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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들
그리어 헨드릭스.세라 페카넨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9월
평점 :
어른들은 항상 말씀하셨어요. 낯선 사람이 맛있는 걸 사준다고 꼬셔도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고.
어릴 때는 맛있는 사탕이나 과자가 가장 큰 유혹이었으니까.
막상 성인이 되고 보니, 세상에는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더군요.
결국 어른들 말씀은 옳았어요. 일단 낯선 사람의 친절은 의심하라! 현혹되지 마라!
<나의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들>은 그리어 헨드릭스와 세라 페카넨이 함께 집필한 세 번째 소설이에요.
출간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마리끌레르>에서 선정한 '2020년 최고의 여성 작가 소설'로 꼽혔다고 해요.
와우, 대단하죠?
심리 스릴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소설이에요. 다 읽고 나서 첫 장을 또 읽었어요. 아마 다시 읽고 싶어질 거예요.
숫자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통계, 도표, 백분율은 숨은 의도도 회색 지대도 없다.
순수하며 진실하다.
사람이 개입해 손대고 가공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거짓이 생긴다.
- 데이터북, 1쪽 (11p)
원제가 『 You Are Not Alone 』이에요. 이 소설의 핵심을 보여주는 제목인 것 같아요.
인간이 가장 약해질 때는 세상에 나혼자라고 느낄 때인데, 그때가 가장 위험한 것 같아요. 약해지면 공격당하기 쉬우니까. 위험은 도처에 숨어 있다가 마치 약해지기만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달려들어 무참하게 물어뜯네요.
주인공 셰이는 기업 제품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시장조사원이에요. 통계 수치로 세상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어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일기를 쓰듯이 열한 살부터 '데이터북'을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최근 자신에 관한 통계는 썩 좋지 않아요. 나이는 서른한 살, 사귀는 사람 없음, 지난 달 상관의 사무실에 불려갔을 때 승진하는 줄 알았더니 인원감축으로 해고 통보받았음, 몇 달 전부터 동거인이자 남자사람친구 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음, 현재 션이 조디를 만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음, 결국 혼자만의 사랑이었음. 짝.사.랑.
오전 9시쯤, 후텁지근한 날씨에 33번가의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셰이.
머리카락이 뒷덜미에 들러붙어서 걸음을 멈추고 가방에서 고무줄을 꺼내 머리를 묶는 셰이.
이 단순한 행동 하나에 22초가 걸렸고, 방금 열차를 놓친 셰이.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셰이.
염소 수염을 기른 남자가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긴장한 셰이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흰 도트 무늬 녹색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를 발견.
여자 쪽으로 더 가까이 움직이는데, 그 남자는 게속 걸어가더니 결국엔 계단으로 올라가 버리고... 휴우, 긴 숨을 내쉬며 전광판을 보니 다음 열차가 2분 후 도착할 예정.
이번에는 여자가 셰이 쪽을 힐끔거리더니 플랫폼 가장자리로 다가가고... 아악, 안 돼요! 그러지 말아요!
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터널 입구에 열차가 나타났고, 그녀가 뛰어내렸어요.
<나의 친절하고 위험한 친구들>이라는 제목은, 소설의 줄거리를 짐작하게 만들어요. '친절'과 '위험'이라는 조합이 '친구'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어색함이 느껴져요.
적어도 진정한 친구라면 친절이 아닌 우정일 것이고, 위험이 아닌 안정이 되어야 맞을 테니까.
친절하고 위험한 사람이라면, 확률적으로 친구보다는 낯선 사람 혹은 나쁜 사람이라고 봐야겠죠?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성보다 감정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서, 친절에 깜박 속아서 위험을 눈치채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러나 나는 안다고 생각했어요. 셰이는 모르지만 지금 셰이에게 다가온 그녀들은 위험하다고.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는 내내, 지하철역에 서 있던 셰이와 같은 심정이었어요. 선로를 향해 뛰어든 그녀에게 소리치며 경고하지만 늦어버렸죠. 그녀는 들을 수 없으니.
그녀의 이름은 어맨다 에빙거, 스물아홉 살, 싱글, 자녀 없음, 그랜드센트럴역에서 멀지 않은 머리힐의 작은 아파트에 살았음, 시립병원에서 응급실 간호사로 일했음.
셰이는 어맨다가 뛰어내리기 직전의 눈이 계속 떠올라 견딜 수가 없어요. 셰이가 본 건 절망도 두려움도 결의도 아니었어요.
그녀의 두 눈은 텅 비어 있었어요. 도대체 왜?
문제는 셰이의 머릿속에 그 여자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건 당일 셰이는 경찰서에 가서 진술했고, 담당했던 윌리엄스 형사로부터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어요.
그 날 이후, 셰이는 악몽에 시달리느라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웹사이트에 어맨다의 이름을 검색해 주소를 알아냈어요. 그녀의 집에 찾아갔다가 다음날 추도식이 열린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맨다의 추도식에 간 셰이는 그곳에서 어맨다의 친구들을 만났어요. 셰이는 처음 보자마자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무어 자매에게 끌렸어요. 아름답고 매력적인 그녀들에게 빠져들수록... 제발, 조심해요! 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예측했던 위험인데도, 결말은 매우 충격적이었어요. 우리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기록은 놓친 것들을 알려준다는 걸, 셰이의 데이터북을 통해 배웠어요.
셰이,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원초적인 두려움이 있다고 한다.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은 우리 삶이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고독이다.
누구나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속하고픈 욕구를 마음속 깊이 품고 산다.
- 데이터북, 68쪽 (3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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