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근심
마리아나 레키 지음, 장혜경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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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뒤로 기댄다. 비스듬하게 기댄다. 너무 피곤하다. 나는 부스스 일어난 파란 코듀로이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속으로 질문한다. 얼마나 많은 얽힘과 풀림이, 얼마나 많은 꿈이, 얼마나 많은 이와 침묵과 바지가 여기에 누웠을까? 그러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잠이 든다. 나의 삼촌 울리히와 내가. 삼촌이 웅얼거리는 소리가 여전히 들린다. "우리가 붙들고 씨름하는 것들이 얼마나 하잖은가요. 우리를 붙들고 씨름하는 것들이 얼마나 위대한가요." 지금 저 구절은 확실히 릴케이다.            p.49


인생에 관한 한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 우리는 당장 내일 우리에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 지 알지 못한다. 두통은 사실 뇌종양일 수도 있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될 수도 있으며, 길을 가다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예약한 비행기가 취소될 수 있고, 아이가 학교에서 다칠 수도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생각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불확실한 우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는 불안과 우울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 문제가 되어 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불안의 한가운데에서, 하지 않아도 될 온갖 근심으로 둘러싸인 이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독일의 심리학 잡지에 연재된 서른아홉 편의 글을 엮은 것으로 두려움, 걱정, 불안, 상실, 상처, 고독 등의 주제로 쓰인 초단편 형식의 연작 소설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법한 인물들의 소소한 일상 속 다양한 내면이 그려져 있는데, 한 걸음 비켜서서 바라보는 작가의 다정한 시선이 위로가 되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나 결핍이나 상처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고,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공포와 분노, 상실 등 크고 작은 '근심'들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극중 인물들은 잠을 이루지 못해 불면으로 힘들어 하고, 광장 공포증으로 나서지 못하며, 사랑의 상처에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그 중에서 평소에는 조용하고 매우 예의 바른 사람이지만 광장 공포증으로 힘들어 하는 폴 씨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엘리베이터와 대중교통을, 금방 밖으로 뛰쳐나올 수 없는 온갖 건물들을 무서워했다. 공포증을 털어내고자 행동치료사를 세 번이나 바꾸어가며 치료를 받았고, 불안을 가라앉히는 약도 먹어 봤지만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 그 상황들이 상상이 되었는데, 이런 식으로 각자 자신만의 분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책 속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비제 여사에게는 진정제가 아니라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것도 시급하게 필요하다. 그녀와 함께 미치광이 교수들이 연구하는 그녀의 내면 지하 보일러실로 내려가줄 사람이 필요하다. 오이대왕에게 재갈을 물릴 사람(나라면 나중에는 그와 친구가 되도록 도와주겠지만, 일단은 나도 안전을 위해 재갈을 택할 것이다), 비제 여사를 생각의 덤불에서 꺼내줄 사람, 믿음이 가지 않는 자동이체를 해지할 사람, 선택지에서 불행의 역청으 긁어낼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p.194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랑해서 불안하고, 부모라서 불안하고, 사회적으로 불안하고, 관계가 불안하고, 미래가 불안하다. 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각종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 사고들부터 전세계적인 팬데믹과 테러, 재해, 그리고 일상에서 겪는 가족 문제, 회사에서의 고민, 연인 관계,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걱정까지 우리의 삶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삶은 매번 걸러내야 할 정보와 쉴 새 없이 많은 자극으로 둘러싸여 있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면, 불안과 근심, 걱정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들은 하나같이 삶의 일부가 되어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니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마음을 졸이고 흔들리며, 작은 일에도 금방 마음의 중심을 잃고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마리아나 레키의 글을 읽으면서 일상의 '온갖 근심'들으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 보면 내 이웃이, 내 친구가, 내 가족이 겪을 수도 있는 근심들이었던 거다. 그리고 비록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각종 근심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마리아나 레키의 글은 결코 무겁거나 비관적이지 않고, 기발한 유모와 따뜻함으로 하찮고도 위대한 우리의 근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분량이 짧기 때문에 가볍게 한 편씩 읽기 좋아서, 내 현실의 문제가 고단할 때, 스트레스가 극단에 치달은 것 같을 때 페이지를 넘겨서 한 편씩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읽다 보면 우리가 붙들고 씨름하는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지 깨닫게 되면 툭툭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고, 우리가 붙들고 씨름하는 것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되어 조금 덜 외로워지는 기분이 들 것이다. 타인에게는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근심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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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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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가구점을 방문할 때마다, 나는 이상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갈망에 휩싸인다. 나는 모든 것을 원하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부드러운 색조의 러그, 따스한 나뭇결, 놋쇠와 유리로 만들어진 램프는 가게에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막상 어느 하나를 바라보면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루이스 하이드는 이렇게 적었다. <소비에의 욕구는 일종의 욕정이다. 하지만 소비재는 이 욕정을 미끼로 쓸 뿐 그것을 충족시켜 주지는 않는다....>                 p.17~18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물건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커다란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기만 해도 각종 물건들이 가득하고, 언제나 사고 싶은 것들이 존재하며, 우리는 소비를 위해 기꺼이 돈과 시간을 바친다. 재미있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삶을 더 의미있게 만들어 준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점이다. 소유가 삶의 의미나 목적을 부여해준다고, 그리고 결국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면역에 관하여>라는 아름다운 책을 썼던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 율라 비스의 신작이다. 이번에는 <소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생애 처음으로 집을 구입했다. 그리고 아직 비어 있는 집을 채우기 위해 가구점을 방문한 경험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집의 소유 여부야말로 중산층이라는 계급을 판단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지표일 것이다. 저자는 한없이 사적인 기록을 통해 소유, 일, 자본주의, 계급, 예술 등에 대해 고찰해 나가는 과정을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가구점을 방문할 때마다 '이상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갈망'에 휩싸인다고 말했다. 가게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은 사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상관없는 인테리어 소품들이다. 매장에 더 근사하게 보여지도록 꾸며둔 것도 있을 테니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막상 그 중의 하나를 구매해서 집에 가져다 놓으면 내가 상상했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일이 종종 있지 않은가. '소비에의 욕구'란 사실 완벽하게 충족될 수 없는 게 아닐까?




바틀비처럼, 나는 그렇게 안 하고 싶다. 이래라저래라 지시를 안 듣고 싶고, 주식 시장에 투자를 안 하고 싶다. 타인의 노동으로부터 이윤을 짜내는 체제에 돈을 안 넣고 싶다. 이것은 내가 그 계좌를 열 때 <저위험> 옵션을 고른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상담사에게 이런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이렇게 말한다. 「제가 보수적이어서요.」 그는 안 믿는 눈치다. 「돈 문제에서는 그렇다고요.」 나는 부연한다.                  p.223


월급은 늘어나지 않는데, 물가는 높아만 가고, 카드값은 줄지 않고, 필요한 소비는 많아진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내 집 마련이 일생 일대의 목표인 것처럼 영끌해서 집을 구하고 나면, 그 집을 채울 수많은 가구들이 필요하고, 수 년마다 업그레이드를 해줘야 하며, 때마다 차도 좋은 걸로 바꾸고 싶은 법이다. 저자는 청년 시절에 거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가난한 예술가로 살았다. 하지만 이제 중년에 접어들면서 30년 할부금이 걸려 있긴 하지만 집을 소유했고, 어엿한 중산층이 된 것이다. 집에 딸린 정원과 집 안을 채워줄 피아노, 가구, 그릇 등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러한 소유가 주는 안정성을 즐기면서도, 그러한 특권이 본질적으로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스스로를 백인이자, 교육받은 여성, 그리고 중산층 계급으로서 누리는 특권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과 노동, 예술 같은 무형의 것들은 어떤 방식으로 가치가 매겨지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시간과 돈을 보면 그 사람에게 중요한 게 뭔지 알 수 있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한 에피소드에서 이웃이 저자에게 말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시간과 돈을 음악과 연극에 써서 콘서트와 공연을 보러 다녔다. 즉, 예술에 투자한 것이다. 저자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시간은 글에 쓰고, 돈은 집에 쓴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 내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어떻게 돈을 쓰는지, 무엇으로 계급을 가르고, 왜 일을 하는지, 자본주의란 무엇인지 등 개인적인 경험이 사회적 구조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진진한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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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을 위해 죽음을 묻다 - 《파이돈》에서 《팡세》까지, 삶과 죽음을 읽는 철학 수업
최대환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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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대철학이 철학을 진정한 위로를 주는 원천으로 이해한 것은 근대 이후 잊혀진 철학의 소중한 전통이며, 오늘날 고대철학이 다시금 재발견되고 높이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보에티우스가 전하는 철학적 위로는 죽음이라는 인간 존재를 뒤흔드는 주제를 대면하고 그 의미를 실존적이면서도 온전하게 살피는 데 있어 철학이 얼마나 유용한지 생생하게 깨닫게 합니다.             p.97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삶'이라고 부른다면,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는 방향대로 우리는 나이를 먹게 되고,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게 된다. 산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고, 나이를 먹은 만큼 노화한 육체는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지만, 아무도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살아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죽음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이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사는 동안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좋은 삶을 위하여 죽음에 대해 묻고' 있다. 저자는 죽음을 사유하는 것은 좋은 삶이 무엇인지 깨닫는 길이라고 말한다. 가톨릭의대 생명대학원에서 수많은 의료인과 종교인의 극찬을 받은 명강의 〈죽음 이해〉의 주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파이돈》, 《명상록》, 《신곡》, 《팡세》 같은 고전 철학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 위대한 철학의 대가들은 인간 존재의 신비를 무엇보다 영혼에서 찾으려 했고, 인간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영혼에 대한 사유를 통해서만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고대철학의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는 플라톤의 <파이돈>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에 있어 변함없이 깊은 감동과 영감을 준다. 죽음과 사후 세계와 관련해서 플라톤은 <파이돈>만이 아니라, <고르기아스>와 <국가>에서도 깊은 철학적 통찰과 문학적 천재성을 보여준다. 고대철학 중에서도 유독 스토아철학에 대한 현대인들의 관심이 많은편인데, 그 이유에 대해서도 짚어준다. 감정을 치유하고 올바른 가치를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을 수련하고 연습하는 데 가장 관심을 두고 체계적으로 접근한 학파이기 때문이다. 




단테의 <신곡>은 죽음 앞에서, 나아가 죽은 후에까지도 각 개인의 개성과 고유함과 기품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더 확고하게 드러난다고 증언합니다. 이는 심지어 악덕의 경우도 그러해서, 지옥의 악인들 역시 그 개성과 고유한 운명을 잃지 않습니다.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드라마는 신의 정의와 섭리만이 아니라 인간이 자유 의지로 선택한 인생의 길에 따른 보답과 응징을 생생하게 담고 있습니다. 현실에서의 인간 행위는 그 행위자인 인간 안에 특징이자 개성으로 자리 잡으며, 죽음 후에도 인간은 이를 책임져야 합니다.               p.251


이 책의 저자인 최대환 신부는 천주교 사제이자 인문학자이다. 교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고, 10년 동안 가톨릭방송 라디오를 진행하며 교양과 품격을 전해왔다. 그는 언젠가 독일의 대학에서 철학을 연구하던 시절, 정원에서 달리기를 하다 '지금 죽어도 허무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존재를 관통했던 순간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한 고민과 사유가 지금의 이 책까지 이르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질문이 저자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철학을 평생의 동반자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철학을 직접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저자 역시 죽음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하고 공부한 결과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대 철학자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떻게 작품에 담긴 철학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했는지에 대해서 고전에 관한 풍부한 지식과 철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알려 준다. 


카프카는 말했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 살아가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죽음에 대한 질문이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저자의 말 또한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아직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은 적이 많지 않기에, '죽음'이라는 것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것도 사실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남아있는 삶을 위해 죽음에 대한 사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서양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담고 있기에 수월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저자가 원전에서 직접 옮긴 고전의 문장들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죽음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된다. 어떤 형태의 삶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살기 때문에,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묻는 이 책이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유한한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어떤 오늘을 보내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자, 이제 삶과 죽음을 읽는 철학 수업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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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스러운 돌봄 - 잘 키우려 할수록 나빠지는 불행에 대하여
신성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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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이라 해도 모든 부모는 부모이기 전에 시민이고 개인이다. 자식 또한 부모의 분신이 아니라 고유한 타인이다. 우리는 아이와 좋은 이별을 맞기 위해 사랑한다. 사랑을 줄 수 있지만 생각을 심을 수는 없다. 부모이기 전에 각자의 '나'들이 먼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인을 돌보는 그 마음을 돌이키기를 제안하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뿐 아니라 우리를, 이 사회를 함께 돌아보면 돌봄이 조금은 덜 힘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p.7


아무리 많이 공부하고, 책을 읽으며 준비하고, 타인으로부터 조언을 들어도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바로 돌봄, 육아가 아닐까. 나 혼자 애쓴다고 덜어지지 않으며, 세상의 속도를 아득바닥 따라잡아야하고,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며, 불안과 공포는 익숙한 감정이 된다. 온갖 매체에서, 각종 책에서 육아에 관련된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이지만, 사실 이론으로 배우는 육아 정보란 현실에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기 전부터 수많은 육아서들을 섭렵했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 적은 거의 없었다. 아이는 언제나 내 맘 같지 않고, 어디선가 배운 대로 아이에게 잘해보려고 해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마음의 여유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저 아이가 안전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잘 키우고 싶은 것뿐인데, 왜 이리 챙겨야 할 것도 많고, 눈치봐야 할 것도 많으며,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아등바등 쫓아가야 하는 것일까. 전작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로 아픈 딸을 간병하며 돌봄을 둘러싼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던 신성아 작가는 이 책에서 내 아이를 향한 사랑이 어떻게 사회의 불안과 결합해 ‘탐욕스러운 돌봄’이 되는지 짚는다. 저자는 정성과 유난, 책임감과 욕심은 그 경계가 모호하고 기준도 저마다 다르기에 무결하고 이상적인 돌봄이란 성립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진심을 욕심이라 부르면 탐욕스럽지 않은 돌봄은 없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돌봄의 어려움은 개인이 혼자 애쓴다고 덜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위로가 되면서도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당장 해결되거나 개선될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답답해지기도 했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이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대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다. 더이상 내게 없기에 간절하고, 유한하기에 애틋한 것이다. 그러나 형태를 잃었어도 사랑은 오랫동안 온존할 수 있다. 기억은 사건을 연결하고, 관계를 완성하며, 서사를 완성한다. 페이지를 넘겼다고 앞의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듯 내가 사랑했던 아이는 우리 이야기 속에 계속 남아 서사를 끌어간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미래의 우리가 기억하고 다시 부를 옛 시절이 될 것이다. 아기에서 아이로, 소녀로, 미성년으로 커가는 아이의 성장 궤도는 마치 나선형 계단 같아서 아래를 보지 않고는 위로 올라갈 수 없다.                       p.166


이 책은 사적인 헌신에 가두지 않고 모두의 책임으로 재사유하자고 제안한다. 저자와 그의 아이가 겪는 개인적 경험들은 사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거나, 고민해봤을 법한 문제들이라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수시로 돌발한다는 점, 우리는 부모가 줄곧 아이를 관찰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도 부모를 관찰한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것처럼 아이와 엄마의 관계 역시도 결코 쉽지 않다. 정답이 없는 문제가 대체로 그렇듯 나만의 답을 찾는 데는 늘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는데, 엄마로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왔지만 아직도 쉽지 않다. 그래서 더 이 책이 와 닿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딸맘들은 딸의 독박 육아를 한탄하고, 아들맘들은 아들이 결혼할 때 집 한 채 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비관한다.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자식 세대를 위해 구조적 성차별과 역차별을 거론하며 입씨름을 계속하며, 모든 제도들이 오로지 당장 나에게, 혹은 우리 딸이나 아들에게 유리한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계량되고 판단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작 이러한 불행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국가와 사회가 뒷짐 지고 있는 동안, 애꿎은 개인들만 싸우고 서로에 대한 혐오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 한국 사회 돌봄의 구조적 결함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누구나 살면서 최소 두 번은 돌봄이 필요하다. 취약할 수밖에 없는 미성년과 노년의 삶만큼은 차별 없이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부끄러운 줄 모르는 소수의 탐욕 앞에서, 경제적 쓸모를 낼 수 없는 이들은 한없이 무력해진다. 사랑이 경제로 환원되면서 발생하는 돌봄의 양극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책 속에 담긴 내용들은 지금도 누군가는 겪고 있는 일이며, 우리 모두 언젠가 겪게 될 일이기도 하다.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해야 하는 돌봄의 의미에 대한 사회적 확장이 필요하기에, 더욱 의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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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자 뱀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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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들수록, 마틸드의 보호막은 갈수록 완벽해진다.

동작은 굼떠지고, 시력은 약해지고, 조금만 더워도 땀을 뻘뻘 흘리고, 차창에 눈을 바짝 들이대고 운전하는 그녀가 실제로는 어떤 존재인지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누구도 의심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까지는.                p.88


포슈 가 한복판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피해자는 프랑스의 거물 실업가 모리스 캉탱이다. 살해된 방식을 보면 격한 감정에 의한 범죄라고 보여졌다. 대구경인 44밀리 매그넘을 사용했고, 소음기를 사용했기에 계획적인 살인이었다. 냉정하고 계산적인 살인, 거의 전문가에 가까운 자의 소행이 분명하다고, 형사 바실리에브는 생각한다. 함께 있던 닥스훈트도 살해되었는데, 모두 총구를 몸에 바짝 들이대고 쐈다는 건 명백히 어떤 강한 증오, 파괴의 욕구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편 앙리는 거실의 안락의자에 앉아 자정 뉴스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TV 뉴스 주요 타이틀이 시작되자마자 쉰 살가량 된 남자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난다. 살해된 모리스 캉탱이었다. 범죄 자체만큼이나 끔찍한 것은 그것이 실행된 방식이다. 캉탱은 여러 발의 총알을 맞았고, 그 중 한 발은 목 한가운데 맞아 머리가 거의 날아가 버렸다. 앙리는 한숨을 내쉬며 욕설을 내뱉는다. 이건 그가 원하던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순 셋인 마틸드는 세월과 함께 몸 전체가 조금씩 느슨해졌지만,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아주 철저하다. 물론 체중이 많이 늘었고, 과거의 아름다움은 흔적을 감췄지만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노년 여성처럼 보이는 마틸드는 사실 레지스탕스 출신 '킬러'이다. 그녀는 거침없이 목표를 살해하고, 흔적도 없이 움직이며, 교묘하게 수사망을 빠져나간다. 그녀가 작업을 하면, 한 발도 총알이 빗나가는 법이 없고, 아무 문제 없이 깨끗하게 일이 처리되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계획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교통 체증이 없다는 방송을 듣고 고속 도로에 들어섰으나 차들이 엉금엉금 기고 있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고, 겨우 시간에 맞춰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평소처럼 한 발로 일을 끝내지 않았고, 함께 있던 닥스훈트까지 처리해 버리고 말았다. 무기를 처리하는 방식도 평소와 달랐는데, 사실 잘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최근 그녀에게 조금씩 기억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통제를 벗어난 그녀가 조직의 위험이 되면서, 결국 타깃이 되기에 이른다. 과연 마틸드는 경찰의 수사와 조직의 추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이제 일어나게 될 일은 불가피하다.

결코 풋내기가 아닌 뷔송이 당했다는 사실은 그로 하여금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 삶이 그에게 가르쳐준 것은, 일이 우리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이다. 이 집에서 자신을 완전히 보호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흡연을 마치며 그는 어느 정도 운에 의지해야 하리라는 다소 체념 어린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그는 차고로 가서, 소소한 것들을 수리하는 작업대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꺼낸다.                p.276


이 작품은 피에르 르메트르의 미발표 초기작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를 매우 좋아한다. 시리즈 외에 스탠드 얼론으로 발표했던 추리소설들도 모두 다 읽었고,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추리 장르를 벗어나 쓴 작품인 <오르부아르>로 공쿠르 상을 수상하고,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뒤로는 더 이상 추리소설들을 발표하지 않아 매우 아쉬웠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에 집필한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너무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의 추리소설에서는 항상 개성있는 캐릭터가 등장했었다.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의 카미유 베르호벤 반장은 키가 14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단신으로 화가였던 어머니가 임신 중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담배를 피워댄 탓에 영양 장애성 발육부진의 결과라고 한다. 아들보다는 자신의 예술세계에만 관심이 있었던 어머니 덕에 외롭게 자랐던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작품의 형사 바실리에브는 193센티미터의 큰 키를 가지고 있는데, 근육이 거의 없어 마르고 후리후리한 체형이다. 그는 아빠에게서 외형적인 부분을, 엄마에게서는 약간 무기력한 성향, 무한한 인내심, 그리고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직함을 물려받았다. 


노년의 여성 킬러 마틸드 또한 매우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그녀는 아무런 가책없이, 누구에게도 예외 없는 무자비한 학살극을 벌이는데, 그런 면모는 정말 냉혹하게 그려진다. 폭력이라는 것이 자신이 아직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일 뿐이기에, 기능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을 할 때 외에는 개를 산책시키며 일상을 살아가는 너무도 평범한 할머니처럼 보인다. 순수한 폭력성이 주는 쾌감과 냉혹한 행동에서 전해지는 불편함을 적절하게 느끼게 해주는 캐릭터이다. 반면 임무를 성공한 후에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으로 건강상 먹어서는 안 되는 정어리와 빵을 먹는 모습 또한 마틸드이기에 앞으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오는 불안감도 서사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이 작품을 미성숙한 시절의 결점들을 고치지 않고, 처음 집필했던 그대로의 상태로 출간했다고 하는데, 너무나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본격 문학작품들을 발표하면서 더 이상 추리 소설은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그의 초기작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언젠가 누아르 신작을 또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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