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들의 사생활 - 역사책이 가르쳐주지 않는
윌리엄 제이콥 쿠피 지음, 남기철 옮김 / 이숲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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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들의 사생활>는 '윌 커피'가 약 16년간에 걸쳐서 쓴 글들인데, 미처 끝맺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에 그의 친구이자 편집자였던 '프레드 펠트캠프' 에 의해서 출간되었다.

그런데, 책을 편집하여 출간하기 위한 작업을 하던 중에 '프레드 펠드캠프'는 '윌 커피'가 그동안 모아 놓은 자료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어떤 주제와 관련하여 '윌 커피'가 조사하고 찾아낸 자료들은 방대하였으며, 그 자료들을  3x5인치 크기의 카드에 제목을 달고 내용을 정리하여 수천 장의 카드를 만들어 놓았으며, 100자 정도의 짧은 기사를 쓰는데도 25권 정도의 두꺼운 책을 읽고 수백 장의 카드를 만들어 그를 참조했다고 하니, 그의 글은 쉽게 쓰여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윌 커피'는 생전에 <뉴욕헤럴드 프리뷴>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는데, 주로 역사적 인물과 자연에 관한 풍자적인 글들을 많이 남겨서 당대 최고의 유머 작가로 인정받았다. 

<제왕들의 사생활>에는 세계사를 공부한 독자들이라면 그 누구나 알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원본의 경우에는 세계사를 대표하는 제왕들과 탐험가 등 역사적 인물25명과 궁정 풍습을 소개하는 글이 담겨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이 책이 출간되는 과정에서는 제왕 21명의 일화와 함께 왕실의 풍습만을 담았다. 그래서 제외된 인물로는 콜롬버스, 존 스미스, 마일즈 스탠디쉬, 에리프 에릭손, 레이디 고다이바의 일화가 제외되었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제왕들의 일화는 역사 관련 서적을 통해서 많이 접해온 이야기이기에 제외된 인물들에 더 관심이 간다.

PARTⅠ 이집트의 파라오   쿠푸 | 하트셉수트 | 클레오파트라
PARTⅡ 그리스·로마의 통치자    페리클레스 | 네로
PART Ⅲ 세기의 정복자와 피정복자  한니발 | 알렉산드로스 대왕 | 아틸라 |

                                        샤를마뉴 대제 | 몬테수마 2세
PART IV 영국의 국왕      정복왕 윌리엄 | 헨리 8세 | 엘리자베스 여왕 | 조지 3세
PART Ⅴ 라틴의 왕족    루크레치아 보르자 | 펠리페 2세
PART Ⅵ 프랑스의 군주  루이 14세 | 루이 15세
PART Ⅶ 러시아·프로이센의 황제   표트르 대제 | 예카테리나 여제 | 프리드리히 대왕
PART Ⅷ 왕실의 풍속 왕실의 오락 | 왕실의 식도락

위의 목차에서 볼 수 있듯이, 너무도 잘 알려진 제왕들이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역사적인 역할  뿐만아니라 에피소드도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역사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알고 있을 내용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새롭게 읽게 되는 내용일 수도 있다.

그리고 고대세계에서 근세까지를 아우르는 인물들이기에 이 책을 읽게 되면 세계사의 전반적인 흐름도 알 수 있게 된다.

이집트의 파라오 중에는 쿠푸와 클레오파트라는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하트셉수트는 잘 낯설게 생각될 수도 있는 제왕이다. 하트셉수트는 이집트 여왕 중에서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으며, 그의 이름은 '가장 고귀한 숙녀'라는 뜻이다. 그녀의 총애를 받았던 건축가 인센쿠트와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와의 관련 때문인지 이 시대에는 견고한 많은 건축물들이 세워진다. 그의 후계자인 투트모세3세는 그녀의 사후에 그녀의 조각상의 코를 떼어내고 채석장에 묻어 버리고 그녀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부분을 모두 도려내 버리지만, 훗날 발굴되어 복원되었다.

알렉산드로스의 경우에는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제왕이지만, 당시 여러 지역에 걸쳐 그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을 죽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그는 정복한 나라에 그리스 문화를 전하해야 하다는 생각에서 그런 만행을 저지르지만,

" 엄밀하게 말하면 그는 그리스인도 아니었고, 교양이 있는 인간도 아니었지만, 역사에 길이 남은 정복왕이니 내가 어찌 감히 그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p. 101)

" 알렉산드로스의 제국도 금세 산산조각이 났다. 대왕이 남긴 업적은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외에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는 건설적인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 그가 남긴 업적이 있다면 유럽에 가지를 들여온 정도였다. (...) 나는 그에게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는 평소에 눈살을  찌푸리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래야 했을 것이다. " (p. 111)

우리가 그동안 세계사를 통해서 알았던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평가와 '윌 커피'의 글이 일치하는가?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일치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그동안 역사가들은 제왕들을 평가할 때에 업적를 중시했다면 '윌 커피'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인간'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이야기할 때에 '훈족'의 대이동을 거론하지만, 5세기 전반 훈족의 왕이었던 아틸라는 로마제국이 무너질 당시에 로마 근처에도 있지 않았다고 한다.

'아틸라' 그리고 에스파냐가 멕시코를 침략할 당시의 아즈텍 왕국의 지배자였던 '몬테수마 2세'의 이야기는 좀처럼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섞여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일화가 가장 많은 제왕이라면 헨리8세 ~엘리자베스 1세에 이르는 시대일 것이고, 프랑스라면 루이 14세에서 루이 16세에 이르는 시대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교황 중에서 가장 문제가 많았던 인물은 알렉산데르 6세일 것이다. 그의 사생아 중의 한 명인 루크레치아 보르자에 대한 일화는 알려진 이야기가 많다. 서양사에서 그녀 이야기가 빠진다면 재미가 없으리라.

이 책의 마지막 PART인 8장에서는 왕실의 풍속을 이야기하는데, 왕실의 오락과 왕실의 식도락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제왕들도 짓궂은 면이 있었는지, 왕비가 앉아 있는 의자를 몰래  빼서 넘어지게 만들기도 했다고 하니. 왕의 위엄과는 상반되는 놀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럽에서의 왕실에서는 먹는 것에 상당히 치중했었기에 대부분의 제왕들이 대식가였다고 한다. 그들이 하루에 먹은 음식들을 보니 입이 안 닫혀질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세금에서 충당했을 것이니 백성들의 허리가 휠 만도 하다.

이 책은 이렇게 숨겨진 제왕들의 사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인데, 어떤 제왕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와 관련된 인물들까지 모두 알 수 있도록 참고자료를 달아 놓았다. 그리고 책 속의 내용들에도 주해가 많이 달려 있는데, 책의 내용 보다 주해의 내용이 더 위트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 실린 제왕들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읽다보면 서양사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알 수 있기에 한 권의 책이 가지는 지식과 정보는 방대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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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들리는 순간 - 인디 음악의 풍경들
정강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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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들리는 순간>은 인디 음악에 대해서 무지한 나에게 인디 음악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준 책이다.

'인디'는 Independent를 일컫는 말로,영화나 음반 제작에 있어서 소규모의 예산을 가지고 상업주의적인 작품이 아닌 개성적이고 예술적인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행태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인디 밴드의 경우에는 1990년대 중반 홍대 둘레에서 생성된 밴드들을 기존 음악 시장과 구별 짓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이런 용어를 누가 처음 쓰게 되었는지, 어떤 규정에 의해서 이렇게 구분짓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이 책 속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디밴드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단순히 인디밴드를 소개하기 보다는 그들의 음악 세계를 조명해 본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인디밴드 중에 '언니네 이발관', ' 장기하의 얼굴들', '산울림', ' 강산에', '김광석' 등 정도 알고 있지만, 그 중에도 '언니네 이발관'은 밴드 보컬인 '이석원'의 저서인 <보통의 존재>를 통해서, '장기하'는 <안녕, 다정한 사람>,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음악 보다는 책을 통해서 먼저 알게 된 뮤지션이다.

 ( 언니네이발관 앨범들 -  사진출처; 네이버 이미지 검색) 

    (사진출처; 네이버 이미지 검색)

그러니, 나에게 이 책은 인디 밴드에 대한 개념에서 부터 그인디 밴드의 형성과정, 멤버, 밴드의 음악 성향 등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책의 구성은 4부로 되어 있으며, 각 부의 끝부분에는 '인디 클래식'이란 코너를 통해서 한국 인디 음악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뮤지션인 '산울림', ' 한국재즈 1세대밴드', '빛과 소금',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1부: 인디록 밴드의 음악 풍경들 그리고 한국 인디 음악의 뿌리를 찾아 본다.

여기에서 소개된 인디 밴드 중에 '언니네 이발관'은 " 당대의 시인과 겨룰 정도의 시적인 노랫말을 구사하는 밴드" (p. 57)로 보컬인 이석원은 많은 존재들의 마음을 쓰다듬는다.

" 언니네 이발관은 가장 우울한 방식으로 가장 먼저 몰락해버림으로써 이미 몰락한 사람들의 우울함을 다독인다. " (p.58)

언젠가 <보통의 존재>를 읽고, 그 책의 내용이 좋아서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를 찾아서 들었던 적이 있는데, 과연 시적인 노랫말들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었다.

또한 '장기하'의 노랫말을 보면 '없다'의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랫말에 '없다'를 난발하기도 하고, 직설적인 노랫말로 어떻게 보면 입에 담기 어려운 가사들이 나오기도 한다.

너무도 잘 알려진 <아니 벌써>의 산울림은 35 년전에 등장한 토속밴드로 한국어로 한국의 록을 연주하는 팀의 탄생이기도 했다. 구어체 노랫말과 한국적 록의 멜로디는 누구나 흥겹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2부: 주류 음악에서 접하기 힘든 다채로운 장르를 실험중인 인디 밴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3부: 소규모 밴드 이야기

대개의 경우 밴드는 3명에서 5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단 2명으로 구성된 밴드들도 많이 있다. 한 사람은 기타를 치고, 한 사람은 보컬인 밴드인데, '가을방학', ' 소규모 아카시아밴드', '십센치','옥상달빛' 등 이다.

4부 : 나 홀로 곡을 쓰고, 나 홀로 연주하고, 나 홀로 노래하는 1인 밴드

무리의 음악에서 탈출한 나 홀로 뮤지션들의 달라진 음악의 결을 이야기한다. 그중에 대표적인 밴드가 '강산에'이다. 그의 작품들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강산에'는 평생 악보를 그린 적이 없는 악보를 볼 줄 모르는 뮤지션이라는 점이다.

" 그는 작곡이란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음악이론을 몰라도 자신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음계를 찾아 나열하면, 그게 음악이 된다고 믿는다. 강산에에게 음악이란 한없이 사소한 몸짓이다. " (p. 190)

4부의 '인디클래식'에서는 김광석을 조명해 본다.

" <사랑했지만>을 부르며 연인을 떠나 보내고, <이등병의 편지>를 훌쩍이며 입대하는 풍경은 습관처럼 익숙한 일이었지요. 그러니까 당신은 지난 15년간 단 한 순간도 이편 세상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이 건너간 저편 세상이란, 실은 당신의 저 아름다운 노래 속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p. 245)

이 책의 저자인 '정강현'은 중앙일보 가지로 칼럼을 통해서 이 책에 실렸던 인디밴드의 이야기들을 이미 소개한 바가 있다. 그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이 책이 만들어 졌기에 그동안의 저자가 많은 뮤지션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농익은 내용들이 이 책 속에 녹아 있다.

그래서 단순히 인디밴드를 소개하는 책에 머물지 않고, 인디 뮤지션들의 삶과 음악에 대한 열정까지를 이 책 속에 담아 놓았다. 특히 뮤지션들의 창작물인 노래가사들을 많이 실어 놓았는데, 그것은 비록 뮤지션의 연주를 듣지 못했더라도 그들이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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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다 1 - 헬로 스트레인저 길에서 만나다 1
쥬드 프라이데이 글.그림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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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없이 길을 타박타박 걸어 보면 어떨까?

평소에 잘 가는 길도 좋고, 예전에 자주 걷던 길도 좋고,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와 걷던 길을 걸어도 좋고....

그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우연히 만나게 된 그 사람을 다시 길 위에서 만나게 되어 우연이 인연이 된다면....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지 않을까.

<길에서 만나다>는 책을 펼치는 순간, 싱그러움이 물씬 풍겨난다. 서울의 길 위에서 사소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서울'이라고 하면 빌딩숲의 삭막함을 생각하게 되는데, 서울에서도 푸르른 나무들의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길을 걷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저자는 2011년 네이버 <도전 만화기>에 <길을 만나다>라는 웹툰을 연재하게 되는데, 이를 본 독자들의 반응이 꽤나 좋았다고 한다.

<길에서 만나다>에 나오는 길을 주말마다 걸었다는 사람들도 나오게 되고, 이 이야기 속의 희수처럼 말주변이 없던 사람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 놓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도 생기게 된다.

그만큼 이 웹툰은 접하는 순간 가슴이 풋풋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건 아마도 <길에서 만나다>의 그림에서 풍기는 수채화의 은은함과 서정적이면서도 감각적인 글들이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종이에 직접 스케치하고 채색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런 표현 방법이 독자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물들어 가게 한다.  

<길에서 만나다>의 배경은 서울의 길이다. 남산 N 서울타워, 후암동 골목길, 연대 동문길, 서강대교, 여의도 공원,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아이들의 계절길, 경희궁, 하늘공원,  성곡 미술관길 등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남산에서 은희수와 미키의 우연한 만남이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른 길에서 만나게 되면서 '나'를 알게 되고, '너'와의 관계를 알게 되고, 상대방을 알아가게 된다.

'데뷔하지 못한' 시나리오 작가인 은희수는 그날도 면접을 보고 남산길에 오르게 된다. 그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찍겠다는 미키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서울의 길 위에서 또다른 만남이 가지게 되고, 그들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게 된다.

이 이야기는 2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에서는 23화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화는 남산길이어서 더 싱그러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N 서울타워를 찾는 연인들이 전망대 난간에 달아 놓는 자물쇠를 통해서 꼭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지할 수 있다.

 

" N 서울 타워를 찾는 연인들은 서로의 마음이 굳게 잠긴 채로 영원하길 바라며 전망대 난간에 자물쇠를 채워놓고, 그 열쇠를 남산 아래로 던져 버린다. 영원히 잠겨 버린 마음이라니, 좀 섬뜩하긴 하지만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큼은 꽤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멈춰버리고 싶을 만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이니까 말이다. " (p.p. 17~18)

" 사람의 얼굴처럼 길에도 표정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감촉을 느끼고 싶은 돌담이 있는가 하면 차가운 시멘트 벽으로 둘러싸인 골목도 있고 담쟁이 덩쿨이 뒤덮여 계절에 따라 극단적으로 표정을 바꾸는 길도 있다. 어느 동네의 골목을 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p.368)

이처럼 책 속에는 읽는 순간 작은 여울이 만들어지면서 공감이 되는 글들이 많이 있다.

" 잦아든 빗줄기를 바라보며 이대로 뛸까, 아니면 조금 더 기다릴까를 망설이는 모습이 지금 내 모습과 아주 닮아 있다느 생각이 들었다. 미련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앞으로 발을 내딛을 것인가, 아니면 불씨가 꺼질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게 좋을까 " (p. 88)

" 누구나 마음 속에는 특별히 아끼는 장소가 한두 군데쯤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곳은 대단히 멋지거나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일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장소에는 저마다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아마도 그곳에 대한 누군가의 '기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다시 그곳을 찾아 동일한 좌표 위에 선다 하더라도, 어쩐지 그곳을 '같은 공간'이라고 부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그곳에 다시 선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구름의 모양에 따라  나뭇잎의 색에 따라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에 따라 다른 모습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곳에 담긴 기억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 (p. 256~258)

타박타박 걸어 보자, 내 추억이 깃든 길을~~ 아니, 한 번도 걸어 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걸어 보자,

그 길 위에서 나만의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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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더스트 Diamond Dust 1 다이아몬드 더스트 Diamond Dust 1
강형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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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금 숟가락을 물고 세상에 나왔다는 말이 있던가.

<다이아몬드 더스트>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문혜린은 가문의 자존심을 이을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천재 클래식 피아니스트를 만들기 위해서 혹독한 연습을 시킨다.

" 일류에겐 연습하는 날과 공연하는 날만 있는거야. 철저한 자기관리와 노력없인 일류가 될 수 없어." (문혜린 아버지의 말)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태어난 혜린은 독일에 가서 공부를 하고, 유명 피아니스트가 되어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앞두고 고국에서의 연주를 위해서 잠깐 귀국하게 되는데, 공연 후에 그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아버지의 평생의 꿈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미국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을 하지만, 혜린은 단 한 곡도 마치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는 시련에 부딪힌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온 손가락 경직 증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딸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으로 항상 매와 같은 눈으로 혜린의 피아노 연습 과정을 함께 했던 아버지의 부재는 그녀에게는 더 이상 피아니스트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고 혜린이 아버지의 죽음에 큰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고, 오히려 아버지의 죽음은 슬프기는 하지만 평생에 처음 느끼게 되는 편안함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녀는 몇 차례에 걸친 손목 자해로 목숨을 끊으려는 생각까지 했었다.

자살 시도로 인하여 실려갔던 병원에서 만나게 되는 이주원.

그는 홍대 인디밴드 '당나귀 벤자민'의 세컨 기타 겸 보컬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난하였지만 음악을 사랑했기에 음악 속에서 살았던 주원에게 닥친 불행은 뇌종양.

이미 뇌에 자리잡은 종양은 해마를 누르고 있기에 기억이 "깜빡 깜빡'하다. 치료도 돈이 없으니 힘들고, 치료라는 것도 진정제를 투약하면서 고통을 줄이는 것 뿐인데...

주원이 수술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좋아하는 음악마저도 잃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혜린. 그녀는 지금까지 아버지의 그늘 속에서 살았고, 그렇기에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가진 것은 없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지를 아는 주원. 그는 뇌종양에 시달리면서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살아가고 있다.

 

그런 혜린과 주원의 만남. 어떤 면에서는 전혀 별개의 세상에서 살아 온 두 사람이지만, 그들이 무언가에 끌리는 것을 보면 닮아도 닮은 점이 있기는 있는 듯한데....

두 사람은 서로에게 묻는다. "대체 당신은 뭐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다이아몬드 더스트> 3권에 걸쳐서 펼쳐진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손에 잡으려면

           사라져 버리지, 마치 다이아몬드 더스트 처럼" (책 속의 글 중에서)

다이아몬드 더스트?

얼음의 결정으로 대기 중의 수증기가 승화하면서 생기는 결정체인데, 태양빛에 반짝반짝 빛나 보이기에 다이아몬드 더스트라고 한다. 추운 겨울에 이른 아침에 볼 수 있는 다이아몬드 더스트.

혜린과 주원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기대가 된다.

<다이아몬드 더스트>는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책 속의 만화에서 찾을 수 있는 특징으로는 피아노 소리, 의성어는 그림 속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음악이 흐르는 듯, 피아노 소리가 퍼지는 듯, 그리고 문을 닫으는 듯, 버스가 출발하면서 내는 소리인 듯.

그리고 인물들의 표정이 살아 있는 듯,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서 책을 읽는 재미를 더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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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 문명의 중심
프랜시스 우드 지음, 박세욱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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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실크로드, 참 아름다운 이름이다. 내가 처음 이 길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아마도 중학교 역사 시간을 통해서 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때는 비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배웠던 것 같은데, 그 이름만으로도 하늘하늘 윤기가 흐르는 비단을 연상했었다.

그런데,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1877년 독일의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인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 붙였다고 한다. 그 보다 훨씬 이전인 1세기경부터 중국인들은 서역으로 가는 북쪽 길과 남쪽 길에 자신들이 붙인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실크로드는 중국 서안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유럽의 로마에 이르던 교역로로 주로 중국의 비단이 로마로 전해지게 되었는데, 로마인들은 그당시에 중국에서만 생산되는 비단에 매료되었다. 이 멀고 먼 길, 그리고 혹독한 기후와 사막을 거쳐야 하는 지형에도 불구하고, 이 길은 동서양의 문물이 교류되었던 길이다.

1980년대 말부터는 실크로드 관광업이 크게 성행하면서 이 길에 대한 서적들은 대체로 여행에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그런데 비하여 '프랜시스 우드'가 쓴 <실크로드>는 역사와 문화를 중심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이책의 저자는 " 학술적 연구 보다는 실크로드 2천 년의 숨결이 울려주는 미세하고도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자 한다. 마치 실크로드의 흐믈을 재연이라도 하려는 듯이 아주 평탄하면서도 생생한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 ( 책 속의 글 중에서)

저자인 '프랜시스 우드'는 영국 국립도서관 중국 문헌담당 큐레이터이기에 실크로드에 관한 책들을 비롯하여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귀한 도판들을 책 속에 소개해 준다. 그와 함께 이곳에 관한 여행기, 탐험기 속의 흥미로운 부분들은 발췌하여  책 속에 담아 놓았다.

 

 

실크로드를 이야기하자면 자연스럽게 중국의 한나라에서 현재에 이르는 역사을 알아야 하겠기에 중국의 역사를 아우르면서 그와 함께 중앙 아시아의 여러 세력들이 어떻게 흥망성쇠를 하였는가를, 그리고 유럽에는 어떤 물품들이 건너가게 되었으며, 어떤 물품들이 중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특히 이 길은 비단이 교역되던 길이기에 기원전 1~2세기에는 이미 중국의 비단이 로마에 전래되게 되는데, 이것이 동방에서 서방으로 수출된 최초의 물품인 것이다.

이밖에도 실크로드 남쪽 루트에 있는 호탄지역으로부터 옥이 전래되기도 했고, 한나라때는 중앙아시아로 부터 천마, 무소뿔, 상아, 별갑, 빈랑, 포도 등이 들어 오기도 했다.

그래서 중국의 왕실에서는 코끼리, 사자, 타조, 맹수들을 궁에서 사육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이런 물류만 동방에서 서방으로, 서방에서 동방으로 건너갔을까.

종교를 비롯한 문화적 요소들도 교류를 하였던 것이다.

 

 

 

저자는 마르코 폴로 이전의 선교사들의 기록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럴 스타인의 탐험기 등을 읽고 그 속에 담긴 내용들 중에서 독자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내용들을 이 책 속에 담았기에 그 어떤 실크로드에 관한 책들 보다  깊이있고 흥미로운 실크로드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였음을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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