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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오세요, 저승길로 ㅣ 로컬은 재미있다
배명은 지음 / 빚은책들 / 2025년 7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서 귀신이 젤로 무섭다는 사람들 중에 진짜 귀신을 만난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저 역시 지금껏 살면서 귀신을 본 적은 없지만 보이지 않을 뿐이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상상은 해봤어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나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쉽사리 이승을 떠나지 못해 귀신이 되어 떠도는 거라고 말이죠. 어찌됐든 귀신 이야기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인데, 이번 책에서 만난 귀신들은 친근한 이웃처럼 느껴졌네요. 특히 사천왕, 불교에서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킨다는 수호신의 등장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K 판타지가 완성된 것 같아요.
《놀러오세요, 저승길로》는 배명은 작가님의 어반 판타지 장편소설이에요.
이 소설의 주인공 여운영은 번아웃인 건지, 알 수 없는 우울감 때문에 회사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퇴사를 결정했어요. 막막한 운영에게 아빠는, 2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집을 유산이라며 주셨어요. 수원시 행궁동에 위치한 이층집은 1970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집이라, 차마 팔 수 없었던 운영은 돈도 아낄 겸 직접 고쳐가며 커피숍을 준비하는데, 카페 이름은 '카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지었네요. 집을 수리하던 도중, 2층에 숨겨진 문을 발견하고 억지로 없앤 듯한 계단 아래에 골목으로 이어지는 입구를 막은 담장을 허물게 되는데... 어설픈 해머질로 담벼락을 부수다가 뜻밖의 손님을 만나게 되면서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는 이야기네요.
카페 주인이 된 운영과 저승길 상인회 그리고 사천왕의 아찔한 만남으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라는 신비로운 세계의 문이 열렸네요. 처음 접하는 이야긴데 전혀 낯설지 않은 이 익숙함은 우리 고유의 정서와 문화적인 공감대일 거예요. 사천왕 중 '국'은 왜 운영에게만 꼼짝을 못하는 걸까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망자들, 별별 귀신들, 저승길에 있는 상인들 등등 참으로 살벌하고 괴이한 존재들인데 무서워하기는커녕 참견하고 오지랖을 떠는 운영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졌어요. 운영이 본인만 몰랐던 매력과 대대로 내려온 특별한 재능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랄까요. 수원 화성 축제가 열리는 행궁동 거리, 그 어디쯤 있을 것 같은 운영의 카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가보고 싶네요. 분명 작가님은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 혼자만의 기대를 품고 있네요. 운영과 국의 컬래버레이션, 여기서 멈추기엔 너무 환상적이잖아요.
"있잖아요. 이 모든 게 운명 같지 않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OO를 보려고 필연들이 이 자리에 다 모였잖아요.
작은 세계평화 같달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평화가 오래 가도록 노력해야겠군요." (25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