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나의 세계
마이클 톰프슨 지음, 심연희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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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토미는 자신이 어딘가 다르다는 걸, 무언가 독특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평범한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매년 낯선 존재가 되어 깨어나는 법이 없다. 마치 매일 아침 학교에 가면 어제 교실 칠판에 써놨던 내용이 싹 지워진 것처럼,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깨끗이 지워지는 법이 없단 말이다... 그가 '재시작'을 거치면, 마치 자신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다른 이들의 삶에 그가 남긴 구멍이 벽지로 덮이거나 다른 사람의 존재로 깔끔하게 채워져 있었다.           p.109~110


매년, 독같은 날에,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잊어 버린다면 어떨까.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존재하며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였는데, 다음 날이 되면 그들에게 생판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대로고 다른 사람도 다 그대로인데, 다만 다들 내가 누군지 모르게 되는 상황. 그래서 매년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재시작'의 원인이 되는 게 우주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작품은 그렇게 해마다 자신을 지워버리는 세계 속에서, 해마다 되풀이되는 운명에 맞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내일은 토미의 첫 번째 생일이다. 레오와 엘리스 부부는 아들이 한 살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웃집 모리스 부인을 초대한다. 하지만 다음 날 오후의 차 모임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1월 5일, 토미의 생일이 되면 세상 모두가 그를 잊어 버릴 테니까. 평소와 같은 아침을 맞이한 레오와 엘리스는 거실 한복판에 누워있는 낯선 아기를 발견하고 경찰을 부른다. 대체 누가 아기 침대와 함께 아이를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해서 두고 온단 말인가. 출동한 경찰도 이상하게 여겼지만, 더 이상한 건 그 집 어디에서도 아이 용품이 보이지 않았고, 아이가 살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거다. 결국 토미는 위탁 시설인 밀크우드 하우스로 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토미가 두 살이 되던 날 밤, 시곗바늘이 자정을 넘어가자마자 더할 나위 없이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진다. 토미에 대한 모든 지식과 기억,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그 애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증거들마저 전부 지워져 버린 것이다. 토미는 그렇게 또 자신을 알았던 모든 이들에게 낯선 사람이 되고 만다. 




세상에는 서로 친구가 될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이건 토미가 스스로 만들어 믿는 이론이었다. 조시 손더스는 그날 밤 더홀의 주방에서 토미를 처음 만났다. 스물네 시간 전, 토미가 자신을 배신했다며 화를 냈던 바로 그 자리에서. 토미는 조시와의 사이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정말 걱정이 많았다. 둘의 우정이 땅속 깊은 곳에 묻힌 금덩어리 같기를, 지구를 돌더라도 변하지 않을 단단한 덩어리 같기를, 그래서 언젠가 발견될 날을 기다리는 것이기를 그는 바라고, 아니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p.267


토미는 매년 1월 5일마다 다시 친구를 사귀어야 했다. 토미가 친구를 쉽게 사귀는 성격이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을 알지 않느냐고 물어보고, 애써 설득하기도 했지만 열 살쯤에는 그냥 자기소개만 한 뒤 조용히 자리를 찾아갔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해마다 모든 관계를 다시 쌓아 올리는 법을 배워야 했던 토미의 '기억되지 아 ㄶ는 삶'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왜 사람들은 날 기억하지 못할까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운명대로, 어떻게든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토미는 자신이 어딘가 다르다는 걸, 무언가 독특하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걸 피하거나 바꿀 방법을 알지 못해 좌절감만 커져 갔다. 그러다 열일곱 번째 생일이 다가올 즈음, '재시작'을 속일 허점에 대해 깨닫게 되고, 자신을 지워내는 가혹한 규칙에 맞서보기로 결심한다. 


어제가 없는 세계에서 내일을 살아내야 하는 삶이란 어떤 걸까. 해마다 모든 관계가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면, 누군가와 친밀함을 쌓거나 뭔가 업적을 이루는 것이 다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삶이란 무엇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걸까. 매일 쌓아온 시간과 관계를 매년 잃어 버리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지난번보다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면서 토미는 조금씩 성장하고, 단단해져 간다. 하지만 지켜내고 싶은 존재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잊히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녀의 기억 속에 남기 위해 토미는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신의 운명을 시험해 보기로 한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태어날 때마다 정해진 이상한 운명에 맞서 버텨내야 하는 한 인물의 이야기는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더 응원하고 싶어지는 몰입감을 안겨 주었다. 토미가 소중한 것을 지켜내고, 운명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싶은 그런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나를 기억하는 수많은 소중한 존재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만약 그들로부터 잊혀진다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기억이란 무엇이며 관계란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판타지적인 설정으로 시작해 뭉클한 로맨스 드라마로 이어지는 이 특별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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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랑 몽타구의 나의 영원한 파리 - 낮부터 밤까지 파리를 느낄 수 있는 모든 것
마랑 몽타구 지음, 손윤지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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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가볼만한 곳을 알려주는 주소록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방식과 세월을 견디며 창조하고 전승하는 태도, 그리고 세상의 소란 속에서 조용히 저항하며 살아가는 삶에 바치는 작은 찬사다. 물론 시간 여행을 위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여기 소개된 장소들은 모두 30년이 넘는 세월을 품고 있으며 어떤 곳은 수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오랫동안 나 혼자 보물처럼 간직해 온 장소들이자 파리라는 도시의 가장 깊은 본질로 나를 데려다주는 귀한 공간들이다.              p.5


세월의 흔적이 스민 오래된 건물과 낭만적인 카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멋지게 차려 입은 파리지앵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도시, 파리이다. 고풍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마레 지구, 세월의 흔적이 스민 오래된 건물과 예술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던 카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생제르맹 데프레, 그리고 몽마르트와 샹젤리제 거리, 센 강 등 직접 가보지 못했더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가 바로 파리가 아닐까. 파리라는 도시가 지닌 매력의 원천에는 물리적 아름다움이나 로맨틱한 풍경 이면에는 수십 년에서 수 세기 동안 쌓여온 시간의 깊이가 있다. 그런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보물같은 책이 나왔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마랑 몽타구가 파리의 곳곳을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담았다. 




파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나에게 로망인 도시라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벼르는 곳이다. 얼마나 간절히 바랬던 지 나는 한번씩 파리에 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항상 파리에 도착해서 설레 이는 마음으로 거리들을 둘러 보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꿈이 깨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이상하게 이 꿈은 잊은 말하면 한번씩 나를 찾아와서 나의 파리 열병을 다시금 되새겨 준다.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돈이 여유가 되면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못 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상하게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뭔가 일이 틀어져서 가지 못했던 곳이 파리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보며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장소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기도 가봐야지, 이곳도 멋지다, 여기는 정말 예쁜데.. 하면서 포스트잇 플래그를 하나 둘 붙이다 보니 나중에는 너무 많아져서 수습이 안 될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소들이 많았다. 파리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한몫을 하는 장소부터 골목에 눈에 띄지 않게 자리잡고 있어 무심코 지나가기 쉬운 장소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마담 거리 48번지의 문을 열면, 나의 오래된 파리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방문을 알리는 은은하게 울리는 종소리, 갓 왁스칠을 해 삐걱대는 마룻바닥,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 조용히 손님을 맞는 묵직한 수납장이 기다린다. 어린 시절, 파리에 나만의 부티크를 갖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파리 6구 중심에 숨겨져 있던 이 공간을 처음 발견했을 때, 마치 내 보물들을 담아둘 보석상자를 찾은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p.98


푸치니의 오페라, 플로베르와 빅토르 위고의 소설, 할리우드 영화 그리고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속에는 낭만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파리를 낭만적이라고 상상한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와 이야기들이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이다. 약혼녀과 함께 파리로 여행을 온 할리우드의 작가인 주인공이 어느 밤 자정에 파리의 골목길을 헤매다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와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를 만나게 된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그 영화는 그야말로 파리라는 도시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설레이는 작품이었다. 불꺼진 상점들 너머 길을 잃은 자정이 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통로를 발견한다는 낭만적인 설정도, 위대한 작가들이 쉼쉬는 공간에서 그들과 함께 한다는 호사스러운 공상도 너무 매혹적이었으니 말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가 여는 파티에 참석하고,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헤밍웨이가 불쑥 조언을 해주며, 거트루드 스타인이 내가 쓴 글을 평가해준다니,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이 꿈꿀 달콤한 상상이 아닌가. 그래서 나역시 파리라는 도시를 사랑한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나의 오랜 로망을 손에 잡힐 듯한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 우선 책의 외관부터 굉장히 고급스럽다. 책배 3면을 모두 금장으로 장식했고, 앤틱한 느낌의 면지와 가름끈 색상, 두툼한 종이로 되어 풀컬러 일르스트를 돋보이게 해주는 내지, 그리고 백미는 마치 가죽으로 된 것처럼 느껴지는 표지의 재질이다. 파리의 고서점에 진열되어 있어도 좋을 만큼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1~20구까지 나뉜 행정구역 구역별로 지도와 명소들을 정리해두었기에 파리를 방문하는 이들을 위한 가이드라고 봐도 좋겠지만, 책의 외관과 고풍스러운 일러스트들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는 책이었다. 


빵의 나라 파리에는 한 블록에 하나씩 빵집이 나온다는 말이 있어 파리의 동네 빵집과 셰익스피어앤컴퍼니를 비롯해 오랜 세월만큼의 시간을 간직한 고서점들도 가보고 싶었다. 이 책에는 관광객들이 익히 알고 있는 파리의 대표적인 명소를 비롯해서 골목 곳곳에 숨어있는 고서점, 태피스트리, 골동품 전문점, 파티스리, 문구점, 소품점, 화방 등 개성 넘치는 공간들 470여 곳을 만날 수 있었다. 초록색 가판대를 펼쳐 책을 진열한 헌책 노점들, 사탕가게를 떠올리게 하는 알록달록한 소잉숍, 세련된 우산가게, 클래식한 봉제 인형이 있는 장난감 가게, 옛 파리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심야식당, 들어서는 순간 무대가 펼쳐지는 마술 박물관, 동화 속 작은 성처럼 생긴 도서관, 앤티크숍을 닮은 인테리어의 디저트 전문점 등 직접 가보고 싶은 곳들이 가득했다. 각각의 장소마다 진짜 파리지앵이 알려주는 관점으로 소개글이 수록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사진이 아니라 일러스트로 만나는 파리의 숨은 공간들이라 더욱 특별한 시간이었다. 세상 모든 도시 중 제일 눈에 띄면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도시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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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방화 TURN 8
조영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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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아주 조금씩 좋아진다.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죄책감은 그대로지만 버티다 보면 아주 조금씩 나아진다. 그냥 그렇게. 그게 삶이란 거다."

"차라리 그냥 죽으면 안 돼요?"

"살인자에겐 자기 멋대로 죽을 자유 따위 없다."

형사의 말은 무거웠다. 그의 말에는 반박할 수 없는 강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p.49


오피스텔 7층에서 한 여성이 추락했다. 여성은 층간 소음으로 괴로워하다가 자기 집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죽은 여성의 회사 동료이자 같은 오피스텔에서 살았던 20대 여성이 말하길, 매일 밤 자정이 되면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넌 못생겼어. 넌 못생겼어. 넌 못생겼어.... 기계음으로 된 목소리가 몇 분 간격으로 같은 말을 반복해 속삭였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귀에만 들리는 환청이 아닐까 고민하다가, 결국 소리에 시달리다가 방을 빼기로 했다고. 하지만 워낙 층간 소음으로 유명한 오피스텔이라 집은 좀처럼 나가지 않았고, 그렇게 점점 지쳐가다가 자신의 집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 사건이 타살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누군가 고의로 그녀에게 소음을 흘려 보냈다면 스토킹 범죄 처벌법 위반은 적용될 수 있겠으나 살인미수라고 볼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소음충이라는 괴담의 희생자인지, 혹은 귀신에라도 홀린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소음으로 복수를 하려고 했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건을 담당하게 된 강력1팀 팀장 함민은 그녀의 과거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평택으로 이사를 오고 3개월이나 지났지만 전입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주소는 남양주로 되어 있는 데다 세대주는 남성으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남편은 한 달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대체 누가 그녀에게 한 달간 악담을 퍼부은 것일까. 남편이 귀신이라도 된 걸까. 함민은 소음충의 정체가 귀신이어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시킬 자신은 없었기에 굳이 말로 하진 않았다. 과연 기이한 소음의 정체는 뭐였을까. 




작년 8월 마지막 날 일어났던 소음충 사건 이후 1년이 지나 8월 말이 되도록 관내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강도나 절도 등 강력 사건은 끊이지 않았고 굵직한 소탕 작전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살인 사건과는 달랐다. 살인 사건은 마음 한구석에 켕기는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그때마다 함민은 저도 모르게 라이터를 켜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시달렸다. 충동은 사건을 무사히 해결하고 나서야 사라졌다.              p.96


‘셜록 함스’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강력계 형사 함민은 어린 시절 겪었던 화재 사건 이후로 끊임없이 방화 충동에 시달린다. 그가 형사가 된 것도 화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사건을 해결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불을 지르고 싶다는 욕망을 잦아들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건을 해결해야 충동이 사라진다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할 땐 어떻게 되는 걸까.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낼 수 있을까. 


지금 가장 새로운 이야기로의 가뿐한 귀환, 턴(TURN) 시리즈 여덟 번째 작품이다. 조영주 작가는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붉은 소파> 이후로 <반전이 없다>, <당신의 떡볶이로부터>, <십자가의 괴이> 등 다양한 작품으로 만나왔다. 참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성실한 작가인데, 최근에는 주로 앤솔러지에 참여했던 작품으로 만나오다 오랜만에 장편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이 작품은 방화 충동에 시달리는 강력계 형사를 중심으로 여섯 개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평택이라는 실제 도시를 배경으로 촉법소년, 층간 소음, 전세 사기, 신종 마약 등 실제 사회적으로 이슈였던 소재들로 미스터리를 풀어내고 있어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섯 개의 사건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각 사건의 단서를 찾아 논리와 직관으로 해결해나가는 과정도 흥미진진하고, 그 중심에서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한 남자의 오랜 트라우마에 얽힌 미스터리도 이야기에 재미를 더해준다. 자, 한계 없는 턴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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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주식해드립니다 - S대 경제·심리 전공 17년 차 감성 투자자의 손실 방지책
이민수(입금완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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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월급만 가지고는 안 되겠는데?" 이것은 벽산건설의 아픔으로 얼어붙은 주식에 대한 마음을 녹여낸 내면의 음성이었다. 나의 직장 생활의 시작에 있었던 '그래도 한군데라도 붙어서 다행이다' 싶은 마음은 잠시뿐이었고, 군대에서 받던 월급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그대로인 앞자리 숫자가 몇 달째 반복되고 나니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졌다. 기대의 언덕에 올라서 바라본 월급은 한없이 낮아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기대와 실망이 만들어 낸 그 틈 사이를 한동안 잊고 지냈던 주식이 파고들었다.               p.71


며칠 전에 코스닥 지수가 1000을 돌파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코스닥 지수가 1000을 넘은 것은 2021년 이후 4년 만의 일로, 코스닥 시장의 신뢰 회복과 활성화를 의미한다. 최근 코스피가 5000을 돌파하며 자금이 중소형주로 이동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하는데, 주식의 가파른 상승세에 투자에 갓 입문하려는 '예비 개미'도 늘고 있다. 그런 초보 투자자, 예비 개미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 나왔다. 




'불안 개미를 위한 간접 체험형 오답 노트'를 표방하는 이 책은 17년 차 감성 투자자의 눈으로 초보 개미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오랜 시간 블로그에 글을 썼고, 유튜브 '입금완료' 채널을 운영하며 30만 팔로워를 즐겁게 해준 저자는 자신의 험난했던 주식담을 웃프게 풀어낸 영상으로 공감을 받아왔다. 그는 주식을 처음 시작할 때는 지식도 필요하지만, 사실 주식을 대하는 심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주식을 마음대로 사고팔 수는 있지만, 손실을 마음대로 입고 벗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금전적 손실을 입게 되었을 때 심리적 손실이라도 막아내기 위해 긍정 회로를 가동해야 했다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다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었다며 이 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힌다. 자신의 주식 경험과 감상을 통해 누군가는 손실이라는 수업료를 조금 아끼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가 나를 주식 소비자로 불러주었을 때, 나의 손실은 비로소 지나간 소비가 되어 잊혀질 수 있었다." 이것은 "상처 난 계좌에도 사랑이 올까요." 라는 주식 소설을 쓰게 된다면 활용하고 싶은 결말 중 일부이다. 손실이 난 주식 투자를, 그저 비싸고 감가상각이 빠르게 일어나는 피규어를 사봤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는 뜻이다. 주식을 배수하는 상황에서의 나는 투자자처럼 행동하지 않고 소비자처럼 행동했지만, 그 투자의 결과도 소비의 결과처럼 받아들이기는 아무래도 쉽지가 않았다.             p.229


이 책은 사례편, 유형편, 이별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수 방법에 대해 정리한 사례편, 개미의 마음에 대해 알려주는 유형편, 그리고 주식 투자를 그만두게 되는 상황을 다룬 이별편이다. 우선 1부에서는 직접 매수법, 좋아 매수법, 솔깃 매수법, 적금 매수법과 박쥐 매수법, 물타기 매수법, 복습 매수법 등 다양한 유형으로 정리해 두어 적극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한 다양한 투자 방법을 배울 수 있다. 2부에서는 주식 매매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 개미의 마음을 유형별로 정리했다. 불안형, 확신형, 감정형, 쇼핑형으로 구분해 불안한 마음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확신에 기반한 자신감이 성공적인 투자로 이어질 수 있을지, 각각의 상황에 맞는 문제점과 해결방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엄청난 수익을 약속하거나, 이대로 하면 대박이 난다는 장담을 하려는 게 아니라, 가급적 손실을 방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예방 접종의 차원에서 이 책을 이끌어 나간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직관'에 기반한 투자법들의 사례를 통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월급만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순식간에 돈을 잃고, 마음고생은 덤인 주식 투자를 시작한다면 아마도 그 이유가 비슷할 거란 뜻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해보고, 미리 실패들과 리스크를 파악해 둔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투자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주식에 처음 입문한 순간부터 수십만 원의 수익으로 기뻐하던 초보 개미 시절을 거쳐 잘못된 물타기로 수천만 원의 손실을 겪었던 경험까지... 저자가 17년 동안 경험했던 과정을 책 한 권으로 모두 간접 경험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무조건적인 수익을 약속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돈은 잃지 않는 법을 알려준다고 하니 초보 개미들과 예비 개미들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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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이야기 - 모든 미스터리는 그녀로부터 시작되었다
루시 워즐리 지음, 홍한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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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총잡이'나 '큰언니' 등의 환상은 엄마와 언니가 낯설고 무서운 존재로 바뀌는 애거사의 상상이었다. 이런 어린 시절의 환상은 애거사의 탐정 소설의 특히 현대적인 어떤 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예를 들어 셜록 홈스 소설에서는 범인이 희생자가 직접 아는 사람들의 범위 밖에 있을 때가 많다. 그렇지만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에서는 살인범이 믿었던 가족 가운데 한 명으로 밝혀질 때가 많다.               p.46


소설을 20억 부나 판 사람이면서 공문서에 직업을 적어야 할 일이 있으면 늘 '주부'라고 적었던 사람,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늘 외부인이자 구경꾼의 관점을 유지하며 평생 평범한 척하며 살았던 사람, 20세기에 여성에게 요구되던 규범을 깨드리고 세계에 대한 독자의 인식을 조용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었던 사람, 바로 애거사 크리스티이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추리소설 작가이자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지만 끊임없이 폄하되고 지속적으로 오해되어온 애거사 크리스티에 대해 출생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한 인간이자 작가로서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추적한 정밀한 기록이다. 생존 인물들의 인터뷰와 신문 기사, 크리스티 기록보관소, 내밀하게 주고받은 편지까지 끌어모아 애거사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성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어디에나 있는 시골 마을이나 전원지대다. 크리스티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계관에서는 과도한 폭력, 잔인함, 노골적인 성적 묘사 등이 일절 등장하지 않으며, 생활감과 유머, 그리고 로맨스가 있다. 이웃과의 트러블은 늘상 있지만 마을 사람들끼리 떠드는 가십 거리에 불과하다. 사회의 어둠을 파헤치는 하드 보일드나 누아르와 정반대되는 세계관이라서, 독자에 따라서는 너무 미지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평온한 일상이 살인이라는 비일상적 사건의 위협을 받을 때 독자들은 짜릿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살인과 의문, 비밀과 거짓말 사이에서 비로소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인간 본성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그때가 크리스티 소설의 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애거사가 어떻게 삶을 흡수해 작품의 재료로 활용했는지, 어떻게 캐릭터를 빚고, 어떤 배경에서 트릭을 떠올리며, 어떤 순간에 살해 수법을 결정했는지 그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삶을 따라가며 보여주고 있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애거사가 지극히 평범한 주변 환경에서 영감을 얻는 방식이 작품의 특성과 성격을 만들었던 것이다. 




애거사는 일단 노트에 메모를 했다. '느닷없이 플롯이 떠오른다. 길을 걷다가, 모자 가게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 멋진 아이디어를 노트에 끼적인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다. 그런데 결국 그 노트를 잃어버리고 만다.' 애거사는 또 '욕조에 누워서 사과를 먹고 차를 마시고 주위에 종이와 연필을 늘어놓고' 플롯을 구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p.406


추리소설을 모르는 사람도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추리소설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난데, 보편적 스토리 구성, 클리셰로 정착된 전개 방식 등 추리소설의 틀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셜록 홈즈를 탄생시킨 코난 도일이 추리소설의 캐릭터를 완성했다면, 크리스티는 추리소설의 구성을 완성했다.. 현대의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들 중에 이들의 영향 아래 놓여 있지 않은 작가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크리스티는 참으로 많고 다양한 작품을 썼고, 여러 편의 걸작이 존재한다. 영어권에서만 10억 부가 넘게 팔렸고, 103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도 상당히 많다. 크리스티는 50여 년간 70여 편의 장편소설과 수많은 중단편, 희곡, 여행기 등을 집필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니 약 1세기 전의 소설이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고 새로운 번역서와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비밀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보길 권해주고 싶다. 


모든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르다. 그러니 진짜 모습을 알고 싶다면 그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거나 전혀 알지 못했던, 비밀스럽고 다층적인 애거사 크리스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저자는 애거사의 소설 속 집이 안전과 반대되는 것을 표상할 때가 많은데 그 이유와 시대적 배경을 짚어보고, 애거사가 소설 속에서 어둡고 불편한 감정을 확고하게 다루게 된 시기와 계기에 대해서도 탐구한다.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고 떠난 이스탄불과 바그다드까지 소설의 배경을 창조해낸 여행의 순간들과 남편을 살인 용의자로 만든 행방불명 소동의 비밀에 대해서, 그리고 조제실에서 일하며 독약을 연구했던 전시 간호사였던 시절도 들여다본다. 그렇게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여왕의 삶과 세계가 드마라처럼 펼쳐지는 책이었다. 게다가 책의 외형도 너무 아름다운데, 일반적인 책 판형보다 훨씬 큰 양장본인데다 표지 이미지가 정말 근사해서 굉장히 고급스럽다. 초판 한정으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연도별로 정리한 콜렉터스 리스트도 받을 수 있으니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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