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맵 - 에너지·기후·지정학이 바꾸는 새로운 패권 지도
대니얼 예긴 지음, 우진하 옮김 / 리더스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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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역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미국은 하루 생산량 1,300 배럴을 기록하며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앞섰는데 이는 2008년 대비 세 배가 넘는 규모였다. 하지만 바로 그 시점에서 2020년의 대재앙이라 할 만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하더니 전 세계 경제가 다 함께 활동을 멈췄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역시 큰 타격을 받은 셰일 산업에선 투자가 크게 줄어들면서 셰일오일이나 천연가스의 생산량도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p.112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너지 및 국제 관계 전문가인 대니얼 예긴은 클린턴부터 트럼프까지 미국 4개 행정부의 에너지부 자문위원회에 몸담았다. 석유가 탄생시킨 부와 권력의 흐름을 대담한 분석과 통찰로 정리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황금의 샘> 이후 10년 만에 그의 신작이 나왔다. 이번에는 ‘에너지’, ‘기후’, ‘지정학’이라는 보다 심층적인 키워드를 통해 부와 권력 그리고 기회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 누가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부상할 것인지를 들려준다.

 

이 책은 셰일 혁명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러시아와 중국이 한편이 되어 미국에게 대항하는 새로운 냉전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그 안에서 에너지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전 세계 석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빅 3인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예측과 코로나 바이러스와 기후 문제, 에너지 전환 등이 시장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예긴은 “앞으로 ‘무엇’을 활용해 이동하느냐에 따라 일자리와 돈의 흐름, 국가 간 관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이 한국의 미래와 더불어 새로운 에너지 및 지정학적 지도에서 한국이 갖는 위치와 새로운 지형에서 한국이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지도를 읽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읽는 이들 사이에서 그 속도와 정도에 대한 의견 불일치가 종종 심하게 일어나긴 했으나 적어도 그 방향과 흐름만큼은 누구든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코로나19라는 대유행병의 결과로 인해 지도 위에는 갑자기 알 수 없는 빈틈들이 나타났고 세계는 지금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세계 경제의 회복기 이후를 바라보려 노력하면서 우리는 어떤 에너지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p.573

 

여섯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 이 책의 첫 번째 장은 '미국의 지도'이다. 미국을 세계 최대의 석유 수입국에서 세계 최대의 석유 생산국으로 변화시킨 '셰일 혁명'에 대해 설명하며 시작한다. 셰일 혁명은 세계 석유 시장을 완전히 뒤바꿔놓았고 에너지 안보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켰지만, 코로나 이후 석유 시장의 커다란 위기 속에서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두 번째 장인 '러시아의 지도'에서는 러시아의 방대한 에너지 자원과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관계, 그리고 북극의 LNG개발에 대해 들려준다. 세 번째 장인 '중국의 지도'에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 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 중점적으로 탐구한다. 네 번째 장인 '중동의 지도'에서는 중동에 세워진 국가들의 지도를 바꾸려는 지속적인 노력에 대해 들려준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 자동차 등 자동차 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여섯 번째 장에서는 풍력 및 태양관 산업 등 에너지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반적인 경제경영서나 미래예측서에 비해서 정치, 경제, 지리, 역사를 넘나드는 책이라 읽는 게 만만치 않았다. 복잡다단한 세계를 움직이고 부와 권력, 기회를 가를 변곡점을 한 발 먼저 읽어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미국 유수의 언론들은 대니얼 예긴 외에 에너지가 초래하는 거대한 국제 정세와 경제 흐름을 예긴만큼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대니얼 예긴은 여전히 현안이 생길 때마다 각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찾는 세계 최고 에너지 전문가이니 말이다. 세계지도를 넘나들며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에너지와 지정학, 그리고 글로벌 경제의 촘촘한 연결고리가 궁금하다면, 에너지를 둘러싼 각국의 야망과 힘겨루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이 거대한 세계를 움직이는 숨은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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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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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별로 하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책이 출판되면 홍보를 위해 티셔츠나 토트백이나 모자 같은 굿즈를 만드는 일이 꽤 있다. 각 출판사에서 "이런 것을 만들었습니다"하고 보내준 굿즈가 상당히 많다. 한 상자 가득 되지 않을까. 그런 뭐 좋은데 그렇게 받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다닐 수 있는가 하면 당연히 그런 짓은 못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씨가 'Haruki Murakami'라고 대문짝만 하게 쓴 티셔츠를 입고 백주 대낫에 도쿄의 대로를 걸어 다닐 수는 없잖아요?      p.38~41

 

딱히 물건을 모으는 데 흥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이런저런 물건들이 '모이는' 인생이 되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다 듣지 못할 양의 LP 레코드, 아마도 다시 읽을 일 없을 책, 잡지 스크랩, 짧아진 몽당연필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인' 티셔츠들.. 값싸고 재미있어서 사고, 여기저기에서 홍보용으로 받고, 마라톤 완주 기념으로 받고, 여행 가면 그 지역 티셔츠를 사다 보니 어느새 잔뜩 늘어나서 상자에 담아서 쌓아 놓게 되었다고. 그리고 그는 이렇게 모인 티셔츠 얘기로 책까지 내게 되었다.

 

 

이 책은 하루키가 마음에 들어 하는 낡은 티셔츠를 펼쳐놓은 뒤 사진을 찍고 거기에 관해 쓴 짧은 글을 모은 것이다. 현지에서는 시티보이 잡지를 표방하는 《뽀빠이》에 일 년 반 동안 연재되었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백여 장의 티셔츠 사진, 권말에 특별 수록된 ‘티셔츠 인터뷰’는 보너스로 소설만큼이나 에세이도 빛나는 하루키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티셔츠 하면 여름, 여름 하면 맥주..... 잖습니까. 아니, 뭐 굳이 여름이 아니어도 난로 앞 흔들의자에 앉아 무릎 위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가운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는 것도 인생에서 큰 행복 중 하나죠. 네? 난로도 없고 흔들의자도 없고 고양이도 없다고요? 그거 안됐군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도 그런 건 하나도 없다. 고양이조차 없다. 다만 그런 상황은 분명히 멋질 거라고 상상해보았을 뿐이다. 상상력이란 중요하니까.      p.151~152

 

서핑, 햄버거, 위스키, 레코드, 동물, 맥주, 도마뱀과 거북이, 독서, 슈퍼히어로, 곰... 등 하루키는 각각의 티셔츠들을 이러한 주제들로 선별했다. 그 중에는 디자인이 좋아서 자주 입는 것도 있고, 이런 저런 이유로 자주 입지 않는 것들도 있다. 미국 독자가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읽고 영감을 받아 만들어준 멋진 디자인의 티셔츠, 마우이 섬 시골 마을에서 단돈 1달러에 산 티셔츠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소설이 영화화까지 된 덕에 가장 아끼는 티셔츠가 되었다는 일화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여름에는 오로지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누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티셔츠 사랑은 애틋하면서도 각별하다. "티셔츠가 이 정도 있으면 여름이 와도 뭘 입을지 걱정할 일 없고 말이죠. 매일 갈아입어도 여름 한 철 내내 다른 걸 입을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 그의 말처럼 티셔츠는 사시사철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자유롭고, 느긋하면서도, 독특한 하루키의 일상과 닮아 있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만큼 디자인도, 색상도 다양한 티셔츠! 누구나 옷장 가득 차지하고 있는 패션 아이템일 것이다. 물론 하루키처럼 이렇게 수백 장의 티셔츠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옷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티셔츠들을 떠올려 본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다거나, 좋아하는 공연의 기념품으로 구입한 티셔츠라던가, 해외 어느 여행지에서 산 것 등등 나 역시 입지 않고 모셔만 두고 있는 티셔츠들이 꽤 있다. 그리고 각각의 티셔츠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로 거기에 자신만의 취향을 수집하는 재미가 있는 것일 테고 말이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사랑한다면, 하루키만큼 이런저런 물건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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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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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모든 것의 의미는 한 가지뿐이다. 헤일메리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왕복이 아니라 편도다..... 나는 자살 임무를 수행하러 왔다. 존, 폴, 조지, 링고는 집에 돌아가지만, 길고도 험난한 나의 여정은 여기에서 끝난다. 이번 임무에 자원했을 때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러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내 두뇌에게는 이 정보가 새롭기만 하다. 나는 여기에서 죽는다. 혼자서 죽게 된다.     p.111

 

오랜 수면 끝에 눈을 뜬 나에게 로봇 팔들이 다가와 몸에 연결된 관을 제거하고, 컴퓨터가 질문을 한다. 2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벽은 플라스틱처럼 보이고, 방 전체가 둥근 이곳은 어딜까. 나는 자신이 누워 있던 침대 외에 두 대가 더 있고, 각각에 있는 남자와 여자는 이미 사망한 상태라는 걸 발견한다. 그리고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자신이 잇는 방의 중력이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곳은 지구가 아니었고, 알 수 없는 우주 한복판이었던 것이다.

 

 

서서히 기억이 돌아오면서, 자신이 분자생물학 박사이자 과학 교사였던 라일랜드 그레이스라는 걸 알게 되고, 이곳이 헤일메리 호라는 것을 생각해낸다. ‘헤일메리Hail Mary’는 미식축구 용어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주 낮은 성공률을 바라보고 적진 깊숙이 내지르는 롱 패스를 뜻한다.  그리고 우주선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지구는 미지의 생명체인 '아스트로파지'로 인해 멸망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 아스트로파지는 태양의 온도를 떨어트려서 태양의 출력이 서서히 감소하게 만들고 있었다. 태양광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할 경우, 그러니까 태양이 죽어가게 되면 지구의 생명체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레이스 박사가 헤일메리호를 타게 된 것이다. 아스트로파지를 조사하고,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그레이스 박사는 자신이 왜 우주 한복판에서 깨어난 것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아스트로파지를 없앨 해결책을 자신이 찾게 된다고 하더라도 기술적인 한계로 지구로 정보를 보낼 수 있을 뿐, 자신은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애초에 헤일메리호는 왕복이 아니라 편도였고, 자신은 험난한 여정을 끝내고 나면 우주에서 혼자 죽을 예정이었던 것이다.

 

 

제정신인 사람이 우주선을 저런 모양으로 만들 리는 없다. 제정신인 지구인이라면 말이다. 나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몇 차례 눈을 깜빡인다. 침을 꿀꺽 삼킨다. 저건...... 저건 외계의 우주선이다. 외계인이, 우주선을 만들 정도의 지능이 있는 외계인들이 만든. 인류는 우주에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방금 우리의 이웃을 만났다.
"이런 씨발!"         p.179

 

기억이 아직 모두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죽을 임무를 띠고 우주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레이스 박사는 죽어야 한다면, 최소한 의미 있게 죽자고 마음 먹는다. 그리고 홀로 우주선에서 아스트로파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자신의 우주선 바로 옆에 다른 우주선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한 것은 선체 전체가 거대하고 납작한 표면으로 이루어져 있는, 최악의 방법으로 만든 우주선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다. 저건 우주선을 만들 정도의 지능이 있는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증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과연 그는 지구를 구하기 위한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잘(?) 죽을 수 있을까. 거의 700페이지에 가까운 두툼한 두께의 이 작품은 엄청난 과학적 지식과 놀라운 상상력, 그리고 앤디 위어 특유의 유머 덕분에 단 한 페이지도 지루할 틈 없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그야말로 '페이지터너'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더 신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화성에서 조난당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로 소설은 물론, 영화계까지 제대로 접수했던 <마션>, 달의 도시를 입체적으로 구현해 끝내주는 이야기로 탄생시켰던 <아르테미스>에 이어 앤디 위어는 이 작품 <프로젝트 헤일메리>까지 우주 3부작을 완성했다. 그는 행성들의 궤도를 파악하고 지구와의 통신 소요시간, 우주선의 항해 궤도 등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 직접 코딩을 하고 프로그램을 짰을 정도로 소설들에 나오는 과학적 지식에 진심이다. 애매한 형태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지식으로 토대를 쌓아 올린 이야기들이기에 그 누구라도 설득시킬 수밖에 없는, 굉장히 대중적이면서도 완벽한 SF 작품이 된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문장은 딱 하나였다. 앤디 위어는 천재다! 이렇게 잘 읽히고, 쉬우면서도 재미있고, 놀랍도록 과학적이면서 엔터테인먼트적인 작품이 또 있을까. <프로젝트 헤일메리> 역시 영화화가 확정되었다. 라이언 고슬링 주연으로 만들어질 영화 버전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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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옷장 웅진 모두의 그림책 40
박은경 지음, 김승연 그림 / 웅진주니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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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테이블에 앉아 뭔가를 쓰고 있다. 소녀의 뒤로 커다란 옷장이 보인다. 갑자기 소녀는 옷장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의자에 남겨진 토끼 인형이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무슨 일일까?

 

옷장 안은 캄캄하다. 그곳은 고래 배 속이다. 소녀는 울고 싶을 때마다 그곳에 간다. 아무도 없는 곳, 조용하고, 마음껏 감정을 보여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곳. 고래 배 속을 헤매고 다니다 마음이 편해져서 눈물을 참지 않고 울어도 고래가 다 바깥으로 내뿜어주는 그런 곳.

 

 

박은경 시인의 시 '울고 싶은 친구에게'에 김승연 작가의 그림을 더한 그림책이다. 알록달록한 여러 색상들로 가득한 고래 배속에서 벌어지는 소녀의 감정 변화가 다채롭게 그려져 있어 너무 예쁜 그림책이었다.

 

시에 그림을 더한 그림책이다 보니 글이 한 페이지에 한 줄, 혹은 그냥 그림만 있는 페이지도 많다. 덕분에 그림들을 보며 자유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여백이 가득한 작품이 되었다.

 

 

“네가 바다처럼 눈물을 쏟아도 고래가 등으로 다 뿜어 줄 거야.”

 

살다 보면 누구나 '혼자' 울고 싶은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눈물은 감정의 배출구라서 한참을 울다 보면 뭔가 속이 시원해지는 듯한 기분도 들고,,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기도 하고 그럴 것이다. 굳이 우는 이유를 설명해야 할 필요도 없고, 우는 모습이 어떻게 보여질 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혼자만의 장소가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이 작품 속 '고래 옷장'처럼 말이다.

 

 

고래 옷장은 묵직하게 울리는 고래의 소리가 내 눈물 소리를 감춰 주고, 함께 울어 준다. 아무리 울어도 물이 가득한 바닷속에서는 티끌처럼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쏟아낸 울음들을 고래가 등으로 다 뿜어내어 주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거리낌없이, 눈물을 참지 말고, 내 감정을 다 토해내도 되는 것이다.

 

감정 표현에 서툰 아이들은 툭하면 우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점점 자랄 수록 눈물을 참아야 하는 법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그만큼 말이 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서이기도 하지만, 감정을 속이고 울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야 하는 삭막한 세상에 익숙해져 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아이든, 어른이든 가끔은 어딘가에서 울어도 된다고 토닥여주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괜찮아. 울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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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가게 4 - 수수께끼를 풀어 드립니다 십 년 가게 4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사다케 미호 그림,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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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마법이 존재하고, 그 마법을 부리는 마법사가 있다.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만, 타바는 지금까지 마법에 흥미를 느낀 적이 없었다. 타바는 마법을 쓸 수 없고, 마법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돈벌이에 이용할 수 없다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지금 타바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마법의 힘 말고는 없다... 그야말로 지금 타바에게 필요하다.     p.11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시리즈의 히로시마 레이코가 시간의 마법을 소재로 그려낸 판타지 동화 <십 년 가게> 그 네 번째 이야기이다. 이번 작품에서 새로 등장하는 마법사가 있다. 표지에 그려진 수염을 길게 기르고 덩치가 아주 큰 할아버지 마법사인데, 위아래가 붙은 파란색 작업복에 커다란 밀짚모자를 써서 농부처럼 보인다. 각종 물건을 봉인하고 또 풀려나게 하는 '봉인 가게의 포'라는 마법사는 어떤 활약을 할지 기대가 되었다.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놀랄 만큼 고요한, 벽돌 건물이 나란히 늘어선 골목. 그곳에 스테인드글라스를 끼운 하얀 문을 단 '십 년 가게'가 있다. 가게 안은 수많은 오래된 물건들로 빼곡히 차 있어 가게가 아니라 창고 같은 풍경이다.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넘칠 듯이 가득하지만, 오묘하게 매력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짙은 갈색 조끼와 바지를 입고, 은테 안경을 걸친 젊은 남자가 가게의 주인, 복슬복슬한 주황색 털과 선명한 에메랄드 색 눈동자의 커다란 고양이가 직원이다. 고양이는 두 발로 서서 조씨에 나비넥타이까지 매고 있는데다, 사람처럼 말도 할 줄 알았다. 바로 이 곳이 십 년 동안 물건을 맡아주는 마법의 시간 가게이다.

 

 

그 순간, 키나는 마음을 정했다. 고스 가족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다니, 말도 안 된다. 무엇보다 그 나무에도 나무 집에도 추억이 가득하다. 역시 잃고 싶지 않다.
'수명 일 년? 좋아, 지불하겠어. 하나도 아깝지 않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니까.'
키나가 결심을 하는 순간, 응접실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p.83

 

사업 실패로 인해 전 재산을 잃고, 가지고 있는 물건도 전부 빼앗기게 된 타바, 열정적인 포도주 수집가인 그는 어떻게든 포도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는 십 년 가게에 포도주를 맡기는데, 과연 그는 계획대로 다시 부자가 되어 잃어버린 물건을 전부 되찾을 수 있게 될까. 올해 열 살인 키나는 제멋대로인 이웃 가족 때문에 할아버지의 나무를 베어 버리기로 했다는 것에 화가 난다. 정원 한구석에 있는 커다란 나무 위에는 나무로 만든 집이 있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그곳에 깃든 추억은 키나를 든든히 지켜주었다. 이 커다란 나무도 십 년 가게가 옮겨서 보관해줄 수 있을까.

 

 

'십 년 가게'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손님들이 맡긴 물건에 얽힌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가 더해졌다. 시리즈를 차근차근 따라 왔다면 모두 탐정이 되어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에는 매 작품마다 새로운 마법사가 등장해왔다. 1권에서는 마법사 트루, 2권에서는 색깔을 만드는 마법사인 텐과 카멜레온 팔레트, 3권에서는 날씨를 바꾸는 마법사 비비, 그리고 4권에서는 봉인 가게의 포가 등장했다. 시리즈 특별판으로 나온 <십 년 가게와 마법사들> 에서는 각각의 마법사들이 주인공이 되어 등장하니 챙겨보면 좋을 것 같다.

 

누구나 각자의 이유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물건들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자신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그런 물건들을 더 이상 가지고 있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 시간의 마법을 이용해보고 싶어 지지 않을까.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이다. 그럴 마음이 들었다면, 당신도 '십 년 가게'를 이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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