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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 밀고 유럽 여행 - '줌마병법' 김윤덕 기자의 유모차 밀고 좌충우돌 유럽 여행기
김윤덕 지음 / 푸르메 / 2012년 5월
평점 :
'유모차를 밀고 유럽여행'이라니, 황당하기 그지없는 발상이 아닌가 한다.
혹시라도 이 책의 제목만을 믿고 유모차를 밀고 유럽여행을 떠날 사람들이 있을까 걱정이 된다.
여행이란 일상을 떠나서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것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그런 기회를 가지기를 원하고, 기회가 오면 새로운 것들을 만나기 위해서 떠나지만, 여행길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돌발사건도 발생할 수 있고, 나만 즐거워서도 안되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용감하게 10살짜리 아들과 20개월된 딸을 데리고 유럽 10개국을 다닌 이야기를 이 책에 풀어 놓고 있다.

책의 내용을 읽지 않은 독자들은 한국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유럽의 10개국을 여행한 이야기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면,
" 이 책은 2010년 1월 당시 열 살이었던 아들과 20개월이었던 늦둥이 딸을 데리고 여행한 유럽 10개국의 기록이다. (...) 냉정하고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열 살 아이와 이유식도 때지 않은 20개월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해외를 여행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충우돌 실수투성이였던 우리의 여행기를 책으로 펴내는 이유는 ' 아이때문에 여행은 불가능해요' 혹은 '남편없이 여행을 어떻게 해요?' 하며 주저하는 동료 엄마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싶어서다. " (책 속의 글 중에서)

이 책의 저자는 조선일보 기자로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교육학과에서 1년간 객원 연구원으로 연수를 가게 된다. 그 1년 동안에 여러 차례에 걸쳐서 유럽 10개국을 여행한 것이다.


가장 먼저 실린 여행지인 이탈리아는 한국에 있던 남편이 겨울휴가를 내서 함께 여행을 했고, 그 밖의 여행지도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 등 친정 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거나, 아니면 지인과 함께 여행을 하였던 것이다.
처음의 여행이었던 로마로 가기 위해서 스웨덴에서 탄 비행기 속에서부터 20개월난 딸은 울어서 비행기 속의 여행객들을 힘들게 한다.
스위스의 융프라우 에서 내려오는 산악열차 속에서는 고산증에 아들은 어지럼증을 느끼다가 토하기도 하고, 딸은 여기에서도 한바탕 울어서 옆 자리의 서양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 나라의 언어로 불쾌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융프라우는 해발 고도가 4,000 m가 넘는 높은 산이다. 이곳을 가기 위해서는 산악열차를 2번 바꾸어 타야 갈 수 있다.
실제로 고도가 높다 보니, 고산증에 정신을 잃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서 환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고산증에 대비한 시설들이 있기도 하고, 심한 환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헬리콥터가 뜨기도 하는 곳이다.
몇 년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에 나도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꼈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우면서 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느꼈었다. 그래서 융프라우 정상에서 먹을 수 있는 한국 라면을 사먹지 못하고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런 곳에 어린 자녀를 데리고 가는 것은 사전 지식이 없는 황당한 여행이 아닐까 한다.

스위스의 호수에서는 딸이 호수앞까지 걸어가서 하마터면 물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20개월 된 딸은 집에서도 한 밤중에 울기 시작하면 20분이상은 까닭없이 울어서 동네 주민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런 딸을 데리고 밤 비행기를 타기도 하고, 기차를 타기도 하면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저자 자신의 말처럼 민폐중의 민폐인 것이다.
내 경우에는 학생들의 방학 시즌에는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보러 가지를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은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관람하는 태도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유명한 화가의 전시회니까, 아니면 무슨 기획 전시회니까 하는 이유만으로 자녀들에게 관람을 시키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이런 곳을 찾아 오지만, 관람 태도는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방학기간에 우리나라의 박물관이나 전시회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자신이 여행을 하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생각이 있겠지만, 자신으로 하여금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한다.
비행기 속에서 계속 우는 딸을 보고, 런던의 한 여인이 던진 말은 책을 읽는 내 자신의 얼굴이 달아 오를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무지의 극치라고 해야할까?
" 가능하면 아이들은 밤 비행기를 태우지 마세요. 말 못하는 아이들에겐 너무나 힘든 여행이랍니다. " (p. 183)
비행기 여행은 어른들에게도 힘든 여행이다. 비행기에서 나는 소음만으로도 충분히 신경이 날카로운데...
아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 탑승객들이 그 좁은 비행기 속에서 아이의 울음 소리에 시달려야 한다면....
유럽인들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우리보다 더 한 사람들인데, 동양인 여자의 무모한 여행을 보는 시선들이 따갑게 느껴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저자는 몇 개월 남은 연수기간동안에 유럽의 이곳 저곳을 여행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만 같다.
한국으로 들어가려면 몇 개월이 남지 않았는데, 한 달에 한 곳을 가도 몇 곳을 못간다고 하는 생각을 책 속에 드러내고 있다.

자신에게, 그리고 열 살 짜리 아들에게 (딸은 나중에 기억조차 할 수 없을테니까) 그렇게 유럽의 곳곳을 유모차를 밀고 다니면서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대한민국의 줌마다운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맞을 것이다.
이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간 10개국의 도시들의 이야기는 가장 보편적인 관광지들의 이야기이다.
이 곳들중의 5개 나라의 주요 관광지는 나도 여행을 해 본 곳들이기에 저자가 설명해 주는 그곳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들고, 본 곳들의 이야기이기에 새로운 이야기들은 없다.
가장 초보적인 유럽 여행자들이 거치는 여행지들의 이야기이다.
이미 많은 여행 관련 서적에서 다루어 온 곳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저자의 자녀와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그 속에 가미되어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혹시라도, 이 책을 읽고 유모차를 끌고 한국에서 유럽을 향해서 가는 줌마렐라들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여행이란 자녀들이 어느 정도 자란 후에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담스러운 여행길에서는 자신이 보고 느낄 수 있는 감동의 여행이 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