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작가는 올해로 등단 20년이 된다. 1997년에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인 <새의 선물>이나 1996년작인
<타인에게 말걸기>, 2000년작인 <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2005년작인 <비밀과 거짓말 등은
10년~20년 전에 읽은 책이어서 그 책의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비교적 최근에 읽은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그리고 산문집인 <생각의 일요일>은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나는 은희경이 신작을 발표할 때 마다 호기심에 꼭 작가의 책을 읽게 된다.
이번에 은희경은 다섯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소설집에는 6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제목도 길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생각하기 귀찮아지는
표제작이자 책 제목인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나의 인생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 친구의
인생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런 이야기이다.
아니, 이 단편소설 뿐만 아니라 6편의 단편소설이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 아니면 누군가가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지나간 어떤 시간의 흔적들을 쫒아가는 이야기들이다.
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다. 6편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장소가 살짝 겹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고, 다른 단편소설에 나온 인물이 또 다른
단편소설에 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정말로, 이 6편의 소설은 연작소설처럼 이렇게 저렇게 겹치고, 에피소드와 모티브가
교차한단다.
여섯 편의 소설들 전체를 아우르는 소설이 마지막 작품인 <금성녀>이니, 이 소설집을 '눈송이 연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표제작이자 첫 번째 실린 <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남쪽 해안가 출신인 19살 안나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그녀의 친구인 루시아와 요한이라는 남자와의 관계가 그려진다.
안나는 소극적인 성격에 춥고 누추한 느낌이라면, 루시아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서 안나와는 상반되는 성격이다. 안나와 루시아가 좋아하는
요한.
안나에게는 아무래도 아픈 추억인 어느 해 크리스마스의 이야기가 그런대로 추억이기에 아름답게 다가온다.
" 이 지상에서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비바람치는 밤하늘을 떠돌더라도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어야 한다. 코코슈가가 <바람의 신부>에 붙인 글이었다. " (p. 40)
두 번째 이야기인 '<프랑스 초급과정>은 낯선 신도시가 장소적 배경인데, 80년대, 90년대의 서울 부근의 어떤 도시에
살았다면, 머리속에 남아 있을 그런 풍경이 그려져서 소설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장소적 향수에 젖게 된다.
세 번째 이야기는 2002년 6월 22일이란 날짜에 의미를 둔다. 그 날이 무슨 날이었던가? 2012년 월드컵 이야기이다. 그 날은 한국과
스페인 전이 열렸다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까지.
스페인 선수 중에서 승부차기에 실패했던 선수 이름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그 날의 기억이 오롯이 되살아 난다. 바로 자신의 마음 속에 잊지
못하고 각인된 기억이 있기에.
여기에서 눈치빠른 독자는 이 소설집의 소설들이 서로 얽혀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서울 외곽의 첫 번째 신도시인 K 시가 두 번째 이야기와 세 번째 이야기에 나오기에.
" 자신의 경우처럼 어떤 뜻밖의 순간에 끊어버리기도 하지만 세상이라는 천을 짜는 여신은
무늬를 만들기 위해서 처음 타래에서 풀었던 실 중에서 어떤 것을 서소 이을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무늬는 정해 놓았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 운명을
짜고 있는 베틀을 엿볼 수 없다. 예측할 수 없을 때는 순리를 따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 (p.p.
110~111)
네 번째 이야기는 낯선 미국에서 살게 된 모자의 이야기이다. 13살 아들은 그래도 의사 소통이 되긴 하지만 그의 엄마는 언어의 장벽,
그리고 미국에서 하게 되는 운전 미숙이나 속도 위반에 시달리게 된다.
엄마는 우연히 개러지 세일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주말마다 세일이 열리는 곳을 찾아 다니다가 에스테이트 세일에 빠지게 된다. 죽은 노인이나
죽어가는 노인들의 물건을 파는 세일이다. 이 세일은 집안의 모든 방과 욕실, 창고를 개방하여 그 안의 물건을 파는 세일인데, 정착하기 힘들어
하던 엄마가 세일에 빠지게 되는 설정이 이 이야기의 중심축이 된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흔히 말하는 구멍에 속하는 유나 이야기이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어도 익숙하게 하지 못하는
그녀. 친구의 집에서 가지고 나온 목도리를 잃어버리게 되면서 뜨게질을 배우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독일 아이들만 아는
동화'는 내가 어릴 적에 책에서 읽었던 동화이야기이기에 더 흥미롭게 이 소설을 일게 되었다.
그리고 여섯 번째 이야기인 <금성녀>는 이 소설들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소설이다.
" <프랑스어 초급과정>에 등장하는 여성과 이 단편의 화자, 즉 여성이 품고
있던 태아는 <스페인 도둑>에 등장하는 어머니와 아들 완으로 연결되고 <눈송이>의 주인공 아난는 < T 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에 등장하는 소년의 엄나와 겹쳐진다. (...) 따로 따로 떨어진 파편 조각처럼 흘러 다니던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누가 예감이라도 했겠는가. (...) 각자으 생에서 경험되던 크로노스적인 시간들은 이렇게 칠십삼 년을 살아온 마리으 시선 속에서
영원으로 향해 있는 카이로스적 시간으로 승화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런 상상은 팍팍한 삶을 견디게 하는 또 하나의 판타지에 불과할 수도
있으리라 " ( p. 242 - 문학평론가 이소연의 해설 중에서-)
이렇게 소설과 소설 속에서 다시 교차되는 자취들을 찾아 보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재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6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언뜻 언뜻 이런 것들이 보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정교하게 얽혀 있으리라고는 전혀 짐작을 하지 못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해설을 읽다 보니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된다면 다시 차근차근 이런 점들만 찾아 보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은희경의 단편소설에는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장편소설과는 좀 다른
느낌을 받은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