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별 1 - 나로 5907841 푸른숲 어린이 문학 18
이현 지음, 오승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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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별1'을 몇 페이지 읽다보니, 영화 'A.I'와 소설 '2058 제너시스'가 생각난다.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 모습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모든 언행은 인간을 닮았지만, 내장된 프로그래밍에 의해서 움직여야 하는 로봇, 그들에게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로봇들도 인간과 같은 감성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로봇이 인간을 지배한 세상이 도래할 수도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그들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로봇에 관한 SF 소설을 쓰게 되는 것이다.
 

'로봇의 별'은 3부작으로 국내 최초의 본격 SF 창작 동화인 것이다. 어린이들이 좋아하고 관심있는 로봇과 우주도시의 이야기.
동태평양 상의 갈라파고스 제도 주의 가장 큰 섬인 이사벨라 섬 한복판에서 하늘로 길게 뻗은 검은 레일이 있단다. 지구와 달사이에 거대한 우주도시 라그랑주까지 가는 레일이다. 그곳은 어떤 곳인가 궁금하지 않은가?


그보다 지구는 과연 먼훗날에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도시들은 급수가 낮은 감마인이나 델타인이 사는 지저분하고 병균이 득실거리는 우범지대로 변하고, 도시의 윗부분에 새로운 도시가 존재한다. 그곳은 살기 좋은 알파인과 베타인들이 사는 안락한 곳. 이곳의 사람들은 로봇을 다양도로 이용하게 된다. 부유한 사람들은 사람의 형상을 한 예쁜 로봇을 자식처럼 키우기도 한다. 바로 나로 5970841처럼.

 

나로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6살짜리 지능과 감성을 지닌 최신형 로봇. 그후 5년동안 딸처럼 키워온 엄마와 헤어져서 라그랑주 우주도시로 가야한다.
어떤 계기로 '로봇에 관한 지구 연방법 3원칙'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도망 로봇 신세가 된 것이다.
도망 로봇이 되어 공룔 로봇 루피와 우주 도시를 향해 가는 나로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로봇으로 태어났지만 '그렇게 태어났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 갈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닌가?

 

공룔 로봇 루피의 말에 의하면, 인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로봇만의 나라, 즉, 로봇의 별이 있다고 한다. 장차 로봇들이 지구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로봇의 별!' 하늘 저편 어딘가에 로봇의 별이 있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우주 도시에서 로봇들이 자유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있었다. 자유로운 로봇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P113)
우주는 더 이상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아. 이제 우리가 나설 때야.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는 할 때야. (P226)
로봇의 별로 가지 않는다면, 도망 로봇이 되어 폐기될 것이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든 엄마(인간)과의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일.
쿵쿵쿵쿵.
엄마의 심장 소리가 나로의 귓전을 울렸다. 오래도록, 로봇인 나로조차 그 수명이 다하도록, 아니 로봇과 인간이 모두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는 날이 오도록 결코 잊을 수 없는 소리였다. 자유로운 로봇이 된 나로는 이제 그 기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었다. 엄마의 영혼도 언제까지나 나로를 간직할 것이었다. 엄마와 나로는 결코 이별하는 것이 아니었다. (P102)

 

'로봇의 별'에는 권별 화자로 안드로이드 로봇. 즉, 명품 로봇이 등장한다. 나로, 아라, 네다. 이 세 로봇은 22세기에 단 세 대밖에 없는 인간과 똑같은 외모를 가진, 그리고 뛰어난 지능지수를 가진, 그리고 감성지수까지 갖춘...
이 세 로봇은 자신들의 성장 환경을 토대로 하여 세 로봇 나름대로의 꿈을 쫓아 가는 과정을 작가의 상상력과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헤쳐나가는 모험담을 토대로 이야기를 펼쳐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속에는 로봇이지만, 인간과 같은 희로애락의 감정이 감추어져 있음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 주종관계나 인간과 기계라는 차원을 뛰어 넘는 아름다운 마음씨도 들어 있는 것이다.
인간이 로봇을 사랑하고, 로봇이 인간을 사랑하는 그런 세상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상상 속의 이야기라고요?
아니, 상상만이 아닌, 먼훗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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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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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든, 어떤 평가도 내릴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 회장의 자살도, 경제난에 허덕이다가 선택한 가족의 동반 자살도, 세상을 살아가기 힘겨워서 허덕이던 노숙자의 초라한 죽음도, 자연 재해에 의해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죽음이 덮쳐 온 경우에도......
어린 시절에 동네어귀에서 초상이 난 경우가 있었다. 그당시에는 마지막 순간을 가정에서 보내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집을 떠나서 객사를 하면 큰 일이 나던 시절이었으니까... 초상난 집에 달려 있던 등이 너무 음산하고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장례가 있은 후에도 한참을 그 집앞을 지날때면 등골이 오싹했던 것이 나의 가장 오래된 죽음에 대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여간에 죽음에 대한 느낌은 언제나 찌푸린 겨울 하늘과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발하게도 '텐도 아라타'는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죽음들을 찾아 다니면서 애도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심도있게 다루는 묵직한 장편소설 '애도하는 사람'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텐도 아라타'의 그동안의 작품 경향은 아동 학대문제, 여성에 대한 폭력 등 세상의 모든 아픔에 대한 치유와 가정의 의의를 생각하게 하는 약자의 편에서 현대인의 정신적 어둠을 묘사하는 작품을 써왔다.
'애도하는 사람'은 처음 작품 구성,스케치에서부터 7년이라는 세월에 걸쳐서 완성된 작품이라고 하니, 작가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런 작가의 작업을 생각하니 더 꼼꼼하고 소중하게 읽게 되는 것이다.

'애도하는 사람'은 작가 스스로도 '정점에 이른 작품'이라 평했으며, 평단에서 역시 '21세기 최고의 걸작'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책날개, 작가 소개글 중에서)
 



'애도하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시즈토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죽은 사람들을 애도한다.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가족들도, 시즈토 자신도 확실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다만, 친구의 죽음을 접하면서 오히려 자신보다는 이 세상에 살아 남아야 하는 사람은 친구였다는 생각, 그리고 자신이 돌보던 소아병동의 아이들의 죽음, 어느날 보았던 길가의 어떤 죽음에 대한 꽃다발 등등.... 누군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자신도 정확한 답변을 할 수는 없다. 다만, 한 두 죽음을 찾아 다니다 보니 이 세상의 모든 죽음에는 경중이 없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애도를 받을 자격이 있는 죽음이라는 것....
그 죽음을 기억해주고, 애도해 주고 싶다는 것뿐이다.

이 사람은 누구에게 사랑받고,누구를 사랑했을까요? 어떤 일로 사람들이 고마워 했을까요?
이것이 모든 죽음에 대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 물음이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삶이었고,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삶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죽음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는 죽음을 찾아 다니면서 이상한 행동과 함께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
어쩌면, 그의 행동을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모든 죽음에 대한 애도와 죽음을 자신만이라도 기억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일 것이다.
나는 돌아가신 분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애도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p165)
모든 죽음에 대한 애도를 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의 소재가 된다는 것은 확실히 기발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텐도 아라타'는 아동학대, 아내 폭력, 학생들의 집단 구타 등 약자들의 이야기도 은연중에 작품의 내용 여기 저기에 비치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애도하는 사람'인 시즈토의 이야기를 뒷받침해주는 3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이야기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곳에는 빠짐없이 나타나서 기삿거리를 낚아채 가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먼 가십거리에 가까운 기사를 쓰는 기자인 마키노.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이혼의 상처를 안고 방탕하게 살아간다.
우연히 만난 '애도하는 사람'을 만난 후의 변화와 그의 헤어진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블로그를 보면서 느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
아들의 블로그에 실린 '인터뷰하는 사람'이라는 곳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친 아빠는 기자엿다. (...) 아주 훌륭한 기자엿다고 엄마가 그랬다. (...) 하지만 친 아빠는 죽었다.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나는 이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외롭지 않다. 엄마와 지금의 아빠가 있기때문이다. 끝. (p220)
또, 한 사람은 애도하려 가는 길에 만난 '유키꼬'이다. 그녀 역시 성장과정과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사랑인지, 집착인지 모르는 어떤 절의 주지와의 결혼을 하게 되고, 남편의 요구에 의해서 사랑하는 남편을 살인하지만, 항상 그의 오른쪽 어깨에서는 남편의 망령인지, 망상인지가 빈정거리면서 그녀를 힘겹게 만든다. 그녀 역시 '애도하는 사람'과 같이 죽음의 현장들을 찾아다니는 과정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 가게 된다. 자신의 어깨에 있던 무거운 짐, 그녀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내려 놓을 수 없었던 죄책감에 대한 망상을 내려 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한 사람은 시즈토의 어머니인 '준쿄', 아들의 뜻모를 '애도하는' 여행을 묵인해주지만 말기암에 걸려서 아들의 모습을 꼭 한 번 보기를 원한다.
'준쿄'는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명과는 무관하게 낙관적이고, 자신의 병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이다. 미혼모가 될 딸의 출산과 자신의 남은 인생이 엇비슷하다는 것이 또한 어떤 결말이 이루어질 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묵묵히 걸어가면서 각양각색의 사연이 담긴 죽음을 애도하는 시즈코의 말과 행동은 마키오에게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세계로 만들어 가게 해주고, 자신의 사랑과 살인에 대해서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던 유키요에게도 자신이 가졌던 사랑이 결코 집착이 아닌 사랑이었으며, 그녀의 남편이 보여준 행동도 결국에는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만들어 준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시각이 이처럼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현재까지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 기억할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해. 어떻게든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없을까하고 ... (p256)
고인을 기억할 때, 죽음의 비참함과 비애가 아니라 그 사람의 긍정적인 면만 기억하기로 했다고 한다. 긍정적인 면이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르겠지만, (...) 어떤  인물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 가지  여건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누구를 사랑했는가? 누구에게 사랑을 받았는가? 누군가가 어떤
일로 그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는가? (265)

'텐도 아라타'는 준쿄의 말기암에 대처하는 부분을 너무도 긍정적이고, 죽는 날까지 그녀가 하던 봉사활동이라든가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삶을 마무리하는 부분을 너무도 아름답게 그려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3개월, 한 달, 3주, 며칠..... 점점 줄어드는 시간들을 딸의 출산을 기다리면서 맞이하는 모습이 어쩌면 더 슬프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신체의 기관들마저 멈추어가는 순간들, 모든 기관들이 마비되고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다는 청력.....
준쿄의 귀에 들리는 아련한 소리들... 딸의 출산의 소리, 자신의 스려지는 모습을 안스러워 하면서 하는 이야기들,  미안해, 엄마...., 잘 참으셨군요,
귀에 익은 목소리, 애타게 기다리던 목소리가 '늦었습니다.' 한다. 희미하게 남은 힘을 그러모아 눈을 뜬다. 정말로 보이는건가. 진짜 현실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p640)
준쿄가 마지막까지 기다리던 아들 '애도하는 사람'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안스러워서 나는 한 줄기 눈물을 흘린다. 끝까지 아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무언의 응원을 보냈던 엄마는 아들의 애도를 받으면서 이 세상끝으로 떠나간다.
 당신은 ... 나를 사랑해 준 사람입니다., 당신은 ... 내가 깊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사랑입니다. (p640)

아들의 애도를 받으며 떠난 세상을 바로 이와같은 세상인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누구나 차별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누구나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서로에게 사랑받는 것이... 서로에게 감사하는 것이 전해진다. (p641)



한 작가의 머리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장편소설 '애도하는 사람'은 말도 안되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독자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사랑과 집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준다.


그렇다, 어떤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들이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삶이 모든 사람에게 소중하고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삶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고 방식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를 생각해 보게 해 준다.
다소 두꺼운 책이지만, 읽는내내 삶에 대한 단상들이 이것 저것 떠오르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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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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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읽기전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인이 한국에 살면서 한국 고아를 입양하여 살아가는 잔잔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책의 분량도 230 여 페이지에 달하기에 그저 그런 흔한 고아 소년의 성장기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이질적인 문화로 다가오는 이슬람 문화. 이슬람 문화의 성격이 그래도 좀 완화되어 있는 터키. 그곳의 사람들은 한국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의 삼촌이, 아저씨가..... 뭐 이런식으로 자신들의 친척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와 형제의 나라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한국전쟁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터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낯선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몸에 큰 흉터를 지닌 하산아저씨.
그리고 그가 고아원에서 입양한 한국 소년 역시 몸에 많은 흉터들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도 보기 흉할 정도로 큰 흉터. 그 흉터는 소년의 기억에도 없는.... 그러나, 그 흉터로 많은 마음의 흉터가 더 크게 남아 있는.....

지옥에서 살았던 사람이 지옥이외의 곳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지옥일뿐이겠지. (p27)
네 흉터는 그냥 흉터가 아니란다. 그 흉터는 역사가 날염된 것이야. 내몸의 모든 흉터들 역시 내 개인사가 날염된 것들이지. (p221)
이 두 주인공은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있는 근처의 후락한 마을에 살고 있다. 그 허름한 골목에 모여 사는 사람들. 그들의 인생도 찌그러진 인생임에는 틀림없다.
하산아저씨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그대로 눌러 앉아 살고 있는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 허름한 충남식당의 안나 아주머니. 그리고 말더듬이 유정. 기억력이 상실된 사람....   그들은 모두 마음의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밖에도 소년이 있었던 고아원의 벙어리 신부.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정상이 아닌 말더듬이, 벙어리. 기억력이 상실된 사람 등 소외되고 장애를 지닌 그런 인물들이다.
특히, 하산아저씨는 이슬람신도이기에 모스크를 찾기도 하고 기도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슬람교에서 금기시하는 돼지 정육점을 한다.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난도질하는 유일한 무슬림이 아닐까....
소년은 상처투성이 몸과 마음을 가진 누굴 한 번도 좋아한 적이 없다. 해외로 입양이 되어 입양가족에게 장기를 제공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지 않고 하산아저씨와 살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아이이다.
이런 하산 아저씨와 1인칭 화자인 '나' 즉 소년이 그렇다고 오손도손 재미있게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고아원에서 입양은 해 왔지만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상을 꾸려 나가는 것이다. 소년은 동물의 말을 알아 듣는 유정과 그리고 하산아저씨, 야모스 아저씨, 안나 아주머니와 부대끼며 살아간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들 중간 중간에 환상 소설이 아닐까 하는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소재들의 이야기를 슬쩍 끼어 넣기도 하면서 소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름답지도 않고 흉터로 보기싫은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쁘지도 않은 세상을 그려나간다. 이야기속의 사람들의 삭막하고 피폐한 마음을 소년의 눈을 빌어서 차분하게 그려나가기에 더욱 서글픈 마음이 들도록 유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산 아저씨와 소년의 몸에 있는 비슷한 흉칙한 흉터.
하산 아저씨는 고아원에서 왜 소년을 입양했을까.
하산 아저씨와 야모스 아저씨는 전쟁중에 어떤 일을 겪었을까.
소년이 왜 얼굴 스크랩을 할까.
"너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보이지 않는 끈을 발견한 것 같구나."
"그걸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아저씨예요. 보세요. 아저씨, 아저씨 얼굴을요. 아저씨는 어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답고 어떤 터키인보다 더 터키인 다워요"
" 한국인인지 터키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맞아요, 분간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아무나 그렇게 될 수는 없는거잖아요. "
   (....)
"안다고 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랑, 우정, 평화, 자유.... 그런 말은 알지만 그걸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것처럼요. "    (p220)
사람은 본성적으로 누군가를 인종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없다. 그건 우리가 곧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는 능력만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했다. (p222)
이런 모든 의문점을 작가는 속시원하게 확 풀어 놓지를 않는다.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서 읽는 이들이 스스로 풀어나가도록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그래서 소설의 줄거리보다는 작가의 섬세한 인물묘사와 비유적인 표현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그런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첫 문자은 '내 몸에는 의붓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시작하여 '내 몸에는 여전히 의붓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끝맺음한다는 것이다.
이 두 문장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읽은 후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 '이슬람 정육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장소설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런 소설.

 

구부정한 거인을 연상시키는 하산 아저씨의 뒷 모습은 매번 이별을 하는 사람처럼 아득하고 쓸쓸했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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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세스 노터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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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이와 똑같은 제목으로 검색되는 책도 여러 권이 있고, 책 제목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산티아고 순례기를 걸었던 체험을 담은 여행기는 더 더욱 많다.

내가 읽은 ;산티아고 순례기'에 관한 책으로는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푸른숲' 과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서영은, 문학동네' 등이 있다. 그외에도 여러 여행 서적 중에서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한 부분으로 담은 책들도 여러 권을 읽었다. 이렇게 국내에 '산티아고 가는 길'에 관한 서적들이 많기에 예전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찾아 나선다.

요즘 '브리다'로 또다시 독서계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파울로 쿄엘로'도 산티아고 루드 중의 '카미르'가 일컫는 길에서 영적  깨달음을 받았다고 하지 않던가.

'산티아고 가는 길'- 이 길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으로 로마와 예루살렘에 이어 유럽 3대 성지 중의 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여러 루트가 있으며,  그중에서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서 피레네 산맥을 스페인의 메세타고원을 지나는 지도상에서는 스페인 북단의 동쪽에서 서쪽에 이르는 한쪽 방향을 향해 800Km 가량을 걸어가는 길이 가장 안전하고 단순한 길이라고 한다.

이 길 위에는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어서 이 길을 통해 걸어서 순례를 하기에 순례자의 길이라고도 한다. 길위에는 성당들이 많이 있으며 이 성당들에서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있다. 이 길을 걸으면서 홀로 걷기도 하고, 또 길을 걷다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또 헤어지면서 순례자들은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스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도 이런 길일까?
이 책의 저자인 '세스 노터봄'은 '나의 청소년기는 만사가 빗나갈 대로 빗나가 버린 시절이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마음 속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독실한 카톨릭 신자의 새 아버지에 의해 수도원 기숙 학교에 보내지면서 적응을 하지 못해서 유럽 각지를  떠돌아 다니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그가 여행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발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노터봄'은 시, 소설, 에세이, 여행기, 희곡, 평론, 샹송 작사, 번역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쓸 정도로 필체가 수려하다는 것을 '산티아고 가는 길'의 책장을 펼치는 순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는 네덜란드 사람인데, 이 책은 이미 1992년에 네덜란드에서 간행 된 책이며, 그는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이미 1980년에서 1990년에 걸쳐서 썼다고 한다. 그것 보다 더 '산티아고 가는 길'이 빛나는 것은 저자는 1954년에 처음 스페인을 찾았고, 그 이후에는 거의 매 해마다 스페인을 찾을 정도로 스페인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것이다. 반 세기가 넘도록 스페인의 매력에 취해서.... 스페인에 숨겨진 보물들을 하나 하나 캐어서 이 책 속에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스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은 단순한 순례기을 걷고 쓴 순례 체험기나 여행 에세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에는 너무도 많은 깊이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흔히,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는 사람들이 걷는 길을 따라서 걷는 순례의 길이 아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이 길의 출발점을 배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들어가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순례길의 종착점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교회에서 이 글을 끝맺는다.


누구나 다 가는 순례길을 노란 화살 표를 더듬어 가면서 걷는 것이 아니라 차를 타고, 또는 걸어서 샛길을 찾아 찾아 마을 구석 구석을 휘젓고 다닌다고 해야 할까. 그 길 위에 성당이 있으면, 수도원이 있으면, 아름다운 풍광이 있으면, 그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박식한 생각들을 풀어 놓는다.


나는 이중으로 여행을 한다. 하나는 렌트카를 몰고 다니는 여행이고, 하나는 요새와 성과 수도원이, 또 그곳에서 마주친 문서와 전설이 불러 일으키는 과거를 누비고 다니는 여행이다. (p69)

나에게 여행은 질러 가는 길이 아니라 둘러 가는 길이다. 나그네는 옆길로, 시골길로, 큰길에서 샛길로 빠지는 유혹,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을 가리키는 표지판의 유혹, 오솔길 하나만 난 저 멀리 성채의 윤곽이 주는 유혹, 저 언덕이나 산맥의 맞은 편에서 나그네를 기다릴지도 모를 수려한 장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제 발로 일부러 영원한 미로를 만들어 간다. (p497)

화가 벨라스케스와 수르바란의 그림에 얽힌 이야기, 세르반테스의 문학 이야기, 성당이나 수도원의 유래와 무어 양식, 로코코, 바로크 건축 양식, 소포클레스의 비극, 헤겔의 역사철학 등~~

 
 그는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면서 그 속에서 시간 여행, 공간 여행을 한다. 그래서 역사, 정치, 자연환경, 예술, 건축,문학, 문화, 정서 등의 다방면에 걸친 폭넓은 지식들이 심도있게 다루어 지는 것이다.




수르바란의 '거룩한 얼굴' (일명: 베로니카의 손수건)

"천막, 예배당, 십자가." 서서 그림을 보는데 독일어로 누눅가가 뇌까렸다. 딴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막처럼 펼쳐 놓은 수건은 어떻게 보면 예배당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십자가 같기도 하다. (p148)





프란시스코 데 수리바란, [세라피우스의 순교]

"수르바란은 천을 하나의 속성이  아니라 어엿한 주체로 다루었다. 순교한 세라피우스의 그림에서 머리와 손을 벗겨내면 남는 것은 곧추선 천의 유품이다. 감상자가 그림을 어디서부터 보아 내려가는가와는 무관하게 천이라는 구성물은 인물과 동급의 비중을 가진 대상으로 눈앞에 떠오르면서 감상자에게 수수께끼를 던진다. (p153)

'세스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은 성당과 수도원의 건축 양식의 설명에서 부터 시작하여 문학과 예술의 해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해주는 책이기에 여행에세이의 장르를 뛰어 넘어서 문학적, 예술적 차원의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들려주던 종교적인 순례길, 명상의 길을 벗어나  '세스 노터봄'만의 독특하고 차원높은 새로운 순례길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산티아고 관련 서적들과는 차별화가 되는 '산티아고' 관련 최고의 서적으로 돋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산티아고 가는 길에 관해서 전혀 문외한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기에 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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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독서 -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여행자의 독서 1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과 책읽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중의 하나는 항상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것, 그리고 항상 고프다(?)는 것이 아닐까...
여행은 떠났다가 돌아오는 그 순간에 또 다른 여행을 갈망하게 되고, 독서도 역시 책장을 덮는 순간 또 다른 책이 손에 들려 있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가 보았던 곳. 언젠가 읽었던 책. 그 곳과 그 책을 다시 찾고 읽는다고 해도 전과 같은 느낌은 아닌 것이다. 그것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 속으로 들어 오는 것이다.


여행과 책. 이 두가지의 이야기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 바로 '여행자의 독서'라고 생각된다.
이 책의 부제는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이다. 물론, 나는 책을 읽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 보지는 않았다. 여행길에 읽기 위해서 여행 가방 속에 책 몇 권을 넣어서 떠나기는 하지만.... 그것도 오랜 시간 비행기에 시달려야 하는 경우에 달콤한 휴식과 같은 청량제 역할을 해 주곤 하는 것이 책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여행자의 독서'를 쓴 저자의 이력이 상당히 다채롭다. 문학과 음악, 사진, 여행, 광고 등 문화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을 하고, 또 그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 사람. 그가 십여 년간 쌓아온 여행과 독서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살짝 궁금해진다.

이 책은 지난 십여 년간 세상 구석구석에서 겪은 인상깊은 여행들과 그와 연관된 책 (특히,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의 말 중에서 p5)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 ! (p6)
이 책의 저자는 문명의 밝은 부분을 누리고 있는 유럽이나 북미보다는 문명의 그늘에 가려있는 동남아시아, 인도, 티벳, 중동지역, 남미 등을 주로 여행하면서 책을 읽는다. 그 지역과 관련이 있는 책을 주로 선택해서 읽는다. 때론, 여행지와 어울리는 책들을 여행가방이나 배낭 속에 집어 넣고 길을 떠난다.

 
 
그가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는 도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이다.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문학과 함께 소개되곤 하는 곳. 문학과 음악이 함께 있는 곳. 소설가와 음악가의 이야기가 함께 하는 곳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자연스럽게 도스토옙스키의 '백야'와 '죄와 벌' 을 읽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시간여행이자, 문학(소설)속으로의 여행이 되는 것이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한때라도 극심한 문학의 열병을 앓아 본 사람이라면 통과의례처럼 만나고 물리쳐야만 했을 그 이름, 좀처럼 그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름이다.
그는 지구 둘레 1/4의 거리, 9300km. 7박 8일이 걸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긴 열차여행인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1/3지점인 이르쿠츠크 에서 모스크바까지를 열차에 몸을 싣고 4박 5일의 여행을 즐긴다. 러시아 문호들의 책과 함께.

 
 
또 다른 여행지. 안나푸르나. '산은 내게 내려오지 않는다. 내가 산을 찾아가야 한다. ' 그래서 그가 산을 찾아간다. 역시 책과 함께. 그는 어떤 책을 만났을까?
곡식(안나)이 풍요로운(푸르나)땅이라는 설산에서 만난 책 중의 한 권은 현지에서 구한 '인듀어런스' 그가 들려주는 이 책의 줄거리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에겐 '오래된 미래'로 다가오는 라다크. '슬럼독 밀리어네어', '적절한 균형'이 어울리는 곳이란다.
강대국에 의한 침탈과 전쟁의 상처를 가진 베트남에서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하얀 아오자이' '전쟁의 슬픔' '그대 아직 살아 있다면' 등. 이외에 빈곤, 아버지의 폭력, 희망없는 미래가 담긴 책 '끝없는 벌판'도 그의 여행가방에 들어 있게 마련이다.


스페인의 겨울. 침울한 안개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누군가를 따라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과 그림자'는 추리형식의 소설이 어울리는 것이고, 터키를 여행하면서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 어떨까.


낯선 곳을 여행하는 여행자처럼 미지의 내용들을 읽어 내려가는 매력은 여행과 독서의 또다른 닮은 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있다. 여행은 이름난 장소와 풍광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이야기. 사람의 냄새가 곧 여행의 향내가 된다. 낯설거나 익숙한 향내를 찾아 그 사람에게 가고 싶다. (p179)

여행지에 관한 묘사와 그가 그곳에서 읽은 책들의 이야기는 너무도 흥미로워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을 하게 된다.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에 읽었던 책들도, 읽다 읽다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난해해서 포기했던 책들도, 그 책에 푹~~ 빠져서 감명을 받았던 책들도, 아니, 그 보다는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는 그 많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리도 재미있게 펼쳐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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