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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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는 각 개인의 삶의 한순간이자 과정일 뿐이다. 노키즈 존에 입장을 거부당했던 어린이도 언젠가는 청년이 된다는 사실, 노인을 '연금충'이라 부르는 청년도 언젠가는 반드시 노인이 된다는 것, 이것이 삶의 진리이자 역설이다. 나이에 있어서, 누구든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제 나이라는 억압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관계를 규정해 온 나이라는 오래된 문법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넓은 인간관계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p.11


우리는 연령차별주의가 만연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는 노키즈존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장소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존재로, 청년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이기적인 존재로, 중년은 재미없고 권위만 앞세우는 존재로, 노인은 무력하고 쇠퇴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나이는 숫자 그 이상인 것 같다. 자기를 인식하는 데에도, 남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하다못해 지하철을 타는 데도 나이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인종, 국적, 지역, 성별, 장애, 빈부, 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차별과 혐오 문제를 꾸준히 다뤄 온 정회옥 교수는 이번에 ‘나이’로 화두를 넓혔다. 이 책은 틀딱충, 개저씨, 삼포 세대, 영포티, 급식충, 잼민이 그리고 노키즈존과 노시니어존 등 나이가 많아서, 적어서, 같아서 비하하고 조롱하는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살펴보고, 궁극적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제도적 방안을 모색한다. 유아든 청년이든, 장년이든 노년이든, 사람은 각자의 경험을 통해 저마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나이는 그 자체로 매우 제한된 의미만 지니는 변수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왜 그토록 나이를 묻는 걸까. 장유유서의 수직주의적 교류 문화는 이제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수평적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연령대마다 따라붙는 편견과 차별은 언제나 부정적인 모습만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맞이하게 될 인생의 여러 단계를 설렘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행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이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전제가 해소될 때 우리는 생애주기별로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다. 아이는 미성숙하고, 청년은 노력과 열정이 부족하며, 중년은 꼰대처럼 꽉 막혀 있고, 노년은 퇴화의 시기로 보기만 하면 우리는 삶에 대한 창조적 해석이 불가능하게 된다. 어린 시절은 어린 시절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그리고 중년 및 노년은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제도를 만들어 나갈 때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p.321


요즘 자주 들리는 '영포티'라는 말은 사실 젊은 감각을 유지하며 자기 관리에 적극적인 40대를 긍정적으로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나잇값을 하지 못하고 젊은 척하려는 중년층이라는 조롱의 의미로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일부 할머니를 매미에 비유해 모욕적으로 지칭하는 '할매미'라는 노인 혐오 표현도 있고, 무례하거나 인성이 좋지 않고 예의가 바르지 않은 초등학생을 비하하는 '잼민이'는 심신이 저연령층 같은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 사회는 멸칭이 없는 나이대가 없을 지경으로 각 세대가 서로를 향해 '나이 멸칭'이라는 총알을 퍼붓고 있다. 여러 연령대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아동과 노인에게 쉽게 비하와 경멸의 화살이 향하고 있다는 점이 유독 아쉬운 점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지독한 연령차별주의(Ageism) 사회를 살고 있다.


연령대마다 따라붙는 편견과 차별은 언제나 부정적인 모습만을 부각시킨다. 그러다보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인생의 여러 단계를 설렘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행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나이에 대한 부정적이고 왜곡된 전제가 해소될 때 우리는 생애주기별로 행복한 미래를 그릴 수 있다. 그러니 단순히 농담과 유머로 여겼던 나이 멸칭이 우리 사회에 차별과 혐오 문화를 어떻게 고착시키는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대 간 협력과 교류를 위해 사회 제도를 만들어 나가고, 법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하다. 그동안 무심히 답습해 온 연령차별에 대한 민감성을 높여 은폐된 현실을 더 예민하게 마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약자인 어린이였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노인이 될 수밖에 없다. 나이란 삶의 한순간이자 과정일 뿐인 것이다. 모든 세대가 나이가 주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지고, 결국엔 ‘나이 묻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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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모든 두려움
알렉스 핀레이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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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맷은 전화를 끊었다. 그는 낡은 술집 앞에 있었다. 갈라진 벽 틈으로 노랫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의 생각은 칼라와 조던 필과 나이트 샤말란과 영화 속 인물들의 운명으로 두서없이 흘러갔다. 그러다 불현듯 그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일 것이다. 그래서 그가 살아남은 것이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p.334


아름다운 십 대 소녀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었다. 그녀는 하우스 파티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둔기에 맞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소녀의 남자 친구 대니가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두 사람이 말다툼을 했다는 목격이 있었고, 범행을 입증할 물리적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음에도 그는 누명을 쓰고 기소되었다. 소도시의 미식축구 스타였던 그를 주인공으로 <폭력에 물든 세상>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지만, 진짜 용의자들은 제대로 조사를 받지도 않았다. 그리고 7년 뒤, 그의 가족들이 휴가차 떠난 여행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이 소식을 처음 듣게 된 것은 방학 날짜가 맞지 않아서 함께 가지 못한 동생 맷이었다.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인데, 부모님과 동생들은 다 죽고, 형은 교도소에 가 있고,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까지 혼자 감당해야 하게 된 것이다. 


가족의 죽음은 가스 누출 사고로 보였으나, 지역 경찰들은 비협조적이고, 시신도 바로 넘겨주지 않았으며, 현장이 연출되었음을 암시하는 사진까지 발견되면서, 사고가 아니라 범죄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체 누가 그의 가족을 죽이고 싶어 한 것일까. 멕시코 당국에서는 시신을 인계하기 전에 직계 가족이 직접 와서 서류에 서명을 해야 한다는데, 어쩐지 정보 공유에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고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다. 맷은 어쩔 수 없이 멕시코로 향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의문의 습격을 받거나 납치당할 뻔하는 등 여러 번 위험한 일들을 겪는다. 공항으로 데리러 온다던 영사관 직원은 나오지 않았고, 경찰서에 갔더니 담당자가 없다며 다음 날 다시 오라고 한다. 정말 모든 게 다 엉망진창이었다. 맷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일들이 다 나뿐 꿈인 것만 같다. 아주 나쁜 꿈. 가족의 죽음이 품은 비밀은 무엇일까. 맷은 무사히 사건의 진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내가 집착한다고, 광적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기적인 바보라고. 하지만 당신 아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떨 것 같습니까? 그 아들이 남은 평생 교도소에 갇혀 살아야 하고 당신은 아들이 무죄라는 걸 온몸으로 알고 있다면? 그것 때문에 당신 가족이 무너졌다면 어떨까요? 그런 맨 끝에 남은 마지막 두려움까지 직면한다면,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포기하거나, 끝까지 죽도록 싸우거나.               p.559


이 작품은 지금 미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 알렉스 핀레이의 데뷔작이다. 현재 법학 교수와 변호사로 일하고 있기에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을 예리하게 짚어내고, 미디어와 대중의 공모를 통해 한 가족의 삶이 ‘콘텐츠’로 소비되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장점은 군더더기 없는 속도감이다. 일가족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서두로 이야기의 포문을 열고,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을 교차 진행하며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씩 찾아 나간다. 겹겹이 쌓인 복선과 플롯이 정교하게 흘러가며 스릴러라는 장르의 매력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야기는 홀로 남겨진 맷의 현재 시점과 과거 아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가족들의 모습을 교차 진행시킨다. 여러 시점을 오가며 전개되는 서사를 통해 감춰졌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매우 속도감있게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57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 이야기의 밀도가 굉장히 높다. 차근차근 잘 따라가며 이야기의 호흡을 느끼면 더 스릴 넘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진실을 추적하는 서사가 현재보다 과거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맷의 엄마와 아빠, 여동생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스토리가 그들을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캐릭터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할런 코벤의 작품들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반전과 캐릭터, 속도감있는 전개와 탄탄한 구성까지 폭발적인 스릴러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니 말이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진짜 재미있는 작품을 찾고 있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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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고 말하기 - 마음을 움직이는 소통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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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의사소통에서 단어나 문장으로 구성되는 언어적 수단보다는 표정, 몸짓, 제스처, 눈맞춤, 자세, 터치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이 훨씬 더 중요하게 작동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말하는 이의 태도나 표정이 맘에 들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그래 당신 말 다 맞아! 그래서?' 말의 내용은 이해했지만, 내용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말의 내용은 전적으로 말하는 이의 책임이지만, 표정이나 몸짓 등 비언어적인 영역은 상당 부분 '상호작용적'입니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공동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p.126~127


SNS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AI가 인간의 표현 방식을 모방하는 시대, 디지털 네트워크가 점점 확장될수록 정작 소통의 토대가 되는 비언어적 구조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비교하고, 쉽게 분노하며, 사소한 심리적 상처에도 흔들린다. '좋아요'라는 가짜 감탄, 분노와 적개심의 '어그로', 의미없는 억지 '추천' 등 자극적 맥락에 익숙해지면 진정한 감탄의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소통은 무엇일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이 책에서 터치, 눈맞춤, 정서 조율, 순서 바꾸기, 함께 보기, 관점 바꾸기라는 소통의 가장 근원적인 조건 여섯 가지를 제안한다. 발달심리학, 진화인류학, 사회학 등의 연구를 넘나들며 감탄과 존중의 소통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소통이 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조율과 감각의 교차편집과 같은 '말하기 이전에 이미 말해야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소통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7%라고 하니, 나머지는 모두 비언어적 요소가 채우고 있는 것이다. 늘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고, 상대와 소통하지 못해 어긋나고, SNS를 통해서 늘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 소통이 이토록 어려운 것은, 우리가 소통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소통에 문제가 많은 소통 전공의 심리학자'라고 소개한다. 그런 그가 소통에 관한 책을 쓰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그만큼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이다. 




소통의 절반이 언어가 아닌 공간과 몸짓으로 완성된다면, 반대로 소통을 파괴하는 길 또한 명확해집니다. 상대가 필사적으로 허공에 그리는 생각의 지도를 싹 무시해버리면 됩니다. 상대방의 눈도 보지 않고, 손의 움직임도 보지 않는 겁니다. 상대방의 소통 시도를 무시하듯 정면을 응시하거나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 앞에서는 말하는 이가 열심히 만들어내는 소통의 공간이 아주 간단히 무너져 내립니다. 함께 보기는 단순히 '같은 것을 본다'의 차원이 아닙니다. 상대가 그것을 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짓는 표정의 미세한 조율이 있어야 '함께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p.277~278


'강한 것'이 아니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명제는 이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말하는 책들이 사랑받으면서 '다정함'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들이 한때 서점가를 휩쓸었으니 말이다. 저자는 진화의 최종 승자가 '다정한 자'인 이유, 이와 같은 친화력의 핵심은 '눈맞춤'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눈에만 있는 흰자위때문에, 인간이 지구를 정복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공막을 숨기기 때문에 눈동자와 구별이 어렵다. 시선의 방향을 다른 동물들이 예측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인간은 흰 공막으로 시선의 방향을 분명하게 노출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치명적인 약점이 되지만, 인간에게는 복잡한 사회적 소통을 발달시키고 지구의 정복자가 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타인과의 '함께 보기'를 가능케 하여 다른 유인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케 했다. 


이 책은 이렇게 눈맞춤뿐만 아니라 터치, 정서 조율, 순서 바꾸기, 함께 보기, 관점 바꾸기 등 우리가 잃어버린 상호주관성의 원형 6가지에 대해 어렵지 않게 설명해준다. 단순히 심리학 이론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각 개념을 현실과 충돌시키며 낯설고 예리한 각도로 세상과 인간을 읽어낸다. 미키마우스와 아톰의 눈동자가 특별한 이유, 신경심리학적으로 가짜 미소인 모나리자의 미소, 장난감이 세상의 축소판인 이유, 망하는 회사일수록 회의시간이 길어진다는 사실, 혈액형이나 별자리와 큰 차이가 없는 MBTI의 진실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소통'에 대해 말하는 대부분의 책들이 대화의 기술, 관계를 살리는 칭찬법 등 공감과 소통, 감정 등을 표현하는 '기술'로 다루는데 비해, 이 책은 소통을 기술이 아닌 존재의 조건으로 재정의하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통해 소통의 가장 오래된 구조를 다시 살펴보고, 인간만이 지닌 비언어적 소통의 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관계에서 자꾸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주관과 객관을 뛰어넘는 소통의 기초가 궁금하다면, AI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상호주관성을 되찾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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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없다
리사 주얼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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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타인의 특별한 삶을 생각하다 보니 조시의 발걸음은 어느새 무의식적으로 공원을 돌아 알릭스의 집으로 향한다. 

조시는 섣불리 알릭스의 집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일요일 오후 레깅스에 청재킷, 이렇게 너저분한 차림으로 그 집 주변을 어슬렁대다 알릭스 눈에라도 띈다면 그야말로 굴욕이다. 조시에게 필요한 건 알릭스라는 존재가 주는 약간의 반짝임, 딱 그거면 된다. 그러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길고 긴 일요일 저녁을 보낼 수 있다.               p.87


조시는 자신의 마흔 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세련된 가스트로펍에 남편 조시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일 파티를 하고 있는 한 무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화려한 파티의 주인공 알릭스 역시 자신과 나이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과 같은 날 태어난 거니 쌍둥이나 다름없는 건가 싶은 마음에 자신의 '버스데이 트윈'을 지켜보는 조시는 어쩐지 쓸쓸함이 몰려 온다.  화장실에서 알릭스와 잠시 나눈 대화를 통해 그녀와 자신이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 사실이 조시를 사로잡는다. 


알고보니 알릭스는 성공한 여성들을 인터뷰하는 유명한 팟캐스트 진행자이자 언론인이었다. 조시는 알릭스의 팟캐스트들을 찾아 들으며 생각한다. 태어난 날도 같고, 태어난 병원도 같으며, 마흔다섯 생일을 기념한 장소도 같고, 사는 곳도 가까우며, 아이들도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에는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마침 알릭스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고 있는 중이었고, 조시의 제안으로 '버스데이 트윈'이라는 제목의 팟캐스트를 하기로 한다. 그렇게 조시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고, 알릭스는 그녀의 삶이 어딘가 이상하고, 불안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때문에 팟캐스트를 이어가고 싶은 유혹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다.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이 위험한 인터뷰는 과연 어떤 진실을 들려줄 것인가. 




"솔직하게 말하면, 일상이 지루했던 것 같아요. 지루하기도 했고, 남편과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속으로 계속 화가 나 있던 참인데 그때 마침 조시가 나타나서 그런 심각한 이야기들을 하니까 지금 남편과의 문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지고, 그러니까 더 깊이 고민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내 문제를 덮어둘 수 있다는 것, 그냥 그 이유였어요. 직감적으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는데도 의식적으로 무시했어요...."                p.369


<엿보는 마을>, <다크 플레이스의 비밀>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리사 주얼의 신작이다. 차곡차곡 비밀을 쌓아 올려 결국 터지게 만드는 서사로 서스펜스를 만들고,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으로 미스터리가 줄 수 있는 극강의 재미를 주는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굉장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진실은 없다> 역시도 한번 읽기 시작하면 도저히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작품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총 4부로 구성된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설 때까지 좀처럼 진상 파악이 어렵다는 점이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질 뿐, 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며, 사건의 진실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페이지를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리사 주얼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속도감 있는 전개, 현실감 있는 캐릭터, 일상 속에서 언제라도 벌어질 것만 같은 섬세한 묘사와 강렬한 충격을 남겨주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스릴러가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들을 기대 이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히나 여성 캐릭터들이 돋보이는데,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든 굉장히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항상 가족을 소재로 서사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그 보편성이 더욱 마음을 사로잡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알릭스는 처음부터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직감을 따르지 않았을 때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던 거다. 굽이진 길을 운전하면서 혹시 여기서 눈을 감으면 어떻게 될까, 조금 무모한 행동을 했을 때 그게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그리고 그 호기심의 결과는 무시무시한 대가를 불러 온다. 이 작품은 2024 올해의 범죄소설 선정작이며, 아마존, 굿리즈 리뷰 6,000건 이상, 그리고 넷플릭스 영화화도 확정되었다고 한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만드는 극강의 재미와 몰입감이 뛰어난 페이지 터너를 찾고 있다면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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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生業) - 그 징하고도 찡한 노동의 표정들
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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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들이 다 먹기 위해 산다고 하면서도 밥하는 노동은 존중을 안 하는 게 모순이죠. 먹는 건 좋아하면서 음식하는 노동은 왜 이렇게 천시하는지 항상 불만이에요. 그래서 누가 직업을 물어보면 저도 그냥 '교육 공무직이에요' 하고 말아요. 밥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낮춰 보니까요. 우리 자신부터 좀 용감해져야 하는데 아직까지 저부터도 밖에 나가서 밥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하지 못해요. 동료들도 말 안 하는 사람이 더 많고요. 임금이 높아지고 인식이 개선되면 나아지겠지요."               p.33


좋은 인터뷰는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워서 안 보이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잘 보이던 사람을 낯설게 만들어 준다. 은유 작가의 책들을 꽤 많이 읽었는데, '글쓰기'에 관한 책과 '인터뷰'를 묶은 책들이 많은 편이다. 탁월한 에세이스트이자 날카로운 르포르타주 작가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인터뷰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책은 우리 곁 노동자 열일곱 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집이다. 올해 63년 만에 ‘근로자의 날’에서 ‘노동절’로 명칭이 복원되고, 5월 1일이 법정 공휴일로 되었기에 이 책이 더욱 의미있게 느껴진다. 일하는 사람이 덜 죽고 덜 다치는 세상을 위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캠페인의 일환으로 <시사인>에 2024년부터 1년 6개월간 연재한 은유의 ‘먹고사는 일’을 바탕으로 지면 관계 상 싣지 못한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담았다. 


총 열일곱 명의 인터뷰이들은 평소에는 잘 안 보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는 것으로 묵묵히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우리 주변의 노동자들이다. 급식 노동자, 청년 농두, 배달 노동자, 요양 보호사, 청소 노동자, 노동 변호사, 국어 교사, 배우, 가수, 유튜버 등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매일 1700인분의 밥을 지으며 밥은 타인에 대한 사랑의 실행이라는 걸 보여주고, 자본의 시간에 잠식당하지 않고 삶의 시간을 되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토바이로 음식을 실어 나른다.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고립을 공생으로 바꾸는 이야기를 꿈꾸고, 터부시하는 편견의 벽을 넘어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쓰러지지도 않고 살아간다. 시간의 모든 조각을 주워 담아 낭비 없이 일을 하고, 모르는 이들을 향한 이타심과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과격해서가 아니라 절실하기 때문에 세상과 싸운다.  




열다섯 살에는 가장을 잃은 가족의 눈빛을, 서른 즈음 신참 버스 기사일 때는 모욕으로 파랗게 질린 나이 든 동료의 얼굴을, 쉰넷 셔틀을 몰 때는 작은 승객의 재잘거림을, 예순여섯 만년의 노동 운동가는 남은 동지들이 붙잡는 손길을 외면하지 못했다. 타인의 삶에 뛰어들었고 뭐라도 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합쳐져 박사훈만의 66년을 이루었다. 자신의 존재 방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도 외롭지 않은 생이었다. 명절때 조카들이 큰 아버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물어오면 그는 되묻는다. 살면서 돈이 중요할 거 같으냐, 사람이 중요할 거 같으냐?                 p.246


현대인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남의 일에 끼어들면 평온한 일상이 깨지며 먹고살기 힘들어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내면에 자리해 있다는 것 아닐까 싶다. 은유 작가는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속 대사인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라는 말을 인용하며, 과연 그게 사실일까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눈앞의 불의와 타인의 고통에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면 어떤 삶이 펼쳐질까. 버스 기사로 일하던 박사훈 씨의 삶이 그에 대한 대답을 들려 준다. 불의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매순간 타인의 삶에 뛰어들고 뭐라도 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변 사람을 진심 어리게 대하며, 절대 욕심내지 않고 살아왔다. 그의 인터뷰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뭉클해지는 지점이 온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이렇게 '삶이 떠안기는 온갖 고통을 흡수하고 견뎌내고 얻은 한 줌의 말로, 늙음의 자리에 도달해야 보여주는 삶의 통찰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지에 대해 사유하게 만들어 준다. 작가는 '어떤 삶을 가치 있게 볼 것인가가 공동체의 중요한 질문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밥의 가치가 퇴색하는 현실에서 이 책 속 주인공들은 꿋꿋하게 밥을 짓고 밥심을 믿고 밥정을 살며 밥의 혁명을 수행한다. 음식이 있고 동료가 있고 노조가 있는 삶이 어떻게 일상을 바꿔놓는지, 일이 나를 지켜주지 않을 때 나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들은 자기 삶으로 증명한다. 고단하고도 위대한 타인의 생을 잠시나마 엿보면서 저평가된 노동의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들 하지만, 실제 세상이 바라보는 척도는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 노동자의 권리, 이타심과 돌봄 측면에서 보면 누구도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진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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