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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를 찾아 떠나는 걷기 여행 중에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지역인 생 장 피드 포르에서 스페인의 북서부의 산티아고에 이르는 약 800 km에 이르는순례길이다.
순례길이라는 명칭이 말해 주듯이 이 길 위에는 성당들도 있고, 종착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는 성 야곱 성당이 있는데, 그 유래는 예수의 12제자 중의 하나인 야곱이 스페인에서 7년간 포교 활동을 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에 순교한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의 유해를 배로 운반하여 스페인에 매장했으나 이슬람교도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하면서 그 무덤의 소재를 모르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9 세기 초에 양치기가 별의 인도를 받고 간 곳에서 야곱의 무덤이 발견되어 그 곳에 교회를 세우게 된 것이다.
그후 11세기부터 순례자들이 이 길을 통해서 성 야곱 성당까지 오게 되면서 이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된 것이다.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순례자들이 모이게 되고, 그 길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이 책으로 출간되면서 더 유명한 길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이 많으니, 그 길 위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책으로 많이 펴내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역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내용의 책을 '세스 노티붐'의 <산티아고 가는 길>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문인이 쓴 책, 사진이 곁들여진 에세이 등을 통해서 참 많이도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게 된 책인 <와일드>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사람들이 갖는 마음처럼, 자신이 처해진 상황에서 뭔가 변화를 가져와야 할 시점에서 길을 떠난 사람의 이야기이다.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난 것이 아니라,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로 떠난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걷기 열풍으로 올레길, 둘레길 들을 걷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처럼 걸어 가야 하는 길이다.
그것도 직선거리로는 1,600 km 이지만, 실제거리로는 4,285 km를. (산티아고 순례길은 약 800 km이다)
100 일의 여정으로.
그 이야기가 고스란히 두꺼운 한 권의 책 속에 담겨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셰릴 스트레이드'는 미국의 여류 소설가로 <와일드>를 세상에 펴냄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이다.
그런데, 그녀의 인생은 한때 완전히 바닥까지 추락했었던 것이다.
그녀 엄마의 결혼과 불행 그리고 암투병후의 사망, 그것은 딸의 인생에 있어서 끝없는 추락의 시초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십대의 나이에 결혼을 하지만, 남편의 폭행에 견디다 못해서 이혼을 하고 다시 자신보다 어린 남자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 결혼도 불행을 가져다 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딸 역시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된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 날의 아버지의 학대, 그리고 가난, 결혼.
그러나 그녀의 엄마는 항상 그녀에게 용기를 주고 꿈을 주곤 했다. 그 꿈은 엄마가 암에 걸려서 세상을 떠나면서 모두 사라지게 된다.
엄마의 죽음이후에 그녀는 즉흥적이고 무분별한 생활로 복잡한 남자 관계와 마약 투약까지 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에 가족들과의 이별, 그리고 남편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서로의 맞지 않는 생각들과 상황때문에 이혼에 이르게 된다.
" 엄마가 떠난 후 모든 게 변해 버렸어. 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감히 짐작조차 못 했을 그런 변화들이야." (p. 55)

어느날 그녀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걷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약 100일을 가야 한다는 그 길.
여자 혼자가기에는 너무도 힘든 그 길을 향해 떠나기로 마음을 먹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주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서 캐나다 국경 너머까지 9개의 산맥을 따라 펼쳐지는 도보 여행길.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과 황무지, 인디언 부족 마을, 야영을 하는 곳까지 내려온다는 곰과 퓨마, 그리고 방울뱀까지 있는 곳.
그녀는 그 길을 떠나기 위해서 배낭을 꾸리지만, 그 무게로는 혼자 일어 설 수도 없는 무게의 배낭.
그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험준한 산맥과 메마른 황무지 수 천 킬로미터를 과연 걸어 갈 수 있을까.
그러나, 그 물건들은 그녀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처럼 느껴지니.
첫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그녀의 마음에 들리는 소리.
"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야?" 하는 비명소리. 그 비명소리는 너무도 커서 도무지 사라지지를 않는다.
처음 계획은 하루에 22 km를 가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겨우 한 시간에 1.6 km를 걸을 수 있으니.
엉덩이에는 굳은 살이 배기고, 발에는 피가 나고 물집이 잡히고, 물 한 방울 얻을 수 없는 길도 걸어 가야 한다.
처음보다는 걷는다는 것이 점점 쉬워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길은 험하고, 인적조차 드문 날도 많은 것이다.
모든 것은 단조롭고 어려웠으며, 걷고 걷는 과정에서 마음은 공허해 지기만 한다.
그러나, 길 위에서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또 헤어지게 되고, 또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한다.
여행을 하면서 만남 여행자들의 모습에서 그는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순례자의 길은 아니지만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도 삶이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긴 여정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자신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길인 것이다.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반드시 자신의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같은 희망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그런 험한 길인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경험이 담긴 논픽션임에도 마치 한 편의 굴곡많은 인생의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같은 착각을 일을킨다.
소설가다운 필치는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치기에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잘 전달되는 듯하다.
인생에 있어서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에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더 큰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지금까지 읽어 온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책 중에서 '세스 노티붐'의 <산티아고 가는 길>이 가장 강렬하게 가슴에 남았는데,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도 그에 버금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인생처럼 나의 삶도 신비로우면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내 곁에 있는 바로 그것.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 (p. 549)
독자들 중에서 혹시라도 지금 힘들고 지쳐 있다면 우리나라의 이곳 저곳에 있는 올레길이나 둘레길 등을 걸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 걸으면서 내 자신의 지금 모습을 반추해 보고, 새로운 인생의 길을 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