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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윤대녕 지음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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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문득 문득 지나온 날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들 속에 떠오르는 얼굴들. 그들과 함께 했던 공간들....

 

그 공간들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날에는 큰 맘을 먹고 길을 나선다. 추억 속의 공간을 찾아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몇 번인가 찾아 갔는데, 그곳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 친구의 집이 있던 골목길을 둘러 보기도 하고, 내 몸에 비해서 큰 책가방을 메고 숨을 헐떡거리며 오르내리던 언덕길에서는 초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 또렷하게 생각나기도 했다.

 

작년에는 또다른 추억이 담긴 부산의 옛 동네를 찾아 갔었다. 내가 살았던 서울의 동네가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데 반하여 잠깐 방학을 이용해서 가곤 했던 그 동네는 너무도 변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더듬어 비슷한 곳을 찾았는데, 어딘지 옛 기억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동네 어귀에 앉아 계신 할머니에게 이것 저것을 물어 보니 내가 찾는 곳은 한 두 블럭은 옆으로 가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추억을 찾아서 길을 떠났다. 내 청춘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를 찾아 갔다. 얼마만인가?  교문에서 강의실로 가는 길에도 대학생이 내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교정의 벤치에도, 원형 운동장에도, 학생회관에도, 도서관에도 그때의 내가 그 속에 오롯이 움직이고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대학병원은 우리 엄마가 마지막 순간을 보내신 곳이기도 하니, 장례식 날 엄마를 떠나 보내던 그 날의 내가 그 곳에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가 살면서 머물렀던 공간들, 스쳐갔던 공간들, 윤대녕 작가는 이곳들을 '사라진 공간들'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사라진 공간'이 아닌  내 기억 속에 멈추어 버린 공간들로 남아 있다.

 

물론, 그 공간들 속에서 잊혀졌던 꿈들은 되살아난다.

 

이 책은 작가인 윤대녕이 월간 <현대문학>에 2011년 10월 부터 2013년 9월까지 연재했던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작가는 아마도 나이 50 이 넘어가는 즈음에 자신이 살아 왔던 삶을 되돌아 보면서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공간들에 대한 단상들을 이렇게 글로 썼을 것이다.

 

누구나 사라진 공간들 중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은 고향집이리라. 내 기억 속의 고향집이란 즐겁고 행복했던 곳이지만 작가에게는 유년기에 겪었던 부모와의 잠깐의 이별로 인하여 상처와 고통이 되살아나는 공간이다. 오랫동안 찾지 않았지만 인간에게도 귀소본능이 있는 것일까. 스치듯 그곳에 가보게 되는 곳이 고향집이다.

 

그리고 이어서 '늙은 그녀'라고 지칭하는 어머니가 살아왔던 수많은 집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중에서도 셋방살이 끝에 장만한 허름했던 어머니의 집,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어머니는 손때가 묻은 그 집을  떠나게 되지만, 잊지 못하고 그 집을 찾아가 보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실린 어머니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 우리가 그 집을 목수한테 팔았잖니, 근데 한 달 사이에 번듯한 별장처럼 고쳐놨더구나. 마당에 따로 들였던 방도 치워버리고, 거기에 넓은 화단까지 만들어놨더란 말이다. " (p. 29)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서 조차 사라질 수 없는 그런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생각하면 되살아나는 꿈이 있다.

 

어떤 여행작가는 마음이 우울하면 공항을 찾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연과 필연이 마주치는 공간은 휴게소, 공항, 기차역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런 공간에서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공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하카페, 노래방, 바다, 골목길, 사원들. 역전다방, 경기장, 음악당, 여관들, 부엌, 목욕탕, 영화관, 자동차, 도서관, 우체국, 공중전화부스, 병원, 광장 등....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 떠났던 많은 공간들까지.

 

 

아마도 작가와 비슷한 연배인 독자들이라면 이 책에 나오는 공간에 대한 기억들이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은 있는지 없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고전음악감상실, 선술집에 대한 기억들이 어느새 또렷하게 살아난다. 명동의 필하모닉은 나에게도 되살아나는 꿈들이 있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

 

" 모든 존재는 시공간의 그물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과 공간이 씨줄과 날줄로 겹치는 지점에서 매 순간 삶이 발생하고 또한 연속된다. 이렇듯 시간의 지속에 의해 우리는 삶의 나이를 먹어간다. 한편 공간은 '무엇이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자리'이다. 그런데 허망하게도 과거에 내가 (우리가 ) 존재했던 공간은 세월과 함께 덧없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p.p. 253~254)

 

 

그렇다. 우리가 존재했던 공간은 세월과 함께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기억이 세월에 따라 퇴색하고 잊혀질  뿐이지, 우리가 살아왔던 그 공간에 가게 되면 오롯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공간들 속에서 오래전에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내내 행복했다. 그리고 내가 살았던 그 공간들을 찾는 작업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은행잎이 뚝뚝 떨어지는 가을날, 사라진 공간들을 찾아서 나들이를 해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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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문득 문득 지나온 날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들 속에 떠오르는 얼굴들. 그들과 함께 했던 공간들....

그 공간들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날에는 큰 맘을 먹고 길을 나선다. 추억 속의 공간을 찾아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을 몇 번인가 찾아 갔는데, 그곳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 친구의 집이 있던 골목길을 둘러 보기도 하고, 내 몸에 비해서 큰 책가방을 메고 숨을 헐떡거리며 오르내리던 언덕길에서는 초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 또렷하게 생각나기도 했다.

작년에는 또다른 추억이 담긴 부산의 옛 동네를 찾아 갔었다. 내가 살았던 서울의 동네가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데 반하여 잠깐 방학을 이용해서 가곤 했던 그 동네는 너무도 변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더듬어 비슷한 곳을 찾았는데, 어딘지 옛 기억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동네 어귀에 앉아 계신 할머니에게 이것 저것을 물어 보니 내가 찾는 곳은 한 두 블럭은 옆으로 가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추억을 찾아서 길을 떠났다. 내 청춘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를 찾아 갔다. 얼마만인가?  교문에서 강의실로 가는 길에도 대학생이 내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교정의 벤치에도, 원형 운동장에도, 학생회관에도, 도서관에도 그때의 내가 그 속에 오롯이 움직이고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대학병원은 우리 엄마가 마지막 순간을 보내신 곳이기도 하니, 장례식 날 엄마를 떠나 보내던 그 날의 내가 그 곳에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가 살면서 머물렀던 공간들, 스쳐갔던 공간들, 윤대녕 작가는 이곳들을 '사라진 공간들'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사라진 공간'이 아닌  내 기억 속에 멈추어 버린 공간들로 남아 있다.

물론, 그 공간들 속에서 잊혀졌던 꿈들은 되살아난다.

이 책은 작가인 윤대녕이 월간 <현대문학>에 2011년 10월 부터 2013년 9월까지 연재했던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작가는 아마도 나이 50 이 넘어가는 즈음에 자신이 살아 왔던 삶을 되돌아 보면서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공간들에 대한 단상들을 이렇게 글로 썼을 것이다.

누구나 사라진 공간들 중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은 고향집이리라. 내 기억 속의 고향집이란 즐겁고 행복했던 곳이지만 작가에게는 유년기에 겪었던 부모와의 잠깐의 이별로 인하여 상처와 고통이 되살아나는 공간이다. 오랫동안 찾지 않았지만 인간에게도 귀소본능이 있는 것일까. 스치듯 그곳에 가보게 되는 곳이 고향집이다.

그리고 이어서 '늙은 그녀'라고 지칭하는 어머니가 살아왔던 수많은 집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중에서도 셋방살이 끝에 장만한 허름했던 어머니의 집,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어머니는 손때가 묻은 그 집을  떠나게 되지만, 잊지 못하고 그 집을 찾아가 보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실린 어머니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 우리가 그 집을 목수한테 팔았잖니, 근데 한 달 사이에 번듯한 별장처럼 고쳐놨더구나. 마당에 따로 들였던 방도 치워버리고, 거기에 넓은 화단까지 만들어놨더란 말이다. " (p. 29)

누구에게나 마음 속에서 조차 사라질 수 없는 그런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생각하면 되살아나는 꿈이 있다.

어떤 여행작가는 마음이 우울하면 공항을 찾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연과 필연이 마주치는 공간은 휴게소, 공항, 기차역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런 공간에서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공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하카페, 노래방, 바다, 골목길, 사원들. 역전다방, 경기장, 음악당, 여관들, 부엌, 목욕탕, 영화관, 자동차, 도서관, 우체국, 공중전화부스, 병원, 광장 등....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서 떠났던 많은 공간들까지.

아마도 작가와 비슷한 연배인 독자들이라면 이 책에 나오는 공간에 대한 기억들이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은 있는지 없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고전음악감상실, 선술집에 대한 기억들이 어느새 또렷하게 살아난다. 명동의 필하모닉은 나에게도 되살아나는 꿈들이 있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

" 모든 존재는 시공간의 그물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과 공간이 씨줄과 날줄로 겹치는 지점에서 매 순간 삶이 발생하고 또한 연속된다. 이렇듯 시간의 지속에 의해 우리는 삶의 나이를 먹어간다. 한편 공간은 '무엇이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자리'이다. 그런데 허망하게도 과거에 내가 (우리가 ) 존재했던 공간은 세월과 함께 덧없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p.p. 253~254)

그렇다. 우리가 존재했던 공간은 세월과 함께 덧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기억이 세월에 따라 퇴색하고 잊혀질  뿐이지, 우리가 살아왔던 그 공간에 가게 되면 오롯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공간들 속에서 오래전에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내내 행복했다. 그리고 내가 살았던 그 공간들을 찾는 작업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은행잎이 뚝뚝 떨어지는 가을날, 사라진 공간들을 찾아서 나들이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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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교황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주세페 코스타 엮음, 이영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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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마지막 날에 내가 읽은 책은 <교황 프란치스코 / 프란치스코 저 / 이유숙 역 / 알에이치코리아 ㅣ 2013>이었다. 지금까지의 어떤 교황 보다도 진보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검소한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분이시다.

 

 

중세시대부터 내려오는 성당이 많은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많은 성당들을 가게 되는데, 그때의 느낌은 '이런 성당들이 누구를 위한 성당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황의 권위가 왕권 보다 더 강했던 적도 있고, 교황이 정치와 밀착되었던 적도 있으며, 바티칸 교회내의 각종 비리가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분명 교황은 성스러운 존재이지만 때로는 사람들의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하는 그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로 우뚝 솟고 있다. 그가 왜 그렇게 대중적인 호감도가 높은 지는  <교황 프란치스코 / 프란치스코 저 / 이유숙 역 / 알에이치코리아 ㅣ 2013>을 읽어보면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의 추기경이었던 2010년부터 약 2년간에 걸쳐서 언론인 세르히오 루빈과 프란체스카 암브로게티와 진행된 대담 내용을 엮은 책이다. 추기경은 대담을 통해 조부모와 부모, 가정환경, 학교생활, 성장 과정, 소명, 기도, 성직자의 직책과 수행, 종교적 문제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중에 제 3부 "살아있는 가톨릭"은 종교적 문제, 가톨릭의 교리 및 현 시대에서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임무를 수행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심도있는 물음과 답변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후에 읽게 되는 <사진으로 만나는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황 프란치스코를 알기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교황이 들려주는 메시지와 교황의 동정을 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우선 교황 프란치스코가 걸어온 길을 큰 그림으로 보여주고 그밖의 사진들, 교황의 소신들, 연설과 강론을 발췌해서 책 속에 담아 놓았다. 얼핏 보면 비슷한 교황의 사진들처럼 보이지만 사진 속의 교황을 자세히 들려다 보면 각 사진마다 풍부한 감정을 담은 표정과 몸짓을 엿 볼 수 있다.

"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 상대방을 설득하고 그에게 / 귀를 기울이고 더 가까워지기 위해 /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여 / 노력하는 사람들, 인내하는 사람들, / 장인들의 노동입니다. 이 온화한 / 장인들이 마력을 발휘하여 사랑을 / 창조하고 있습니다. " (p. 67)

교황 '프란치스코'는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로 살아왔다. 그래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진다. 그가 공식 교황명으로 선택한 '프란치스코'가 바로 아사시의 성인인 프란치스코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사랑때문이라고 하니 그가 누구를 위한 교황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 책 속에는 교황의 출생부터 가족관계, 어린시절, 학창시절, 신학 교육을 받게 되는 이유, 성직자로서의 소신, 그동안 그가 들려주었던 메시지들이 짧으나마 솔직한 언어로 담겨져 있다.

'프란치스코'교황은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우리나라에 온다. 그 기간 동안에도 교황은 아주 검소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 줄 것으로 예상된다.

 

 

"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께 가기를 / 기다리지 않으시고 / 아무런 편견없이, / 아무런 계산없이 우리에게 / 직접 다가오십니다. /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 당신께서 언제나 첫발을 대디뎌 / 우리에게로 오십니다. " (p. 97)

그 한 예로 방한시에 미사를 집전하게 되는데, 그때에 입을 제의가 공개되었다. 붉은색 제의와 흰색 제의이다. 그 제의는 모두 수녀들이 기도를 하면서 한 땀 한땀 바느질했다고 한다.

평소의 교황의 생활이 여기에서도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사진검색: Daum)

교황의 메시지를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는 이 책은 교황의 모습과 생각을 담은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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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1 - 오늘을 위한 성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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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통의>의 저자인 '이덕일' 앞에 붙는 수식어는 다음과 같다.

" 넓이와 깊이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역사학자", " 고대사부터 근현대사까지 아우르는 파워라이터"," 굴절된 역사관을 정확한 근거와 사료를 바탕으로 뒤집어낸다", " 역사책을 찾는 독자라면 그를 피해갈 수 없다." 등이다.

그렇다. " 역사책을 찾는 독자라면 그를 피해갈 수 없다"는 말처럼 한국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은 그의 저서라면 한 두 권 이상을 읽었을 것이다. 그의 저서를 읽은 후에 갖게 되는 이덕일에 대한 생각은 "넓이와 깊이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역사학자"이다.

 

내가 그의 저서를 처음 읽은 것은 <조선 왕 독살사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책을 처음 읽을 때에는 왕실의 가십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읽었지만 역사적인 맥락을 통한 사료 검증이 바탕에 깔린 책이었다. 그래서 그의 저서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여러 권을 읽다보니 그 책들 중에는 내용이 중복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주로 조선을 중심으로 쓴 책들이 많으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고금통의>는 좀 더 폭넓게 한국사 전반에 걸친 내용으로 책 제목처럼 "옛 것에 비추어 오늘의 해법을 구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의 하나는 '뿌리찾기'의 의미도 있겠지만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오늘날을 비추어 볼 수 있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어제의 역사는 오늘에도 그 뜻이 통한다'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의 역사도 옛일에 비추어 그 해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관통하는 의는 같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점의 해답을 역사 속에서 찾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의 고대사가 축소되어 씌여졌다는 점과 함께 중국의 동북공정의 진행에 따른 문제를 지적한다.

또한 우리의 역사는 일본의 식민사관에 씌여진 부분들이 많아서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고조선으로까지 올라가게 되는데, 일본의 고조선을 한반도 북부로 규정지었지만 역사를 치밀하게 살펴보면 고조선의 대륙 진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은 식민사관으로 이를 축소시켰고,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이를 축소하고 있다.

"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4권> 1997은 '최근 요동지역의 고고학적 발굴성과의 문헌 고증에 의거할 때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는 현재의 요동 지역으로 보는 것이 옳으리라 생각된다. " (p. 103)

고조선의 역사 뿐만 아니라, 식민사학의 미망(迷妄) 속에 빠져 1892년에 '하야시 다이스케'가 쓴 <조선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사교과서를 하루빨리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요즘, 영화 <명량>으로 인하여 다시금 화제의 인물이 된 이순신, 그가 문신 집안 자제로서 무과를 선택한 이유를 알고 있는가? 그의 소신에 따른 선택이 조선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이 점은 자녀교육 문제와 함께 우리 시대에서 재조명해 보아야 할 내용이다.

외국에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황산벌 전투를 백제와 신라의 전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좀더 시각을 넓히면 황산벌의 영웅인 계백과 신라의 관창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격이 된다.

또한 계백, 김흠춘, 반굴 부자. 품일 관창 부자는 공을 위해서 사를 던진 인물들이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역사 속에서 자연  재해에 어떻게 대비했는가 하는 이야기, 그리고 정부 인사의 임용과정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행동, 관비아 척결에 대한 내용들이 이 시대에 요구되는 문제점이기에 이를 역사 속에서 찾아 본다.

난국을 타개한 참신한 인재를 등용한 임금으로는 선덕여왕, 태조, 태종, 세종 등을 예로 들었다.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도 조선의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의 승지의 사례를 든다.

승지들은 임금의 목구멍과 혀를 맡는다는 뜻의 후설지직(喉舌之職)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임금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둘 수 있는 대통령은 결코 민심이 떠나는 정권을 가지지 않는다.

" 정조처럼 당파를 초월하는 통합의 정치로 미래를 지향하는 대통령을 언제나 볼 수 있을 것인가? " (p. 249)

민생의 어려움을 아는 인재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종당과 사돈붙이'를 넘어서 인재를 찾는다면 인재를 못 찾을 이유가 없으리라.

"민초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찌 인재가 없겠는가" (p. 257)

작금의 정치는 같은 당 내에서도 여러 갈래의 계파가 존재하니, 소속 정당을 초월한 국정 운영을 원하는 것은 비단 저자만이 가지는 마음은 아닐 것이다.

또한 관비아 척결에 관한 내용은 <고려사 절요>, <경국대전>등에서 찾을 수 있다.

'전관예우'라는 말도 요즘 자주 듣게 되는 단어인데, 조선시대에 전임자를 제도적으로 우대한 것에서 유래한다. 세조 3년 7월에 봉조청을 설치해 관직이 있는 공신과 종친들에게 녹봉을 준 것이 그 시초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실제로는 일본 왕실 용어로 '대신의 예우와 전관 예우 하사에 관한 조항'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면 된다.

이런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법조계,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국민의 인신과 재산을 다루는 곳을 중심으로 남아 있으니 하루 빨리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

<고금 통의>에 실린 내용들은 교실 수업에서 학습하게 되는 역사 교과서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을 통해서 현재를 바라다 보았을 때에 현재 우리 사회가 부딪히고 있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거기에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관통하는 의는 같다" 바로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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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작가이자 문학 평론가인 '정여울'이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을 쓴 후에 그 두번째 여행 이야기를 담은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을 출간했다.

나는 공교롭게도 <헤세의 여행>과 함께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여행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헤세'는 " (...) 그가 로마로 여행하는 것은 그것이 교양 여행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여행하는 주된 이유는 그의 모든 사촌과 이웃도 여행을 가는데다, 또 여행을 갔다 와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하는 것이 유행이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다시 무척 쾌적하고 안락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 헤세의 여행, p. 32) 라는 글로 당시의 사람들이 여행하는 이유를 꼬집기도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간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봇물 터지듯이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자랑하기 위한' 이유도 여행을 가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여행을 소재로 한 책들을 읽다 보면,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많은 여행자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건축물이나 예술품, 장소 등에 눈도장을 찍는 여행을 폄하하는 글을 많이 읽게 된다. 또한 패키지 여행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이야기하면서 여행이란 그곳의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여행이 되어야 함을 일깨우는 글도 많이 본다. 그러나 나는 그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는 않는다. 패키지 여행도 해 보았고, 자유여행도 다녀 보았지만 여행은 여행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유형으로 행해질 수 있다고 본다.

마치 남들이 즐겨 찾는 곳이 아닌 곳으로 가는 여행만을 의미있는 여행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생각된다.

7월말에 지리산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순천을 들리게 되었다. 지인이 소개하는 맛있는 한정식집을 가기 위한 목적도 있었는데, 중간에 순천만 정원을 보고 나오는 길에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있는 80대 노인 가족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할아버지는 딸들의 효도 선물로 70살에 유럽 여행을 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않았다는 할아버지에게 유럽 여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할아버지는 유럽의 역사도, 문화도 전혀 알지 못하니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눈높이에 맞는 여행을 하였을 것이고, 그 여행을 보내준 딸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과 옆에 있는 할머니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귀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여행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서 여행을 가도 좋고, 그냥 훌쩍 떠났다가 생각하지도 못한 좋은 체험을 해도 좋고, 목적지 없이 어슬렁거리면서 그곳의 주민처럼 몇 날을 지내도 좋고...

그런 것이 여행이 아닐까...

그러나 확실한 것은 여행은 인생을 아름답게, 활기차게, 멋지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정여울은 이 책에서 ' 여행 전문가들이 발굴해낸 '진짜 유럽'을 체험할 수 있는 숨겨진 스팟들을 다루었다' (책 소개글 중에서)고 하지만 유럽을 여행했던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나 가보았던 곳, 맛 보았던 음식 들이 다수 담겨 있고, 일부만이 여행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유럽, 잘 알려지지 않은 유럽이다. 

정여울은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유럽을 10개의 주제로 나누어서 소개한다.

1. 특별한 하루를 부탁해
2. 위대한 예술을 만나는 시간
3. 달콤한 유혹 한 조각
4. 그들처럼 살아보는 하루
5. 마법 같은 풍경 속으로
6. 생각이 깊어지는 그곳
7. 맘껏 취해도 좋아
8. 작가처럼, 영화 주인공처럼
9. 선물 같은 축제를 만나다
10. 인생도, 여행도 휴식이 필요해


파리와 사랑에 빠지고 싶은 날은 상제리제 거리를 거닐면 좋을 것이고,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가면 좋을 것이고, 위대한 예술을 만나기 위해서는 뮤지컬 공연이나 연주회, 연극을 보면 좋을 것이고, 달콤함이 땡기는 날에는 마카롱이나 젤라또를 먹으면 좋을 것이고.

 

여행자는 우리의 삶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기에 그런 것들에서 여행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릴적에 한 장의 달력 사진을 보면서 '유럽이란 어떤 곳일까', '저 곳에 한 번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꿈이 이루어졌던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가 책 속에 담겨 있음을 보게 된다.

여러 해 전에 동화속 작은 마을처럼 아름다웠던 '할슈타트'에 갔던 그 날이 생각이 난다. 그 때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기에 마을 어귀의 기념품 가게도 생각나고, 마을의 성당도 생각이 난다.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이정표, 분명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왔지만 그 이정표를 따라서 또 다른 곳으로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 준다.

" 나와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또 다른 여행자의 뒷모습은 언제나 신비롭다. 내가 보는 것과 똑같은 풍경을, 그들은 과연 어떤 빛깔과 어떤 향기로 바라보고 있을까." (p. 338)

여행은 떠나기 전에는 설렘임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돌아온 후에는 그날들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두근거리는 것이 아닐까.

정여울은 책표지의 책제목 옆에 이런 글을 적어 놓았다. "꿈만 꾸어도 좋고, 당장 떠나도 좋다."  

당장 떠날 수는 없으니 꿈을 꾸어야 겠다. 올해  마지막 날을 아드리아해의 어느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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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8-07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노부부가 자식들 덕분에 몹시도 힘에 겨운 여행을 다녀온다손 치더라도, 결국 그 여행을 다녀온 노부부는 두고두고 그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고, 또 그때마다 재미있는 이야기꽃을 피우지 않을까요?

라일락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어떤 유명한 여행지에 가게 되면 단지 그곳에 내가 발을 디디고 서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르고 눈물이 솟을 듯한 격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더라구요. 제 경우에는 그런 곳들이 정말 너무나 많았답니다. 백두산도 그랬고 히말라야도 그랬고요. 이집트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고, 어디선가 나타난 '사막의 여우'를 만났을 때도 그랬고요.

할슈타트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온지는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음에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쪽으로 가게 되면 그곳은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지금도 간절하네요..

* * *

여행자! 나는 이 말을 사랑한다. 여행자는 여행자라는 이유만으로 존경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우리의 인생을 가장 잘 상징하는 말이 '여행' 아니겠는가. 개인의 역사란 결국 요약하면 '어디'에서 '어디'를 향해 가는 것 아니겠는가.
- 헨리 데이빗 소로우,『소로우의 일기』

라일락 2014-08-07 18:33   좋아요 0 | URL
노부부에게도 마음에 상처가 있었어요. 1남 5녀를 낳았는데, 아들이 세상을 먼저 떠났대요.
할아버지의 말씀에 마음이 숙연해졌답니다.


oren 2014-08-07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2014.7.15 아침 나절에 가봤던 '비가 갠 후의 할슈타트 풍경' 하나 올려 봅니다.







라일락 2014-08-07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 년도 더 전에 갔다 온 곳인데, 그때 그 모습이 그대로네요. 어릴적 사진 속의 그 모습 그대로이기도 하구요.
오스트리아는 정말 다시 가 보고 싶은 나라이고, 그 중에서도 할슈타트는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