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의 탐스러움 픽셔너리 2
정기현 지음 / 북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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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게 바로 삶이라는 것이로구나. 일터에 나가고. 집으로 돌아오고. 하루치의 봉급을 받고. 먹는 데 다 써버리는. 집에 돌아가고 싶어. 넓은 방. 실내 계단. 조도를 열세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조명. 일주일에 매양 한 번씩 세탁되는 보송한 카펫. 묵직한 원목 문. 맞춤 책꽂이. 두 번째 거실 그리고 세 번째 거실. 초대를 거절하는 법이 없는 손님들. 그들의 바깥세상 이야기. 그들에겐 우리가 바깥이었겠지만. 안과 밖의 경계가 너무나 뚜렷했던 아늑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p.60


기현은 본가에서 독립해 서울 외곽의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아버지와 어머니가 취득한 신축 아파트 분양권을 양도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수시로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 대접하곤 했다. 그 탓에 처음 보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달에만 몇 번씩 집을 드나들곤 했다. 요리와 상차림은 전문가에게 맡겼고, 기현은 식사 예절만 지키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집안의 문화는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영 동떨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이들과의 대화가 즐거운 일이라는 것, 대화를 통해 우리는 몰랐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을 기현은 알게 되었다. 


이사를 온 뒤 기현은 우연한 계기로 옆집 부부 기은, 준영과 가까워진다. 그들은 청약에 당첨되어 급하게 대출을 받고 아파트에 들어오느라 가구를 살 여력이 없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버린 가구들로 집을 채우기 시작했는데, 기현이 버린 가구들을 다 가져가게 된 것이다. 지나가다 안부를 묻고, 저녁을 같이 먹는 일이 거의 매일이 되어 가다 보니 어느 새 동네 축제에서 함께 연극 공연을 하게 된다. 옆집 부부의 집에는 손잡이가 파란색인 아름다운 서랍장이 있었는데, 그것은 2년 전에 벌어진 동장 납치 및 살해 사건의 중요한 단서와 굉장히 흡사한 가구였다. 그들은 그 서랍장을 소재로 동장 살인 사건을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로 하는데, 축제 날 연극 무대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밥은 혼자 먹기보단 이웃과 함께해야 맛도 더 좋은 법이니...... 매일같이 그 집엘 갔다. 내가 음식 준비를 곧잘 해두는 덕분일지 기은과 준영도 오지 말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사람과 함께해야 밥이 잘 넘어가는 습관, 때때로 이것 역시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성향일까 싶기도 하였으나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달리 남의 이야기에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나는 상대와 관계라는 것을 맺는다. 기은과 준영과 나. 우리는 이웃이다. 그리고 나는 이웃 그다음이 있다고 자꾸만 믿게 되는 것이다.                p.149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형식의 중편소설 시리즈인 '픽셔너리' 그 두 번째 작품이다. 정기현 작가는 어딘가 엉뚱하고 귀엽게 풀어나가는 이야기 속에 소박하게 진심을 담아 보여준다. '관계는 말로 정의 내리거나 포착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에 그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하기에 참 좋은 것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 수많은 관계 중에서도 '이웃'이라 말할 수 있는 관계는 더 그런 것 같다. 어린 시절만 해도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곤 했다. 사촌처럼 가까운 이웃이라니... 요즘같은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말이다. 어릴 때는 옆집뿐만 아니라, 아래층까지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들과는 모두 소통을 하고 지냈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눠 먹고, 서로의 집에 가서 친분을 쌓고, 같이 놀러 가기도 했었다. 지금은 오가다 마주하는 이웃이 몇층에 사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작가는 '옆집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 이토록 어려워진 지금, 이웃사이가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며 왜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소한 일조차 왜 어려워진 것일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와 이름이 같은 주인공을 내세워 옆집 부부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으로 쓰인 구성도 흥미로웠고, 이웃이라는 존재에서 시작된 타인과 가까워진다는 것의 의미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삶과 이야기의 거리,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장면으로 엮어 하나의 소설로 만들어내는 과정, 우리가 이야기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이 책을 펼치는 독자들을 가본 적 없는 어딘가로 데려다 준다. 그 경쾌하고 천연덕스러운 이야기의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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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쇼크 - 금리가 재편하는 새로운 부의 질서
제이미 러시 외 엮음, 임경은 옮김, 박정호 감수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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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같은 디스토피아적 미래에서는 생산성이 대폭 향상해 성장에 불을 지피더라도 그 효과가 대규모의 일자리 상실로 인해 상쇄된다. 이는 추세 성장률, 나아가 자연이자율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더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또한 12장에서 다루겠지만, 불평등 문제도 차세대 첨단 기술의 혜택이 주로 부유층에 집중되면서 급격히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에서는 2040년이면 자연이자율에 약 0.6%포인트의 하방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p.90


세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의 가격'이다. 돈의 가격은 30년 넘게 하락세를 보이더니, 이제는 상승하고 있다. 돈이 남는 사람은 은행에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고, 돈이 필요한 사람은 금융기관에서 빌리고 그 대가로 이자를 준다. 그 이자를 '차입 비용'이라 하는데, 우리가 실제로 체감하는 '금리'가 바로 차입 비용이다.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개인부터, 기업, 국가에 이르기까지 자금을 조달하고 배분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는 패러다임의 변화이기도 하다. 


블룸버그 경제학자들의 분석을 담은 이 책은 지난 수십 년간 하락세를 이어온 금리 환경이 구조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이 변화가 향후 글로벌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을 조망한다 개인이 쉽게 대출을 받아 내집 마련을 하고, 기업이 융자를 받아 사업을 확장하며, 국가가 국채를 발행해 민생을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금리가 저렴했던 덕분이다. 그런데 수십년간 내려가던 돈의 가격이 바닥을 찍고, 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니 그에 대비해야 한다. ‘자연이자율(중립금리)’는 경제가 과열되지도 침체되지도 않는 균형 상태에서 형성되는 이론적 금리 수준을 의미한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참고하는 핵심 지표이지만 추정이 틀릴 경우 경기가 위축되거나 과열되는 것이다. 이 책은 자연이자율이 향후 상승될 수 있는 배경으로 복합적인 8가지 구조 변화를 제시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실질 자연이자율이 현저히 오른 세상이 온다면 결국 우리 모두에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책입안자들이 최선을 다해 전환기의 충격을 완화하고 생산성이 높아진 탄소중립 미래가 선사하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때만 그럴 것이다. 반면에 민간 부분의 역동성과 투자가 증가해서가 아니라, 정부의 과한 차입 대문에 실질금리가 오른 세상이라면 분명 살기 좋아진 세상이 아닐 것이다.                 p.299


찰스 디킨스의 소설 <어려운 시절>과 필립 K.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생산성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1차 산업 혁명 시기 공장 노동자들의 극심한 빈곤과 가혹한 노동 환경,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생활 수준은 그렇지 못한 미래 사회를 각각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성이 증가하고 그 혜택을 누가 받는지도 자연이자율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인 중 하나다. 노동 생산성을 증강하는 기술이 도입되면 경제 성장 속도는 빨라진다. 이는 투자를 자극해 자연이자율을 높인다. 반대로 생산성이 감소하거나 노동력을 대체하는 기술이 도입되면 경제 성장이 둔화되어 자연이자율은 하락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래는 낙관론자들의 관점과 비관론자들의 관점, 그리고 디스토피아적 관점으로 나뉜다. 이 책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각각 살펴본 끝에, AI가 성장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에 좀 더 높은 확률을 부여하고 있다. 


저축과 투자의 균형이 변화하면서, 세계 경제는 저축 과잉에서 저축 부족 상태로 이동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던 자연이자율은 이미 오르기 시작했다. 앞으로 균형추가 저축에서 더 먼 쪽으로 기운다면, 자연이자율은 한층 더 상승할 것이다. 이 책은 AI 혁명, 저출산 고령화, 막대한 국가 부채, 기후 변화, 탈세계화와 블록화, 저축 과잉의 종말, 페트로달러의 이탈, 지정학적 갈등이라는 요인들을 정리하고 압도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한발 빠르게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전략을 제시한다. 주로 미국 금리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지만, 우리나라는 외화보유액의 70%가 달라 자산이고, 수출입의 막대한 비중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기에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세계 경제의 거대한 흐름을 읽어내고 미래를 대비할 노하우를 얻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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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리
박민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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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 아이는 다 들으라는 듯 떠들어댔다. 그건 그 아이 말대로라면 흉터였다, 훈장이 아니라.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다른반 아이들까지 그 아이의 흉터를 보러 와서는 얼굴을 찡그리고는 신나라를 힐끔거렸다. 아무도 신나라의 상처는 보지 못하는 듯했다. 다르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오해받기 쉬운 것, 그리고 적을 만들기 쉬운 것이라는 사실을 신나라는 깨달았다. 어째선지 아주 중요한 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즐거운 나라' 중에서, p.49


과거와 완전히 같은 미래를 과연 미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상 가능한 일들뿐 아니라 예상 밖의 일조차 익숙한 방식으로 지나가는 하루가 매일 반복되고 있다면 말이다. 삼십대 중반이 된 희원은 마음의 여유도, 체력도 바닥까지 끌어다쓰고 집에 돌아오면 뻗기 일쑤였는데도, 늘 가진 것 이상으로 애쓰고 무리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왔다. 남은 것은 치질과 생리불순, 거북목과 복부비만, 파탄난 인간관계뿐이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온 어느 날, 만원 출근길 지하철에서 오른쪽 팔꿈치 아래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발견한다. '입자성 해리' 생소한 병명의 그것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가 신체를 무기물로 인지하는 증상이라고 한다. 희원의 경우는 모래였다. 몸이 모래가 되어 부서진다고 느끼는 증상조차 적응이 될 무렵, 희원은 전 연인과 탁구를 하며 끊임없이 랠리를 이어가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표제작의 제목이기도 한 '랠리'는 탁구나 테니스, 배드민턴 등에서 양편의 타구가 계속 이어지는 일을 뜻한다. 똑, 딱, 똑, 딱, 서로 주고 받고 오가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작을 하다 보면 랠리를 하는 동안에는 세상에 오직 나와 상대만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집중이 흐트러지면 한순간 끊어지고 마는 것이 랠리이므로, 호흡과 박자와 타이밍이 맞아야 가능하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도 한쪽의 일방적인 이끌림이 아니라 핑퐁핑퐁 주고받아야 더 재미가 있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도,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 앞에, 맞은 편에 상대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해 주고받아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삶이다. 이 책 속에 수록된 여러 편의 이야기들 또한 타자와 무언가 주고받으면서 더 나은 삶을, 보다 나은 내일을 함께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플레이어로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롤은 탁구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점이자 서글픈 점이었다... 희원은 주현과 주고받았던,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던 랠리를 떠올렸다. 끝없이 팽창되던 그 기분. 내가 보내면 저쪽에서 반드시 받아낼 거라는, 서로를 향한 믿음. 호흡, 박자, 타이밍이 서로를 통과하여 하나의 기관처럼 움직이던 감각. 두 사람은 같은 리듬 안에 있었다. 희원은 그게 좋았다. 누군가와 이렇게 같은 흐름 안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이.              - '랠리' 중에서, p.92


태어날 때부터 오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우량아였던 신나라는 무서운 기세로 자라, 네 살 때 이미 웬만한 초등학생의 발육을 가볍게 웃도는 수준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엔 중학생처럼 보였고, 남다른 발육 덕분에 늘 아이들의 놀림을 받아야 했다. 그녀의 부모는 태평하리만큼 낙관적이었고, 다름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머리가 나쁜 거라고. 가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그대로 믿었던 신나라는 가능하면 우아하게 시련을 넘기고 싶었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마음먹은 대로 살기란 쉽지 않았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정체불명의 괴력을 가진 소녀 문정이 등장한다. 강함은 모두가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라 남자애들 사이에만 전유되는 무엇이었기에, 문정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했다. 덕분에 지독하게 외로웠고, 스스로가 모든 면에서 어긋난 것처럼 느꼈다. 여성이 좀처럼 지닐 수 없다고 여겨지는 강인한 신체와 초인적인 힘을 소재로 한 독특하지만 인상깊은 이야기들이었다. 


박민경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수록된 아홉 편의 작품들이 고르게 다 좋기도 참 쉽지 않은데,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인 문장도, 호흡도, 인물들이 모두 공감되고, 이해되어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박민경의 인물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스스로가 필요하지 않다는 감각, 더는 효용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경계한다. 이는 시시각각 위협해오는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방책이기도 하다. 작가는 '소설을 쓴다는 건 결국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일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책을 읽는 동안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닿았다 드디어. 찾았다 최애하고 싶은 작가." 이런 마음이랄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좋은 일이 남아 있을 거라는 낙관'과 '내가 보내면 저쪽에서 반드시 받아낼 거라는 믿음', '선명하게 느껴지는 살아 있다는 감각'이 공존하는 이 특별한 이야기를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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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조건 :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내세요
네후네 하야세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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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터넷은 편리하다. 대체로 '평범함'들이 굴러다니고 있다. 그것이 내게는 일종의 이상이자 환상이며, 아무리 평범하지 않을지라도 최소한 일반적인 생활의 형태는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자신이 '이상하다'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자기 세계가 틀렸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에 올라간 뒤에야 우리 집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92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다카히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도망치듯 집을 나와 일을 한다. 이년 뒤 기를 쓰고 모은 돈을 전부 어머니의 빚을 갚는 데 빼앗기고 나자 사는 게 지긋지긋해졌다. 제대로 돼먹지 못한 인생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마음먹고 투신 장소를 찾아 다니다 구인 광고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지금 당장 인생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사람 모집 중! 월급 15만 엔~ ※입주 필수] 이제 뭐야? 완전 나한테 딱이잖아. 라고 다카히로는 생각한다. 지금 당장 인생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사람이라니, 자신에게 딱 맞는 문이 나타난 것이다. 


전화를 건 다카히로와 면담을 한 것은 삼십 대 중반의 유순한 인상을 가진 남성이었다. 그런 내용을 보고 찾아올 사람은 없을 줄 알았던 건지, 그는 오히려 다카히로를 걱정한다. 이제 스무 살인데, 인생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나이는 아니지 않냐고. 더 제대로 된 일을 찾아보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온거라 다카히로는 정말 상관이 없었다. 입주 조건은 간단했다. '옆집에 사는 이웃과 반드시 친하게 지낼 것'. 그렇게 다카히로는 10층짜리 쥐색 외관의 맨션에서 살게 된다. 그가 살고 있는 것은 7층, 자신과 이웃집 말고는 모두 빈집이다. 정체불명의 이웃은 매일 밤 괴담을 하나씩 들려 준다. "이건 친구에게 들은 얘기인데."로 시작해서 "......무서웠어?"로 끝나는 이야기. 평소에 겁이 많은 편이었지만, 그 괴담들이 전부 창작이라고 믿었기에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현실에서 이웃이 말한 것과 똑같은 존재가 나타나는데.... 과연 다카히로는 그동안 23명이나 도망쳤다는 기이한 맨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쁜 짓을 한 만큼만 벌을 받는다. 세상에 그렇게 적당한 얘기는 없는 법이다. '그 사람'은 나를 안은 채 질질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따라가면 위험해. 바로 깨닫는다. 그 정도는 바보라도 안다. 즉 나도 안다. 그렇지만, 머리 한구석이 제멋대로 중얼거린다. 애당초 내가 그 맨션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도 이런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내게도 일부 책임이 있을 것이다.            p.233


한 친구가 대학생 때 살던 아파트 옆방에 이상한 아주머니가 살았다고 한다. 피로에 지친 표정을 한 백발의 여성인데, 늘 땅만 보고 걸어서 종종 사람과 부딪히곤 했다. 그녀는 항상 <다쿠>라는 이름의 인형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갓난아기처럼 만들어진, 어디에서나 파는 아주 평범한 인형이었다. 아무래도 어딘가 이상해진 사람처럼 보여서 얼른 이사하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돈이 없었다고. 그러던 어느 날 밤, 집에 돌아오니 문손잡이에 검은 비닐봉지가 걸려 있었다. 그 속에는 손발이 토막 난 인형이 있었다. 편지도 함께 있었는데, '다쿠는 사과를 좋아해요. 공부를 좋아하는 착한 아이입니다. 잘 부탁드려요.'라고 되어 있었다. 목적도, 의미도, 이유도 전혀 알 수 없었던, 불가해하고 기이한 일이었다. 이웃이 들려주는 괴담은 보통 이런 식이었다. 짧지만 임팩트가 강하고, 갑작스러운 결말 이후 길게 여운이 남아 오싹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차세대 호러 주자로 손꼽히는 네후네 하야세의 이 작품은 일본 호러 사이트에 연재된 인터넷 괴담으로 인기를 끌어 책으로 출간되었으며, 빗발치는 요청에 속편과 동명의 코믹스까지 발매되었을 정도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아사히신문〉은 ‘2025년 일본 호러 붐의 최전선’에 있는 한 권으로 이 책을 선정, ‘알 수 없는 찝찝함에 자꾸만 곱씹게 되는 이웃 호러’라고 호평했다. '자꾸만 곱씹게 되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읽는 동안에는 크게 무섭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섬뜩해지고, 읽고 나서 자꾸만 생각날 것 같은 괴담이었으니 말이다. 독특한 설정과 스산한 분위기, 현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뒤섞이며 점점 높아지는 긴장감이 백미인데, 그 동안 만나왔던 호러 작품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한다.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공포 감각'이라는 문구처럼 낯설지만 어딘가 친숙한, 오싹하지만 이상하게 어둡지만은 않은 색다른 호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의 호러 소설이 궁금하다면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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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사는 대만 여자, 썸머의 게스트하우스 일기
썸머 지음, 허유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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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카오에서 에그타르트 사 왔어요!" 세상에, 이렇게 감동적일 데가! 휴대폰과 여권을 놓고 다니는 와중에도 에그타르트 상자를 사수한 것이 아닌가. 부푼 기대감을 안고 그녀의 손에 들린 에그타르트 상자와 눈을 맞추고 있는데, 나를 향해 성큼 다가오던 그녀가 테이블 모서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고, 그 바람에 에그타르트 상자가 공중제비를 돌아 카펫 위로 곤두박질쳤다. "괜찮아요! 안 쏟아진 게 세 개나 있어요!" 맞는 말이었다. 삶의 시련 앞에서 저토록 낙천적일 수 있다는 건 지금껏 숱한 풍파를 온몸으로 겪어왔다는 반증일 것이다.                 p.89


대만의 뜨거운 여름에 태어나 '썸머'라는 필명을 지은 작가는 영어 교사, 마케터, 에이전트, 아티스트 매니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을 하다가 서울 이태원에서 게스트하우스를 7년째 운영하고 있다. 지방에서 휴가때마다 올라오는 군인, 호주에서 온 화가, 노르웨이에서온 만찢남, 해녀 출신 할머니 두 분, 루이비통 트렁크를 들고 온 인도인 부부, 수수한 인상의 단발머리 마카오 여성, 노르웨이에서 온 배낭여행자 등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여러 유형의 투숙객들이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했다. 그만큼 웃기고, 이상하고, 황당하고, 뭉클한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조용한 중국인 여성이 남기고 간 트렁크 안에 시체라도 들어 있으면 어쩌지 싶었던 일부터 복수극이 코미디로 장르가 바뀌고 만 치킨 배달 사건 등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마냥 재미있고 유쾌한 일들만 벌어지는 건 아니었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더렵혀진 방은 흔하디흔한 일이고, 혈서가 발견되질 않나, 바닥 전체가 버터로 뒤범벅되어 있질 않나, 피 칠갑을 한 채로 기절한 여자가 있질 않나, 급기야 비닐봉지에 담긴 끔찍한 동물 사체도 있었다. 웬만큼 기괴해 가지고선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럴 때마다 청소도우미 여사님의 쿨한 멘트도 인상적이다."이까짓 게 뭐라고." 100부작 대하드라마를 써도 모자랄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어온 여사님의 의연함은 게스트하우스의 빛이자 든든한 기둥이 되어 준다. 




마치 올림픽이라고 벌어진 듯 저마다 신기록에 도전하는 각양각색 게스트들을 만나보았다. 늘 '세상은 넓고 기괴한 일들은 많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지만,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한 뒤에야 진정한 '세상에 이런 일이' 체험 캠프에 입소한 기분이었다. 기상천외한 능력을 가진 온갖 엉뚱한 사람들을 상대하며 처음에는 화가 나서 경찰을 부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저 허허로운 웃음 한 번으로 털어버리고 만다. 3,000일 가까운 시간 동안 어떤 마법이 우리의 숙소 운영 방식을 바꿔놓은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바뀐 건 점점 해탈해가는 우리의 마음뿐이었다.              p.186


이태원은 독특한 밤 문화와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러 찾아오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그러다 보면 택시비가 아까워 아예 하룻밤 묵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특별한 주말 밤을 기대하며 미리 방을 예약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남산타워 아래 구불구불한 언덕길에 자리한 썸머의 게스트하우스는 날마다 분주하다. 안면육관수술을 예약하고 중국 항저우에서 온 젊은 여자 손님, 무지개 배지를 단 세련된 차림의 일본 남자, 친부모를 찾으러 온 미국 남자, 열일곱 살에 탈북한 북한 청년, 생애 첫 해외여행을 온 쉰여덟 살의 중국 아주머니 등 다양한 여행자들이 게스트하우스에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남겨두고 간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이 만나고, 스쳐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순간들이 생각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생생해서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삶의 모습들을 포착해낸다. 이태원의 작은 게스트하우스는 각자의 사연을 품고 서울에 머무는 사람들의 따스한 교차로가 되어준다. 저자는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황당하고 기기묘묘한 상황들을 겪으며 아무리 기상천외한 게스트를 만나더라도 낙천적인 마음과 유머는 잃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런 마음 덕분에 우당탕탕 시끌벅적한 에피소드들이 유쾌하고도 따뜻한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인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게스트하우스 운영기이자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잡지에 문화, 여행 칼럼을 꾸준히 써온 대만 여성 작가의 서울살이 기록은 외국인으로서 서울에서 살아가며 겪은 일과 마주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진솔한 시선과 따뜻한 유머로 많은 공감을 얻은 이 책은 대만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이번에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각자의 사연을 품고 서울에 머무는 사람들의 따스한 교차로가 되어준 이태원의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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