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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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원래 사는 게 연기에 가까운 거라고 일러주었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사랑도 듬뿍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거라고. 여사는 자신이 연기를 아주 지독하게 못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매번 사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너희는 말이야. 지금 혼란스럽다는 것을 들켜서는 안 돼."                  p.107


이중일은 어릴 때부터 경찰관이나 소방관을 꿈꿨지만, 지방의 응급구조학과를 나와 여섯 번째 고시에 실패하면서 노력의 무가치함을 인정하게 된다. 지금은 사설 구급대원으로 일하며 온갖 환자를 대형 병원으로, 요양 병원으로, 정신병원으로 실어 나르는 일을 했다. 각자 이유는 달랐지만 사설 구급차를 타려는 사람들은 아주 절실했고 치열했기 때문에, 그런 환자와 보호자들을 이송하는 동안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응대하거나, 싸움을 중재하며 얻어맞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치열한 현장에 있다가 집에 오면 모든 게 허무했다. 잔뜩 사다 놓은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웠고, 별다른 취미도 없어 통장에는 푼돈이 차곡차곡 쌓였다. 가끔 절연한 부모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는 지금의 이상한 평화에 만족했다. 


그날도 환자와 보호자를 이송하는 일을 하는 중이었고, 두 사람은 기필코 휴게소에 들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가 통증이 심해 공황 증세를 보인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들은 휴게소에서 잎담배를 말아 피우고 있었고, 그는 놀라 아연실색해 그들에게 말한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그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 얘기를 듣다 보니 보호자가 환자의 차를 10년 넘게 몰았다고, 구급차를 몰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러다 그들에게 구급차를 빼앗기게 되는데, 어쩌다 보니 도망치려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휘말려 구급차를 자신의 의지로 내어주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제 완벽하게 그들의 편이었기 때문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이중일은 환자의 탈출에 공범이 되기로 한 걸까. 




그리고 근정에게 물었다. 너는 이 모든 게 진심인 거냐고. 근정은 정말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너는 보통 이런 걸 진심이라고 하지 않아? 근정의 물음은 너무나 간결했고, 그래서인지 더욱 명백하게 느껴졌다. 문주는 도대체 이런 걸 진심이 아니면 무엇을 진심이라 하겠느냐고, 응당 그렇게 생각하고자 하면서도 자꾸 미심쩍었다. 또한 자신이 그 미심쩍은 마음을 결코 지울 수 없다 는 것이 너무 의아했다.              p.282~283


함께 사는 가족이든, 영원을 약속한 연인이든, 뭐든 해주고 싶은 친구이든, 믿고 의지되는 동료이든 간에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상대를 믿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소연 작가의 신작 소설집에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내 외면할 수 없어 한패가 되고 마는 사람들이 나온다.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일하고, 마음에 들지 않지만 차마 관계를 끊지는 못하며, 상대의 말에 불만과 분열을 경험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에 그의 편에 서기로 한다. 어딘가 수상하고 불가피해 보이는 이들의 연대를 우리가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세상을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타인을 돕는 것이 곧 자신을 돌보는 행동이 되고, 누군가를 한 번 더 믿어보기로 결정하는 것이 결국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극중 시터로서 극진하게 할머니들을 돌보는 희지에게 한 보호자가 한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희지 씨, 그러지 말아요.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요.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정말로. 그래서 괜찮은 거예요." 모든 일에 진심을 다했지만 그럼으로써 깎이는 마음을 도로 채우는 법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적이 나 역시 있었기에 마냥 소설 속 이야기 같지 않게 느껴졌다. 동시대의 가장 최전선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예소연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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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균형 - 불안과 기쁨, 슬픔과 행복 사이 삶의 온도를 맞추는 일
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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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도 나는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쌓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과 삐끗한 선과 그럼에도 계속하는 시간. 그것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방향을 만든다. 창작에서 완벽은 출발점이 아니라 도착점이다. 도착점은 늘 멀지만, 그쪽으로 가는 길은 의외로 단순하다. 일단 하는 것. 그리고 아닌 것을 알아내는 것. 그 정도면, 오늘의 작업은 충분하다.              p.162~163


세상 일이 다 내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고, 보기 싫은 사람은 거짓말처럼 매일 봐야 한다거나, 웃고 있을 때 실패를 마주하거나, 평안한 한낮에 불행이 쳐들어오는 식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럴 때마다 툭툭 털고 일어나야만 한다. 그게 삶이기도 하니 말이다.


<흐릿한 나를 견디는 법>과 <무명의 감정들>에서 불안의 세계를 헤매던 캐릭터 '무명'이 돌아왔다. 이번 작품은 <느슨한 균형>이라는 제목처럼 삶의 균형을 잡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삶의 균형이라는 건 양쪽을 반으로 뚝 나눈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하루 중 절반은 슬프고 절반은 기쁘면 되는 그런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균형을 잘 잡는다는 건 대체 어떤 걸까. 


표지 이미지에서도 보이더니, 시소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도 쉽지 않다. 삶의 균형은 더 그렇고 말이다. 균형을 잡는다는 건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는 일이 아니라 기울어질 때마다 다시 중심을 찾으려는 의지인 것 같다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는 모두 불안과 기쁨 사이에서, 슬픔과 행복 사이에서, 그리고 일과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살고 있다. 누워 있으면 묘한 죄책감이 들고, 일을 하면 냅다 눕고 싶고, 사소한 것에 쉽게 기쁘다가도 아무것도 아닌 것에 금세 울적해진다. 직장인과 작가로서의 삶을 병행하다 전업 작가로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선 저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상을 가꾸며 그 속에서 균형을 잡고자 고군분투한다. 그렇게 작가는 불안과 기쁨, 슬픔과 행복 사이에서 스스로 굳게 서기 위해 균형을 다잡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누군가와 시간을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극적이다. 각자의 일정과 마음의 여유, 서로를 향한 온기가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 조건들을 맞추기는 점점 어려운 일이 된다. "나중에 한번 보자"는 말들이 기약 없이 흩어지는 나날 속에서, 마침내 마주 앉은 시간은 그 자체로 기적에 가깝다. 함께 있는 동안 삶의 속도는 기분 좋게 헐거워진다. 서두르지 않고, 이 시간이 어떤 결과를 남길지 따지지 않는다.               p.279


열정과 회피가 공존하며, 행복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는 감정 상태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 얘기처럼 공감되는 지점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내향형과 외향형 사이를 왕복하며, 비뚤어진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 중이고, 제대로 쉬는 법을 하나씩 배워 가는 중인 작가의 모습은 캐릭터 '무명'을 통해서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었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마련이다. 어른이 되면 안정된 직업이라든가, 삶을 영위하는 지혜라든가, 여유로운 마음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른이 된 우리는 알고 있다. 가끔은 이를 꽉 물고 노력하고, 참아내고, 책임지고, 쟁취하기 위해 이것저것 해내야만 겨우 가질 수 있게 되는 것들이다. 단단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멋지게 자신을 지켜가며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 사이에는 '할 순 있는데 지침'이 있다고 한다, 라는 문장을 읽으며 빵 터졌다. 작가가 이런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할 순 있는데 은은하게 지쳐서 일단 생각만 하는 상태라고 썼는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페이지를 공감하며 읽지 않을까 싶었다. 뭔가 계획은 많은데 실행은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고 싶고,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돌아보면 결과가 시원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가도 어찌저찌 해내는 날들... 아마 대부분의 모습이 아닐까. 


내용만큼이나 책의 외관도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었다. 한 손에 잡히는 판형과 사철제본으로 되어 있어 페이지를 펼칠 때, 넘길 때 모두 너무 편했다. 흔들리고 휘청거리며 불안의 세계를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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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 - 어떻게 정신적 빈곤에서 벗어날 것인가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 지음, 김유경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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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자기 과시적이지 않은 사람에게서 우아함을 느낀다. 상대를 불편하게 하거나 거슬리는 몸짓이나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우아한 사람이다. 우아함이란 주체가 드러내는 진정한 자연스러움에 대한 찬사로, 그런 사람은 가식 없이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진솔한 모습으로 매력을 풍기며, 조용히 평온함을 퍼뜨리는 능력이 있다.              p.61


우리는 역사상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손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간의 소통은 오히려 더 불안정해졌다. 현대인들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일상의 꽤 많은 시간을 화면 속 세상에서 보낸다. 인터넷과 SNS의 일상화로 전 세계는 물론 개개인까지 촘촘하게 연결되었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약해졌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저하되었다. 이렇게 정신적 빈곤에 처한 현대인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스페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인 저자는 그에 대한 처방으로 우아함의 가치를 되살린다. 우아함은 가식 없이 자연스럽고, 단순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줄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우아함이란 기품처럼 내적으로 타고난 본질적 특성과 교육을 통해 형성된 도덕적 고귀함 및 단순함과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뜻한다. 저자는 우아함의 본질인 지적인 사고와 판단이 현실 속 삶을 붙들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행복이 부수적인 목표이거나, 덕 있는 삶의 결과 혹은 뜻밖의 행운으로 여겨지던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 각종 스크린이 사회와 일상에 보편화되기 이전 시대의 행복은 삶의 여정 속에서 찾아 가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당시에는 대부분 올바르게 살고 행동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쾌락과 욕망의 개념을 반드시 포함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행복 개념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과거의 행복은 삶에서 집착의 대상이 아니었고, 그것을 반드시 찾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행복을 얻는 일은 개인에게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행복을 얻는 일 자체를 행운으로 여겼으므로 그렇지 못할 때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포스트 행복은 이 방정식에서 ‘행운’이라는 요소를 제거했고, 자유주의 이념의 원격 조종을 받아 성공은 긍정적인 사고와 연결하고, 실패는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렸다.                 p.249


우리는 지금 물리적 국경도, 가상적 국경도 사라진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는 전 세계 어느 곳과도 즉시 연결될 수 있고, 상품과 유행, 이념 등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정보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해서, 더 나은 정보를 얻을 능력까지 향상된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는 기술 산업 사회에 깊숙이 진입해 있다. 다양한 기술의 발달은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고 노력과 시간을 절약해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여전히 시간 부족에 시달리고, 시간에 쫓기며, 시간이 줄어 들었다고 느낀다. 이러한 역설적 흐름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형태의 소셜네트워크는 사생활 보호와 과시욕, 자율성과 외부의 인정이라는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역학에 빠지도록 만든다. 겉보기에는 행복을 얻을 기회가 훨씬 많아졌음에도, 삶의 기쁨은 더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게 된 것이다. 자살률은 계속 증가하고, 정신 건강 문제도 더욱 늘어났으며, 도시 거주민들 사이 연결성은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정신적 빈곤 상태를 해결해 줄 방안이 '우아함'이라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세련됨, 단정함, 상냥함, 평온함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우아함이라는 가치가 사람들간의 관계를 이어주고, 개인이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 판단하는 지적인 사고 능력을 보여준다는 것이 말이다. 디지털 화면이 지배하는, 결핍을 증폭시키는 사회에 맞서는 사유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이 책이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우아한 사람은 예의 바르고 정중하며, 타인을 함부로 대하거나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또한 우아함은 단순히 미적인 감각에만 국한되지 않고, 윤리, 정치, 사회적 상호 작용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올바른 선택을 위한 통합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개념이다. 그러니 우아하게 생각하고 사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잘 살려고 애쓸수록 왜 더 불안해지는 것인지 궁금했다면, 현실 속 삶을 단단히 지키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이 책을 통해 우아함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극이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삶의 지향점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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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다는 착각 - 시간 압박을 버리고 여유를 되찾는 9가지 심리 법칙
이언 테일러 지음, 최기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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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시간이 없다"라는 말은 행동을 미루는 궁색한 핑계이자, 실은 허구에 가깝다. 그 말 속에는 우리가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착각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는 시간을 소유한 적이 없다. 우리를 잡고 흔드는 건 오히려 시간이다. 안일한 무감각을 떨쳐내고, 이제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피곤한 눈을 비비며 잠을 털어내고, 과테말라 싱글 오리진 커피처럼 또렷하고 진한 현실의 향을 느껴야 한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이 아닌, 시간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p.28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루는 24시간이다. 그런데 왜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걸까. 수면 시간을 줄여 보기도 하고, 새벽 기상에,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편이다. 그래서 시간관리에 관한 자기계발서들도 꽤 찾아서 읽어 보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을 물리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방법이야 당연히 없겠지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서 보내느냐에 따라서 낭비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있을 테니 말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 관리법만으로는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없다는 '착각'이라니. 시간을 핑계로 자꾸만 미루고, 포기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정신차리라고 호통치는 것 같은 제목 아닌가. 저자는 말한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행동을 미루는 궁색한 핑계이자, 실은 허구에 가깝다고. 지금의 시간은 우리를 지배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지배를 끝내고, 시간의 억압과 맞서 싸워, 시간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시간의 폭정으로부터 우리의 모조를 되찾기 위한 선언이라고 그는 말한다. 모조란 기분 좋고 활력이 넘치는 상태를 말한다. 동시에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생활 습관과 행동을 지켜 건강을 유지하고 성장해 나가는 힘이기도 하다. 이 책은 왜 우리가 항상 시간에 쫓기는 것인지, 정작 우리를 옥죄고 있는 건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와 그 시간을 집어삼키는 환경이라고 말한다. 결국 바쁘다는 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이다. 



사실 성공은 '가끔 이를 악물고 일어난 하루'보다 '대부분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일어난 수많은 아침' 위에서 쌓인다. 사람들은 종종 의지력으로 유혹을 이겨낸 순간을 떠올리지만, 그런 에피소드에만 집착하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셈이다. 의지력은 때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나, 그것에 반복적으로 혹은 지속적으로 의존하다 보면 결국 결심이 모래처럼 부서지고 만다. 진정한 성취와 지속적인 성공은 의지만을 붙드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p.85


월 단위로, 주 단위로, 그리고 하루를 매 시간 단위로 쪼개며 살아도 늘 시간이 부족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다루는 인식의 전환이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동안의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을 읽으며 답답했던 부분, 해소되지 않았던 기분을 완전히 통쾌하게 날려주었다.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과 바쁨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삶 전반에서 시간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리적으로 시간을 늘릴 수는 없지만 시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뒤틀린 시간 감각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바쁜 것'과 '바쁘다고 느끼는 것'은 다른 얘기다. 문제는 '바쁘다고 느끼는 것', 즉 바쁘다는 감각이다. 그 감각이 마음속 여유를 잠식하고, 의미 있거나 즐거운 일을 누릴 틈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시간 부족을 해결하는 진정한 방법은 더 많은 일을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는 그 감각을 덜어내는 거라고 이 책은 말한다. 


매번 일은 바쁘고 시간은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아침을 먹는 것도, 점심에 산책을 하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모두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사수해야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왜 이렇게 늘 바쁜 걸까, 매일 바쁘게 달려가는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을 제대로 챙기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앞으로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 것 같다. 시간을 느끼는 심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시간과의 관계를 재설정한다면, 실전에서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특히나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101가지 규칙’이 정리되어 있어, 실제 현실에서 바로 실천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 이 책을 통해 시간 압박을 버리고 여유를 되찾는 방법을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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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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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의 원형적 아버지인 제우스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얼마나 절실하면서도 사무치는 단어, 느낌, 이미지인지 새삼 확인한다. 가부장제라는 체제하에서 누구에게나 아버지란 상처와 두려움의 대상이자 동시에 한없는 동경의 대상일 것이다. 나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또 아버지의 자랑이 되기 위해 줄곧 매진했다... 지금은 생물학적 아버지보다 원형적 아버지 탐색에 마음을 쏟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일생 떠날 수 없는 존재가 아버지인가 보다.             p.67


현대 심리학이 힘, 대화, 공격성, 장애, 이성 같은 추상적 개념들을 발달시켰다면 고대 그리스인은 제우스, 헤르메스, 아레스, 헤파이토스, 아폴론 같은 신들을 탄생시켰다. 신화의 주인공인 신들은 인간 정신을 이루는 여러가지 서로 다른 힘들을 의인화한 것이다. 이대남 현상,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극단적 여성 혐오 문화 확산 등 젊은 남성들의 폭력성과 보수적 가치로의 회귀 속에서 이 책은 남성성의 본질적 힘과 아름다움을 고대 그리스에서 찾는다. 


신화학자 고혜경 교수는 가부장제 아버지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가진 제우스, 태어남과 동시에 배신으로 삶을 시작해 상처를 가진 헤파이스토스, 영원한 젊음을 상징하는 아폴론, 샘솟는 위트와 트릭의 소유자 헤르메스, 억압을 깨부수는 해방의 신 디오니소스, 세상의 은밀한 부를 관장하는 하데스까지 그리스 여섯 남신이 보여 주는 남성 원형의 다채로운 맨얼굴을 들여다본다. 정여울 작가는 '이 험난한 사회에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한 부모는 물론, ‘요즘 남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하는 모든 세대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고 추천사를 썼는데, 읽으면서 매우 공감했다. 실제로 저자 또한 상담실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신음하는 청년들을 자주 만났다고 한다. 물리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려는 열망으로 가득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버지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경제적 풍요를 잃게 될까봐 몹시 두려워하는 것이 이 시대 연약한 아들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니 말이다. 




삶의 궤적을 회상하다 보면 참으로 많은 우연이 현재를 만들어 왔음을 느낀다. 길게 또 짧게 겹친 인연들, '진짜 나'를 알아 가게 해 주는 학교들, 지혜로 영글어진 스승들, 나란히 걷는 친구들, 배움을 요하는 난관들, 죽음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길 없는 암흑의 나날들, 영혼에 자국을 새긴 감동과 아름다움, 그래서 지금 이 자리... 우연처럼 펼쳐졌던 순간들이 서서히 퍼즐처럼 맞추어져 일관된 패턴과 제 모습이 드러나는 듯하다. 지금껏 우연이라 여긴 일들이 헤르메스의 설계라면 이보다 더 한 트릭이 있을까?                 p.209~210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애정을 가지고 자녀를 대하면서도, 동시에 위협적일 때도 있고 파괴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폭력이 일상이 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뉴스 보도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밤새 잠 안 자고 우는 아기,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사춘기 자녀의 반항 앞에서 우리의 아버지들은 때때로 자기 안의 괴물을 만나게 된다. 자녀는 아버지의 한쪽 면을 다른 쪽 면보다 훨씬 우세하게 경험한다고 한다. 실제로 저자가 수업에서 각자 경험한 아버지의 모습에 대해 물었을 때, 다수가 권위주의, 폭력, 바람, 경제적 무능, 유기, 냉담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말했다고 한다. 실제 아버지는 어느 한쪽 모습으로만 완전히 치우쳐 있지는 않을 텐데도 말이다. '마땅히 이래야 하는 아버지'는 실제 각자가 경험한 아버지와는 대체로 간극이 크다. 그렇다 보니 파괴적인 아버지는 마치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존재인 듯 여겨진다. 그러나 아버지 신화의 원형에는 긍정-부정, 창조-파괴, 밝음-어두움 양면이 모두 존재한다.


인간 정신은 본래 단일하지 않고 다중심적이며 다면적이기 때문에, 이를 더욱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정교한 시각이 필요하다. 각자의 내면세계는 복잡다단하고, 다채로우니 말이다. 카를 융의 심리학은 원형 이론을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이 원형들의 고향이자 메카가 바로 고대 그리스다. 그리고 심리학적 견지에서 신들은 유용한 개념이자 은유다. 이 책에 소개되는 제우스, 헤파이스토스, 아폴론, 헤르메스, 디오니소스, 하데스 모두 각각의 심리학적 원형으로 볼 수 있다. 혹자는 '그리스 신화는 그 자체로 심리학'이라 단언하기도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소비되어 온 신들을 새롭게 읽어 내는 과정도 흥미로웠고, 신화의 언어를 통해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돌아보는 과정도 매우 인상적인 책이었다. 신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에 작동하는 원형들의 힘을 알아차리고, 보편적 마음 무늬를 찾아 다면적인 나와 우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신화와 심리학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고대 그리스 신들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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