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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투사 박열
김일면 지음, 김종화 편역 / 국학자료원 / 2025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우리가 잘 몰랐던 역사 속 인물에 대해 영화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 주인공은,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인 박열과 그의 동지 가네코 후미코.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라고 해도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사실과 다르거나 각색된 부분이 있어요. 가장 크게 오해했던 부분은 두 사람의 관계인데, 이 책 덕분에 인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삶 그리고 역사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네요.
《항일 독립투사 박열》은 재일한국인 평론가 김일면 씨가 항일투쟁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기록으로 1973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책인데, 김종화 교수가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박열』 이라는 제목에 '항일 독립투사'를 붙여 새롭게 출간되었네요. 저자 김일면 씨는 젊은 나이에 도쿄로 유학을 가서 박열의 애국적 희생과 항일투쟁을 목격했고, 깊이 감명하여 그 숭고한 뜻을 널리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하네요.
박열은 1920년대 일본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며, 일본 유학생들이 펴낸 잡지 「조선청년」에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고 시작되는 박열의 시가 실렸는데(여기에서 시의 제목을 '강아지(이누코로)'로 번역했음), 그 시에 반한 가네코 후미코가 박열을 만나 동거를 제안했고, 이후 평생의 동지가 되었어요. 1923년 간토 대지진이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조선인 폭동설을 퍼뜨려 조선인을 학살하였고, 박열과 가네코는 일본 천황을 폭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하여 대역 범인을 만들었어요. 박열은 대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죽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즉시 처형을 요구했고, 10일 만에 특별감형으로 무기징역을 살았어요. 법정에 선 두 사람은 판결이 내려지자, 박열은 일어서서 "고생했습니다."라며 사건을 조작한 재판관들을 향해 조롱하는 말을 내뱉었고, 이어 후미코는 "만세!"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2년 7개월에 걸친 '박열·후미코 대역사건'은 일본의 완벽한 조작극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나 박열과 후미코는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를 보여줬어요. 둘은 사형선고 1개월 전에 혼인서를 제출했고, 변론을 맡았던 후세 다츠지 변호사가 선고 공판을 앞두고 옥중에서 혼인신고를 대신해주어 도쿄 형무소에서 합법적 부부가 되었으나 우리가 생각하는 연인, 부부의 관계보다는 굳건한 동지적 결합이라고 볼 수 있어요. 뼛속까지 아나키시트, 자유를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맺어진 동지들의 투쟁이 눈물겹도록 치열했음을 보았네요. 앉아 있는 박열의 품에 비스듬히 안겨 있는 가네코 후미코의 사진은 예심판사 다테마츠가 1925년 5월 2일 신문을 마친 뒤에 예심 제5호 법정 조사실에서 찍은 것으로 다분히 연출된 장면이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네요. 다테마츠는 카메라 애호가라서 예심 법정에 항상 사진기를 가지고 들어갔는데, 왜 대역 죄인인 두 사람에게 자유시간을 주면서 포옹 사진을 찍어줬을까요. 아무 죄도 없는 불쌍한 젊은 남녀에게 베푸는 선처였을까요, 아니면 희생양의 최후를 남기고픈 본인의 욕망이었을까요. 법정을 연극 무대로 만든 일본인들을 비웃듯이 두 사람은 기꺼이 과감한 포즈를 잡고 있네요. 불령선인,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조선인을 이르는 말이었는데, 박열은 저항하기 위해 일본 내 독립운동단체인 불령사를 조직하여 활동했어요. 간토 대지진으로 일본 내각은 비상 소집하여 계엄령을 선포하는데, 들끓는 민심을 진정시키려는 목적으로 지진피해를 조선인 탓으로, 조선인에 대한 출처 없는 괴소문을 퍼뜨려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했어요. 대규모 학살의 명분으로 구속된 조선인 명단에서 불령사의 일원인 박열을 지목해 거짓 시나리오로 법정에 세운 것인데, 박열은 순순히 대역 죄인을 자처하며 일본이 조선을 강탈한 강도 행위를 규탄하는 투쟁의 무대로 뒤바꿔놓았네요. 일본 제국주의자들 못지 않은 부당한 무리들이 21세기 대한민국을 어지럽히고 있으니, 우리 역시 불령선인이 되어 맞설 수밖에... 거침없이 저항하고 싸우는 불량한 청춘의 힘이 오늘의 역사를 바꾸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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