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최갑수 골목 산책
최갑수 글.사진 / 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때로는 이전에 찾았던 곳을 찾아감으로써 언젠가 마주쳤던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하여 가고 있는 것인지를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추억이 담겨져 있는 청파동 골목 길을 아주 가끔씩 들여다 보곤 한다. 그곳엔 내 어린 날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내가 살던 집은 그 누군가에 의해서 연립주택으로 탈바꿈을 해 버렸고,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복숭아 나무, 앵두나무, 넝쿨 장미, 그리고 라일락 나무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늦은 밤엔 집에 돌아오는 길이 무서워서 아랫 골목 길로 가지 않고, 윗 골목 길에서 언덕을 뛰어 내리면서 '문 열어!!'하면서 소리치기도 했는데, 어른이 되어서 가보니, 그 언덕길은 너무도 짧은 길이었던 것이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축대가 높다란 어느 집 근처에서는 그 근처에서 고양이가 죽었다고 하면서 소리치면서 도망다니기도 했는데....
청파동. 이곳은 내가 자랄 때만 해도 일본인들의 적선 가옥이 많았던 동네여서 높은 축대에 넓은 마당을 가진 좋은 집들이 많았다. 은행장 집도, 육군 준장 집도.
그래서 동네가 참 아름다웠다. 담장에는 넝쿨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고, 라일락 향이 풍기는 그런 동네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큰 집들이 연립주택이 되어 버렸고, 동네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바로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텐데'의 한 꼭지가 '단편으로 남아 있는 골목의 흔적, 서울 청파동 만리시장길'이다.
만리시장길도 어릴때에 가끔씩 엄마를 따라서 갔던 시장이지만, 우리집은 주로 청파시장을 애용했었다. 그 길은 효창공원을 놀러 갔다 오는 길에 들리곤 하던 길이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내가 살던 동네를 책 속에서 만나니, 감회가 깊다고 해야 할까.

서부역에서 숙명여대쪽으로 바라다 보면 언덕 능선을 따라 성냥갑 같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용산구 청파동이다. 한 때 일본식 주택과 한옥, 서민형 주택 등 다양한 양식의 집들이 어울려 독특한 공간감을 빚어냈지만, 1990년대 중반이후 연립주택이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서울의 여느 동네처럼 평범해져 버리고 말았다. 옛 골목길의 풍경은 청파동 여기 저기에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p33)
이처럼 최갑수는 강남의 번화한 거리들이 아닌, 강북의 어찌보면 퇴락해 가는 동네들, 가파른 계단이 힘겹게 느껴지는 골목길, 그리고 소읍의 초라한 골목들을 지난 1년 동안 휘젓고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동네 어르신들과 대화도 나누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아 낸 것이다.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주름살 굵은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겨운 책으로~~~
진안 백운면 원촌 마을의 독특한 간판들. 인쇄체가 아닌 손글씨가 멋들어진... 그래서 이 곳은 진안의 간판마을로 자리매김을 한 곳이다.


 
그리고, CF와 vj 특공대를 비롯한 프로그램에서 소개되기도 하곤하는 철길마을.
지금은 열차 운행이 중단되어 사진기를 둘러맨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는...



부산 문현동의 벽화마을.
허름한 집들이 즐비한 마을에 그림쟁이들에 의해서 벽화가 그려지니 마을엔 꽃이 피고, 새가 날고....
글쓴이가 찾은 곳들은 깨끗하게 단장한 그런 곳들이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 그래서 계단 따라 오르고 올라가야 하는 곳들. 지저분하고 추하고 가난한 모습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그 속에서 버려진 깡통과 빨래줄에 꽂혀 있는 빨래 집개마저도 정겹고 운치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경은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서 이렇게도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이고, 인간미가 물씬 풍겨 나는 것이다.
시인다운 서정적 문체와 여행기자다운 느낌있는 사진이 함께 어우러져서 소박하고 잔잔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 비록 가난하더라도 이렇게 모여 살면 그럭저럭 견딜만하지 않을까, 비슷한 자세로, 비슷한 모양새로, 같은 풍경을 나누며 살다보면 우리 좀 더 다정해지지 않을까. (p113)
또, 나그네는 길을 떠난다. '유쾌한 골목, 정겨운 골목- 서울 낙산 이화동, 삼선동 1가'
이곳은 얼마전 TV프로그램 '1박2일'에서 소개된 곳인데, 이승기가 '천사 날개'를 찍었던 곳이기도 한데, 이로 인하여 관광객이 몰려서 밤낮없이 떠들고 셧터를 눌러대니, 주민들의 반발로 '천사날개'가 철거된 곳이다.
'1박2일' 이전에도 디카족들에게 촬영장소로 소문난 곳이었다는데, 이렇게 시민의식이 없어서야.....
그러나, 낙산공원을 상징하는 조형물인 백민섭의 설치 작품 '가방든 남자와 강아지'는 그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낙산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으로도 넉넉하게 그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북촌 한옥마을'까지.
 
 

홍제동의 개미마을의 벽화, 그리고 통영의 동피랑.
동피랑은 동쪽 피랑(벼랑)에 자리한 마을이란 뜻으로 통영의 '몽마르뜨'라고 한다.
나는 통영을 여러 번 찾았건만, 동피랑을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를  따라서 숨가쁘게 골목길을 오르내리다 보니,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중에 우리의 초라하고 가난한 마을에는 유독 벽화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일환 등으로 화가, 미술대학생 등에 의해서 그려진 벽화.
내가 사는 동네의 중학교 담벼락에도 여러 해 전에 동화 속의 그림들이 그려졌었다. 그런데, 그 그림이 어쩌보면 유치하기도 하고, 그리 잘 그리지도 못했던 그림들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여러해가 지나니, 이제는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얼룩덜룩 벗겨지고 퇴색하여 흉물이 되어 버렸다.
동피랑에 그려진 그림들은 2년 후에 다시 그려진다고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전국 여기 저기에 그려진 벽화들을 제대로 관리하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생기게 된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졍겨운 사진들과 골목 길 이야기.
1년의 발자취가 그대로 담긴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텐데'
넉넉한 마음으로 읽고 보고 느끼게 되는 그런 책이다.

삶은 긍정이라고,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할 때도 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을 사랑하는 재능을 갖추고 있다.
꽃 앞에서 잠시 이렇게 생각했다.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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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 행복해! 살림어린이 그림책 16
나라 요시토모 글.그림, 배주영 옮김 / 살림어린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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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그림을 접하게 되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나라 요시토모' 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그림책이 '너를 만나 행복해'이다.


그런데, 그림들이 이렇게 낯익은 것은 일본의 여류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의 '데이지의 인생'이나 '아르헨티나 아줌마'의 그림을 그린 작가이기 때문이다.
'나라 요시토모'의 책 속의 그림들의 특색이라면 작품 속에는 강아지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들이 순박하고도 귀여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항상, 어린 아이의 표정은 순진해 보이면서도 눈동자나 입모양으로 악동과 같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을 접해 본 사람들은 다음에는 그녀의 그림인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그림 속의 악동의 표정은 다양한 분위기를 풍기기에, 때론 간악한 눈동자같기도 하고, 때론 애처로움이 묻어 있기도 하고, 때론 반항심이 잔뜩 들어간 심술스러운 표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눈꼬리가 때에 따라서는 잔인한 느낌까지 느끼게 할 정도로.
이런 그림을 그리는 '나라 요시토모'는 순수 미술 형식과 대중 문화의 정서를 결합한 '네오 팝(NEO POP)를 대표하는 스타 작가인 것이다.
일본에 관한 여행 에세이를 읽는 도중에 그녀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카페가 있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는데, 특색있는 그림을 보기 위해서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 책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된 것도 바로 '나라 요시토모' 의 그림때문인 것이다.
살짝 감은 눈이 순하디 순한 강아지의 모습에 반해 버렸다.


그런데, 이 강아지는 너무 커서.... 지구만큼이나 크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가 없이 항상 외톨이란다.


너무 커서 아무도 강아지를 알아채지를 못한다나.
지구 위의 도시들이 강아지의 발밑에서 작고 작은 한 점으로 표시될 정도이니, 그 누가 강아지를 알아 볼 수가 있을까.
그런데, '나라 요시토모'의 독특한 캐릭터인 눈동자가 특이한 여자 아이가 이 강아지를 알아 본다.
긴 다리를 잡고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긴 등을 쭈욱~~ 쭈욱~~ 미끄러지면서...
강아지와 친구가 된다.

 

 
'나라 요시토모'의 상상력이 기발하다. 작가의 책 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아닌, 글과 그림을 모두 쓰고, 그려서 그런지 유감없이 자신의 상상 속의 세계를 펼쳐 나간다.
'나라 요시토모'는 어린이를 이해하는 맘으로 이 그림책을 펴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엄청~~ 엄청 ~~ 커서 외톨이였던 강아지처럼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추워지는 겨울날에 자녀들과 오손도손 앉아서 그림고 보고, 글도 같이 읽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예쁜 책이다. 
한 번 이 책을 읽는 것을 계기로 우리 주변을 돌아 볼 수 있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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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가족을 뭐라고 부르지? - 바르게 부르는 가족 호칭책
채인선 지음, 배현주 그림 / 미세기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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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적부터 친인척간의 왕래가 많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가족간의 호칭을 익히게 된다. 그러나, 핵가족 시대인 요즘엔 친척들과의 만남이 그리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거기에 외동아이들이 많다보니, 형, 언니, 동생들마저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어린이들에게 가족 간의 호칭이란 어렵고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민규는 다행스럽게도 아빠는 3남 1녀 중의 둘째 아들, 엄마는 2남 3녀 중의 큰 딸, 그리고 민규에게는 여동생 민지가 있다.
이 정도의 가족 관계라면 자연스럽게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이모, 삼촌, 사촌 형, 동생 등의 호칭을 익히기에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와같은 가족 구성이 안된다면, 생각만으로 '엄마의 여동생을 어떻게 부를까?' , '아빠의 여동생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 하면서 가르쳐 주어야 하니 어린이들에게는 이해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가족의 가족을 뭐라고 부르지?'에서는 처음부터 가장 가까운 '나 (민규)로 부터 출발하여 '아빠, 엄마, 여동생'. 부모, 형제 자매,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큰아버지, 큰 어머니..... 로 그 범위를 넓혀가면서 익힐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니, 가계도는 차츰 차츰 복잡하고 넓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해지면, 어린이들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나로부터 촌수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가족 구성원들 중에 있는 촌수부터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그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린이들은 나와 관계가 없으면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가족의 촌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가족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아갈 수 있게 해 준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조금 조금 멀어지면 그냥 '언니, 오빠, 동생'이라고 불러도 무관함을 알게 해 주면 어떨까.
그리고, 이 책은 너무 너무 어려워지는 가족관계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새로운 가족들이 생길 때마다 '숨은 그림 찾기'를 통해서 가족의 호칭을 이해해 나가는 퀴즈까지 담겨져 있다.



이런 놀이를 통해서 가족의 호칭뿐만아니라,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이해해 나가기에 좋은 그림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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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증 - 무기력한 삶의 뿌리 거룩한 삶의 실천 시리즈 7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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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에 출간된 '게으름'의 후속작이라고 볼 수 있는 책이란다. 이 책이 3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라고 하지만, 나는 읽어보지를 못하고 '싫증'을 읽게 된 것이다.
저자 소개글에 의하면 '시류와의 영합을 거절하는 청교도적 설교로 널리 알려진' 김남준 목사라고 한다. 그는 대학 강단에서도 강의를 하는 교수인데, 학생들에게 게으름을 피우지 못할 정도로 빡빡한 수업과 많은 과제물을 부과하고 있다는 말도 함께 게시되어 있다.

 
 

'사람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 미워하는 감정을 갖기 전에 먼저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도 관계치 않는 마음의 권태감이 오는데, 그것이 바로 싫증입니다. (p21)
이 책의 제목인 '싫증'은 일반인들이 어떤 사물이나 행동 등에 대해서 무기력해지고 관심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들이 믿음으로 부터 멀어지고, 권태감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에서 발길을 돌린 사람들. 그들은 왜 믿음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을까.
그것은 처음의 믿음이 어떤 기적이나, 어떤 결과를 보고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렇기에 쉽게 싫증을 내게 되는 것이다.
성경 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무리를 지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쉽게 등을 돌리게 된다. 그 이유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6)
떡(육신의 필요)이 아닌 영혼 (생명의 양식)을 주겠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은 발길을 돌려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참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으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겠다고 했다.
발길을 돌린 자, 영생의 말씀을 주시는 예수님과 함께 하겠다고 한 자.
이 두 부류의 모습은 기독교 신자들의 인생길, 신앙 생활의 과정 속에서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영혼의 싫증은 생각의 부주의함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애매모호한 신앙, 형식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나님께 인간을 향한 싫증이 없으심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 (요일 4:16)
동일한 대상에 대한 싫증과 사랑은 한 인격안에 동시에 공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마음에서 사랑이 사라지면 싫증이 생기게 되는 것이고, 마음 안에 싫증이 가득 차 있을 때에는 이미 그 속에 어떤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p179)
하나님이 교회 안에 계신 분이 아니라면, 그것은 교회에 다니는 신도들에게 따가운 가르침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만을 마음 속의 사랑이 가득 찬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은 아닐까. 그들이 하는 일에 올바른 행동과 공정한 태도, 그리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치심은 아닐까.....
'싫증'은 책의 내용들이 신도들의 믿음에 관한, 사랑에 관한, 그것들에서 무기력해져가는 '싫증'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을 읽는내내 마음 속에 가시같은 것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중학교 시절, 어머니의 신앙에 힘입어 세례까지 받았지만, 그리고, 대학시절에도 종교 클럽에 가입한 적이 있는 나지만, 결혼 후에 이 책에서 말하는 믿음의 싫증을 느낀 탓인지 여러 해를 무신론자로 살아가고 있는데, 왜 이다지도 이 책을 읽는 마음이 불편한 것인지....
시중에는 스님들이 쓰신 많은 책들이 있다. 그 내용 중에는 설법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들이 많으나, 책을 읽으면서 그저 좋으신 말씀을 귀담아 듣고, 눈으로 읽으면서 맘 속 깊이 새겨두는데~~ 그때의 마음은 가볍고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목회자들의 책을 읽을 때에는 왠지 마음의 부담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나의 경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기독교가 전도의 의미가 강하고, 신앙인을 위한 책들은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이 신앙인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기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인생에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영원에 잇대어 사는 것입니다. 죽음을 뛰어 넘어서는 영원히 빛날 그 가치를 좇아서 사는 삶이 바로 우리들이 살아야 할 삶인 것입니다. (p196)
역시, 이 책은 '연령, 사회적 위치 및 입장 등을 막론하고 평신도, 목회자 구분없이 신도 전체가 편하게 읽을 수 있' (출판사 책 소개글 중에서)는 책이란다.
그래서, 스님들이 쓰신 책들과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도가 아니기에 신도들을 위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음의 부담감이 작용한 것인가 보다.
물론, 책 속의 내용들은 좋은 말씀들. 비록 신도가 아니라도 맘 속에 새길 만한 좋은 말씀들이었다. 나는 이 책의 내용들은 내 생활 속에서 적용하면서 살아가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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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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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작가에 대해서 그리 잘 알지는 못한다. 그의 책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이라고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밖에는 없다. 그 책을 읽게 된 동기도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던 벨라스케스의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좋아하는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의외로 이 책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색다르면서도 흥미로웠다.
책표지의 그림은 '왕녀 마르가리타'의 연작 중의 한 작품인 '마르가리나 왕녀와 시녀들'이었는데, 왕녀 마르가리타가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못 생기고 뚱뚱한 시녀가 화폭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으니.
그러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이야기의 내용보다는 그가 소설의 모티브로 삼았던 벨라스케스의 '왕녀 마르가리타'를 평소에 좋아했던 그림이었기 때문에
그 시녀는 얼핏 보면 왕녀의 들러리 같은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녀에게도 그녀의 인생이 있고, 사랑이 있음을. 인생에 있어서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소설이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단 한 편을 읽었지만, 참 강한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작가를 소개하는 사진도 특이했고.


그런데, 새로운 소설 '더블'이 출간되었다고 하니, 아니 반가울 수가 있을까.
'더블' 역시 책표지부터 강하게 다가온다. 가면을 쓴 사람.
그리고, 책은 side 1, side 2,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민규의 '더블 앨범'인 것이다. 이렇게 두 권으로 된 것은 두장의 LP 같은 느낌의 독특한 책을 만든 작가의 재치가 엿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일러스트 화집에는 두 권의 책에 실린 18 편의 단편소설에 대한 뒷이야기가 실려있다. 화려한 화보와 함께.



작가는 이 18편의 이야기를 모두 누군가에게 헌정하기 위해서 쓴 작품들이다.
'누런 강 배 한 척'은 아버지를 위해서. 치매걸린 아내와 함께 떠나는 마지막 여행길.

화단에선가, 가로수에선가/ 꽃잎 몇 장 떨어 / 진다. 떨어졌다. 내 인생에선 낙법이 통하지 않는 것인가.  (P56)
더는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견디기 힘든 것은 고통이나 불편이 아니다. ~~ 어디로 가는 걸까 ? (P65)

'축구도 잘해요'는 자전소설인데, 별의미는 없다고 한다. 자신의 전생이 마릴린 몬로라는 설정도 재미있고.
'낮잠'은 어머니를 위해서.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치매로 평택의 요양원에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는데....
요양원에서 만난 어릴적의 첫사랑. 그런데, 치매 할머니가 되어 있다. 자신의 있는 적은 돈을 모두 자식에게 나누어주고, 이곳에 왔는데. 애잔한 옛추억과 함께 노년이 되어서 가져보는 사랑, 그리고, 회한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서 어머니의 남은 삶이 봄날의 한 조각 낮잠처럼 포근하고 따뜻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말을 일러스트 화집에서 밝힌다. 이 대목을 읽으니, 이 작품이 또다른 감상을 갖게 해 준다.
이외에도, 친구를 위해서, 버락 오바마을 위해서, 알퐁스 도데를 위해서.


 

 

그런데, 이것은 작품을 읽은 후에 일러스트 화집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고, '더블' Side 1, Side2 에는 너무도 다양한 문체와 내용의 글들이 다채롭게 담겨져 있다.
'근처' '누런 강 배 한 척' '낮잠' 과 같은 작품은 서정적이면서도 섬세한 묘사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쉽고도 가슴 뭉클하게 잘 표현해서 읽기가 무난한 작품들이다.
그런데, 집중하지 않고 읽으면 무슨 내용인지 혼돈스러운 그런 4차원적인 이야기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존웨인'에서처럼 냉동보관된 인간들의 해동. '축구는 잘해요'처럼 전생에 관한 이야기 등.
지구위의 이야기도 아닌 우주 속 어떤 곳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21세기를 그들에게는 중세로 표현하는 먼훗날 어느 시점인지도 모를 정도로 미래의 이야기도 있고, 서울 하늘에 아스피린이 떠다니는 그런 이야기도 있다. '슬'의 경우에는 B.C. 17,000 년, 함남 이원 철산 지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도 있다. 오락가락 시공간을 초월하여 알듯 모를듯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다채로운 이야기와 다양한 문체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작품들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더블'의 주제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 삶이 아무 것도 아니란 걸.
스스로가 아무 것도 아니란 걸.
이 세계가 누구의 것도 아니란 걸.
나는 그저 떠돌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란 사실을.
나 혼자 느끼고 또 느낀다.
나는 무엇인가.
이쪽은 삶, 이쪽은 죽음...
나는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 나침반이다.
나는 평생을 나무의 근처를 배회한 인간인 것이다.
 

박민규가 말하는 나
그것은

나라는 이름의 그.
박민규의 '더블'은 '나와 그'의 더블 인생이라는 것인가보다.
나와
그리고
가면 속에 가려진 나.
독자들이 가면 속의 인물을 알고 있다면, 가면에 가려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가면 속의 인물을 알지 못한다면, 가면에 가려져 있는 그를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독자들이 박민규의 작품 세계를 안다면 작품 속에 숨겨진 박민규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박민규의 어떤 작품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쨋든, 작가 박민규는 어떤 소재와 주제가 주어질지라도 그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멋들어지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대단한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느낌을 맛 볼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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