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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평점 :
<너를 봤어>의 작가 김려령을 '완득이의 작가'라고 말한다. 나 역시 '김려령'의 작품을 <완득이/ 김려령 ㅣ 창비 ㅣ2008>를 통해서 처음 읽었다.
<완득이>는 청소년 소설, 성장소설로 그런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문제학생이 바로 완득이다. 난장이 아빠와 이혼한 베트남 엄마를 둔 옥탑방에 사는 완득이는 공부는 못하지만 싸움만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런 완득이 보다 더 문제스러운 선생님, 왕따 선생님인 똥주 선생님의 등장은 이 소설을 신선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거칠고 험한 말이 쏟아져 나오지만, 누구 보다도 똥주의 비행을 눈감아 주고 은연중에 정을 느끼게 하는 똥주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그저 그런 성장소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청소년들의 가정생활이나 학교생활을 잘 파악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청소년들이 자신의 학교 생활, 가정생활과 이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불우한 가정형편 속에서 생활하는 청소년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그래서 <완득이>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소설이다.
그후에 읽은 작품인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김려령 글, 장경혜 그림 ㅣ 문학동네어린이 ㅣ2011>>는 <완득이>보다는 주인공의 연령이 더 낮아진 초등학생들을 위한 그림동화인데, 이야기의 소재, 구성, 전개 등이 깔끔하면서도 감동적이다.
김려령은 어릴 적에 증조 할머니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기에 그녀가 작품을 쓰는데, 그런 점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또다른 장편소설인
<가시고백/ 김려령 ㅣ비룡소 ㅣ2012>>의 작가의 말을 보면,
" 내 삶의 어느 부분은 싹둑 잘라내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 내가 만난 누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행동이 싫었고, 어떤 사람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살아 보니 그런 일을 겪어서 참 다행이구나 싶은 겁니다. 생의 결이 추억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 (가시고백 중에서, p. 288)
역시, <가시고백>도 작가의 삶 속에서 녹아 들었던 어떤 부분들이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가시고백>은 주인공인 해일이 물건을 훔친 후에 써 놓았던 일기는 '나는 도둑이다'라는 독백으로, 자신이 도둑질을 하게 된 연유가 적혀 있는 듯하지만, 그 독백이 독백이 아닌 고백이 되는 과정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자신의 허물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을 수 있을 때에 '독백'은 '독백'이 아닌 '고백'이 될 수 있는 것이니까.
이 소설 속의 청소년들이 갖고 있는 아픔은 혼자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믿어주고 보살펴주고, 아껴줄 때에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야 마음 속에 박힌 가시를 뽑아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가시를 뽑아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친구들에 대한 작은 관심과 신뢰이다.
이렇게 김려령의 소설 3편을 되짚어 보는 것은, 이번에 읽게 된 <너를 봤어>는 그동안 내가 읽었던 김려령의 작품들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아니, 소설을 읽은 후에 그 내용을 곱씹어 보면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들의 마음 속에는 아픔이, 그 아픔의 상처가 깊이 파여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 너를 봤어>는 김려령이 쓴 첫 성인소설이다.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 19금 소설? 내숭떨지 않는 사랑이야기" (인터뷰 기사 중에서)라고 말한다.
<너를 봤어>는 지금까지 읽었던 김려령의 소설과는 판이하게 다른 점들이 눈에 띈다.
'성과 폭력'이 소설 속의 여기 저기 박혀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정수현은 겉으로 보기에는 순탄한 삶을 살아 온 듯 보인다. 무난히 등단하여 중견 소설가로 자리매김을 했고, 베스트셀로 작가인 아내를 두고 있으니...
같은 길을 가는 부부이지만, 그들의 결혼은 자신만이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오만으로 시작된 결혼이었다.
" 내 사랑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나를 가졌고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만 알며 됐다. 부부면서 아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 나는 결혼 삼년 만에 이혼을 원했다. 잘못된 결혼이었다. 엉키고 엉켜 버리는 게 최선인 원고처럼 아내는 나를 버리고 나는 아내를 버려야 했다. " (p. 109)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류였음을 정정이라도 하듯이 아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아내의 자살도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자살이라기 보다는 자살 방조, 자살을 감지하고도 묵인한 흔적이 있다.
" 사랑은 흥정이 아닌, 삶의 모습으로 얻는 것이다. " (p. 64)
아내의 자살과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정수현의 불우한 성장기이다.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어머니와 형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은 형은 동생인 수현에게 폭력을 가한다.
그런 악순환 속에서 수현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데, 왜 아버지는 수현을 때리지 않았을까?
품행이 올바르지 못했던 어머니로 인하여 그의 출생이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던 어느날, 저수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 났을까?
아버지와 형의 폭력, 그들의 죽음은 수현의 트라우마가 되어 사랑을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에게도 사랑이 찾아 온다. 후배작가인 서영재와의 사랑.
가족으로부터 받아 보지 못한 사랑때문에 결코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그에게 풋풋하고 설레이는 사랑이 찾아온다.
이 소설 속에는 출판계 이야기가 중요한 배경이 된다. 수현, 아내, 영재, 도하 등이 작가이고, 출판 일을 하기에 그런 부분들이 작가의 경험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동, 청소년 소설을 주로 쓰던 작가의 변신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가정의 폭력이 가족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이다. 부모에게 맞고 자란 아이들이 크면 폭력적으로 변하여 다시 그들의 자녀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고 한다.
끔찍하게 싫었던 기억이 뇌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은연중에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되니....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폭력 때문에 그 연결고리를 끊고자 하는 살인도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수현이 우발적으로 일으킨 사건들은 그가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했던 짐이었다.
" 아버지가 자식 손에 죽고, 형이 동생 손에 죽었다. " (p.115)
소설이나 행동발달서들을 읽어 보아도 어릴 적의 충격적인 사건들은 무의식 세계에 감추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사람의 인격과 자의식이 되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것은 가족간의 화목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만히 보면 참 예쁘게 살 수 있는 사람인데,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이나 어떤 행위들로 힘들어지고 망가지는 모습을 볼 때 안쓰러웠어요. 한 사람만 놓고 보면, 건드리지 않으면 자기 할 일 하면서 잘 살 사람인데 옆에서 건드려서 망쳐버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소설 속 수현도 잘 살려고 애썼던 사람인데 예기치 않게, 의도적이든 아니든 우발적인 사건을 겪고 그것을 평생 지고 살아가게 돼요. 죄의식에 짓눌러 싫어도 싫다는 말을 못하고. 자신을 끔찍하게 만든 현장을 봤을 때, 그게 본인에게 나온 악의인지, 누구한테 씌어서 한 행동인지,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작가의 인터뷰 기사 중에서)
김려령은 지금까지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로 독자들에게 알려졌는데, <너를 봤어>를 통해서 성인소설도 쓰는 작가가 되었다. 그만큼 독자들의 계층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완득이의 작가'로만 김려령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너를 봤어>를 읽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