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의 인생을 만들다
요시모토 바나나, 윌리엄 레이넨 지음, 황소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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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는 일본 독서시장을 양분하는 소설가라고 흔히들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소재나 주제면에서 묵직하고 소설 속에 은유적이 장치들이 많이 들어가서 제대로 읽기가 그리 쉽지 않은데 비하여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앉은 자리에서 읽고 일어나도 될 정도로 짧은 이야기들로 복선이 깔리지 않은 평범하고 어렵지 않은 내용이다.

그러나 '바나나'의 소설 속에는 부모의 이혼, 사망, 연인의 배신, 결별 등과 같은 아픈 상처들을 간직한 사람들이 스스로 그 상황을 극복하는 치유와 희망의 메지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소설 속의 삽화를 보는 재미도 있다.

그래서 <인생을 만들다>를 우리말로 옮긴이는 '요시모토 바나나'를 " 평범한 일상어를 구사하면서도 뭔가 빛이 반짝 반짝 빛나는 금빛...." (p.220, 옮긴이의 말 중에서)이라고 표현한 것이리라.

지금까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만을 읽었던 나에게 <인생을 만들다>는 그녀의 또다른 면모를 엿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책이다.

이 책은 '요시모토 바나나'와 '윌리엄 레이넨'이 1년 넘게 주고 받은 각각의 메일 7편이 실려 있다. 메일이라고 해서 아주  짧막한 글을 생각했는데, 메일이라고 보기에는 좀 긴 편지형식의 글들이다.

공동저자인 '윌리엄 레이넨'는 하와이에 거주하는 세계적인 영혼 치유 전문가이자 전생 전문가이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평범한 듯하면서도 글 속에 담긴 의미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제대로 힐링이 되는 글들이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그동안 그녀의 소설을 통해서 힐링의 메시지를 전한 것처럼, '윌리엄 레이넨'도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이고 따뜻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모두 누군가에게 빛이 되는 사람이다.

'바나나'는 프롤로그에서,

"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던지는 '행복이날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읽을거리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롤로그 중에서)라고 말했듯이 '성공이란 무엇일까?' , ' 행복이란 무엇일까?', '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이야기를 자신들의 생각을 서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은연중에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사람이나 동물과의 마음열기, 장애를 가진 강아지 기르기, 가정폭력근절, 입양문제, 자연과의 교감, 영성 등에 대한 이야기가 편지를 통해서 오고 가는 내용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또는 '나는 지금까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가?' 하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해보게 된다.

" 영혼도, 인간도 지향하는 목표는 균형과 성장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자신에게 편리한 일만 떠맡는 게 살아가는 목적이 아니라 '경험으로써 모든 일에 대처하자'는 삶의 태도를 관철시키는 사람에게는 성공 의식의 프로젝트가 찾아 옵니다. " (p.p. 90~91)

" 당신의 영혼은 당신에게 극복할 수 없는 경험을  떠맡기지 않습니다. 어떤 경험이라도 반드시 대처할 수 있고 극복해낼 수 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주는 일'과 받는 일'을 의식적으로 실천하면 인생은 더 크고 더 힘차게, 변모할 것입니다. " (p. 117)

"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모험이든 우리에게는 하나의 경험이며 우리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선사합니다.

저마다의 경험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처할지를 선택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경험이 될 수도 있지요." (p. 184) 

누군가와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일 것이다. 두 사람이 나누는 편지글은 서로에 대한 격려와 배려와 존경의 마음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요시모토 바나나'의 생각은 소설을 통해서나마 읽을 수 있었지만, '윌리엄 레이넨'의 영혼의 소리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듣게 된다.

그동안 일본의 대지진으로 인하여 힘겨운 일들을 겪었던 '요시모토 바나나'는 "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게 우리가 가장 중시해야 할 일 (...)" (p. 218) 이 책의 글을 끝맺는다.

나도, 역시 이 책을 통해서 두 사람이 전하는 좋은 이야기들을 읽었지만, 가장 마음에 와닿는 것은 "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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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0달러로 세계 여행하기
매트 케프니스 지음, 이빈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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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0달러로 세계 여행하기?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반신반의(半信半疑) 할 것이다. 아니, 솔직히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더 강할 것이다.

오늘 환율로 50달러는 약 56,000원이니, 국내여행도 불가능한 돈인데, 세계여행이라니...

항공료, 숙박비, 식비... '말도 안돼!'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는데, 결론은 불가능하다. 단기여행을 떠나는 여행자에게는. 그러나 이 책의 저자처럼 약 6년이란 긴 세월을 길 위에서 지내는 여행자라면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매트 케프니스'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2003년 2주간의 휴가로 코스타리카를 여행한 후에 여행 마니아가 되었다. 그런 계기가 된 것은 2004년 친구와 함께 간 태국 여행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평생 여행을 하면서 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지금 이순간에도 지구상의 어떤 여행지에 있으며, 여행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미국에서는 가장 유명한 여행작가로 변신을 하였다.

여기까지에서 잠깐 생각해 보면 국내에도 많은 여행작가들이 쓴 여행 에세이들이 넘쳐 난다. 그 책들의 대부분의 저자들은 잘 다니던 직장을, 그것도 제법 타인들이 부러워하는 직징을 하루 아침에 미련없이 그만두고 세계 곳곳을 떠도는 여행자가 되어 자신이 여행한 여행지에 대한 정보나 생각들을 사진과 함께 올려 책을 출간한 경우가 많고, 그 책들이 운좋게 잘 팔려서 이제는 여행작가로 자리매김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건 그런 생각을 가졌던 여행자 중의 극소수에 해당할 것이다.

집도 팔고, 자동차도 팔고, 열심히 모았던 돈도 모두 털어서 떠난 여행에서 돌아 왔을 때에 그들을 다시 맞아 주는 직장이 없다면, 가족이 없다면, 그야말로 여름날,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쨌든 이 책의 저자는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여행길에 올랐는데, 지금은 유명 여행작가가 되어 이처럼 책을 쓰고 있다.

그가 말하는 '하루 50달러로 세계여행하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값싼 여행, 궁색한 여행이 아니다. 유럽의 멋진 레스트랑에서 그곳을 찾은 여행자라면 꼭 먹어 보아야 할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프랑스에 가서는 와인투어도 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이다. 즉, 현지인이 되어 여행을 하는 것이다.

물론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같은 곳은 물가가 비싸서, 하루 50달러로 버틸 수가 없지만, 중국, 인도, 중앙아메리카는 물가가 싸서 하루 50달러면 충분히 여행을 하고 남는 돈이기에 이런 여행지에서 쓴 비용을 하루 평균으로 어림잡아 하루 50달러로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일주일 휴가로 해외여행을 할 경우에 어림도 없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이 책은 1부에서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 어떻게 여행비용을 줄일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데, 환전과 저렴한 항공권 구하기의 노하우만 배워도 상당히 많은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여행지에서 숙박비, 식비, 교통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학생할인의 경우에는 잘 알고 있지만, 그외에도 여행지에서 교통기관이나 박물관 관람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도 여러 가지가 있다.

3부에서는 지역별 정보를 담고 있는데, 각 지역별 정보만 잘 알고 있어도 비용절감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하루에 50 달러, 1년이면 18,250 달러로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이기에 장기여행자의 경우에는 한 도시에서 몇 개월씩 머물고 심지어는 1년 이상, 한 곳에 머물면서 생활하고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기에 현지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은 '하루 50달러로 세계여행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게 되고, 가끔 해외여행을 다녀와야 하는 사람들은 '그럼, 그렇지!!' 하면서 이 책을 덮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이 책 속에는 단기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알아 두면 좋을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듯 여행이란 이런 저런 것을 따진다면 결코 떠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루 50달러로 세계여행을 떠나지는 못할지라도, 언젠가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단 며칠만이라도 갈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추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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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13-08-23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남아 여행에서는 하루 20달러 정도면 넉넉하지는 않아도 가능은 하지 싶어요.(제 경험상)
유럽에서는 어림도 없는 금액이지만.
이 책 꽤 괜찮은 여행서인 듯 싶네요.

라일락 2013-08-23 14:13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자는 하루 평균 50달러라고 하는데, 단기여행자의 경우에는 항공료 등이 비싸서 힘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책 내용 중에는 항공료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나 신용카드 사용 등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참고할 만한 사항들이 있습니다.

60일 2013-09-17 0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하루 평균 50달러정도 쓴거같아요. 60일정도 여행 하면서..
가능은 합니다.
책 제목만 보고 50달로 해외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은 없을지 싶네요..
현지 생활비용이 50달러 라는 걸로 전 받아들였거든요..

라일락 2013-09-17 07:47   좋아요 0 | URL
네, 단기여행자에게는 하루 평균 50달러로 세계 여행하기가 힘들지만, 이 책의 저자는 장기 여행자로 현지에서 생활을 하기도 하기에 가능했습니다.

하루 50달러로 세계 여행하기도 중요하겠지만, 이 책에는 많은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인페르노 1 로버트 랭던 시리즈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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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계의 빅뱅'으로 떠오른 '댄 브라운'의 소설은 한 편의 스릴 만점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세계적인 도시를 넘나들면서 그 도시의 구석 구석을 여행자가 여행을 하듯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 나오는 도시들을 언젠가 가 본 적이 있다면, 그 도시가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을 스쳐간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로버트 랭던은 하버드대학교의 미술사와 기호학 교수답게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다룬다.

그리고 그의 소설의 특징이라면 박진감 넘치는 쫓고 쫓기는 한 판 승부가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펼쳐진다.

<다빈치 코드>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에 다빈치가 의도적으로 숨겨 놓았을 것이라는 암호를 찾아서, 그리고 예수의 마지막 성배를 찾아 유럽의 여러 성당과 성채를 찾아 다니는 이야기를.

그리고 <천사와 악마>는 <다빈치 코드>보다 더 치밀한 구성으로 첨단 과학과 바티칸 교황청의 비밀,  비밀결사단인 일루미니티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 로버트 랭던을 교황청 하늘 위까지 올라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처녀작인 <디지털 포트리스>는 스페인을 배경으로  NSA와 프로그래머 사이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그려냈다.

<로스트 심벌>은  워싱턴 D.C. 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프리메이슨'의 놀라운 비밀들을 찾아가면서 피라미드와 갓돌에 얽힌 암호를 풀어나가는 과정들이 그려진다. 이전의 작품들에서도 언급되곤 했던 '프리메이슨'이 미국 건국을 비롯한 도시건설에도 깊숙이 자리잡고 있으며, 지금도 정치, 경제계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 알게 모르게 작용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렇게 '댄 브라운'의4권의 책을 읽으면서 그가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추리력과 상상력, 그리고 소설마다 새로운 소재를 가지고 그가 문학, 예술, 건축물, 역사 등에 박학박식하여 어떤 책을 통해서도 읽지 못했던 진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는 것이 그의 소설에 심취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로스트 심벌>이후 4년만에 '댄 브라운'은 단테의 <신곡>을 구성하고 있는 세 권의 작품 중에 첫 번째 이야기인 <인페르노>를 주제로 하여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그런데, 단테의 <신곡>은 불후의 명작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읽으려는 노력 조차 하지 않았던 작품이다. 그래서 이 책을 구입할 당시만 해도 '댄 브라운'의 소설이라는 것은 관심이 가지만, 단테의 <신곡>을 변주했다는 것에는 읽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었다.

그런데, <인페르노>를 읽으면서 '로버트 랭던'에 의해서 신곡의 행간에 감추어진 깊은 의미까지를 친절하게 해석해 주기에 <신곡>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신곡>을 얼마나 열심히 분석했는가를 알 수 있고, 그와 병행하여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을 비롯하여  두오모 성당, 세례당, 천국의 문 등 뿐만 아니라 단테와 관련된 예술 작품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인 인페르노는 단테의 <신곡>에 묘사된 지하 세계로서, 지옥을 일컫는 말로, '그림자'라 표현되기도 한다. 즉, 삶과 죽음 사이에 갇혀 있는 곳을 의미한다.

<신곡>의 '인페르노'에서 영감을 받아서 그린 그림 중에는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가 있는데, 그 그림을 교묘하게 변형시킨 그림이 이 소설의 시작이 된다.

   

 자료 검색 : Daum -  (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 , <단테의 초상>)

 

어떤 이유에서 피렌체에 왔는지를 알 수 없는 랭던, 그는 컨소시엄의 추격을 받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퇴행성 단기 기억 상실 증상을 보인다. 그를 도와주는 여의사 시에나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서 도망 다니면서 예술과 건축, 기호학의 해박한 지식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헤쳐나간다.

그의 환각 속에는 수많은 시신들, 거꾸로 반쯤 묻힌 다리에 그려진 R자의 의미, 새부리 모양의 가면이 허공에 떠 있는 모습 등....

그건 바로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의 변주이기도 하고, <신곡>의 '인페르노'에 나오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찾아 낸 CATROVACER, 흑사병 가면, 그리고 '진실은 오로지 죽음의 눈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문장.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면서 알게 된 '조브리스트'와 '엘리자베스 신스키' 의 대립관계를 알게 되는데....

거기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사이의 모순이 존재한다. 의학의 발달로 생명이 연장되기에 지구의 인구는 급증하게 되고, 이런 인구과잉은 아프리카의 출생률 증가와 노인 부양이라는 과제를 남기게 되니...

조브리스트의 주장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으로 지구의 인구를 솎아 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조브리스트의 음모는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으니....

이그나치오가 죽음의 문턱에서 남긴 말,

'당신이 찾는 것은 안전하게 숨겨 놨어요. 당신을 위해 문이 열려 있기 하지만, 서둘러야 해요. 파라다이스 24. 부디 성공하기를' .

단테의 <신곡>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 있기에...

 

세계 문학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추앙받는 <인페르노>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을 구성하는 세 권의 작품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14,233행에 달하는 대서사시《신곡》은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가 연옥을 거쳐 결국은 천국에 도달하는 단테의 숨 막히는 여정을 다루고 있다. <인페르노(지옥)>, <푸르가토리오(연옥)>, <파라디소(천국)>로 이루어진 3부작 중에서도 이 <인페르노>가 가장 널리 읽히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p.105)

<인페르노>는 1권에서는 피렌체, 2권에서는 베네치아가 소설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랭던과 시에나가  비밀집단인 컨소시엄에게 쫓기면서 가게 되는 피렌체는 '댄 브라운'이 자세하고도 섬세하게 묘사하기에 그곳의 장면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치밀하고 탄탄한 구성과 생동감 넘치는 묘사가 소설을 읽으면서도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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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인간
이석원 지음 / 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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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인간>의 저자인 이석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2년 겨울이 끝나갈 즈음에 읽게 된 <보통의 존재>를 통해서 였다.

<보통의 존재>는 2009년에 출간되었는데, 그 책의 존재를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누군가의 에세이를 읽다 보니, 그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또 다른 책을 읽던 중에도 그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대관절 <보통의 존재>가 누가 쓴 어떤 책일까 하는 궁금증에 읽게 되었다.  

책표지로는 사용하지 않을 듯한 햇병아리처럼 노란색 바탕에 간결한 책 제목과 삽화가 눈에 확 들어왔다.

'사랑과 건강을 한꺼번에 잃고 비로소 삶의 의미에 대햔 탐구를 시작했다는 작가의 글들은 아주 우울하기도 하고, 깊은 외로움이 담겨 있기도 하고, 승화된 슬픔이 흘러 나오기도 한다.

그는 '언니네 이발관'이란 모던 락밴드의 보컬이니, 자연스럽게 음악 이야기도 들려준다.

<보통의 존재>는 이석원의 소소하고 사소한 일상의 기록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들려주기에 읽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을 느끼게 한다.  

<보통의 존재>를 출간한 후 4년 만에 그는 소설로 독자들을 찾아 왔다. 이번에는 Blue 계열의 깔끔한 책표지가 돋보인다. 그리고 거기에 <보통의 존재> 미니북이 딸려 왔으니, 언젠가 여행길에 다시 한 번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가 아닌 그가 4년 동안에 걸쳐서 집필하면서 '과연 끝맺을 수 있을까 ' 하는 생각으로 썼다는 소설은 <실내인간>이다.

<보통의 존재>가 독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번져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면, <실내인간>은 그의 산문집을 읽고 좋은 느낌을 받았던 독자들이라면 서슴치 않고 읽게 되는 이석원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용우가 기르는 개 워리의 사형 이야기부터 시작되기에 처음부터 조금은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건 이 소설의 한 장치일 뿐...

실연의 아픔은 새로운 곳에 안주하는 것으로 깨끗하게 잊혀질 수 있을까? 용우는 이사를 가게 되는데, 주인이 내세운 조건은 옥상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옥상은 올라가는 곳이 없는데, 밤이면 누군가가 옥상에 드나드는 것같은 소리가 들리게 된다.

그는 앞집에 사는 용휘와 친밀하게 지내게 되는데, 용휘는 무언가를  밝히기 꺼리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어느날 우연히 서점에서 그의 행동에 의심을 품게 되면서 그의 이야기를 파헤치게 되는데, 용휘는 문단에 등단하지는 않았지만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책을 파는 소설가이자 동화작가임을 알게 된다.

방세옥이란 필명을 가진 은둔작가인 용휘는 각종 루머에 시달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용휘라는 소설가의 삶을 통해서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들, 그가 쌓고자 했던 것들이 결국에는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일깨워 준다.

그가 왜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

용휘는 헤어진 연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하여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고, 자신의 책이 서점의 베스트 셀러 칸에 놓여 있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허망했던가를 알게 되는 그 날.....

“그는,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서점에 가면 그의 책들이 곳곳에서 그 대신에 그녀에게 인사랄 수 있도록. 나 여기 이렇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널 잊지 않고 있다고. 가능한 많은 책들이 가능한 많은 곳에서 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글을 썼다. 그러나 지닌 육 년간 그런 소임을 충실히 수행해온 그의 책들은, 그에게 자부심과 실낱같은 희망과 생명을 주던 그의 책들은 그날 따라 이상하리만치 초라하고 쓸쓸하게만 보였다. ” (p. 260)

용우의 친구인 제롬이 용휘를 일컬었던 '실내인간'이란 의미는.

" 자기가 정해 놓은 틀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 그는 자기가 익숙한 곳, 다시 말해 자신의 능력과 자신감이 최고로 발휘될 수 있는 공간에만 있으려 한다는 것이다. “ (p. 141)

이 소설은 처음 어느 정도까지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는 소설의 전개 과정이 어수선한 부분도 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용휘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통해서 모두 밝혀진다.

" 인간이, 자신이 믿는대로 자신만의 탑을 높이높이 쌓아가다. 마침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게 되면, 그는 그 위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 (p. 266)

 그런 부분들이 어느 정도는 이 소설의 재미을 반감시킨다는 생각이 나름대로 든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적고 있다.

" (...) 세상에 또 한번 저는 책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있네요.

당신에게 어느 날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생긴다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갖겠느냐고. "  ( 작가의 말 중에서 )

우린 어떤 것들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속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런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을 꼭 잡았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 불변의 것은 아니리라. 

그건 어쩌면 그저 허상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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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와 함께 한 책들

 

1. 랄랄라 하우스 : 마음산책/2005 : 개정판/  2012

 

 

 

 

 

 

 

 

 

 

 

 

 

<랄랄라 하우스>의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의 형식을 종이 위에 펼쳐 보여 주었던 그 책'이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그 책 속에 고양이 이야기가 나왔던 것같은데...

맞다, <랄랄라 하우스>의 시작은 방울이와 깐돌이의 입양 소식이었다.

       

 작가의 아내는 친구가 1주일만 봐달라고 길고양이를 데려 오게 된다. 

정에 약한 그들은 이 고양이를 입양하게 되는데, 고양이 이름이 방울이다. 그리고  약 6개월 후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비에 흠뻑 젖은 검은 털뭉치 깐돌이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방울이와 깐돌이의 이야기가 이 책의 시작이었다.

 

작가는 개정판의 '책을 내면서' 통해서 방울이가 2011년 봄에 퇴행성 뇌잘환이 악화되면서 신체기능이 정지되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해외에 거주하기에 방울이의  죽음을 함께 하지는 못했다는 말과 함께.

그러고 보면 내가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먼저 읽었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2009>에서도 그가 시칠리아에서 머물면서 길고양이를 돌보았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책은 잘 나가던 작가가 자신의 일상을 훌훌 털어 버리고 유랑길(?)에서 이야기를 담았던 책인데,  외로움이 물씬 풍기는 작가의 내면 세계를 엿 볼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개정판인 <랄랄라 하우스>를 펼쳐든다.

 그런데, 독특했던 구판의 미니홈피 형식의 콘셉트는 개정판에서는 볼 수가 없다. 

구판에서는 미니홈피의 낯익은 폴더가 특색이라면 특색이었는데,

 Free Talk , 사진책, 방명록, 그리고 댓글까지.

free talk는 3부분으로 '방울이와 깐돌이' , '길 위에서' , '문학 앞에서' 로 분류되어 있었다. 

 

 

 

   (2005년 출간된 구판 '랄랄라 하우스'의 책 내용 중에서)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작가의 선곡'까지 있어서 미니홈피의 음악 설정을 보는 것 같았다.

마치 랜덤을 타고 남의 미니홈피를 엿 보는 것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젊은 작가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는데, 이런 모든 콘셉트가 사라지고, 책 속의 글들은 꼭지마다 지름 약 1cm의 작은 원에 사진이나 그림이  담겨 있다. 

 2005년에 이 책이 출간될 당시의 책과는 변화가 있는 것이다. 

그당시에 인기있었던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이제는 철 지난 해수욕장같다고나 할까.

트위터로, 페이스북으로 이동을 하였으니...

책장을 넘기면서 전에 읽었던 내용들이 생각이 나기도 하고, 전혀 읽지 않은 내용의 글들도 보인다. 개정판을 내면서 새로운 글이 추가되었다고는 하나,  기억이란 한계가 있어서 전에 읽었던 내용들의 상당수는 그동안 망각의 흐름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어떤 글은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허무맹랑한 망상의 이야기들도 있지만, 역시 작가의 글은 지적이면서도 재치가 넘쳐 흐른다.

책 속의 내용 중에는 이 이야기가 어떤 소설의 한 부분으로 변하기도 했음을 느끼게 한다.

'썰렁한 대화' (p 76)라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정말 리얼하다. 이런 경우 각 가정에서 허다한 일일텐데, 그 광경 자체가 썰렁하면서도 소통이 단절된 우리네 가정의 모습인 것만 같다

      

개화기와 해방후에 많이 나온 번안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외국 문학 작품을 줄거리, 사건은 그대로 두고 인물, 장소, 풍속 등 만을 자기 나라 것으로 바꾸어서 쓰는 문학 작품을 일컫는 것이 번안 작품이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일본판 번안 작품은 '암굴왕'이다. 우리나라판으로는 '해왕성'이다.

어릴적에 '암굴왕'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 내용의 일부는 기억이 난다. 그때는 '암굴왕'이 우리나라 작품인 줄만 알았는데, 일본 번안 작품명인 것이다.

그것 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 그러나 무엇보다도 압권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다. 임꺽정의 저자인 벽초 홍명희가 이 책을 번역하였는데, 순수한 우리말로 된 그 제목은 다음과 같다.

<너 참 불상타>"  (p. 115)

책을 읽다가  '빠~ 앙' 터진다.

김훈 작가가 원고를 쓸 때에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 그리고 또 다른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

작가가 만난 세계적인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

글쓰기 뿐만아니라, 여행, 영화, 사진, 그리고 그림까지 좋아하는  작가이기에 그가 쓴 글은 폭넓은 지식과 상식과 잡식이 모두 겸비되어 있다.

그의 소설인 <검은꽃>을 쓰게 된 동기와 과정, 그리고 취재를 위해 간 여행에서의 이야기.

참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그가 이우일과 함께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라는 책을 낼 정도로 영화에도 관심이 많으니. 책 속에는 영화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함께 살펴 보기도 하고,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그리고 왕가위의 사랑 삼부작이라고 하는 <아비정전>, <화양연화>, <2046>을 함께 분석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책을 처음  쓸 당시인 2005년과는 세월이 많이 흘렀기에 그때의 이야기를 지금 읽으니까 다소 어색한 이야기들도 있다.

    

 '낭독의 발견'이란 내용중에 독일 라이프치히 도서전에서 갔을 때의 이야기를 담아 내용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신간을 출간하게 되면 강연을 주로 하게 되는데, 그당시에 이미 외국에서는 작가들이자신의 작품의 일부를 낭독하는 행사가 많이 열렸다고 한다. 그런 행사를 접하고 그는 이 책 속에,

" 자기 책을 조용히 읽는 작가와 그것을 귀여겨 듣는 독자의 만남을 기대해 본다." (p 225)라고 써 놓았는데,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작가들이 독자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낭독하는 낭독회, 음악과 함께 하는 북 콘서트 등이 많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김영하의 작품만을 골라 읽던 때도 있었는데, 이 책에 소개된 <검은꽃>은 아직 읽지를 못했다.

이제는 그의 책이 나올 때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즐겨 읽게 되는데, 그래도 빠트린 책이 있는 것이다.

<여행자 2007 하이델베르크>처럼 한 권의 책에 에세이, 사진, 소설이 묶여 있듯이, 그의 책은 기존의 틀에 갇혀 있지 않고, 독자들의 감각에 따라 새롭게 구성된다. 

책의 마지막에는 부록처럼 '추억의 사진첩'이 실려 있다. 

 

 

 

 

 

방울이도, 깐돌이도, 그리고 그가 여행지에서 담아 온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2. 퀴즈쇼 - 문학동네/ 2007 : 개정판 / 2010

 

 

 

 

 

 

 

 

 

 

 

 

 

<퀴즈쇼>는 2010년 2월에 개정판이 나왔다.

그런데, 집에 소장하고 있는 <퀴즈쇼>는 2007년 구판이지만 내용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같다.
작가의 글은 퀴즈쇼에 나오는 이민수만큼이나 지적 수준이 높은 지식의 향연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민수는 아는 것이 참 많다는 고시원의 옆방녀의 말에 잡학수준이라고 하지만, 작가의 글은 잡학수준이 아닌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이 돋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이 가진 상상력과 표현력은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역시 김영하니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퀴즈쇼>는 80년대에 태어난 원숭이띠인 스물일곱살 고학력 백수의 성장소설이자 연애소설인 것이다.
스물일곱 살 !!
꿈많은 청춘들, 그런데, 그들의 현주소는 어떤가?
학교, 학원을 쉴 틈없이 드나들면서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를 갔다오고, 졸업을 하지만, 사회는 그리 만만하지 않으니 그들은 졸업과 동시에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이민수는 왕년에 단역배우를 했던 외할머니밑에서 자란 사생아이다. 아버지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엄마도 기억에 없는 청년이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도 다녔고, 유학을 보내준다는 외할머니의 말에 따라 영어학원을 다니던 그에게 외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인생의 큰 고비를 가져다 준다.
외할머니가 남겨놓은 것은 빚더미.
월세 29만원의 창문없는 고시원생활, 그것도 겨우 한 달 밖에 버틸 수 없었던 경제사정.
편의점 알바도 겨우 며칠 버틸 정도이니....
창문없는 음침한 고시원 방에서 그가 찾을 수 있었던 것은 " 현실의 창대신 빌 게이츠의 창,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를 선택" (p62)하게 되는 것이다.
퀴즈방에 클릭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활동.
민수는 자신에게 닥친 일들에 대해서 어떤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세상의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서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그런 청춘이라고 할까.
현실에서는 소외되었지만, 인터넷 퀴즈방에서는 경쟁에 끼는 그런 청년 백수.
컴퓨터 네트워크의 세상에서는 자신의 아바타가 존재하고, 아바타는 나의 실제 모습은 아니지만, 나 자신처럼 행세를 하기에 이민수의 세대들은 그 뒤에 숨어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상의 세상과 만날 때는 누추한 현실을 잊을 수 있기에.
가상의 세상에 빠져서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한 민수의 생활은 퀴즈방에서 아이디 '벽 속의 요정'을 만나게 되고, 그것은 민수의 새로운 사랑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많은 독자들은 <퀴즈쇼>를 읽으면서 작가가 고시원의 생활, 편의점 알바의 생활, 인터넷 퀴즈방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등을 너무도 소상하게 묘사하기에 혹시나 작가도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작가는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들에 대해서 너무도 밀착 취재하여 쓴 것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민수가 이필성을 따라 가게 되는 산 속의 <회사>의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느끼게 해준다.
퀴즈쇼를 대비하여 훈련받는 집단의 이야기.
물론, 그것이 가상의 세계, 허구의 세상이었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지만,
바로 그것이 청춘들의 방황이자, 자아 속의 탈출구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던 청춘들이 그들의 세상으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치열한 경쟁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거운 껍데기를 스스로 벗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그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삶을 사는 청춘들.
가장 희망찬 시기에 가장 암울한 현실에 봉착한 청춘들.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비록 민수가 헌책방의 점원으로 취직을 하지만, 그것은 민수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민수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에 그런 민수에게 그것은 세상을 살아나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
" 부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청춘의 찬란한 빛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기를" 이라는 말을 전한다.
역시 김영하의 작품은 읽는 책마다 그만의 독특한 개성과 신선함이 함께 하는 것이다.

3. 김영하 여행자 도쿄 / 아트북스 / 2008


 

 

 

 

 

 

 

 

 

 

김영하의 여행자 시리즈 1권은 <김영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김영하 ㅣ 아트북스 ㅣ2007>이고, 그 두번 째에 해당하는 책이 <김영하 여행자 도쿄>이다.

이 책들의 특징은 김영하가 각각의 도시에서 여행자로 머물면서 찍은 사진들과 그곳에서 쓴 소설, 그리고 간단한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진 것이다.

작가는 하이델베르크에서는 콘탁스 G1으로, 도쿄에서는 Rollei 35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Rollei 는 요즘 흔히 쓰는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이다. 줌기능도 없고, 렌즈교환도 안되고, 노출, 셔터 스피드는 손으로 맞추어야 하고, 거리는 눈대중으로 맞추어야 하고, 초점도 정확히 잡을 수가 없어서 자칫하면 안개낀 것처럼, 흔들린 것처럼 촛점이 안 맞는 사진이 되기 쉬운 아주 까다로운 카메라이다.

그래도, 김영하가 이 사진기를 들고 도쿄에 간 것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을 좁혀주는 역할을 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였기때문이다.

" 유쾌한 무관심으로 무장한 개인들이 활보하는 번잡하고 화려한 도시에는 어떤 카메라가 어울릴까. 나는 롤라이 35를 골랐다. 유쾌한 무관심이 불쾌한 관심으로 변하기 전에 촬영을 마칠 수 있고 (롤라이 35는  빠르다.(...) 도쿄의 좁은 길과 골목, 작은 카페나 상점에는 40 밀리미터 화각으로 충분했다. " (p. 211) 

 

<김영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에서는 그 책 속의 사진들이 느낌이 좋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김영하 여행자 도쿄>를 통해서  작가가 사진에 대해서 전문가적 수준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김영하 작가 ~~ 사진도 포토그래퍼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니....

 

김영하 작가는 여행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유럽여행이 아니었다면 쓰이지 않았을 작품이고, 언제나 떠나기를 희망하여 길을 떠나고, 그 길 위에서 작품의 소재와 주제를 얻기도 했던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여행자 시리즈 1 - 하이델베르크- 에서는 Short Story 로 < 밀회 >가 소개되었었는데, 여행자 시리즈 2 - 도쿄- 에서는  Short Story 로 <마코토>가 소개된다.

이 두 작품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 김영하 ㅣ 문학동네 ㅣ2010>에 실린 작품들이다.

이번에 다시 읽어도 재미있다. 아니, 그 배경을 알고 읽으니 더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다.

 

 

책의 구성 중의 2 Eyes Wide Shots in Tokyo는 한 권의 사진집으로도 손색이 없는 도쿄의 이모 저모를 담고 있다. 다양한 시각으로 찍은 사진들, 그 어느 포토 그래퍼 못지 않은 발상의 사진들.

" 도시에 대한 무지, 그것이야말로 여행자가 가진 특권이다. 그것을 깨달은 후로는 나는 어느 도시에 가든 그 돗에 사는 사람들의 말을 다 신뢰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앎에 '갇혀' 있다. " ( 책 속의 글 중에서)

그래서 여행자 시리즈는 색다른 매력을 갖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렇게 한 편의 단편소설을 읽기도 하고, 한 도시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감상하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느낀 이야기를 쓴 글들을 읽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린 한 도시을 여행하게 되면 되도록 많은 것을 빠짐없이 보려고 바삐 바삐 움직이지 않던가.

다음에 이 도시에 또 오리라는 기약이 없기에.

그러나, 작가는 다시 그 도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버리지 않는다.

" 한 번의 여행에서 모든 것으 다 보아 버리면 다음 여행이 가난해진다. 언젠가 그 도시에 다시 오고 싶다면 분수에 동전을 던질 게 아니라 볼 것을 남겨 놓아야 한다. " (p. 237)

물론, 작가의 말도 맞지만, 우리가 또 다시 그 도시를 찾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어도 다 보고 가리라 마음을 먹는 것이 우리 여행자의 맘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던 내 모습도 그런 마음에서 나올 것이 아니었던가.

김영하 작가의 눈에 비친 도쿄가 그의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이 책으로 옮겨 지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또다른 모습의 도쿄를 감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글들과 함께.

 

4.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문학동네 / 2010

 

 


 

 

 

 

 

 

 

 

 

 

 

6 년만에 오빠가 돌아왔다. 단편소설 '오빠가 돌아왔다'이후에 새로운 단편소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로~~~ 제목부터 왜 이리도 긴 여운을 남기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는 작가가 청탁을 받아서 쓴 글들이 아닌 자유롭게 그동안 썼던 13편의 단편들이 담겨져 있다.  낯설지 않고 익숙해진 그의 글들이 빠르게 머리속으로,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작품속의 인물들에게서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색다른 모습으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로봇'에서의 버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수경.지하철 속의 옆자리 남자의 축축한 우산이 종아리를 건드리는 상황에서 중얼거린다.  

 

'삶이란 별게 아니다. 젖은 우산의 살갗이 달라붙어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p9)

'인생은 젖은 우산을 견디는 것' (p14)

'어찌하다 누군가의/ 한 게임이 되었을까 (p15)

 그녀에게 찾아온 로봇과의 사랑. '로봇 3원칙'을 어기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 그건 불가능한 원칙이었기에.....

'악어'는 동화같기도 하고, 전설같기도 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을까?  작가 자신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는 있는 것일까? 아니, 당근... 알 리가 없지.

'여행'에서의 수진과 한선에게 나타난 짐승같은 몰골의 어부의 출현. 기막힌 반전. 예상치도 못한 설정.

언젠가 읽었던 작품인듯한.... '밀회' 그의 작품중에 특이하게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그가 찍은 사진들이 함께 어우러졌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에 나왔던 소설인 것이다. 그가 경험했던 아름다운 하이델베르크를 소재로 썼던 단편소설. 낯선 여행지에서의 만남 '우연을 운명으로 착각하면 안돼.'(p97) 하이델베르크에서 만난 그들의 욕망은, 그들의 진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p92), 그녀의 남편이 사고로 그녀를 가짜 아내로 생각하는 것처럼, 두 남녀의 사랑도 가짜는 아니었을까... 가짜처럼 시작된 '죽음'도... 남자는 자신의 죽음의 순간에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며 하늘로 올라간다.

 

나는 열 두살의 그 해파리처럼 투명한 육신으로 흐느적거리며 허공을 부유합니다. 나의 눈은 맑고 몸은 유연하며 정신은 명정합니다. 이 높은 곳에서 나는 오래된 도시를 내려다 봅니다. 양갱처럼 검은 네카어 강에는 오렌지빛 석양이 깔리고 있습니다. 삶을 생각하기에 좋은 도시는 바로 이런 곳입니다. 나는 어쩐지 다음 생에도 이 도시에 오게 될 것만 같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안녕.(p101~102)

'명예살인'은 달랑 18줄의 이야기. 간결하지만 냉소적인 비판의 말이 담긴 짧지만 여운은 긴 작품이다.  

이렇게 짤막한 글은 '바다이야기'에서도 아주 짧은 글들이지만 그냥 재미있다. 어떤 TV드라마를 보다가 잠깐 스쳐간 단상이거나, 아니면 해변가에서 보게 된 광경을 썼거나 한 것같은.

이처럼 김영하의 머리 속은 소설의 소재들로 꽉 차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니면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들이 현실의 모습 그대로. 또는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가미되어서 술~~ 술~~ 풀려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는 그냥 스쳐 지나칠 상황이나 사물들을 섬세하고 예리하게  관찰하고 보편적인 문장인 아닌 그만의 특유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작품을 읽는 중에 느낄 수 있는 묘미가 되는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내 마음에 조용히 깃든 이 내밀한 유쾌가 문장이라는 매개를 통해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기를 희망해 본다. (작가의 말 중에서, P271)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고 해도 작가와 독자가 같은 호흡을 하지 않는다면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영하' 작가는 쉽게 읽힐 수 있는 글이지만, 그 작품을 읽고 나면 긴 여운이 남기에. 그리고, 젊은 감각으로 다가오기에 많은 독자들이 그의 작품들을 차곡차곡 읽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양한 인물들과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있는 이 책의 작품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 그자체인 것이다.

 

5.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문학동네 / 2012

 

 

 

 

 

 

 

 

 

 

 

 

 

 

김영하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 문학동네, 2010>가 단편 모음집인데 반하여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작가가 5년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이다.

 

그래서 예약판매를 통하여 두 권의 미니북을 함께 받을 수 있었다. 미니북은 <오빠가 돌아왔다> 와 <엘리베이터에 끼인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였는데, 50 페이지 정도의 단 한 편의 작품만이 실린 미니북이었다.

이전에 파울로 코엘료의 <알레프> 예약판매때의 미니북 <순례자>와 <연금술사>에 비하면 '좀 아니다 '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그동안 작가가 쓴 소설인 <검은 꽃>, <퀴즈쇼>와 함께 '고아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의 내용이 어두울 것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슬픈 사연으로 가득찬 제이.

그는 십대 미혼모가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출산하는 순간 죽이려는 것을 경찰에게 발견되면서, 돼지엄마라는 사람에 의해서 길러지게 된다. 그러나, 생활이 여의치가 않은 돼지엄마는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는 집을 빠져 나가면서 제이를 남겨두고 간다.

같은 동네에 살던 동규는 어릴 적에 원격 조정으로 움직이는 모형 헬리콥터가 자신에게 달겨드는 순간 패닉상태에 빠지면서 함구증에 걸리게 된다.

제이와 동규는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친구였으나, 제이가 재개발구역에서 몰래 숨어 살다가 시설로 붙잡혀 가면서 헤어지게 된다.

제이가 시설에서 도망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거치게 되는 거리의 아이들과의 생활.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으면서 제이와 가출 소년소녀들의 동거 장면의 묘사는 차라리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십 대 청소년들의 방황, 가출, 가출후의 혼숙, 난교,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자신들의 행동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

" 여기는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야생이라는 것을" (p. 98)

거리의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 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청소년들.

지나친 부모의 간섭에 힘겨워하고, 과도한 학업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오늘날의 청소년들.

그러나, 그들에 가려서 안 보이는 곳에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나오는 거리의 아이들인 제이, 동규, 후드티, 야구모자, 금희, 한나, 목란 등의 아이들이 처첨한 모습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는내내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분노가 치밀어 올 정도였다.

아이들의 잘못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른들의 잘못이 너무도 크기에.

이런 아이들의 삶은 대를 이어서 이런 아이들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나사건이후 제이는 수련을 쌓은 듯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고, 그는 몸에 밴 자신감과 깊은 인상을 남겨주기에 폭주족의 우두머리가 되고, 동규 역시 가정의 불화로 인하여 가출을 하게 되면서, 다시 제이와 동규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 너희들은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로 인해 아프다. 아이들은 제이가 자기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존재라고 느꼈고, 그의 기이한 생활태도에 외경심을 품었다. " (p. 141)

이 소설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부분이 특색이 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작업 과정을 이야기로 들려주고는 있는데, 어느 부분을 읽을 때까지는 작가의 실제 이야기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어 가면서 이 부분이 소설 속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장치임을 느끼게 된다.

어디까지가 실세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적인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부분을 통해서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나 작가의 의도를 눈여겨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지영의 <도가니>가 출간당시보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영화화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것처럼,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도 이 소설을 읽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너무도 많은 문제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 누군가는 이런 청소년들의 문제를 그대로 덮지 말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차선을 모두 차지하고 굉음을 울리면서 내달리는 아이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하늘을 날아 오를 듯이 질주하는 아이들.

그들이 이 세상을 향해서 내뿜는 절망의 이야기들을 귀기울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신나게 질주하는 오토바이의 곡예는 그들의 아픔의 몸부림이 아닐까.

강남 고속 터미널 화장실에서 태어나 십 대 어미에게 죽음을 당하기 직전에 버림을 받아야만 했던 제이.

제이는 우리 사회의 거리 곳곳에서 내 옆을 스쳐가는 어떤 아이일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중간 중간 불쾌하리만큼 충격적인 장면들을 그냥 덮어버리기에는 가슴이 멍멍해지는 것이다.

 

이 땅에서 소외된 아이들. 아직 꽃봉오리도 피지 못했건만, 망가져 버린 아이들.

그 아이들의 목소리.

작가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독자들의 귀에도 그 목소리가 들렸으면 한다.

그러나, 어떤 해결책도 없는 우리들이 너무도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6. 살인자의 기억법 / 문학동네 /2013

 

 

 

 

 

 

 

 

 

 

 

 

김영하는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감각을 가진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뚜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읽은 후에 마음 속에 남는 것들이 많다.

김영하는 그의 대표작인 <빛의 제국>을 출간한 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해설 중에서, p. 153)

내가 김영하의 대표작인  <빛의 제국>을 아직 읽지 않았기에 그 의미를 알지는 못하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은 후의 내 느낌이 바로 그랬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빽빽한 문장들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간결하면서도 압축된 문장들이 때론 듬성듬성 한 페이지 속에 담겨 있기도 한 149 페이지에 달하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이다. 책속의 내용만을 따라 잡아 읽는다면, 아주 쉽게 읽히는 그런 소설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70대 노인이 한때 연쇄 살인을 하였던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김병수는 16살 때에 최초의 살인을 저지른다.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살인의 시작이다. 그후에는 어떤 뚜렷한 원한 관계가 있어서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의 동기라고 할 수도 없는 이유때문에 30년동안 지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이미 공소시효가 다 지난 사건들이 되었다.

" 치매는 늙은 연쇄살인범에게 인생이 보매는 짓궂은 농담이다, 아니 몰래 카메라이다. 깜짝 놀랐지? 미안, 그냥 장난이었어." (p. 35)

그런 연쇄 살인범인 그가 점점 사라져 가는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고 매일 매일 기억이 존재할 때에는 메모를 해둔다. 그건 과거의 살인범인 자신이 현재의 살인범이라고 추정되는 자로부터  자신의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다.

끔찍한 살인사건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살인범의 이야기가 나온다면 피로 범벅이 되는 잔인한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으나, 이 이야기는 유머와 위트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 어쨌든 나는 그뒤로 시인으로 불렸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 (p. 38)

그러나 이런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뒤엎어 버리는 것은 소설의  끝부분에서 나타나는 대반전이다.

'역시 김영하 작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담겨 있었던 계획된 치밀한 구성이 이 소설을 돋보이게 한다.

왜 작가가 '오이디프스'의 이야기를 끄집어 냈던가를, 그리고 김병수가 즐겨 읽던 반야심경의 구절들이 왜 담겨 있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 그러므로 공(空)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도 없고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영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 (p. 148 - 반야심경의 구절)

 우리 주변의 허상들에 매달리는 인간의 어리석음, 그 모든 것은 망상이었던가....

김영하는 삶과 죽음, 그리고 시간과 악에 대한 통찰을 <살인자의 기억법>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김영하는 '작가의 말'을 통해 자신이 습작을 하던 시절에 아버지가 묵묵히 그를 격려해 주었던 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아버지는 현재 투병중이고, 작가는 '꽤 괜찮은 작가'가 되는 날을 아버지에게 보셨으면 하는 바람을 적어 놓았다. 이미 독자인 나에게는 '꽤 괜찮은 작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말없는 격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이번에 출간된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서 김영하 작가의 책 중에 리뷰를 남겨 두었던 책들을 한데 모아 보았다. 물론, 여기에 소개된 책들 말고도 김영하 작가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몇 권 더 읽었지만, 아쉽게도 그 책들에 대한 리뷰를 쓰지 않았기에 5권의 책들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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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8-18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살인자의 기억법 읽고 김영하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님 글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난번 숭실대(?)에서 열린 김영하 낭독회 참 좋았어요.
퀴즈쇼 읽어보고 싶네요~~~

라일락 2013-08-18 12:45   좋아요 0 | URL
김영하 작가의 낭독회도 가 보고 싶네요. 책을 읽는 것과 낭독으로 듣는 것은 또다른 느낌이 들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