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 흔적과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
오영욱 글.그림.사진 / 페이퍼스토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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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에 나온 '깜삐돌리오 언덕'이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오영욱 ㅣ 샘터 ㅣ 2005>이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깜삐돌리오 언덕, 그곳이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은 여행 에세이에서 볼 수 있는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는 책이다.

스케치 그림과 카툰이 조합을 이루는 여행기인데,  책의 그림체도 흥미로웠지만, 건축가인 오영욱이 쓴 글들은 감성이 담겨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얼마전에 유명 연예인과 관련된 기사가 나오면서 '오기사'라는 필명을 듣게 되었다.

그때서야 생각난 건축가 오영욱.

<깜빠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를 읽었던 생각과 함께 그의 저서들을 검색해 보았다. 그가 스페인에서 체류했던 적이 있기에 쓴 책인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 오영욱 ㅣ 예담 ㅣ 2006>도 관심이 갔지만, 그래도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 대한 책이 더 관심이 갔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이다.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보다도 더 특색이 있는 책이다.  문장력이 탄탄하고 내용이 흥미로운 글도 좋지만, 스케치 형식의 그림과 카툰, 그리고 이번에는 사진까지의 조합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 해준다.

그는 " 특히 지도에 나타난 길의 자취를 훑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길의 모습에는 자연과 문명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그래서 세계의 각 나라를 여행하며 잠시 머무를 곳을 결정할 때, 여행 가이드 북에 첨부된 도시의 지도에 의존하는 일이 많았다. (...) 그런데 외국을 돌며 여행을 할 때는 열심히 들여다보게 되는 도시의 지도를 막상 서울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잘 보지 않게 된다. 지리에 익숙한 탓이다. 아마 지하철을 기다리며 역마다 붙은 서울 전도를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지도읽기가 아닐까 싶다. " (p. 24)

언제부턴가 나는 지도보기를 좋아하던 버릇에서 어떤 도시의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건축물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그 도시도 자연스럽게 알아 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의 거리를 거닐면서도 건축물이나 조형물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교보빌딩은 누가 지었는지, 63빌딩은 왜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지, 가로수 길의 카페들은 어떻게 조성되었는지, 건축물 앞에 세워진 조형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건물에 붙어 있는 킹콩은 어떻게 그곳에 있게 되었는지....

그 모든 것이 궁금했고, 서울에 관한 책들을 읽다 보면 그런 궁금증이 풀리기도 했다.

바로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는 나의 이런 궁금증을 많이 해소시켜 준다. 오기사의 깊이있는 건축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지기에.

이 책의 저자인 오기사는 서울을 그만의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거기엔 8가지의 키워드가 적용된다.

흔적, 장소, 집합, 기호, 상징, 미학, 기억, 상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서울은 거대도시로 발전했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무분별한 도시 개발이 이루어진 곳들도 있고, 서울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이 들어 서 있기도 하다.

그런 이야기에서부터 자신이 참여했던 안국동 한옥 프로젝트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렇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내용들로 꽉 차 있다.

건축가이기에 서울을 보고서 그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글들이 흥미롭기도 하고, 스케치를 보면서 '그림도 잘 그리는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되고, 빨간 모자를 쓴 자신의 담은 카툰을 보면서 위트를 만끽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를 읽게 되면서 오영욱의 다른 책들이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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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 번은 가고 싶은 성지 여행 세계여행사전 3
내셔널 지오그래픽 편집부 엮음, 이선희.이혜경.김귀숙 옮김 / 터치아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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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은 꼭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와 관련된 성지를 순례하기를 희망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읽게 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꼭 성지를 여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쓰여진 책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선정한 지구상에 성스러운 곳 500 곳이 소개되는데, 그곳들은 반드시 종교와 관련된 곳은 아니다.

지구상에서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곳들, 즉 '우리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이상향과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에 대한 이야기' ( 책 속의 글 중에서)이 책 속에 담겨져 있다.

그동안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지에 관한 책을 많이 접해 왔기에 이 책에 소개되는 곳들이 낯익은 곳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까지 접해 보지 못했던 곳들이 많이 소개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전승되어 온 선현들의 지혜가 깃들여 있는 곳,

멀고 먼 오지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경이로운 곳,

지구상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독특하고 특별한 풍경,

 

문명과 관련된 곳,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곳,

마음을 변화시키고 감동을 주는 곳,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

여러 종교의 성지이거나 그와 관련된 건축물이 있는 곳 등이 이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곳들이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1. 성스러운 풍경

2. 거석문화의 수수께끼

3. 신앙의 요람

4. 웅장한 폐허

5. 일상 속의 폐허

6. 성소

7. 순례길

8. 의식과 축제

9. 추모여행

10. 영적 재충전을 위한 명상여행

'성지여행'이라는 책제목과는 달리 종교와 무관한 곳들도 많이 있고, 여행자들이 주로 많이 찾는 곳들도 있지만, 전혀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는 곳들도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특히, 각 곳에 대한 지역 소개가 있은 후에는

' when to go', ' planning;, ' website'가 있어서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이 책 속에 소개되는 지역에 대한 사진들은 전세계에서 일하는 수백여 명의 내셔널 지오그래힉 사진가들이 촬영한 사진들이니, 책 내용 뿐만아니라 사진을 보는 재미도 있다.

 

 

 

어떻게 그런 풍경이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기도 하고, 역사학자들도 그 지역에  대한 의미나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없는 곳들도 있으니 수수께끼같은 곳들도 지구상에는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세계 Top 10을 소개하는 페이지도 있어서 신성한 나무, 성스러운 산, 우물과 샘, 암각화 유적지, 거대한 조각상, 신성한 서책, 신성한 음악, 모자이크 실내장식, 신성한 동굴,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

이와같은 것들이 세계 Top10 에 해당하는 것들을 알려주기에 폭넓은 상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책은 역사와 지리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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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당신 - 알츠하이머와 함께한 어느 노부부의 아름다운 마무리
올리비아 에임스 호블리젤 지음, 김정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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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현대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병, 끔찍한 재앙이 찾아 왔다고 해야 하는 병.

누군든 이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병이 알츠하이머 병이다. 건강하다고, 학식이 많다고, 생각을 많이 한다고 안 걸리는 병 또한 아니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홉은 쾌활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미국인이다. 

홉이 72살이 되던 어느날, 그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된다. 홉과 그의 아내인 올리비아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 앞에서 이걸 절망이 아닌 두 사람에게 찾아온 운명, 선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절망을 헤쳐나간다.

어떤 일이 그들에게 닥쳐 왔느냐 (그들의 의지로 할 수없는 일)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그들이 할 수 있는 일)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알츠하이머는 병의 특성상, 상황이 점점 나빠질 수 밖에 없기에 그 과정마다 그들이 어떻게 대처하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책 속에 실려 있다.

조금씩 잊혀진다는 것, 그건 삶의 마지막 장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죽음을 말하는 것이기에 그들의 마음은 아프지만 그들은 그것까지도 삶이 주는 기회이자 경이로운 은총, 숨겨진 축복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이처럼 홉과 올리비아가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불교와 명상을 통해서 그들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 부부의 첫 번째 선불교 스승이 우리나라의 숭산 스님인데, 불교에서의 선문답을 통해서 '오직 모르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며, '내려놓기'의 의미도 간파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은 홉과 올리비아가 약 6년간에 걸쳐서 알츠하이머에 대처하는 이야기가 섬세하고도 간결한 묘사와 성찰을 담은 글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시간이 경과하면서 홉이 느끼게 되는 무엇인가 일상 속에서 자꾸 빠져 나가는 듯한 것들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보살펴 주어야 하느냐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다.

"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리 자신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 (p.229)

책 속의 내용 중에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러 간 홉은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동안 익숙하게 강의했던 주제였건만.

들고 있던 메모 조차도 어떤 뜻인지 알 수 없는 상형문자에 불과하니, 그 때의 암담함은 어떠하였겠는가.

다행히도 강의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명상의 동작들은 생각이 나서, 자신의 병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고, 그 동작들을 가르쳤던 경험도 있다. 

언어유희를 즐기는 홉은 그의 '단어창고'가 차츰 차츰 비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어떤 날은 잠시 전까지도 멀쩡했던 언어들이 갑자기 모두 사라져 버리고, 무의미한 음절의 나열로 변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 그 위기를 얼마 후에 넘기기는 하지만, 그의 지적 능력은 이렇게 사라져 가고, 이 과정은 그들에게 충격과 고통의 연속이 된다.

일상과 비일상, 감각과 무감각 사이를 오가면 쉴새없이 뒤바뀌는 현실에서 사는 것이 알츠하이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점점 그 강도가 강해지는 상실을 경험하면서 환자와 보호자가 느껴야 하는 상실감,

그래도 홉은 알츠하이머 단계 중에 중후반 무렵에 세상을 떠난다.

" 가장 힘들고 끔찍한 시기에는 교훈과 숨겨진 보물들이 있다. " ( 책 속의 글 중에서)

핵가족화가 된 우리의 가정에서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된다면, 보호자가 어떤 방법으로 환자를 돌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에 관련된 내용만 간추려서 정리해 놓았다.

알츠하이머 앞에서 그들의 명상 수승인 티티의 말처럼, " 그 병을 축복으로 여기세요" 하는 말을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죽음이란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어둠 속에서 절망 대신 알츠하이머를 두 사람에게 찾아온 운명으로 받아들인 홉과 올리비아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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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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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와 같은 세계적인 소설로 만나 보았던 헤르만 헤세.

그런 헤르만 헤세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에세이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만약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그의 진솔한 마음의 세계를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헤세가 31세에서 77세에 이르기까지 그의 정원과 관련하여 쓴 글들을 한데 모아 놓은 책이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헤세에게 있어서 정원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여 볼 수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 어머니는 집 뒤의 가파른 땅에 작은 화단을 만들어 꽃을 심어 놓고는 헤세에게 그 정원을 돌보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정원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추억의 시작이다.

그후 헤세는 어떤 곳에 살든지, 가는 곳 마다 정원을 만들었다. 해마다 땅을 파고 나무를 심고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나무와 꽃을 가꾸고, 열매를 수확하기도 했다.

헤세에게 2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낯설고 유쾌하지 않은' 것이었기에 망명 상태에 해당하는 생활을 했는데, 그때에는 사람들과의 사회적 교류도 끊고 오로지 정원을 가꾸면서 계절마다 바뀌는 정원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나누었다.

훗날 이런 모든 것을 생각해 볼 때에 그에게 정원은 자신을 치유하는 힘을 주는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책 속에는 정원에서 일하는 헤세의 사진과 그가 직접 그린 수채화 여러 점이 소개된다. 그에게 화가로서도 손색이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

목련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실린 여름 목련나무에 대한 글은 그의 섬세한 관찰력은 목련꽃이 피고 질 때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목련꽃이 필 때부너 질 때까지의 모습을 촬영해 놓은 동영상을 보는 것처럼.
" 꽃은 대개 이른 아침에 창백한 녹색을  띤 꽃봉오리로 부터 피어난다. 그것은 순수한 백생이다. 마법 속에서 나타난 듯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하늘거린다. 마치 하늘을 받치는 거대한 아틀라스의 하얀 기둥처럼 빛난다. 그리고 어둡게 반짝이는 강인한 상록수 입사귀는 하루 동안 젊음을 간진한 채 찬연히 빛나며 하늘거린다. 그런 다음 꽃잎은 조용히 색이 바래기 시작한다. 가장자리가 노랗게 변해가면서 형태를 잃어간다. '피로에 지쳐 굴복해간다'라는 감동적인 표현이 잘 어울릴 만큼 늙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모든 노쇠현상도 겨우 하루밖에 안 걸린다. 하루가 지나고 나면 하얀 꽃송이는 이미 색이 바래 연한 계피 색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어제만 해도 아틀라스의 기둥처럼 단단했던 꽃잎들이, 오늘은 마치 섬세하고 부드러운 천연가죽처럼 힘없이 늘어진다. " (p.p. 53~54)

여름 목련나무(북쪽 지방의 봄 목련나무와 혼동하지 말라고 한다)와 난쟁이 분재의 대립되는 두 그루의 나무는 각 나무의 특징과 풍기는 느낌마저 다른데, 그의 섬세한 표현이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가지게 한다.

헤세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를 가장 사랑했다고 한다. 바로 요즘이 아닐까. 그만큼 정원이 풍성해지는 때이니, 그에게 기억 속의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리라.

정원에서 가장 오래된 복숭아나무가 며칠만 견디어 냈다면 '분홍빛으로 된 봄의 화관을 피웠'을텐데', 그만 나무가 가지가 꺾이고 부러져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되니 우울할 수 밖에....

" 내 소중했던 복숭아 나무여! 하지만 너는 적어도 품위있고 자연스럽게 온당한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너는 더는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버텼으며, 거대한 적이 네 가지를 비틀 때까지 반항했다. 결국 너는 굴복하고 쓰러져 뿌리가 뽑히고 말았지만 그래도 너는 공중 폭격을 받아 산산히 부서지진 않았다. 악마처럼 독한 산(酸)으로 태워지지도 않았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처럼 고향 땅에서 뿌리가 뽑힌 채 피를 흘리며 고향을 등지고 다시 낯선 땅에 임시로 심어졌다가 다시 짐을 싸는 실향민이 되는 운명을 겪지도 않았다. 너는 네 주변에 일어나는 몰락, 파괴, 전쟁, 수치를 겪으면서 비참하게 죽어가지 않아도 되었다.너는 나무가 갖는 가장 평범한 숙명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행복하였으리라. 너는 우리보다 더 멋있고 아름답게 나이 들었고 기품있게 죽어갔다. 나이가 들어서도 독으로 오염된 비참한 세상에 저항해야 하는 인간보다, 썩은 내 진동하는 시궁창 같은 세상에서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매일 투정해야 하는 인간보다. " (p.p. 161~162)

아름다운 정원 속의 모습을 영롱하게 표현하던 헤세의 이같은 글은 세상을 향해서 그가 내뺃고 싶었던 함성이 아닐까. 전쟁 중에 그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 복숭아 나무의 죽음을 통해서 세상에 울려퍼지는 듯하다.

이 책의 해설제목이 '전쟁과 폭력, 비인간화에 대항하는 헤세의 정원'인 것처럼, 이 책은 헤세가 전쟁 중에 망명생활을 하면서까지 '전쟁, 폭력, 비인간화'에 동조할 수 없었던 그의 사상이 담긴 책이기도 하다. 물론, 그 모든 것은 그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이고.

정원 속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는 모습의 헤르만 헤세의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헤세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정원의 모습을 담은 수채화들은 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세련되고 섬세한 글솜씨는 그의 소설 속에서 보다 더 정서적인 글들이기에 대문호의 문장에 매료되기도 하였다.

소설로만 접하던 헤르만 헤세가 아닌 새로운 모습의 헤르만 헤세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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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킴 데 포사다 지음, 이의수 옮김 / 인사이트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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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이야기>와 <바보 빅터>의 작가인 '호이킴 데 포사다'가 이번에도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 아주 단순하지만 매우 의미심장하지 않니? 물은 100도에서 끓어 오른다는 게?  단 1도가 부족하면 안 돼, 다만, 순수한 물이어야만 하지" (p. 101)

99도의 물은 결코 끓을 수 없다. 단 1도가 부족하기에....

17살 올리버는 7살 때에 자전거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여러 차례의 수술을 거쳐 겨우 목발을 짚지 않고 걸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1km이상을 걷게 되면 목발을 짚어야 한다.

그 사고 이후, 올리버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신경이 쓰여서 자신감을 잃고 은둔형 아이가 된다.

어떤 아이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노틀담의 꼽추>의 주인공인 '콰지모도'라고 놀리기도 한다.

이런 올리버에게 인디언 혈통을 가진 필란이 그에게 용기를 준다. 올리버에게 두 다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 다리를 잃지 않았으니, 다행인 일이며, 지금 이순간 멋진 자연과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일깨워준다.

" 근본적으로 행복과 불행은 그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작은 것도 커지고, 큰 것도 작아진다. (p. 29)

그렇다고 필란의 말에 올리버의 마음이 활짝 열리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수술을 거치면서 마음이 거칠대로 거칠어졌으니까.

그를 놀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에게 살며시 손을 내밀고 용기를 주는 아이들도 있다.

줄리엣, 앤드류, 그리고 오웬 선생님.

줄리엣과 앤드류에게서 처음으로 '친구'라는 말을 듣게 되고, 오웬 선생님의 음악 시간에는 처음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그가 부르는 노래는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지금까지 올리버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재능은 음악적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니.

올리버는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서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면서 대학진학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오웬 선생님의 권유로 '아메피칸 유니버시티 송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된다.

미국 각 지역에서 예선을 걸쳐서 뉴욕에서 결승전을 갖는 페스티벌 최종 결선에 합격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 결과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1등을 했으면 어떻고, 순위에 들지 못했으면 어떻겠는가.

올리버는 끔찍한 사고, 아픈 기억, 아버지의 고뇌에 찬 얼굴, 어머니의 눈물에 힘겨워 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 갈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보다 더 희망찬 일이 있겠는가?

" 올리버, 이제 너의  꿈을 펼치렴, 세상을 향해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렴." (p. 159)

우리 인생에 있어서의 99도와 100도는 겨우 1도 차이이지만, 그 결과는 물이 끓을 수 있느냐, 물이 끓을 수 없느냐 와 같이 큰 차이를 가져다 준다.

1도를 더 높여 펄펄 끓기 위해서는 아픔이  따른다.

  
단 1도는 성공과 실패, 꿈과 좌절, 성취와 포기, 열정과 나태를 좌우한다.

올리버가 꼭꼭 숨겨 놓고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목발.

우리 마음 속에는 올리버의 목발처럼 감추고 싶은 목발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이 책은 200 페이지가 채 안 되는 짧은 이야기이지만, 책 속에 담긴 감동은 그 어떤 책 보다 더 깊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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