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발레리 페랭 지음, 장소미 옮김 / 엘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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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노인들은 도망치지만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그들의 집'은 다달이 오르탕시아 요양원의 거주비를 대느라 매물로 나왔다. 그들의 정원은 텅 비고, 그들의 고양이는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이제 그들의 집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만, 그들 각자의 서가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그 각각의 서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나를 가슴 아프게 하는 건 오전 10시만 되면 출입구에 모여들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는 중앙 현관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기다린다.            p.62~63


프랑스 동부 시골 마을의 숲 가장자리에 있는 오르탕시아 요양원에는 최근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 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그러니까 일요일에 면회객이 하나도 없는 노인들의 가족에게 전화해 그들이 죽었다는 거짓 소식을 알린 것이다. 작년 12월 25일에 시작된 이 일은 이후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기 위해 요양원에 도착하면, 영면해 있어야 할 집안의 어른이 예기치 않은 자손의 면회에 행복해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전화를 받은 가족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면회를 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각각의 면회 횟수를 헤아린 뒤 전화를 돌린 것처럼 말이다. 




스물한 살 쥐스틴은 오르탕시아 요양원에서 삼 년째 일하고 있는 요양 보호사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조부모 손에 자랐다. 사촌인 쥘의 부모도 함께 사고를 당했기에 남동생처럼 같이 조부모와 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쥐스틴은 낮에는 요양 보호사로 일하고, 밤에는 노인들의 두런거림 속에서 책을 읽고, 토요일 밤이면 클럽에 가서 춤을 춘다. 쥐스틴은 요양원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19호실 할머니 엘렌이다. 사람들은 아흔이 넘은 엘렌을 '바닷가의 여인'이라고 부른다. 하루종일 바닷가 파라솔 밑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엘렌은 쥐스틴에게 자신의 모든 삶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엘렌의 말수가 줄었다. 마치 삶이라는 노래가 음반의 끝에 이르러 볼륨이 줄어드는 것처럼. 




그동안 그녀는 이 순간을 수천 가지 상황으로 상상해왔다. 낮에, 밤에, 저녁에, 겨울에, 정오에, 일요일에, 여름에. 하지만 그녀가 카페 밖에 있고 그가 안에 있는 이런 상황은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카페 문을 미는 것이 그가 아닌 그녀가 되리라는 것은. 그녀는 자신이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면 그가 그녀를 안아 올려 빙 돌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폭발하여 찬란한 광휘와 환희가 분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왜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일들은 우리가 그것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이 결국 타이밍의 문제일까?                  p.308~309


<비올레트, 묘지지기>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발레리 페랭의 데뷔작이다. <비올레트, 묘지지기>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어느 작은 마을의 묘지지기인 한 여성의 삶과 묘지를 찾는 이들의 추억을 섬세하고 다정하게, 시적이면서도 우아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과거와 현재, 죽은 자와 산 자의 삶이 교차되고, 빛과 어둠이, 부재와 존재가 한데 어우러져 놀랍도록 아름다운 마법을 보여줘 정말 좋아했던 작품이다. 이 책이 프랑스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켜, 데뷔작 또한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15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읽어보니 과연 '역주행'이 될만한 너무 멋진 작품이었다. <비올레트, 묘지지기>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상실과 슬픔, 고통과 기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엘렌과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쥐스틴은 그녀의 삶을 파란 공책에 받아 적는다. 이야기는 과거 엘렌의 삶과 현재가 교차 서술된다. 난독증을 앓던 엘렌은 뤼시앵을 만나 열여섯 살에 처음으로 글을 익히게 된다. 점자책을 통해서 알파벳을 만지면서 익히게 된 것이다. 그녀는 비로소 태어나는 기분, 숨 쉬는 법을 배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단어들이, 문장들이 다가오면서 그녀의 삶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독서가 빗장을 풀어 그녀의 몸짓과 행동까지 완전히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을 겪으며 파란만장했던 엘렌의 삶과 함께 그녀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쥐스틴의 현재 삶도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쥐스틴은 우연히 부모의 교통사고에 정황상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순한 사고인줄 알았는데, 경찰이 수사를 벌였던 사건이었다는 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쥐스틴에게 대체 뭘 숨기고 계신 걸까. 그렇게 요양원의 거짓 부고 사건과 쥐스틴의 과거 부모님 사고에 대한 미스터리와 엘렌의 이야기에 얽혀 있는 비밀이 차곡차곡 쌓여 가면서 아름답고도 슬픈 서사가 펼쳐진다. 


흔히 노인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들 한다. 한 사람이 살아온 삶에는 그많큼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도서관 서가마다 수많은 책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와 경험을 담고 있듯이 말이다. 지금의 세대가 겪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개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의 그것 또한 함께 살아 있다. 그래서 노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쥐스틴의 마음이 참 예쁘게 느껴졌다. 쥐스틴은 모두에게 두 가지 삶이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 대로 말하는 삶과 말이 침묵 뒤로 사라지는 다른 삶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세상에서 잊혀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삶의 끝자락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기억들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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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잊힌 사람들
발레리 페랭 지음, 장소미 옮김 / 엘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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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잊혀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법을 부여하는 아름다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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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마리 퀴리 Who 인물 사이언스 7
이숙자 지음, 스튜디오 청비 그림, 전국과학교사모임 감수 / 다산어린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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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개정판으로 출간된 <who? 사이언스> 시리즈!  물리, 화학, 생물, 환경부터 첨단 컴퓨터 공학까지 기술로 세상을 발전시킨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이언스' 시리즈에서 이번에 골라본 것은 눈에 띄는 여성 과학자들이다.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마리 퀴리와 침팬지와 친구가 된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이다. 학습 만화를 통해 인물의 삶을 이해하고, 통합 지식 플러스 코너를 통해 다양한 배경지식과 상식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다. 




이 시리즈는 다양한 직업군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장점인데, 각 책의 후반부에는 진로 탐색 워크북을 구성해 인물의 직업 세계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진로를 탐색하고 설계해볼 수 있다. 이번에 만난 두 책을 통해 동물학자와 화학자라는 직업의 세계에 대해 배워 보았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사랑했던 제인 구달은, 늘 아프리카에서 동물을 연구하는 꿈을 잃지 않았고, 결국 아프리카로 향해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최고의 침팬지 연구자가 되었다. 제인 구달이 꿈을 키워 가는 과정을 만화를 통해서 만나보고, 동물과 관련된 직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훌륭한 동물학자가 되기 위한 준비는 무엇이 있는지 배워보았다. 다양한 자연을 체계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이 소개되어 있어, 아이와 함께 가보기로 했다. 통합지식 플러스 코너에선 제인이 어린 시절 만났던 동물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에게 영향을 준 인류학자와 자연학자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침팬지와 비슷한 고릴라, 오랑오탄 등 유인원을 연구한 학자들에 대한 정보도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호기심이 집중력이 대단했던 소녀 마리 퀴리는 빼앗긴 나라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어머니마저 잃었다. 대학에 가서 좋아하는 과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가난과 차별에 부딪혔다. 스물입곱이 되어서 마리는 서른다섯의 피에르 퀴리라는 프랑스 과학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이미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이루어 널리 알려진 과학자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은 서로가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과학의 길을 걷고자 했고, 부부 과학자로서 연구를 해나간다. 방사성 원소를 발견하고, 방사능 연구의 문을 연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마리는 차별과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세계적인 과학자가 된다. 


마리는 1911년에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탄다. 마리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노벨상에 대해서, 그리고 노벨 화학상을 탄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아 보았다. 화학과 관련된 직업은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보고, 세상을 놀라게 한 여성 과학자들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who? 사이언스 시리즈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찰스 다윈, 마리 퀴리, 리처드 파인먼, 칼 세이건,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앨런 튜링 등 40명의 인물을 만나볼 수 있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손꼽히는 리처드 파인먼, <코스모스>라는 책으로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던 칼 세이건에 이어 이번에 마리 퀴리와 제인 구달을 만나보았다. 


who? 시리즈만의 독보적인 장점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독후활동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문해력도 기를 수 있고, 다양한 영역의 통합 교육도 가능하다. 진로 탐색 워크북을 통해 인물의 직업 세계를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고, 독후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꿈을 찾고 이루어 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진로 문제는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제대로 된 역할 모델이 있다면 스스로 꿈꾸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다. 자신의 진로와 흥미에 대해 주체적으로 탐색하게 되는 계기도 되어주고 말이다. 아이의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다면, Who? 시리즈를 통해 조금씩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과정이 매우 흥미진진해서 아이들이 공부처럼 느끼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습관도 만들어 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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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주문 - 일하는 여자들을 지탱하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마음, 개정증보판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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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이를 먹는다. 어느 순간 꼰대가 된다. 나이를 먹는다고 윗사람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꼰대가 되는 건 숨만 쉬어도 가능한 일이다.... 나이를 먹고 경력이 쌓이다 보니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나보다 연령이 낮은 사람들을 존중하며 말하는 법에 대해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가능하면 모든 사람에게 존대를 하는 쪽으로 정했다.              p.42~43


이다혜 작가의 <출근길의 주문>이 7년 만에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출간 당시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직장생활의 '바이블'이 되어주었었는데, 이번 개정증보판은 초판의 내용 중 시간이 흘러 변화한 부분을 업데이트하고 새로운 글들을 더해 구성을 대폭 개편했다. 스스로에 대해 대인관계는 서투르지만 사회생활용 인격은 잘 사용하는 편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영화 전문지 <씨네21> 편집팀장으로 일하며 쌓아온 시간에 기대어 현실적인 팁들을 들려준다. 


사회 초년생부터 연차를 더해가며 후배를 두게 된 선배가 되고, 과연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다. 현명한 스몰토크, 어려운 호칭문제, 어휘력을 늘일 수 있는 훈련, 노력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은 인간관계에서의 네트워킹, 번아웃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 하루를 버텨내게 하는 출근길의 주문,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는 방법, 이직에 대한 팁과 휴가 사용법, 프리랜서의 노하우 등 현실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노하우들이 여성 직장인들을 든든하게 응원해준다. 선명하게 긋고 정교하게 매듭짓는 '언어' 사용법, 기울어진 곳에서 서로의 사다리가 되어 주는 '네트워크', 끝까지 달리게 하는 마음의 근육 키우기 '마인드셋', 판을 짜고 보상을 쟁취하는 일잘러 가이드 '커리어'까지 4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부록으로 프리랜서의 각종 노하우를 담았다. 




인간관계가 그렇듯 일도 나와 갑자기 가까워지거나 멀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능숙한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재능과 능숙함은 다르고, 후자는 무조건 꾸역꾸역의 나날이 필요하다. 버틴다고 뭐가 되지는 않지만, 그런 보장은 없지만, 재미없는 걸 참아내는 시간 없이는 재미가 오지 않는다.... 프로가 된다는 것은 꾸준히 단련하고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일정한 아웃풋을 만들 수 있으며 자신과 타인의 실력과 능력치를 가늠해 협업에 용이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p.224


책을 읽다 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4~6개월에 한 번 꼴로 자칭 '사교 주간'이라는 기간을 정해서 사람들을 몰아 만난다는 대목이었다. 사실 나이를 먹을 수록 "언젠가 만나요"라고 해놓고 만나지 않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어릴 때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어울리고, 필요에 의해 분위기를 맞추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모임에 참가하거나 하는 것들이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몸이 나이 들수록 여유 시간이 되면 쉬고 싶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다혜 작가는 친구가 많지 않고 그나마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잘 만나지 않는 사람의 사회화를 위한 궁여지책으로 이런 방법을 생각해 냈다고 하는데, 너무 좋은 방법 같다. '일부러' '의도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기간을 정해두지 않으면,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도무지 만나기 힘든 관계들이 생각보다 꽤 많으니 말이다. 


번아웃 예방을 위한 노하우도 아주 공감이 되었다. 번아웃이 오지 않게 하려면 적절한 휴식과 여유가 필요하지만, 사실 연차가 쌓일수록 그럴 시간이 없어진다. 이다혜 작가는 그래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시간, 지인과 둘이서 줌으로 선생님에게 배우는 정도라 본격적인 공부라고 할 수는 없다지만 말이다. 스스로를 압박하지 말고, 성과로 측정하지 말고, 내가 못하는 것에서 덜컹거리면서 초심자의 마음을 갖는 일.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는 부끄러움을 견디며 서툰 것을 이어나가는 일이 빡빡한 매일의 나날 속에서 작은 숨구멍을 뚫어준다고 한다. 어떤 것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쓸모하고는 관계없는 것을, 느긋하게 배워보는 것. '그냥'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번아웃 예방책이 아닐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과 삶의 밸런스를 잘 맞추려 애쓰며 오늘도 고군분투했을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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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
스즈키 도시타카 지음, 김소연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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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언어는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오늘날의 인간과 자연의 괴리가 생겨났다. 하지만 박새들은 그건 틀린 생각임을 가르쳐주었다. 인간에게는 인간의 언어가 있듯 새에게는 새들의 언어가 있다. 인간의 언어는 동물 언어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자연을 올바르게 보는 눈을 잃었지만 새들은 다른 동물의 언어까지 제대로 이해하며 살고 있다. 나는 믿는다. 새들의 언어라는 새로운 세상을 앎으로써 우리의 하루하루는 더욱 풍요롭고 다채로워질 것이라고.                p.22~23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2천 년이 넘는 동안, 우리는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는 언어가 없다'고 굳게 믿어왔다. 과연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일까. 여기 20년 동안 숲이라는 거대한 실험실에서 박새를 관찰해 온 생물학자가 있다. 그는 인간에게 언어가 있듯 새에게도 새의 언어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아시아 최초로 영국 동물행동연구협회 국제상을 수상한 스즈키 도시타카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생물들을 상자나 수조에 넣고 키워왔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에 세뱃돈으로 쌍안경을 산 것을 계기로 새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관찰을 할수록 즐거움은 점점 더 커졌고, 그렇게 탐조에 빠져들게 되면서 새를 연구할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해 연구자가 된다. 일생을 바쳐 밝히고 싶고 몰두하는 연구 주제를 찾다가 숲에서 박새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새들의 행동을 추적하고 관찰하며 그들의 울음소리 유형이 놀라우리만치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새들의 울음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연구하기로 결심한다. 먹이 접시 두기 -> 관찰 -> 정리,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해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이렇게 단순 작업을 꾸준히 반복하고 몇개월이 지나자 몇몇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울음소리의 유형은 달라도 서로 의미를 학습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박새들은 하늘에 매가 나타나면 '삐삐삐' 울고, 뱀을 발견하면 '츠르르르르'하고 운다. 동료를 부를 때는 '치지지지' 울고, 경계하라고 재촉할 때는 '삐-쯔삐' 하고 운다. 울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새들의 행동이나 무리의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고, 의미를 담아 전하고, 문법 규칙에 따라 단어를 조합하는 새들만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수천 년간 존재해온 우리의 고정관념을 넘는 경이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동물의 울음소리가 그저 감정의 표현인지 인간의 말처럼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는지를 구별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다. 만약 사고 절약 원칙에 따라 생각해도 구체적인 의미를 전달한다고밖에 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한다면 동물에게도 언어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해낸 사람은 전 세계에서 나밖에 없다! 나는 '동물은 말하지 않는다'라는 2천 년 이상에 걸친 역사상 최대의 오해를 풀고,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일어섰다.               p.213


이 책에는 각각 서로 다른 의미가 담긴 박새의 울음소리가 QR코드로 수록되어 있다. 먹이를 보채는 새끼의 소리는 어떤지, 영역을 선언하는 울음소리는 어떻게 들리는지 실제로 재생해보니 정말 신기했다. 우리가 쉽게 공원이나 길가에서 듣는 새들의 지저귐이 단순한 울음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QR코드 옆에는 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음성을 들을 때는 실내에서 음량의 주의하며 들어 달라는 주의 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그만큼 청량하고 또렷한 실제 새의 울음이라 숲에 가서 실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정말 새들을 혼란스럽게 할까봐 말았다. 하핫. 


이 책은 여타의 과학책과는 다르게 매우 유쾌하고 재미있게 흘러간다. 직접 녹음한 새들의 울음소리를 비롯해서 생생한 일러스트와 다양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적용한 실험 과정을 통해 에세이처럼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숲에 걸어둔 박새의 인공 새집을 망가트린 범인을 찾기 위한 추리 과정, 동물 학자들이 습성뿐 아니라 '생김새'까지 자신의 연구 대상을 닮았다는 사실에 대한 가설, SNS로 제보받은 야생 박새의 새끼 구출 대작전 등 웬만한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많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숲속에서 박새들의 울음소리를 채집하고, 그 안에 숨겨진 규칙과 암호를 해독해 나가는 모습을 탐정이 단서를 쫓아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처럼 보여주고 있으니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동물들은 서로 무슨 대화를 주고받을까? 동물들은 어떤 방법으로 서로 소통을 할까? 한번쯤 궁금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심코 지나쳤던 새들의 작은 수다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때부터 우리가 몰랐던 놀라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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