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가 빈자들에게 - 프란치스코 교황 잠언집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장혜민 엮음 / 산호와진주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얼마전에 프란치스코 교황에 우리나라에 와서 보여주는 행보는 우리들을 신선한 충격에 빠지게 해 주었다. 2013년 3월에 교황이 된 후에 그를 둘러싼 긍정적인 보도들을 직접 보게 된 기회이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른 교황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는 교황이기도 하다.

 

제 266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 1283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출신 교황, 2000년 가톨릭 교회 역사상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출신 교황 (아르헨티나 출신),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

그러나 이런 의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는 '낮은 자의 편에 서서 사랑을 전하는 교황'이다. 이는 가톨릭의 근간이 되는 것인데,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사진출처 : Daum 검색 -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읽어 보면 프란치스코가 어떤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었는지를 알 수 있고, 그것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마음이기도 함을 느끼게 된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 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신을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p.p. 84~85)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프란치스코의 이런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고자 함임을 우린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자신을 겸손의 상징인 '빈자'라고 칭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상의 모든 빈자들에게 전하는 말씀을 담은 책이다.  그래서 읽는 시간은  짧을 수 있지만 읽은 후에 가슴에 와닿는 메시지는 그 어떤 책 보다도 강하다.

" 그 누구의 인생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인생은 스스로 씨를  뿌리고 물을 줍니다. 각각의 인생은 그 인생의 주인이 주인공입니다. " (p. 22)

이 문장은 세상의 부모들에게 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뽑아 본 내용이다.

이 책의 내용 중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하는 '행복지침 10가지'를 살펴본다.

" 첫째, 다른 사람의 삶을 인정하세요.

  둘째, 타인에게 관대해지세요.

  셋째,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세요.

  넷째, 여가를 즐기세요.

  다섯째,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세요.

  여섯째, 젊은 사람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세요.

  일곱째, 환경을 보존해야 합니다.

  여덟째,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아홉째, 타인을 개종시키려 하지 말고 그들의 믿음을 존중하세요.

  열째, 평화를 위해 힘쓰세요. " (p.p. 136~138)

'행복지침 10가지'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황이 전하는 메시지이기에 종교적인 메시지일 줄 알았지만, 우리들이 꼭 지켜야 할 덕목들이나 가치관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아홉째 지침은 의외라는 생각도 든다. 가톨릭의 수장이라면 교세 확장을 들고 나올 법도 한데....

교황은 교회나 교인들은 개종이 아닌 '끌어당기는 매력'으로 성장하라는 메시지를 덧붙인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익숙해짐'이라는 것이 가져오는 위험을 생각하게 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관심으로 대변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거리의 빈자들을 보고 그들의 삶을 생각해 보지 못하는 것도, 궁핍 속에서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은 익숙함에서 오는 무관심이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에도 이런 말을 남긴다.

" 사랑하는 젊은이들이여!

결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충실하고 결실이 있는 결혼은 여러분을 행복으로 이끌 것입니다. 집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래 위에 임시 거처를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단단한 바위 위에 지어야 합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됐을 때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함께 풀어 내야 할 때 결혼해야 하는 것입니다. " (p. 80)

요즘 회자되는 말 중에 "내가 누군지 알아!!" 라는 말!!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당신들과는 다른 특권계층이라는 오만에서 나오는 가장 궁색하고 가장 비루한 말이 아닐까. 물론 그 말을 하는 당사자는 자신이 당신들과는 다른 계층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겁주기 위한 방편에서 하는 말이겠지만....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서 하는 얼음 한 양동이를 뒤집어 써야 정신을 차릴까 말까 한 사람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남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나는 성심을 다해 세족을 합니다. 사제로서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 (p. 181)

교황은 사제이기에 세족을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빈자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왔다 갔지만, 그의 언행을 접했던 우리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부터 빈자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우중과의 대화 -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신장섭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89년에 출간된 <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 김우중 ㅣ 김영사 ㅣ 1989>는 당시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가 활동할 무대는 세계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을 품고 미래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후 10년이 지나서 대우그룹은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으로 헤체가 되었다. 23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추징금을 남긴채....

그 오랜 세월 동안 입을 꾹 다물었던 김우중은 지금 <김우중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신이 일구웠던 대우그룹의 해체에 관련한 내용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엇을 위해서? 진실을 위해서.... 자신과 대우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실패한 기업인인 김우중은 요사이 몇 몇 대학에서 강연을 하기도 하면서 눈물을 쏟기도 한다. 그의 이야기는 얼마나 진정성이 있을까?

대우의 발전과정과 해체 과정, 그리고 당시의 한국 현대 경제사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대우가 파산을 한 후인 2000년 폴란드를 간 적이 있었다. 여행중에 소금광산인 비엘리츠카에 갔는데, 그곳에서  폴란드 북부의 항구에  살고 있다는 한국인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폴란드에 있는 대우조선에 다닌다고 하는데, 이미 국내에서는 대우의 존재감이 무너진 상태였지만 그곳에서는 대우의 이미지가 꽤 좋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니 폴란드의 몇 군데에서 대우의 홍보판을 본 것이다.

대우는 이처럼 동남아시아, 인도, 아프리카를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유럽에까지 발빠르게 뻗어나가던 기업이었다. 그것은 김우중의 글로벌 비즈니스에 대한 아이디어와 기회에 대한 판단력이 가져다 준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졌으니...

<김우중과의 대화>의 부제는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이다. 김우중이 말하고 싶은 미련들이 이 책 제목에 녹아 있는 듯하다.

이 책은 한국 현대경제사를 연구하는 경제학자인 '신장섭'과 김우중의 대화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 책이 출간 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내용 중에는 대우그룹의 해체과정에서 가장 큰 작용을 했던 대우자동차가 GM에 헐값으로 매각되었으며, 이 배후에는 김대중 정부의 신진 경제 관료의 역할이 있었다는 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대우의 파산은 정부의 개입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은 이미 2010년 여름에 김우중과 신장섭이 약 150시간에 걸쳐서 한 대화 내용들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펴내는 이유를 '대우그룹 해체 전후의 통사(痛史)'라는 말로 시작한다. 대우흥망사와 한국 현대경제사에 대한 역사 바로잡기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건 과거는 현대와 미래를 바라보는 창이고, 우린 역사 속에셔 교훈을 얻고 미래를 내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구성은 대우그룹의 성장과정, 대우그룹의 몰락과정, 현재와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짜여져 있다.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한 대우실업이 1997년에 매출 71조원, 자산 78조원의 한국 재계 순위 2위의 그룹으로 쾌속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해외시장의 개척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정경유착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1990년대에 추진한 대우의 세계 경영이 아시아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김우중은 IMF 프로그램에서 요구하는 기업 구조조정은 한국기업들과 한국경제의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켰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그건 한국 금융위기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대우그룸이 해체되었으며, 거기에는 김대중 정부의 신흥관료의 경제시각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김우중은 이 당시의 세계 경제 상황은 좋았고, 좋은 환율이었기에 세계 시장에 나아가 있는 대우의 경우에는 경쟁력이 충분이 있었다는 견해이고, 당시 경제 관료들은 세계 경제 상황은 너무 안 좋게 생각하는 오판에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

이 책은 김우중 자신의 시각으로 대우그룹을 보는 것이기에 저자는 김우중의 생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기존 문헌에 나온 반대편 입장의 이야기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판단에 이 모든 문제를 남긴다.

그러나 김회장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과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도 재판과 사면을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은 사안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23조원의 추징금이 너무 과다한 액수라는 견해도 있지만, 이 추징금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여야 할까.

 대우 가족들을 남겨 둔 채, 해외도피를 하면서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부분들도 규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우 그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그가 챙긴 재산은 얼마나 될까, 그에 비하면 대우가족들은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쫓겨 났고 그후 어떤 생활고에 시달렸는지에 대한 경영자로서의 최소한의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나 몰라라 혼자 살겠다고 해외로 도피한 부도덕한 행동은 몇 년의 수감생활로 씻겨질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가 대우 파산의 원인을 정부탓(진실 규명에 대한  문제를 떠나서)으로 돌리기 보다는 투명한 경영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먼저 지는 것이 그가 가장 먼저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김우중은 1999년 10월에 출국하여 약 6년간 해외를 떠돌다가 2005년 6월에 귀국을 하였지만 병으로 인하여 수술을 받은 후에 재판 기간 중에도 병원을 오가다가 징역 8년 6월을 확정받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형집행정지로 풀려 난 후에 노무현 정부 시절에 사면을 받는다. .실제 복역기간은 4개월에 불과했다고 한다. 

법 조차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이니.

그가 기업인으로서의 도덕적인 모습을 보인 후에 흘리는 눈물이라면 그 눈물은 값진 눈물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담긴 진실 보다는 그의 도덕성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자신의 경우처럼 어떤 뜻밖의 순간에 끊어버리기도 하지만 세상이라는 천을 짜는 여신은 무늬를 만들기 위해서 처음 타래에서 풀었던 실 중에서 어떤 것을 서소 이을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무늬는 정해 놓았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 운명을 짜고 있는 베틀을 엿볼 수 없다. 예측할 수 없을 때는 순리를 따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 은희경의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에서 ( p.p. 110~1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을 읽을 때의 신선함이 생각납니다. 인간은 왜 그리도 물욕이 많은지, 소유와 집착에 시달리지요. 그런데 이번에 제러미 리프킨은 <한계비용 제로 사회>로 우리곁에 다시 찾아 왔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가 생각납니다. 신자유경제에 바탕을 둔 우리의 경제 정책들 과연 이대로 좋은 것일까요? 제러미 리프킨도 역시 자본주의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을 예고합니다. 그렇다면 사회가 될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협력적 공유사회`가 올 것이라고 하니,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꼭 읽어보아야겠습니다. 책 두께도 만만치 않으나,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이 정도는 가뿐하게 읽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는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감각을 가진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뚜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읽은 후에 마음 속에 남는 것들이 많다.

그는 1995년에 등단했지만,  내가 김영하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2010년에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김영하 ㅣ랜덤하우스코리아 ㅣ2009 >를 통해서 였다.

소설가를 소설이 아닌 여행 에세이를 통해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동안 쌓아 온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떠나온 시칠리아에서의 내면적 성찰이 잘 나타나 있었다.

그 책을 덮는 순간, 김영하의 글에 매료되어서 그의 소설과 에세이 등을 골라서 읽게 되었다. 지금까지 읽은 김영하의 작품 중에 나는  여행 에세이인 <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김영하 ㅣ 아트북스 ㅣ 2007>를 가장 좋아한다.

이 책은 매우 특이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한 권의 책 속에 하이델베르크를 배경으로 하여 에세이와 사진 그리고 소설이 함께 담겨 있다. 그러니 에세이이기도 하고, 사진집이기도 하고, 여행서이기도 하고, 소설책이기고 한 책이다.  이런 형식을 갖춘 책으로 '서진'의 <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서진 ㅣ푸른숲 ㅣ 2010>이 있기도 하지만, <여행자 - 하이델베르크>를 읽을 때만 해도 그런 형식의 책을 처음 접했던 것이다.

어쨌든 김영하가 쓴 책들은 그 어떤 책을 읽게 되든지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의 형식도 특이한 경우가 있기도 했지만, 책 속에는 어떤 묵직한 주제의식이 담겨져 있었다.

김영하는 그의 대표작인 <빛의 제국>을 출간한 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해설 중에서, p. 153)

내가 김영하의 대표작인  <빛의 제국>을 아직 읽지 않았기에 그 의미를 알지는 못하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은 후의 내 느낌이 바로 그랬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빽빽한 문장들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간결하면서도 압축된 문장들이 때론 듬성듬성 한 페이지 속에 담겨 있기도 한 149 페이지에 달하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이다. 책속의 내용만을 따라 잡아 읽는다면, 아주 쉽게 읽히는 그런 소설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70대 노인이 한때 연쇄 살인을 하였던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김병수는 16살 때에 최초의 살인을 저지른다.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살인의 시작이다. 그후에는 어떤 뚜렷한 원한 관계가 있어서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의 동기라고 할 수도 없는 이유때문에 30년동안 지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이미 공소시효가 다 지난 사건들이 되었다.

" 치매는 늙은 연쇄살인범에게 인생이 보매는 짓궂은 농담이다, 아니 몰래 카메라이다. 깜짝 놀랐지? 미안, 그냥 장난이었어." (p. 35)

그런 연쇄 살인범인 그가 점점 사라져 가는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고 매일 매일 기억이 존재할 때에는 메모를 해둔다. 그건 과거의 살인범인 자신이 현재의 살인범이라고 추정되는 자로부터  자신의 딸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다.

끔찍한 살인사건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살인범의 이야기가 나온다면 피로 범벅이 되는 잔인한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으나, 이 이야기는 유머와 위트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 어쨌든 나는 그뒤로 시인으로 불렸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 (p. 38)

그러나 이런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뒤엎어 버리는 것은 소설의  끝부분에서 나타나는 대반전이다.

'역시 김영하 작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담겨 있었던 계획된 치밀한 구성이 이 소설을 돋보이게 한다.

왜 작가가 '오이디프스'의 이야기를 끄집어 냈던가를, 그리고 김병수가 즐겨 읽던 반야심경의 구절들이 왜 담겨 있었는가를 깨닫게 된다.

" 그러므로 공(空)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도 없고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무영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 (p. 148 - 반야심경의 구절)

 

우리 주변의 허상들에 매달리는 인간의 어리석음, 그 모든 것은 망상이었던가....

김영하는 삶과 죽음, 그리고 시간과 악에 대한 통찰을 <살인자의 기억법>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김영하는 '작가의 말'을 통해 자신이 습작을 하던 시절에 아버지가 묵묵히 그를 격려해 주었던 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아버지는 현재 투병중이고, 작가는 '꽤 괜찮은 작가'가 되는 날을 아버지에게 보셨으면 하는 바람을 적어 놓았다. 이미 독자인 나에게는 '꽤 괜찮은 작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말없는 격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