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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은 눈꽃처럼 핀다
추산산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그땐 그땠지'.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시험이 끝나는 날은 단체 영화관람을 하는 날이었다. 아마도 중학교 1학년때였을 것이다. 단체관람으로 가게된 영화가 펄벅의 <대지>를 원작으로 한 영화였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장면이 오란이 왕룽의 아내가 되어서 그의 집으로 가는 길에 복숭아를 먹게 되는데, 그 씨앗을 고이 간직했다가 심게 되고, 먼훗날, 그녀가 죽을 때에 그 복숭아 나무가 클로즈 업되던 장면, 그리고 메뚜기 떼가 새까맣게 하늘을 덮으면서 순식간에 몰려드는 모습.
혁명이 일어나서 오란이 부잣집에서 금은보화를 손에 넣던 모습.
그이외에도 많은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인상깊었던 영화이다.
미국 여류작가인 펄벅이 쓴 중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그 시대의 생활상이나, 중국인의 생각들이 잘 표현된 훌륭한 작품이다.
그래서 읽게 되었던 펄벅의 대지 3부작이라고 부르는 작품들.
그리고 <허삼관 매혈기>를 비롯한 위화의 소설 몇 편.
이것이 내가 읽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 아닐까 한다.
그 소설들은 문학적 위상을 떠나서, 참 칙칙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소설들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나에게 <내 사랑은 눈꽃처럼 핀다>는 소설의 배경인 티베트만큼이나 맑고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생각을 가져다 주었다.
티베트라고 하면 멀게만 느껴지는 곳인데, 한때는 티베트에 홀릭되다시피하여 그곳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도 읽었었다.
그 발단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 라디크로부터 배우다>를 읽은 후부터였다.
1992년에 쓴 책이니, 지금은 저자가 안타깝게 여겼던 점인 라디크의 변화가 훨씬 많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저자가 라디크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과 함께 머물던 때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 순박한 주민들의 모습,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던 그들의 모습은 아마도 찾아 보기 힘들게 되었을 것이다.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디크의 이야기가 감명깊었기에 티베트 관련 책들은 내 눈에 그리도 잘 들어왔고, 그래서 찾아 읽다보니, 티베트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었다.
그런데 <내 사랑은 눈꽃처럼 핀다>는 바로 내가 한 때는 그리 몰입했었던 티베트가 배경이 되는 소설인 것이다.
마니차, 다르촉,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 조장(鳥葬), 조캉사원, 포탈라궁.
이런 것들이 주를 이루던 티베트 관련 책들과는 또다른 티베트의 매력을 소설 속의 공간적 배경으로 짙게 깔고 있는 소설이다.
아마도 이 책의 소설 줄거리를 모두 빼 버리고 썼다고 하더라도 한 권의 훌륭한 티베트 여행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작가인 추산산은 항저우 출신의 중국인으로 루쉰 문학상, 쓰촨 성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티베트를 12번이나 다녀왔다고 하니, 그 여행들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티베트는 작가의 마음 속, 눈(眼) 속에서 때묻지 않은 순결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티베트처럼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언젠가는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고, 그래서 쓰게 된 소설이 1년여 동안 묻혀 있다가, 그 원고를 다시 다듬어서 이 소설을 내놓게 된 것이다.
소설은 사랑을 찾아서 티베트를 여행하게 되는 남녀들의 사랑이야기이다.
이 여행의 리더인 위훙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공부에 별 흥미가 없어서 대학 진학이 어렵게 되자 뒷문으로 대학을 들어가고 졸업을 하게 된다.
직장 역시 아버지의 지인이 경영하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고, 회사에서 하는 일은 인터넷 검색이 고작인 꿈도, 비전도 없는 평범한 여자,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 생각도 없고 개념도 없는 한심한 청춘.
그의 직장 동료이자 언니뻘인 톈란은 미모와 지성을 갖추었으며, 직장에서도 유능한 회사원.이다.
그녀는 매너좋고, 능력있는 천샹이라는 직장 사장과 대학시절에 만났으나 군인으로 근무하기에 만날 수 없는 연인 사이에서 어떤 사랑을 선택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양화이와는 4년이란 세월을 연애를 했고, 약혼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청두와 티베트는 너무 멀어서 그들의 만남은 그리 쉽지 않다. 핸드폰 문자조차 힘든 멀고 먼 티베트에 있는 양화이와의 관계는 티베트만큼이나 멀고 힘겨운 관계로 변해간다.
연애다운 연애도 해 보지 못한 양화이와의 사랑, 새롭게 다가오는 천샹의 또다른 사랑에 대한 갈등으로 톈란은 마음의 안정을 잃어가게 된다.
" 한 사람은 조건이 더 없이 좋아, 대도시에서 일하고 있고, 경제력도 탄탄한데다가 매일 만날 수 있어.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첫 눈에 반한 사람이야. 생각만 해도 애틋한 첫사랑이라 차마 헤어질 수가 없어. " (p. 124)

어느날, 위훙은 인터넷 검색 중에 낙타가시의 블로그에 접속을 하게 되고, 낙타가시가 올린 사진들과 글들에 빠져들면서 댓글을 달게 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낙타가시를 사랑하게 된다.
낙타가시의 글 중에 " 티베트에 오면 기적을 믿게 될거" (p.57) 라고.
인터넷 검색에서는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위훙은 자신의 일생일대 첫 결단으로 티베트를 여행하면서 자신의 사랑이라고 믿는 낙타가시를 만나기로 한다.
인터넷을 통해 티베트 여행을 함께 할 사람들을 모집하는데, 티베트에 가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했던가!
동료인 톈란이 여기에 동참하게 되고, 백일홍이란 닉네임을 가진 또 한 소녀와 함께 티베트 여행을 가게 된다.
티베트 여행의 시작에서 만나게 되는 사진 기자 깜보.
" 사진가가 되는 게 큰 꿈이기 때문이죠.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기자들처럼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바다와 산, 빙하, 폭포,일출, 일몰을 사진 찍고 싶어요. 티베트에 가 본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티베트가 사진가의 천국이라는 겁니다. 특히 가을에 가야 한다고 했죠, 그래서 천국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티베트로 가는 겁니다. " (p, 244)
깜보는 자신이 티베트에 가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지만, 깜보에게는 티베트에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 떠나가 버린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를 찾아갈까? 말까? 그런 망설임.
사랑은 망설임이 아니라, 부딪혀 보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티베트에서 군인으로 근무하는 바이산, 전직 군인이었던 라오황 노인도 동행을 하게 되는데...
이들에겐 모두 티베트 여행을 하게 되는 색다른 이야기들이 있는 것이다.
티베트 여행의 특별한 체험이 될 수 있는 칭짱철도를 타고 가는 이틀간의 기차여행.
차창 밖의 모습은 설산, 초원, 호수, 모래사막, 자갈사막, 습지, 빙하 등의 티베트 모습 중의 여러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이다.
무리지어 초원을 달리는 티베트 영양의 모습도 기차 여행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인 것이다.
해발 고도 4000 미터 이상을 달린다는 칭짱 철도.
5000 미터에서 6000 미터에 달하는 탕구라산을 지나가는 때의 장관의 모습이 소설 속에 그대로 담겨져 있으니....
기차 안에서는 산소가 부족하여 고산병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래서 기차 안에는 산소 공급을 하는 시설까지 있다고 한다.
한라산이 해발고도 1950 미터요, 백두산이 해발고도 2744 미터이니, 백두산의 2배에 달하는 곳에 놓여 있는 칭짱 철도.
그것은 "하늘에 걸린 철도" 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여행은 칭짱 철도를 내려서도 계속된다. 라싸에서 또다른 여행의이 기다리고 있고, 거기에서 그들은 자신의 여행 목적에 따라 흩어지게 된다.
위훙은 이 여행을 통해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던 청춘에서 자심감과 책임감이 투철한 청춘으로 바뀌어가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런데, 위훙이 찾아 나선 블로그의 주인장인 낙타가시와의 사랑은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하는 블로그. 사진과 글은 있지만, 그것만으로 주인장의 실체를 파악한다는 것이 쉬울 수도 있지만, 아니, 어쩌면 가장 어려운 실체을 대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낙타가시는 과연 어떤 사람이며, 위훙과의 사랑은?
그보다 이 소설에서 더 찡한 장면을 가져다 주는 것은 톈란 언니의 사랑이야기.
양화이의 우유부단한듯한 언행들.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실.
톈란의 티베트 여행의 끝자락에서는 양화이와 어떤 해후를 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사랑이란, 상대방을 배려해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전할 수 있고, 자신의 처지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신경숙의 <모르는 여인들 / 신경숙 ㅣ 문학동네 ㅣ2011> 이 떠올랐다.
우리는 항상 삶 속에서 내 마음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내 생각이 상대방의 생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상대방이 차마 하지 못하는 그 마음이나 아픔을 외면해 버리게 되기도 한다.
<모르는 여인들>에 담겨 있는 단편 소설들을 읽으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느꼈던 것처럼, 양화이가 보내는 문자 메시지의 짤막한 글들이 톈란에게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없게 했던 요인들 이었을 것이다.
내 상황이 이렇다고, 나는 지금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솔직 담백하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마음을 전할 수 없는 양화이의 마음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국에는 상대방을 헤어지는 이유도 모르고 떠나가게 만드는 슬픈 사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양화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왜 좋아하냐고? 끝없이 탁트인 광활함이 좋고 달빛 같은 고요함이 좋아. 바람이 떠다니는 소리, 눈 쌓이는 소리, 풀잎 속닥이는 소리, 햇빛 부서지는 소리, 달빛 내려 앉는 소리가 다 들리는 것 같아. 내가 나무가 되어 태초부터 지금까지 여기 이대로 서 있었던 것 같아' 같은 곳을 보고도 그와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쩜 이렇게 다를까? 내 마음이 그만큼 강대하지 않기 때문일까?" (p.p. 174~175)
깜보의 사랑도, 위훙의 사랑도, 톈란의 사랑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이 필요한 것이었고, 그 사랑들은 티베트 여행을 통해서 기적처럼 찾아 올 수 있는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 어려운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이해할 수 하면 이해할수록 가장 쉬운 사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소설 속의 닉네임들도 티베트에서 따온 것들이다. 낙타가시가 티베트고원의 키 작은 풀, 보랏빛 꽃이 앙증맞게 피는 고산식물이고, 위훙의 닉네임인 홍경천은 고산병에 특효약으로 쓰이는 티베트 식물.
톈란의 푸른하늘은 티베트의 티없이 맑은 하늘을, 바이산은 티베트의 설산을.
처음 이 책을 읽으려고 했을 때에 중국 작가의 소설이라는 점이 선입견으로 작용했다. 내가 읽었던 중국 소설들에서 느꼈던 그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중국의 개방 정책 이후의 소설이기에 이제는 우리나라의 청춘들과 별다를 것이 없는 중국의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비슷한 생각, 비슷한 생활을 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그리고, 티베트의 맑은 하늘만큼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다.
책은 500 페이지에 이르는 소설이지만, 읽는 재미는 기존에 읽었던 티베트 여행서보다도 더 티베트를 잘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것과 그 배경 속에 청춘들의 사랑이야기가 있고, 그 사랑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그런 사랑을 원한다면 ~~
티베트를 여행해야 할까?
이 책을 읽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