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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말아요 - 아들이 써내려간 1800일의 이별 노트
다비트 지베킹 지음, 이현경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치매, 알츠하이머병, 나이듦에 있어서 가장 피하고 싶은 병일 것이다. 얼마 전 뉴스 기사에서 본 바로는 미국 조지타운대 연구팀이
알츠하이머병을 간단한 혈액 검사로 조기 진단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발견했다고는 하지만 실용화되기 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가장 공포스러운 병이라고 할 수 있는 치매, 삶을 마무리하는 환자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고통스러운 날들의 연속이 될 수 밖에 없는
병이 치매라고 할 수 있다.
점점 지워져 가는 기억, 사그라드는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 치는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이미 책으로 많이
출간되었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치매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이야기인데, 앞서 읽었던 치매 환자에 관한 이야기와 여러 면에서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다.
69살이 될 때까지 어학원에서 외국인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칠 정도로 지적이면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엄마. 엄마는 20 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진 적이 있고, 그때에 기억상실증을 겪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곧 회복된다. 그리고 2006년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에 통과증후군으로 극심한
혼란 증세가 오면서 기억력이 약화된다. 그 시작은 아들의 친구와 다른 사람의 상황을 착각하는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엄마는 그 이전부터 늘 불안했다. 외할머니가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기에 엄마 자신도 알츠하이머에 걸릴까 두려움을 갖게 된다.
대학교수인 아버지의 은퇴식 후에 엄마의 기억력을 조금씩 사라져 가면서 엄마는 요리에 의욕이 없어진다. 그리고 엄마 주변의 여기 저기에는
엄마가 잊지 않으려고 써 놓은 메모들이 어지럽게 붙어있다. 그 메모는 자꾸 자꾸 그 숫자가 늘어난다.
어느날 집을 찾아간 아들 다비트 지베킹은 엄마가 만든 '밀크 라이스 푸딩'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건 '밀크 라이스 푸딩'이라고 할 수
없는 음식이었기에.... 그 때부터 '엄마표 맛있는 요리는 영원히 끝난다'.
치매가 걸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려 오던 엄마는 그 이전부터 자신의 기억력이 사라져 가는 것이 불안하여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지만
그때마다 결과는 '특이사항은 없으며 다만 우울증이 있는 것이 정신적 혼란의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그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아무래도 이상하여 다시 명성의 알츠하이머 전문 의사를 찾아가게 되는데, 그때에도 '정보를 유지하는데
분명 문제는 있으나 경도인지 장애'라는 진단과 함께
" 지베킴씨, 치매에 대한 생각은 일단 떨쳐 버리세요! 일년 뒤에 다시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 " (p. 95)
물론, 엄마의 치매 진단이 늦게 나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료가 늦어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아직까지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엄마는 엄마대로 치매의 불안감에 사로잡혀서 그 이전부터 메모를 하는 등의 많은 노력을 했다.
치매란 몇 년 동안에 걸쳐서 마치 저속촬영처럼 능력을 하나씩 상실해 가는 것이기에 '난파되어가는 배'와 같다고 표현할 수 있다.
치매의 의학적 진단을 보면, 기억력 약화와 함께 방향 감각에 이상이 나타나고 일상적인 수행능력에 제약이 생긴다.
엄마의 경우를 보아도 일시적인 의식 상실, 감소된 미각, 방향감각 상실, 단어 사용의 어려움 등을 겪게 된다.
이 책의 첫 chapter는 '그런데 너는 누구니?' 이다.
어느날 엄마가 이 책의 저자를 알아 보지 못하고 한 말이다. 청천벽력!! 만약 내가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내 머리속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나를 잊지 말아요>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다비트 지베킴'이 엄마가 치매을 겪기 시작한 때부터 투병기간을 거쳐서 죽음에
이르기 까지 1800 일의 엄마와 아들,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실화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엄마가 치매를 앓고 있을 때 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편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2012년 스위스 국제 영화제 비평가
대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의 어머니 그레텔>이라는 제목으로 제10회 EBS 국제 다큐 영화제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엄마의 사라져 가는 기억들, 그리고 치매가 상당부분 진행된 상태에서 발병되는 치명적인 합병증에 대응하는 태도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치매 뿐만 아니라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경우에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한 연명치료에 대한 가족의 견해도 실려 있다.
독일에서는 환자가 자발적으로 음식을 더 이상 섭취할 수 없게 되면 생명 연장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리고 내 가족인 경우에 우린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삶의 날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내 가족을 놓을 수 없는 심정,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도 버릴 수 없는 가족들의 마음.
"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싶어 - 가족의 죽음을 허락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 "
(p.264)
" 삶의 동반자는 죽음의 동반자, 혹은 죽음을 허락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일까? "
(p. 269)
사랑하는 가족과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게 될 경우에 이런 물음을 자신들에게 던져야 할 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그 어떤 병 보다도 힘든 투병생활을 하게 되는 치매 환자, 환자를 보살피고 돌보아야 하는 가족, 그리고
마지막 이별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차분하게 할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