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몸값 2 오늘의 일본문학 9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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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올림픽'
내 기억속의 첫번째 올림픽이다. 그리곤 우리나라의 '88 올림픽'만이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다. 어릴적의 느낌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떠들석했었다는 기억이 난다.  
호기심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럴만도 했었던 것같다. 도쿄는 1940년에 제 12회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이 되었는데, 일본의 중국 침공으로 인하여 국제사회의 비난이 많았으며,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자 취소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후 19년만에 얻어진 올림픽 개최지였으니 일본 정부는 올림픽의 정신보다는 일본을 국제 사회에 좋은 이미지로 남기고 싶은 의도가 다분히 들어가 있는 정치적인 올림픽이었던 것이다. 또한, '도쿄 올림픽'에 얽힌 이야기로는 로마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에티오피아의 '아베베'선수가 도쿄올림픽에서도 마라톤에서 올림픽 최고기록으로 마라톤 2연패를 차지했다. 그런데, 아베베는 로마 올림픽에서 맨발로 뛰어서 '맨발의 아베베'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그리고 '올림픽의 몸값2'의 내용중에 북한 선수단이 올림픽 직전에 출전을 하지않고 돌아가는 내용이 있는데, 그때에 북한 800m 선수인 신금단선수와 한국의 아버지와의 만남이 결렬되는 가슴아픈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많은 이야기를 담았던 '도쿄 올림픽'은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이었으며,일본인 모두의 희망이고 열광적인 기대속에 개막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올림픽 경비 총책임자인 스가 슈지로 경시감의 말이 담긴 신문기사 내용에는

경비력은 국력이다. 일본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 (p17)
바로, 일본정부나 경찰이 원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문명도가 의심받는 것이다. 서양인들에게 '노란 원숭이'라고 비웃음 당하는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끝맺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 일에 지쳐서 합숙소에서 필로폰을 맞아가면서 올림픽관련 각종 공사에 동원되고 있는 노동자속의 구니오는 이런 생각을 한다.
도쿄만 느닷없이 근대도시로 얼렁뚱땅 꾸며놓고 도대체 무엇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는 것인가. (p17)
일본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수재들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는 '도쿄대' 경제학부 대학원생인 구니오. 그 누가 보아도 전도유망(前途有望)한 청년 구니오.
그는 국가를 상대로 하는 테러리스트로 변신하는 것이다. '올림픽의 몸값'을 요구하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무도하기만한 행동. 그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행동. 나는 장래가 촉망되고 지적 능력을 갖춘 엘리트 청년의 변해가는 모습이 안스러웠다. 노동에 지쳐서. 필로폰에 찌들어서. 공사장 먼지를 뒤집어 쓴 구니오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언제나 아버지와 같은 '무라타'가 함께 하고 있었다. 전쟁의 마지막날에 아내와 아들을 잃고, 소매치기로 전전하며 노숙을 일삼는 '무라타'가 있었다. 무라타에게 구니오가 아들처럼 생각되듯이, 구니오에게도 무라타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구니오 출생의 아픔 기억. 아버지의 사랑을 미처 받지 못한 청년의 쓸쓸한 모습. 그런 구니오에게 무라타는 단순한 이해관계로 함께 행동하는 것이 아닌, 아버지이자 정신적 지주인 것이다. 그런데, 연쇄폭발사건이 일어나도, 국민들에게는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시대를 막 벗어난 일본의 그당시의 실정이나,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다는 오늘날이나 정부는 최소한의 알 권리만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에 왜 이렇게도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일까?



이런 판국에도 국민에게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건 국가의 위신이 최우선이고 국민의 안전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p330)

허무하고 황망하기까지한 '천안함 침몰사건'과 함께 맞물리는 생각들이기에 더욱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책을 읽을수록 '구니오'의 마음에 수긍이 가게 되었다. 형의 죽음에서 비롯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형의 죽음만으로 시작된 것은 아닐 것이다. '구니오'가 마르크스 경제론을 전공하고, 룸펜프롤레탈리아를 자칭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부의 집중현상과 가난은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도 일조를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출생과 성장한 고향의 모습과 생활하고 있는 곳과의 괴리감도 작용을 하였을 것이며, '구니오'의 행동은 뚜렷한 가치관과 목표의식에서 출발하였음은 자명한 사실인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무도 안하는 일. 인식(認識)조차 하지 못하는 일.
구니오는 그 일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은 아닐까?
올림픽을 위해서 급조되는 건축물들, 서구적인 도시로 탈바꿈하는 도쿄,거짓되게 꾸며지는 모습들에서 국민들에겐 헛된 꿈만을 안겨주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는 행동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구니오'만이....
일본인 모두의 염원인 도쿄 올림픽의 성공을, 전세계에 자신의 조국이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음을 알리고 싶은 일본인들 중에 단 한사람 '구니오'만이 그리고, 그를 도와주는 '무라타'만이 제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올림픽의 몸값1'의 리뷰에도 썼지만 '도쿄올림픽'이라는 한 사건을 몇 개의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구성이 더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두 시간대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도....
'구니오'의 과거시간의 구성과, '마사오'와 '다다시'의 현재시간의 구성.
그런데, 이 시간개념도 내용이 후반에 접어들면서는 시차가 많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흔히, 국방의 의무를 위해 군대에 있는 젊은이들이 말한다.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고.
'구니오'의 행동이후에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도. 경찰도. 마사오도. 다다시도. 요시코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저 또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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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춤을 추자 - 우리춤 야호! 신나는 체험 시리즈 3
이야기꽃.김지원 지음, 이지원 그림, 김찬복 사진 / 청어람주니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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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가 들썩들썩, 발을 동동동. 이 세상에서 가장 신명나는 춤, 어떤 것에 구애받지 않고 내 멋에 겨워서, 내 흥에 취해서 추는 춤. 바로 그건 우리 춤인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 들어서는 우리춤을 구경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같다. 아이돌 가수들의 춤이 유행하다보니, 어느새 우리 아이들도 그런 춤에 매료되고 그러다 보니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 우리의 신명나는 춤이다.


'우리의 것은 좋은 것이여~~'라고 아무리 일깨워 준다고 해도, 우리춤의 본질을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을까? 바로 이런 춤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야호! 춤을 추자'라고 생각된다.
'야호' 시리즈'는  '야호! 난장판이다'에서 우리의 場에 관한 이야기를.  '야호! 돈이다'에서는 화폐이야기를 들려 주었는데, 이제 우리의 춤이야기로 다시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찾아 온 것이다.  '야호! 춤을 추자'는 춤의 기원에서 부터 어원, 그리고 춤의 종류,함께 따라하기 까지 다양한 우리춤에 관한 이야기를 체계적이면서도 재미있게 들려준다.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추었던 '궁중춤'
종교의식을 행하며 엄숙하게 진행되었던 '의식춤'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었던 '민속춤'
세계무대에서 한국춤의 아름다움을 더욱 승화시켰던 '신무용'
우리춤을 이와같이 4분야로 나누어서 설명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들이 많이 접해본 춤은 1920년대 이후에 최승희에 의해서 발전된 신무용이 아닐까 한다. 궁중연회와 궁중춤의 우아함을 더욱 발전시킨 '화관무'나 화려한 '부채춤'을 우리들은 많이 보아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춤과 함께 서민들을 중심으로 추었던 '농악' '강강술래''탈춤' '병신춤' 그리고 '승무' '강강술래'' 살풀이' 등도 낯설지는 않은 춤들인 것이다. 특히, 이 책에는 우리춤의 설명후에 '어디 한 번 따라 해 볼까?' 라는 내용이 있어서 춤동작이나 숨쉬기, 표정까지도 그림과 함께 설명해 주기때문에 어린이들이 한 번쯤 따라해 볼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학창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평소에는 우리의 춤에 대해서 등한시하다가도 체육대회때는 부모님들께 우리의 춤을 보여주곤 했었다. 방과후에 부채를 들고 땀을 흘리면서 연습을 하는 것이 때론 힘들기는 했지만, 고운 한복과 함께 펼쳐지는 부채 펼치지는 소리. 그리고 부채로 수놓았던 아름다운 꽃모양. 화려한 부채를 펼쳐서 나풀나풀거리기도 하고, 파도타기처럼 앉아다 일어섰다를 하기도 하고, 부채춤의 꽃중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소담스러운 원형의 꽃를 만들내면 부모님들의 박수소리는 공연장을 떠나갈 듯 우렁차게 들렸었던 그런 추억들이 생각난다. 한국적 곡선미를 한껏 살린 화려하고 아름다움 춤. 그것은 우리의 자연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의 춤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멋'을 중요시하였기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춤은 우리 민족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승화된 결정체이기도 하며, 춤 속에는 우리 민족의 살아온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서양의 문물에만 길들여지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춤의 모든 것을 알려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야호'시리즈는 앞으로도 '야호! 놀자' '야호! 장담그기'가 나올 예정이라고 하니 그 또한 기대가 되는 것이다.
짧은 독서 시간이었지만,  '우리 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참 유익한 독서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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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건축 - 꽤 인간적인 그래서 예술적인 건축 이야기
최준석 지음 / 바다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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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타워브리지를 가노라면 만나게 되는 시청건물은 참 특이하게 생겼다. 반구를 좀 다른쪽보다 크게 잘라놓은 것같은 건물이 기울듯이 비스듬하게 누우려고 하는 듯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영국의 건축가인 '노만 포스퍼'가 건축한 푸른색과 그보다 좀 옅은 색의 하늘을 향해 쏘아 올라가는 듯한 총알모양의 '메리액스 빌딩'이 자리 잡고 있다. 시청건물은 그 자체가 태양열을 받아 들이는  green bulding 인 것이다. 그런 건축물을 보고 떠오르는 예술적 단상들. 그런데, 나는 폭넓은 예술적 지식이 없기에 그저 경이로움과 새롭다는 느낌밖에 더 이상의 말을  꺼낼 수 없다. 그런데, '어떤 건축'의 최준석 건축가는 이런 건축물을 보면 영화속 한 장면이, 소설속의 장면이, 미술 작품이 머리에 떠오르고, 건축물과 그러한 이야기가 매치되어서 술술 글로 써지는 것이다.  

 

가우디 건축의 비잔티움 색채 파편들을 보면서 '클림트'의 '키스가 떠오르는 것이다.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보면 우아한 곡선과 순백의 살결과 같은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가 생각이 난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너무도 많이 닮았음을 금새 알아 본다. 계동의 '공간' 사옥에서는 '르네마그리트'의 '전사술'이. 삼성동의 아이파크 타워에서는 '칸단스키'의 '무제'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연관성을 가지고 보면 너무도 이미지나 느낌이 닮아 있어서, 혹은 정말 그렇구나 하는 탄식을 자아낼 정도로 건축물을 바라보는 혜안이 느껴진다. 
 
 
10여년이 넘게 다양한 실무 건축가로 활동한 저자는

글로 짓는 건축이 콘크리트로 짓는 건축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작가소개글 중에서)
'배움으로서의 건축은 건축 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역사와 철학, 정치와 사회현상과 밀접한 종합적인 학문이었다. ' (p5)
이책은 건축이라는 근엄한 성곽주변에 흩어진 소소한 이야기를 주워 담은 것이다. (5~6)

그가 그동안에 '건축'을 하면서 느꼈던 것이상의 건축물에 담겨진 이야기를 너무도 박학다식하게 펼쳐 보여준다. 그 이야기들은 건축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로, 영화이야기로, 미술작품 이야기로, 소설처럼 들려준다. 그렇다고해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속에 건축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또한 담겨 있기에 건축을 모르는 일반 독자들도 생소한 느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새롭고 재미있으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건축물을 보면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의 작품과 인물들의 이야기가지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다양한 분야에 심취되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건축당시에는 많은 비난과 가십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건축으로는 가우디의 작품들이 그런 것이다. 평생을  건축에 모든 것을 걸었던 그는 구엘공원과 성가족 성당이라는 불멸의 작품을 남긴 것이다. 가우디에 의해서 깨어져서 붙여진 색색의 타일들에 의한 모자이크. 이것에서 바로 '클림트'의 '키스'를 연상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가우디와 클림트의 작품세계뿐만이 아니라 살아온 발자취까지 더듬어 주는 것이다.
  선유도 공원을 통해서는 골동을 존중하는 마음과 과거의 흔색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습을. 그리고 겸재 정선의 그림속 '선유봉'이 바로 과거의 이곳이었음을 찾아내 주는 것이다.  프랑스 '롱샹 성당'의 전형적 성당의 모습을 뒤엎은 건축물을 보면서 그 지역 특성까지 꿰뚫어 본다. 그 유명한 에펠탑의 일화처럼 건축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다던 건축물이 지금은 건축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있는 사례들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건축가들의 기발한 발상들. 그리고 건축가들은 건축물을 통해서 후세대에까지 자신의 이름을 남겨 주는 것이다. 국내와 해외의 유명 건축물들, 특히 좀 특이한 건축물들이 이 책에는 많이 소개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이제 거리속의 건축물들이 온갖 이야기들이 담겨져서 눈에 들어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소설속의. 詩속의. 사진속의. 미술작품속의. 아니면 자신들의 추억속의 한 부분이. 지나간 어떤 날들의 모습이.  건축물들과 함께 떠오르지는 않을까?
우리들이 그동안 무심하게 스쳐가던 건축물들, 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건축물까지 그 건축물에 얽힌 이야기들을 자세하게 들려준다
국내 건축과 해외 건축물을 넘나들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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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 개정판
원태연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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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연 시인은 스무 살에 첫 시집을 낸 이후에 시인, 소설가, 작사가, 영화감독 등 폭넓은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가 그의 첫 소설책인데, 이 책을 영화로 만들면서 영화 감독으로도 데뷔를 했다. 비슷한 장르같기는 하지만 각기 다른 장르를 넘나든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인데....
 

그의 시 제목이기도 하고, 그의 다른 많은 시에서 마치 후렴구처럼 반복적으로 나오는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가 바로 이 책의 제목인 것이다.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그의 시의 소재들이 사랑을 이야기하기에, 특히 가슴아픈 사랑. 헤어진 사랑의 詩들이니 가슴 아픈 시의 구절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시들은 미사여구로 꾸며진 그런 시들은 아니다. 생활속에서 느껴지는 마음들이 꾸밈없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시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어쩌면 더욱 친숙하게 마음에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후에 느끼는 감정들이, 아픈 사랑을 끝낸 후에 정리되지 않은 마음 그대로의 표현으로 시에 담아내고 있다.
이 시집은 '원태연' 시인이 새로 쓴 시들을 모은 시집이 아니라. 2000년에 출간하였던 책을 새롭게 단장하여 출간한 것이다. 처음 출간 당시에는 시낭송 시집으로 CD가 포함되어서 '유지태'의 음성으로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CD를 제외시키고 시집만을 선보이고 있다.



아마도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도 있는듯하지만, 항상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곱씹어 가면서 읽는 것이 시집이니 마음이 공허해 질때마다 읽고 또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집은 아무래도 시를 읽어보아야 하는 것이니, 짧막한 시 세 편을 함께 실어 본다.


달팽이의 사랑
그래도 거기다
그랬어도 거기다
그래봤자 거기다
그래도 거기다
(P66)

비  

저녁내내 끊임없는 비
덧문을 닫고 스탠드를 켠다.
조용한 것이 무거워 틀어 놓은 음악과
덧물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가슴을 휘젓고 다닌다.

 
저녁내내 끊임없는 비
아직도 나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82)




사람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은 시가 바로 '원태연'시인의 시일 것이다. 그의 시는 감성적인 언어들로 쓰여졌다. 그리고 새롭게 바뀐 따뜻하고 정서적인 일러스트까지 읽으면서 보는 아름다움까지.....

사랑
사랑이란 멀리 있는 것
멀리 있어 안 보이는 것
그렇게 바라만 보다 고개 숙이면
그제야 눈물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것
그래서 사랑은
더 사랑하는 사람의 것
상처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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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의 동행
미치 앨봄 지음, 이수경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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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앨봄'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가이다. 어느해던가 오래전 제자로부터 한 권의 책이 보내졌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었다. 루게릭병으로 죽음을 앞둔 모리선생님과 앨봄이 화요일마다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인데, 그 속에는 인생의 깊은 성찰을 깨달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그 제자와 나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오래전의 스승에게 보내는 책 한 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란 책을 나에게 보내주기 위해서는 그가 책을 읽고 받았을 감동과 그 책을 나에게 보내주고 싶었던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학생에게 나란 스승은 과연 '모리'와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니 한없이 내가 작아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러한 인연으로 만난 작가가 '미치 앨봄'이었고, 그이후에 그의 작품들이 출간되면 읽기 시작했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그리고 '단 하루만 더' . 모든 작품들이 잔잔한 감동을 주면서 고난과 역경속에서 인생에 대한, 삶에 대한,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보게 해 주었다. 그런데, '미치 앨봄'이 어릴적 다니던 유대교회의 랍비인 '렙'과의 8년간에 걸친 만남을 가지면서 나누었던 긴 대화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8년의 동행'이라는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나는 어쩌면 '8년의 동행'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연장선상에 놓인 책이라는 생각과 함께 '미치 앨봄'의 글들이 궁금해졌다. 책장을 넘기자 '미치 앨봄'의 인쇄 싸인본과 함께 '한국독자에게' 보내는 글이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내 추도사를 써 주겠나?"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앨봄'은 부모님대에서부터 다니던 유대교의 랍비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서 추도사를 쓰고, 장례식을 집전하던 랍비의 추도사. '앨봄'은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한 이유조차 이해할 수가 없다. 랍비인 '앨버트 루이스'(렙)의 추도사를 쓰기 위해서는 그와의 만남을 가지면서 그에 대해서 잘 알아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시간이 될때마다 '렙'을 찾아와서 그와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모리'선생님에게서 인생 수업을 들었던 것처럼. 그런 가운데 또 만나는 사람이 '헨리 코빙턴 목사이다. '앨버트 루이스'와 '헨리 코빙턴'. 이 두 사람의 삶이 교차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고 '미치 앨봄'의 이야기까지.
'앨버트 루이스'와 '헨리 코빙턴' 두 사람은 '미치 앨봄'의 인생스승으로 교회목사들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생역정은 너무도 판이하다. '앨버트 루이스'는 유대교 랍비로서 자신의 신도들에게 신앙심을 강요하는 것도 아닌 자연스럽게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사람이다. 권위적이고 성서적인 설교보다는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설교를 한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노래로 불러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의 삶자체는 즐거움이고 평화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헨리 코빙턴'은 어릴적 생쥐와의 동거를 할 정도로 빈곤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아버지는 마약상이었다. 그렇지만 '헨리'는 하나님, 예수님, 아니 그 어떤 초월적인 존재보다도 아버지를 존경했다. 그에게 유일한 영웅이던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오는 상실감에 그는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겠다는 생각에 마약, 술, 총격, 감옥에 수감되는 모든 세상의 낮고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날 마약 탈취사건후에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쓰레기통 옆에서 떨면서 밤을 지새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살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따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그가 목사가 되는 이유이다. 노숙자를 위한 쉼터가 바로 그의 교회인 것이다. 지붕에서는 물이 줄줄 새는, 가스조차 끊어져서 추위에 떠는....



  그렇다면 '미치 앨봄'은 부모로부터 받은 신앙심, 그러나 성장하면서 유대교를 알게 되고, 냉담과 무관심, 그리고 자신의 성공으로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이 세사람의 삶. 그 속에 인생의 모든 질문과 대답이 들어 있는 것이다. '미치 앨봄'이 추도사를 쓰기 위해서는 '렙'을 주기적으로 만나고, 그의 설교를 듣고, 그 이전의 설교집들을 보기도 하면서, 어린 시절의 유대교회와의 추억들도 되새겨 보면서, '앨버트 루이스'의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믿음으로 인해 기쁨이 넘치는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


 

그래. 인생은 아름답다.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다.
그래서 미치 앨봄은 '렙'과의 만남을 거듭하는 것이고, 그런 가운데에 자연스럽게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꼭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니라도 좋다. 이슬람교의 알라여도 좋고, 불교의 부처라고 좋고, 힌두교의 신이라도 좋다. 그동안 지구상에서 종교로 인한 갈등과 분쟁, 전쟁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던가? '우리들'과 '그들'로 양분되는 종교가 아닌, 각 개인 개인이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치 앨봄'과 '헨리 코빙턴'의 만남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앨봄'이 노숙자 쉼터 자원봉사를 하게 되면서 지원금 기탁 문제로 알게 된 목사이다. 낡아서 지붕에서 비가 오면 물이 뚝~~ 뚝~~ 떨어지는 교회의 목사. 노숙자들이 기거하고 있는 교회. 그곳의 목사는 자신이 마약, 총기, 강도, 교도소 복역등의 과거가 있음을 너무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당신은 그런 목사를 믿고 노숙자들을 지원금을 기탁할 수 있을까? 설교를 들어본다. 군더더기가 붙지 않은 간단한 설교. 그러나 목사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몇 안되는 신도들은 그를 믿고 따른다. 노숙자들이 그곳에 머물든지, 떠나든지 상관을 하지 않는다. 기독교를 믿을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차츰 '헨리 코빙턴'과 그의 교회가 마음에 와닿는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들도....
'헨리'교회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카스' 역시, 진실된 마음과 믿음이 엿보인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고 제일 두려워하는 게 뭘까요? 내가 물었다. / "두려워하는 거?" 그는 잠시 생가하더니 입을 열었다. / " 음, 이런 거겠지. 죽음 다음엔 뭐가 있을까?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그곳은 내가 상상하던 그런 곳일까?" / 맞아요, 그럴거예요. "그래, 하지만 또 다른게 있지."/ "뭐요?" 렙은 의자 뒤로 몸을 기댔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 (p174)
자신의 이별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으로 장식하는 '렙'. 그는 자신의 장례식에서 자신의 마지막 목소리까지 녹음해서 들려준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느냐?' '사후의 삶이 존재하느냐?'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네'. '그렇다.' 라는 대답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그의 이별은 '아름다운 이별'이다. '미치 앨봄'이 두 성직자인 인생스승을 통해서 얻었던 그 귀중한 인생의 진리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랑' '결혼' '행복' '종교(신앙)' '삶' '죽음'  -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토록 소중한 삶, 하루 하루가 특별할 것없는 그저 그런 날들이라고 투덜거리던 자신들이 너무도 철없는 투정을 부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허황된 욕망들이 한없이 부끄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도 판이하게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온  두 성직자의 모습속에서 내가 힘들때에 나를 잡아줄 믿음이 없는 것보다는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느냐?" 고 물어볼 신앙이 있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인생의 동행자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앨버트 루이스'가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죽음을 향하여 가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헨리 코빙턴'은 악의 추억인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기쁨과 함께 일 마일을 걸었네
그녀는 내내 이야기를 재잘댔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더 지혜로워지지 않았네
그 모든 말을 다 듣고 나서도.
나는 슬픔과  일 마일을 걸었네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네
슬픔이 나와 동행했을 때.
   -로버트 브라우닝 해밀턴-
  (p 244)
오랜만에 만난 '미치 앨봄'의 작품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들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그때의 그 감동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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