>를 읽는 독자들 모두 입이 벌어질 정도의 장면 묘사이다.
이런 장면은 남성적인 강인함이 그대로 표출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 후미에서 지휘하던 늑대도 자식을 잃었는지 필사적으로 말을 향해 뛰어 올랐다. 거기에 하나 남은 양치기 말이 걸려 들었다. 늑대는 말 갈비 뒤쪽의 가장 얇은 뱃가죽을 한입 가득 물고 온 몸의 무게를 실어 곡예를 하듯이 매달렸다. 그 상태로 말이 달리면 늑대의 하반신은 마릐 뒷다리 옆쪽으로 밀쳐지게 되는데, 그러면 놀란 말이 늑대를 떨어뜨리려고 뒷발굽으로 늑대의 하반신을 차게 되고, 늑대는 틀림없이 뼈가 부러지고 아랫배가 터질 것이다. (...) 늑대에 의해 복부가 찢겨진 말은 얇게 떠받치고 있던 뱃가죽이 대롱대롱 매달린 늑대 때문에 갈라지면서 거대한 밥통이 갖가지 내장을 눈밭에 쏟았다. (...) 그 상태로 더 가자 배안에서 쏟아져 나온 내장이 제 발에 으깨어 지면서 거기 매달렸던 늑대도 케-겡 - 밟혀 죽었다. (...)" (p.56~p.57)
말을 쫒아 가는 늑대의 추격전, 그 어떤 전투의 치열하고 피튀기는 장면보다 더 무서울 정도로 잔인한 장면들의 묘사, 힘이 있고, 남성적이 필치가 느껴진다.
늑대와 말의 잡아 먹히고, 잡히는 장면을 한 두 번 구경하고는 쓸 수 없는 내용의 글이기에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게 만든다.
여기에 등장했던 늑대왕은 '달의 아들'이란 이름의 늑대인데, 이 늑대의 이야기가 의인화되어 다시 등장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늑대의 심리를 잘 표현했는지, 책을 읽다말고, "작가가 늑대의 환생?"이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이 소설이 얼마나 오랜 몽골 체험에서 나왔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기도 했다.
바로 늑대와 말의 추격전에서 자무카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초원에 숨어 살던 테무진이었고,그들은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자무카는 테무진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에 새긴다.
" 약속하마, 은혜는 은혜로, 원수는 원수로 (...) 태어난 곳은 달랐어도 묻히는 곳은 함께 하자" (p.63)
그런데, 테무진은 황금가문의 흰 뼈이고, 자무카는 보돈차이 몽학이 거두어준 여인의 자식이니 황금가문의 검은 뼈이다.
검은 뼈는 결코 흰 뼈가 될 수 없는 신분차이이니, 테무진이 초원을 통일하게 되는데 자무카의 역할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조드>2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또한, 테무진과 보오르추의 만남은 잃어버린 말 8마리를 찾으러 가는 길에 이루어지게 된다.
테무진과 보오르추의 인연을 보오르추의 아버지는,
" 혼자의 힘으로 사람이 될 수 없고, 하나의 나무로 불이 될 수 없다고 했어. 너희 둘이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꼬 함께 헤쳐가거라." (p. 172)
" 돌아오는 길에 테무진은 실로 오랜만에 사나이의 기쁨에 취했다. 보오르추가 사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런 친구가 살고 있었다니! 돌이켜 보면,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 조차도 그 어디엔가는 사람의 숨결이 숨어 있었다. 어머니말이 옳았다. 인간을 기르는 건 세상이다. " (p. 173)
테무진, 자무카, 보오르추, 젤마 등이 어떤 이야기를 펼쳐나가게 될지 <조드 >2권이 궁금해진다.

이 책의 제목인 '조드'란,
" 괴팍한 날씨 때문에 초지가 피폐해져서 가축들이 지쳐 죽는걸 조드라고 한다"는 것이다.
조드에는 하얀 조드, 검은 조드, 눈보라 조드, 거울 조드가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대재앙인 것이다.
조드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재앙이지만, 푸른 하늘의눈으로 보면 생태계를 정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한다.
푸른 하늘이 조드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는 것이란다. 칭기스칸은 푸른 하늘의 뜻을 실천했던 지도자였기에 책 제목과의 연관은 이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조드 > 1권을 통해서 몽골의 신화, 전설, 민담 등을 접할 수 있었다. 우리들이 그동안 서양 문화에 길들여져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만 익숙했는데, 중세의 유라시아의 넓은 땅을 지배하였던 몽골제국의 이야기는 너무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광활한 초원에 아직도 살고 있는 몽골인들의 문화와 역사도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가 말하듯, " <조드 - 가난한 성자들>은 흔한 전쟁 이야기가 아니다. 칭기스칸 생애의 근간이 되는 유목민들의 삶과 역사에 주목했다. 조드와 맞섰던 중세 유목민들, 칭기즈칸을 중심으로 삶을 개척해 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는 소설이다." (인터뷰 기사 중에서 발췌)
전쟁 영웅의 모습의 칭기스칸이 아닌, 인간미 넘치는 테무진의 모습과 유목민의 삶의 모습을 이 소설을 통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