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탑에서 농사 : 미션 1 황폐한 땅에서 살아남기 - 생존 과학 학습만화
조영선 지음, 이정태 그림, 네이버웹툰.이억주 감수 / 다산어린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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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네이버 웹툰 <나 혼자 탑에서 농사>가 생존 과학 학습만화로 탄생했다. 어느 날 갑자기 도시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탑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남아야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주요 내용인데, 힐링 판타지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 원작을 바탕으로 초등 필수 과학 지식을 함께 담아, 그 세계관을 살리면서도 학습 만화로서의 장점도 강화했다. 




어느 날, 서울 한복판에 갑자기 99층의 검은 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누가 탑을 만든 것인지, 왜 도시에 나타난 것인지, 어떻게 이 엄청난 높이의 건축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세워진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탑에 오르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검은 탑에 입장하는 티켓은 장당 2억이라는 비싼 금액이었고, 주인공 세준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였다. 


학자금 대출을 갚으며 하루하루 힘들게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던 세준에게, 어느 날 이상한 구멍이 나타난다. 바로 검은 탑의 출입구였다. 입구로 들어서자 예상과는 달리 아무것도 없는 거대한 구덩이에 떨어지고 만다. 아무도 없었고, 자신이 가진 식량으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세준은 자신이 가진 식량을 모두 심어 살아남기 위한 농사를 시작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검은 탑 최고의 '탑 농부'가 된 세준과 동물 친구들이 새로운 열매를 수확하면서 시작된다. 처음 시도해 보는 접붙이기 기술을 통해 열린 열매는 빨간색으로 너무나 예뻤다. 그런데 그 맛있는 열매를 먹자마자 세준은 어린아이가 되어 버리고 마는데, 그 와중에 기억까지 잃어버린다.


난 누군데 여기 있는 거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


세준과 함께 농사를 지었던 동물 친구들 또한 전부 기억하지 못하자, 토끼들과 동물 동료들도 모두 당황하는데... 과연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세준은 다시 농사를 짓고 탑 농부가 되어 이곳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렇게 동료들과 다시 농사를 짓게 되는 과정을 통해 씨앗을 어떻게 채종하고, 심어야 하는지,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인체, 영양, 동물, 식물 등 초등 과학 교과 연계 지식이 가득하고, 귀여운 동물과 충직한 몬스터가 등장하는 협동 농사 미션이 만화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만화 에피소드 속에 과학 지식을 배울 수 있는 TIP이 수록되어 있고, 탑에서 과학 궁금증 해결이라는 코너를 통해 초등 필수 통합 과학 상식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무지개는 어떻게 생길까? 똥을 약으로 쓸 수 있을까? 동물들이 땀을 흘리지 않는 이유는? 식물은 햇빛과 물로만 자랄까? 등 일상 속에서 쉽게 호기심을 가질만한 질문들이 가득해 다양한 과학 지식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특히나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수확의 과정을 보여주며 농사의 가치, 협동과 노력의 중요성, 생명의 소중함 등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게 해줘 더욱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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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콘티니가의 정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3
조르조 바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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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빠." 잔니나가 다시 물었다. "왜 오래된 무덤보다 새로 생긴 무덤을 보면 더 슬픈 거예요?"

... "그건 말이다." 그가 대답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우리와 훨씬 가까우니까,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그 사람들을 훨씬 더 좋아하니까. 봐라, 에트루리아인들은 아주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이야." 그러더니 다시 동화를 들려주듯 말했다. "그러니 마치 한 번도 이 세상에 산 적이 없는 사람들, 영영 죽은 사람들과 같단다."             p.11


핀치콘티니가는 거의 삼만 평 가까이 되는 정원을 소유한 부유한 가문이었다. 정원을 에워싼 끝도 없이 긴 담벼락, 짙은 색 떡갈나무로 만든 손잡이 하나 없는 육중한 대문, 저택 뒤쪽으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는 넓은 테니스장까지 가문 대대로 막대한 재산을 이어왔다. 핀치콘티니가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 없이 성벽 안에서 그들만의 단절된 생활을 했다. 이유는 에르만노 교수와 올가 부인이 아직 젊은 부부일때 여섯 살밖에 안 된 큰아들을 소아마비로 떠나 보냈기 때문이다. 의사도 전혀 손을 쓸 수 없이 별안간 아들이 죽고 말자, 그들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올가 부인은 그날 이후로 평생 상복을 입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후로 부부에게 아들 알베르토와 딸 미콜이 태어나지만, 두 아이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개인교습을 시켰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 했지만, 아들의 죽음 이후로 항상 병균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서 학교란 게 끔찍한 병을 퍼뜨릴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가 부인은 첫째 아들 귀도가 죽고 나서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에르만노 교수도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니,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두 아이는 고립된 생활을 어떻게 버텼을까. 다행히 알베르토와 미콜은 격리되어 살아가긴 해도 외부 세계와, 평범하게 공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실낱같은 관계는 유지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통로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서술자인 주인공은 알베르토, 미콜과 또래로 그들과 친구로 시간을 보냈다. 테니스클럽에서 쫓겨났을 때 핀치콘티니가의 정원과 테니스장을 사용했고, 도서관에서 쫓겨났을 때는 에르만노 교수의 허락으로 그의 서재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시대적 배경을 걷어내고 읽는다면 평범한 젊은이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성장기처럼 보인다. 그만큼 조르조 바사니는 이 작품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아버지는 나의 문학적 미래를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뭔가로, 뒤바꿀 수 없는 꿈으로 이야기하시는구나, 나는 생각했다. 마치 당신과 내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도 되듯. 그리고 이제 공간과 시간을 벗어나 삶에 대해, 우리 각자의 삶에서 일어날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던 일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듯했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합의에 이르게 될까? 나도 자문했다. 왜 아니겠는가. 히틀러와 스탈린이 손잡을 가능성이 아주 많았다.             p.335


이 작품의 배경은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이다. 특히 인종법이 선포된 해인 1938년부터 이차대전을 전후해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주요 서사이다. 부유한 유대인인 핀치콘티니가를 중심으로, 서술자인 주인공 역시 유대인이었기에 인종차별을 직접적으로 겪었다. 인종법에는 유대인의 시민권을 제한하고, 그들의 책을 금지했으며, 공직과 고등교육에서 제외시키고, 이동을 제한하거나 결혼을 금지시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중심 서사는 청춘의 사랑과 젊은이들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인물이 수용소와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는 비극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술사자가 그렇게 사라져 버린 그들의 삶을 기억해 다시 되살려 놓는 것이다. 



이 작품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와 함께 대표적인 홀로코스트 문학으로 손꼽힌다. 홀로코스트라는 사건을 소재와 주제로 삼는 문학이기에 나치의 만행을 증언하거나, 생존자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등 거대하고 불합리한 폭력 앞에선 인간에 대해 보여주는 것이 홀로코스트 문학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요소를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그저 배경에 두고 서사를 진행하기에 같은 장르의 다른 작품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 작품은 발표하자마자 평단과 대중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고,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거장 비토리오 데시카 감독의 영화로도 탄생했다. 영화도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과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삶이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면, 핀치콘티니가의 묘에서 시작되는 이 작품 역시 그러한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시종일관 이들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운명은 몇 년 후에 수용소에서 사라질 유령이었으니 말이다. 유대인 탄압이 거세지는 가운데,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에서의 일상은 고립마저 안전하게 느껴진다. 폭력적인 외부의 현실로부터 단절되어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마치 유리돔 안에서 바라보는 세상처럼 아름답지만, 언젠가는 깨어질 위험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삶처럼 말이다. 이렇게 비극적인 시대에도 아름다움이 있었고, 기쁨과 설렘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슬픔이 여운처럼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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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콘티니가의 정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73
조르조 바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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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사라질 수 없는 과거를 현재로 데려오는 아름다운 기억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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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교유서가 어제의책
퀜틴 스키너 지음, 조승래 옮김 / 교유서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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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왜 이러한 자유론의 초기 경향을 발굴해내는 작업이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내 생각에 그 이유는 그것이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 도전할 수 있는 소중한 방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자유를 좀더 민주적으로 이해하여 자유와 평등, 자유와 민주주의를 최근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허용하는 것보다 더 밀접하게 한 묶음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p.27


교유서가의 '어제의 책' 시리즈는 절판된 비운의 책을 찾아 다시 선보이는 아주 특별한 기획으로 훌륭한 책들을 다시 독자들 곁으로 데려와 주었다. 이번에 나온 것은 지성사학계의 거장 퀜틴 스키너의 고전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이다. 오랫동안 절판되어 독자들의 재출간 요청이 끊이지 않았던 책이기도 하다. 


자유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지금, 다시 읽어볼 기회가 생겨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이번에 재출간된 버전은 역자인 조승래 교수의 서문과 해설 <노예의 자유를 넘어서>와 보론 <로크의 자유론>을 추가한 버전이기 때문에 책의 본문 내용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17세기 중반 혁명기의 잉글랜드 왕정의 비판자들이 동료 시민들의 자유를 보존하고 고양하려고 했을 때, 그들이 말했던 자유는 자유주의적 자유가 아니었다. 자유는 단지 강제적 간섭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지배와 종속의 배경이 되는 조건에 의해서도 상실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퀜틴 스키너는 이러한 자유론의 초기 경향을 발굴해내는 작업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 도전할 수 있는 소중한 방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주장한 것처럼, 근대에 들어와 서양에서는 이러한 첫번째 입장은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두번째 입장은 대체로 접어두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데에는 명백하게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그것이 선택의 문제였지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려 하였다. 우리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이었는가? 내가 발굴한 신로마적 자유를 반추하면서 독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답해보기를 바란다.               p.155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비롯해서 19세기의 자유론이다. 하지만 이 책은 17세기 잉글랜드 혁명을 전후로 한 잉글랜드 지식인들의 자유에 대한 담론을 분석한다. 저자는 신로마적 이론이 처음 어떤 지적, 정치적 맥락 안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알아보고, 그 이론 자체의 구조와 전제들을 탐구한다. 그는 '자유'에 대해서 개인이든 국가든 자율적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며 다른 사람의 의지나 권력에 귀속되지 않은 상태, 즉 종속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에 비해 오늘날에는 '자유'를 단순히 물리적, 강압적 제약이 없는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두 가지 자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자가 1997년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했던 강연에서 시작되었던 책이 신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여전히 시의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일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자유주의적 자유 개념 이전에 존재했던 공화주의적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책을 읽으며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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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내 빈 심장에 끼워둘게 교유서가 시집 5
송하얀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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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그랬을 리 없는데 네가 운다. 소주병을 쌓아두고 술집 구석에서. 너를 내 무릎에 눕히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혼자라고. 고아라고. 너의 머리를 쓰다듬지 않고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다. 너는 테이블을 엎고 벽을 친다. 네 상처에 약을 발라주지 않는다. 나는 반대쪽 구석 테이블에 앉아 술만 마신다. 아무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 '마주침' 중에서, p.35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이다. 소후에 시인의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 원성은 시인의 <비극의 재료>, 리사 시인의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 기혁 시인의 <소설책>에 이어 송하얀 시인의 <그 책은 내 빈 심장에 끼워둘게>가 나왔다. 교유서가의 시집이 특별한 것은 표지 빛깔에 맞는 컬러로 내지에 그라데이션을 줬다는 점이다. 심플한 표지 이미지도 마음에 들고, 페이지를 펼치면 만날 수 있는 은은한 색감도 너무 예쁘다.




이번에 만난 것은 송하얀 시인의 첫 시집이라고 하는데, 수록된 41편의 시들이 대부분 산문시 형식으로 쓰였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억압 들에 대해 그리고 있어서인지 굉장히 어둡고, 무겁다. 개인적으로는 그 동안 읽어 왔던 시집들에 비해 다소 어렵게 느껴졌는데, 다행히 '교환독서'라는 형식으로 읽게 되어 어려운 부분들에 공감하고, 그려진 현실에 대해 함께 분노하며 읽었다. 


서두에 쓰인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고통은 문장의 윤곽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시적인 언어들 아래 지독하게 솔직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줄기 빛이 있고, 눈빛이 마주치고, 웃으며 꿈꿀 수 있는 희망이 희미하게 담겨 있다. 막막한 어둠 속에서 저 멀리 빛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현실 속에서도 '빛나는 것들은 여전히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절교를 선언한 한 사람/너는 화를 내고 나를 붙들고 흔들어댄다.//같이 마시던 술이 몸안에서 출렁인다./예전의 내가 나에게서 떨어져나갈 듯/내 어깨 끝에 매달려 있다.//내 어깨에 닿은 너의 손은 아직 따뜻하다./어떤 사람 그런 사람 그때 걔/한때의 우리는 우리를 우리라 부르지 못할 것 같다.//사람에게 토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 '웃는 사람' 중에서, p.80


전반적으로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이지만, 그 중에서도 '오버타임'이라는 시는 시각적으로도 눈앞에 그려지는 듯해 오싹한 기분으로 읽었다. 시작부터 엘리베이터 바닥에 핏물이 고여 있고, 집에 들어가기 위해 수북하게 쌓인 손목들을 치워야 한다는 문장이 서두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잘린 손목들을 밟고 가야 하는 이유, 남은 손들이 문을 두드리고 욕설을 퍼부어도 문을 닫아버리고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현실이 두 페이지 안에 차곡차곡 담겨 있어 무섭고, 슬픈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지금도 어디선가 어떤 '일'을 겪고 힘들어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되길, 스스로를 살리는 일이 가장 고귀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길 간절히 바라며 읽었다. 




인상적인 시들이 많았지만,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엄마의 독서법'이라는 시였다. 이 시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가 우리가 익히 상상하는 모성의 상징이 아니라 상처와 욕망으로 얼룩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더는 읽지 않는 책들이 쌓여 있다는 것은 엄마가 이루지 못한 꿈과 미래일 것이고, 책 사이에서 면도날을 꺼내 스스로를 베는 행위는 고단한 현실 속에서 이상을 꿈꾸기 위해서 치뤄야 하는 대가같은 게 아닐까. 그런 엄마를 자는 척하며 몰래 지켜보는 내가 만드는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본다. 


이 시집은 후반부에 수록된 해설도 아주 좋았는데, 평론가님의 문장도 마치 시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시는 그 불가능성 속에서도 남은 온기를 찾으려는 간절한 시도다. 그것이야말로 송하얀의 시가 품은 가장 윤리적인 감각에 해당한다"는 문장에 특히 공감하며 밑줄을 그었다. 시집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 오독의 자유가 보장된 장르이지만, 생각이 많아질수록 더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럼에도 시를 읽는 시간이, 문장과 문장 사이 여백에서 상상하는 시간이 참 좋다. 자, "말하지 못하는 자의 말, 들리지 않는 자의 숨, 사라진 자의 흔적을 품으려는 몸짓"이 궁금하다면, 이 시집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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