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수인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주원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스페인의 미스터리 소설가이다. 그의 소설을 한 번 읽어보면 그의 작품에 빠질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을 쓴다.

'사폰 신드롬'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발표될 때마다 베스트 셀러에 올라간다. 그의 처녀작이자 데뷔작인 <9월의 빛>은 1937년 프랑스의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노르망디근처의 파란만에 위치한 숲속의 궁전과도 같은, 아니 커다란 성채와도 같은 크래븐 무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많은 부채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르망 소벨의 아내와 두자녀인 이레네와 도리온,

그리고 저택의 주인인 라자루스, 마을 청년인 요트에 관심이 많고 바다를 좋아하는 이스마엘의 겪는 섬뜩하고 소름끼치는 그림자와의 결투, 그림자에 얽힌 진실은 무엇이며, 그림자의 실체는.....

크래븐 무어 저택을 둘러싼 숲의 음산한 분위기, 그리고 저택의 벽을 따라 숨는듯, 때론 흩어지는 듯한 그림자의 정체.

그런데, 이 작품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초기작품이어서 그런지 유령이 나오는 이야기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한 설정이고, 구성도 미스터리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복선들이 별로 깔려 있지 않은 그런 소설이다. 그러나, 그의 소설을 여러 권 읽은 독자들은 이 소설에 나오는 내용들이 차기 작품에서 차용된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폰'의 작품들은 다른 작품들과 주인공이나 줄거리 등이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한 작품만 읽어서는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기도 하다.

<9월의 빛>에 안개가 자욱한 날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밖의 작품들에도 안개낀 날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아마도 그의 소설들이 섬뜩할 정도로 기분 나쁜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하기 때문인 것이다.

<9월의 빛>, <안개의 왕자>, <한 밤의 궁전>을 사폰의 안개 3부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반하여 사폰은 '잊혀진 책들의 묘지' 사부작 연작 소설을 기획하고 있는데, <바람의 그림자>, <천사의 게임>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이 <천국의 수인>인 것이다.

<바람의 그림자>는 2001년에 발표한 소설인데, 1945년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한다. 다니엘은 아버지와 함께 '잊혀진 책들의 묘지'라고 하는 미로와 같은 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을 가져 오게 되는데, 그 책은 훌리안 카락스가 쓴 <바람의 그림자>이다. 이 책을 쓴 훌리안 카락스의 책에 대한 열정 등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과연 그 책의 정체는?

<천사의 게임>은 독자들의 영혼을 사로 잡을 책을 쓰기를 원하는 다비드 마르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역시 '잊힌 책들의 묘지'가 나오는데, 도대체 천사인지, 아니면 악마인지 모를 어떤 인물이 마르틴의 인생을 담보 잡은채 책을 쓰게 되는데, 그 이야기가 현실세계의 이야기인지, 죽은 후의 이야기인지, 혼돈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이상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천사의 게임>을 우연히 읽게 되면서, 그 다음에는 <바람의 그림자>를 그리고 <9월의 빛>을 읽게 되었는데, 세 편의 미스터리 소설은 어떤 소설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이야기를 읽는내내 오싹할 정도로 으시시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흡입력은 10점 만점에 10점이다.

너무 너무 재미있어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였으며, 생동감이 넘치고 현장감이 있는 소설들이었다.

'잊힌 책들의 묘지'... 얼핏 '옴베르토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끔찍한 살인사건과 수도원의 미궁 속의 책들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연작소설의 3번째 이야기인 <천국의 수인>도 1957년 12월 '셈페레와 아들' 이란 서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서점의 주인인 아버지 '셈페레', 아들인 '다니엘' 그리고 서점에서 일하는 '페르민'.

어느날 이 서점을 찾아 와서 희귀본인 <몽테크리스토 백작>사는 의문의 사나이가 있다. 그는 이 책에 이런 문구를 남겨 페르민에게 전해 달라고 한다.

"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살아 돌아와 미래의 열쇠를 갖게 된

페르민 로메로 데 토레스에게

13호" ( 책 속의 글 중에서)

페르민이 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1939년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교도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죽어서만 나가 수 있다는 그 교도소.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감옥을 탈출했듯이, 페르민도 그 감옥을 탈출했는데....

단순히 죄수의 탈옥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그리 신선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책에 얽힌 이야기, 글쓰기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교도소에 있던 마르틴. 맞다 <천국의 게임>을 쓴 그 마르틴. 그의 글쓰는 재능을 탐내는 교도소장 발스.

마르틴으로 하여금 자신의 작품을 쓰도록 해서 문인의 명성을 얻고자 하는 인간.

훗날 재산과 명성을 얻게 되는 그는 어떻게 그 자리에 올 수 있었을까?

<바람의 그림자>, <천사의 게임>은 <천국의 수인>과 함께 교묘하게 퍼즐처럼 얽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의 두 소설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그리 크게 이야기의 내용을 따라 잡지 못하지는 않는다. 다만, 흥미가 반감될 뿐이다.

<바람의 그림자>와 <천사의 게임>이 어둡고 기괴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면 <천사의 수인>은 좀 평범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미스터리의 장치도 그리 강하지는 않다.

미스터리 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들에게는 흔히 보아 왔던 소설의 전개과정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사폰'의 미스터리 소설의 특징인 모험소설에 로맨스가 결합된 소설이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결말 부분은 그의 다른 소설들처럼 명쾌하게 결론을 지어 주지는 않는다.

긴 여운과 함께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9월의 빛>에 사폰이 한국독자에게 남긴 사인 )

(<천국의 수인>의 저자 사인)

<천국의 수인>역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해 준다.

그런데, <바람의 그림자>와 <천사의 게임>을 읽은 지가 여러 해 되었기에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만, 세세한 내용을 잊었기에 처음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은 전작도 함께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물론 각각의 소설은 독립적인 이야기이지만, 교묘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미, 나를 만나기 위해 너에게로 갔다
박재영 지음 / 황소자리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미, 나를 만나기 위해 너에게로 갔다>는 배낭여행 블로그인 '하늘호수의 세계여행'의 블로거가 쓴 책이다.

2008년, 서른다섯 살의 직장인은 사표를 내고 1년간의 세계여행을 떠난다. 서울대학교 졸업, 해군장교 제대, 서울대 대학원 석사, SK 주식회사 석유 마케팅분야에서 근무라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력과 연봉이 빵빵한 직장을 가지고 있건만, 그는 그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게 된다.그래서 그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하루 전에 읽었던 대학을 휴학하고 인도와 남미로 220일간의 여행을 떠났던 여학생의 책과 여행목적이나 여행루트가 비슷하다.

그런데, 책 속의 내용은 많이 차이가 난다. 먼저 읽은 책은 책 속에 담긴 사진들이 자신의 익살스러운 모습과 낙서처럼 써놓은 책 속의 자필 메모가 책을 읽는데 집중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일기 형식이기에 여행지에 대한 단상이나 정보보다는 잡문과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데 비하여 이 책은 목차부터가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고, 저자가 직접 가보았던 곳들의 여행루트와 추천 여행루트, 나라별로 꼭 가보아야 할 곳, 그곳에서 해 볼 수 있는 투어에 대한 정보 등을 친절하게 담아 놓고 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자신의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장기 배낭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부럽기는 하다. 그러나 섣부르게 따라 할 수 없는 것이 장기배낭여행이기도 하다.

모든 재산 탈탈 털어서, 떠나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 이후의 삶이 걱정되기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남미에서 230일을 여행하고, 또 다시 4개월을 스페인, 모로코,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태국, 라오스, 캄보디아를 거쳐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 또다시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진짜 행복한 삶일까?' 하는 생각에서 떠난 여행이 그에게 삶과 행복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남미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그들이 그 속에서도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던 것이다.

소소한 것에 기뻐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삶의 지혜, 고난이나 슬픔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여행이 가져다 준 가장 큰 깨달음이라고 그는 말한다.

일반적으로 유럽여행은 많이 하기에 그에 관한 책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에 비하면 남미 여행에 관한 책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데, 그래서 우린 마야, 잉카, 아즈텍 문명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조금이나마 남미 문화를 엿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남미는 치안이 불안하고, 삐끼가 판을 치고, 여행자들을 삥 뜯는 악명높은 경찰까지 있으니, 인프라는 열악하기만 하다.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대하게 된다면 진흙 속에서 숨은 보석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언급이 되는데, 서양미술처럼 기교와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그들의 역사와 현실, 분노와 열정, 슬픔과 아픔을 표현한 것이 바로 라틴 미술작품이라고 한다.

남미대륙 중 남위 40도 이하의 지역을 파타고니아라고 하는데, 그곳의 풍취가 담겨진 사진들은 그 어떤 예술 작품보다도 더 아름답다.

" 그래, 서른다섯이라는 나이에 사표를 내고 전셋집과 차를 팔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떠났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가슴 한 구석에 무거운 돌덩이가 놓여 있는 것처럼 답답해서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만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 속에 남아 있던 모든 근심들이 파타고니아의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것 같다. 이런 것을 떨쳐 버리기 위해 멀고 먼 파타고니아에 꼭 와 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 " (p. 281)

이 책의 저자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살사 댄스를 배울 정도로 치밀한 계획에 의해서 여행을 한다.

자신이 인생에서 꼭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것들인, 스쿠버 다이빙, 승마, 빙하트래킹, 고래상어투어, 패러글라이딩, 바다낚시, 팜파스 투어 등도 빼 놓지 않고 한다.

"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남미의 눈부신 아름다움. 내 두 다리로 걷고 내 두 눈으로 본 이 땅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바꿀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햇살 속에 파랗던 카리브해, 매일 가슴을 뛰게 하던 파타고니아의 대자연, 눈부시게 빛나던 우유니, 나를 압도하던 안데스산맥의 장엄함....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고 좁은 땅덩어리에 갇혀 살다가 죽었다면 한 번 사는 이 삶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제는 천상병 시인의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이 세상 삶을 마치고 떠날 때 진심으로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 362)

현재의 삶이 빡빡하다면 한 남자의 세상구경 이야기를 읽어 보아도 괜찮을 듯하다. 그러나, 이 남자처럼 훌훌 털고 지구촌으로 내달리면 아니아니아니되오.

저자는 아직 미혼으로 처자식도 없고, 홀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정도의 스펙과 용기와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고민들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에 누군가 시원하게 내 고민을 풀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들은 자신의 고민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그 해결 방안도 이미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누군가의 조언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건 자신의 현재의 상황이 벽에 갇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막막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내 고민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심하고, 혼자 해결하는 성격탓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상담을 받아주고 조언을 해 준 적은 참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학생들의 고민을 상담해 준 적이 많다. 학생들이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리고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그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1일1선을 권장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1일1선을 한 내용을 일기로 적어서 1주일에 한 번씩 제출을 했다. 학기가 시작되어 처음 제출하는 일기에는 학생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형식적으로 쓰게 되는데, 차츰 차츰 익숙해지면 일기장에는 자신들의 고민이 담겨지게 된다. 가정환경 이야기, 친구와의 관계, 이성친구문제, 학습에 관한 고민들이 쓰여지게 된다.

그중의 어떤 학생들은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도 한다. 자신의 걱정과 고민을 담아서 상담을 요청하는 것이다. 마치 나미야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고민상담편지처럼.

고민상담편지란 자신의 현재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편지란 말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잘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기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다보니, 지나간 추억 속의 한 학생이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 2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학생인데, 가정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지만, 쾌활하고 똑똑한 학생이었다. 늦동이 막내 딸이었는데, 초등학교 때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난 때였기에 가족들은 아버지의 재혼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 학생은 그 일로 상처를 받고 방황을 했었다. 그때 그 학생과 주고 받았던 것이 바로 상담편지였다. 어느날 복숭아 꽃이 활짝 핀 과수원을 지나 그 학생의 엄마 묘소에 같이 갔던 적이 있는데, 근처 저수지에 앉아서 저녁 노을이 질 때까지 이야기 나누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복숭아 꽃이 피는 봄날이면 가끔씩 그 아이가 생각난다. 서울에 있는 명문 사립대에 합격할 때까지는 연락이 되었는데,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 운동을 했다는 이야기와 동창들과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이렇게 나를 추억 속의 어떤 한 장소로 시간여행을 하게 해 준다. 그것은 이 소설이 30 여년이라는 시간을 넘나들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동안 작품 활동이 왕성하여 1년에도 몇 권의 소설이 출간될 정도로 다작의 추리소설작가이다. 그렇게 많은 소설을 쓰는데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의 소설들은 소재나 기법이 다양하고 이야기의 내용이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들 중에 <옛날에 내가 죽은 집>, < 백야행>,< 탐정클럽>, < 교통경찰의 밤>, < 용의자 X 의 헌신>을 읽었는데, 작품들마다 섬뜩한 살인사건이 담겨 있었으며, 추리소설의 묘미인 기막힌 반전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는 살인사건도, 이야기를 풀기 위한 추리도 담겨 있지 않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얼기 설기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야기와 이야기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마치 흩어진 퍼즐이 하나 하나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퍼즐 맞추기라면 우선 큰 그림을 알고 있기에 큰 그림을 생각하면서 작은 조각들을 이리 저리 꿰맞추어 보고 안 맞으면 다른 퍼즐 조각을 다시 맞추어 가면서 큰 퍼즐의 판을 완성시키게 되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가 않다. 각 장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다가, 방심하고 다음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 이전에 이미 나왔던 이야기와 또 다른 이야기가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모여서 큰 틀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것도 30 여 년이라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넘나들면서...

이야기는 일본 도쿄 근처의 작은 시의 한적한 곳에 있는 나미야 잡화점에서 시작된다. 이 잡화점은 이미 30 여년 전부터 굳게 문이 닫혀 있는 곳이다. 근처에서 집을 턴 좀도둑 3명이 이 집으로 피신을 하게 되는데, 우연히 우체통에서 편지 한 통을 발견하게 된다. 그 편지는 달토끼라는 이름으로 누군가가 나미야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이다.

나미야 할아버지의 상담편지는 이미 매스컴에 보도될 정도로 근방에서는 잘 알려져 있었으나 이미 할아버지는 그곳을 떠났다. 하룻밤 잡화점에 머물게 된 세 명의 좀도둑들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의논에 의논을 하여, 달토끼의 상담 편지의 답장을 보내 주기로 한다. 가방끈도 짧고, 악필에다가 자신의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데, 의외로 상담자는 그들의 답장에 고마움을 전하며 다시 상담의 글을 보내게 된다.

" 다른 사람의 고민을 상담해 준 거.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이야.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것이라도, 어쩌다 결과가 잘 나온 것이라도, 우리한테 상담하기를 잘했다고 하니까 정말 기분이 좋다. " (p. 81)

나미야 할아버지의 답장은 상담자의 심리를 꿰뚤어 보면서 고심하고 고심하여 쓴 편지라서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고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좀도둑들이 쓴 답장은 에둘러서 쓰지도 않고, 말을 조심하거나 예의를 갖추어 쓰지도 않고, 직접적인 답변을 하였는데도, 의외로 그 편지를 받은 상담자들은 고마움을 전한다. 그 편지에는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답장 편지를 써서 가게 뒷편 우유상자에 넣으면 그 즉시 새로운 답장이 도착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여긴 그들이 알아 낸 것은 나미야 잡화점에서는 시간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것이다.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 시간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듯....

나미야 잡화점은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기에, 과거의 편지가 그들에게 전달되고, 그들이 쓴 답장이 다시 과거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 과거란 1979년, 1980년 쯤이니, 도둑들의 답장을 받는 상담자들은 그들의 답장의 내용 중에 뭔가 생경스러움이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은 '달토끼', '생선가게 뮤지션', ' 길 잃은 강아지', '폴 레논' 등의 편지 사연이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은 옴니버스 형식의 따로 따로의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교묘하게 모든 이야기는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상담을 했던 사건들끼리 연결이 되어 과거에서 현재로 연결된다.

이 소설은 지금까지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는 그 느낌이 전혀 다르다. 피튀기는 살인도, 추리도 없다.

고민상담자들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잔잔하고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 때론 포근해지는 마음을 느낄 수도 있다.

'달토끼' '생선가게 뮤지션', ' 길 잃은 강아지', '폴 레논' 등의 편지 사연에는 연인간의 사랑, 부모의 사랑, 환광원이란 곳을 중심으로 한 잔잔한 사랑, 나미야 할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다.

그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충분히 재미있는데, 여기에 나미야 할아버지의 유언인 '나미야 잡화점의 단 하룻밤의 부활'이란 장치가 있어서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고민상담자들에게 최선의 답을 말해 주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들이 과연 자신의 답장을 받고 그대로 실행을 했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리고 그들은 할아버지의 말에 도움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33 번째 기일에 단 하룻밤 동안 고민상담 편지를 더 받기로 한다.

이 이야기는 현실 속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판타스틱한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독자들은 이 소설에 이런 장치들이 있었기에 나미야 잡화점을 통해서 기적과 감동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들에 비하면 꽤 두꺼운 460 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책의 두께와는 상관없이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책을 덮을 수가 없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하다. 그리고 책 속에서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내 친구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해 주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항상 귀담아 들어 주었지만,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에 상담을 하면 좋은 답을 내려 주기가 힘들었다. 어느날 그런 이야기를 하니,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 꼭 어떤 답을 원하는 것은 아니야. 너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내 생각이 정리가 돼.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힘이 돼"라고.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나미야 잡화점'과 같은 곳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 (...)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거야 (...) " (p. 167)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이미 '나미야 잡화점'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어떤 결심을 하여야 할 때에는 마음 속의 '나미야 잡화점'에 상담고민편지를 보내보면 어떨까.

시간을 거슬러... 시간을 뛰어 넘어... 우리에게 답장이 도착할 것이다. 우리 마음으로부터의 답장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일인의 사랑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 영문판) 8
막스 뮐러 지음, 배명자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읽는 <독일인의 사랑>

또 한 권의 <독일인의 사랑>을 소장하게 되었다. 더클래식에서 한글판과 영문판이 함께 나오는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008>을 사게 되었다.

책값도 싸기 때문에 영어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즐겨 찾는 책이다. 세계적인 명작도 읽고 영어 공부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까.

막스 뮐러는 '겨울 나그네'의 독일 낭만파 시인 프리드히 막스 뮐러의 아들이다. 그는 1856년에 <독일인의 사랑>을 썼지만 1857년에 작가미상으로 발표를 한다. 그런데 그 반응은 좋았고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막스 뮐러가 남긴 단 한편의 소설이기도 하다.
<독일인의 사랑>이 이처럼 사랑받는 이유는 시적인 문체의 아름다움과 풍부한 감수성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시처럼, 음악처럼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준다. 주인공 '나'의 회상을 통해서 마리아와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펼쳐지지만, 그 이야기는 비교적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 흠뻑 젖은 강아지가 물을 털어내듯 우리의 기억을 모두 털어내더라도, 남는 그 장면들은 기묘한 장면 몇 개뿐" (p. 11) 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어린날의 기억을 따라가면서 첫 번째 회상을 시작으로 여덟 개의 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나와 마리아. 구성도 간단하고 두 주인공을 제외한다면 아주 적은 인물들이 잠깐 등장할 뿐이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두 사람의 맑고 고귀한 사랑은 별다른 갈등구조 없이 전개된다.

아주 조용하고, 아주 순수하고, 아주 맑게...

그러나 결코 해피엔딩이 아닌 비극적인 슬픈 사랑이야기이지만 그 슬픔이 더 아름답게 비쳐지는 것이다.

세 번째 회상에서 나는 마리아를 알게 되고 그녀는 자신이 죽을 때 가지고 가려고 했던 반지를 나에게 건네 주는 것이다. 나는 그 반지를 다시 돌려주면서 "네 것은 곧 내 것"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회상에서 세상을 떠난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한 통의 편지를 남겨 주게 되는데...

낡은 종이에 싸인 '주님의 뜻대로'라고 새겨진 반지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 종이에는 "네 것도 모두 내 것이야. 너의 마리아로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전에 밝혀지는 마리아를 돌보던 의사 선생님의 몇 마디의 말은 어린시절부터 마리아를 지켜보면서 사랑의 마음을 키웠던 나의 사랑과 오버랩이 되어 가슴에 남게 된다.

그래서 나에게 <독일인의 사랑>은 책꽂이에 꽂아 두었다가 가끔은 꺼내서 읽어 보게 되는 책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시처럼 아름답고, 음악처럼 운율을 가지고 있기에 영롱한 구슬처럼 반짝인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시리도록 슬프기도 하지만, 마음이 환하게 밝아오기도 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이처럼 아름답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코의 소설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구입했다.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지 궁금. 오래전에 읽었던 <장미의 이름>에서를 기억하기에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