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파서블 포트리스
제이슨 르쿨락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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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짜리 소년이 되기까지는 몇 번은 두들겨 맞기 마련이다. 나는 탈의실에서도 사정없이 맞아봤고, 학교 복도에서 아이들이 발을 걸어서 넘어지기도 했고, 자전거를 타다 누가 밀어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무릎도 까지고, 발목도 삐고 코피도 났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건 그 모든 일들을 합친 것보다 더 참혹하게 느껴졌다. 이건 도저히 멈추지 않는 그런 아픔이었고 점점 더 심해질 뿐이었다.   p.217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14살 소년 빌리는 단짝 친구인 알프, 클라프와 함께 매일 밤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얼마 전부터 엄마가 푸드 월드에서 야간 근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몇 시간씩 텔레비전을 보고, 어마어마한 양의 밀크셰이크를 만들어서는 싹 비우고, 속이 느글느글해질 때까지 팝 타르트와 베이글 피자를 먹어 치웠으며, 며칠 동안 끝도 없이 게임을 하고, 음악과 영화에 대한 논쟁을 벌이곤 했다. 매일 밤이 친구 집에서 하는 밤샘 파티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때 마침 <플레이보이>에 당시에 가장 인기있었던 바나 화이트의 누드 사진이 실렸고, 그들은 그건 대박 뉴스였다. 하지만 그들 모두 결코 <플레이보이>를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합법적으로 <플레이보이>를 사려면 18살은 돼야 한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에 그들은 그걸 사줄 수 있는 누군가를 고용하기로 했지만, 자신들을 도와줄 것처럼 보였던 젊은 남자는 그들의 돈을 모조리 들고 사라져 버린다. 결국 그들은 직접 동네 사무용품점에 들어가 그 전설적인 잡지를 구해보기로 했는데, 빌리가 그곳에서 사장의 딸인 컴퓨터 천재 매리를 만나게 되면서 그 계획 또한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직 집에 컴퓨터가 없던 시절, 빌리는 엄마가 은행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부상으로 코모도어 64를 한 대 받아오는 덕분에 컴퓨터로 게임을 만드는 데 푹 빠져 있었다. 교실 뒤쪽에서 몰래 프로그래머 참고서를 읽었고, 컴퓨터 잡지들을 구독했으며, 새벽까지 프로그램을 입력하곤 했다. 학교에도 제대로 컴퓨터를 쓸 줄 아는 선생님은 하나도 없었고, 컴퓨터란 타자를 치거나, 단어 암기 연습을 하는 데 쓰는 정도로만 이용되던 시절이었다. 그랬기에 빌리가 자신처럼 프로그래머인 매리를 만났을 때 놀랍고 반가웠을 수밖에 없다. 빌리는 자신이 만든 게임인 '임파서블 포트리스'를 보여주고 싶었고, 매리는 이번 달에 18살 미만은 누구든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들을 위한 대회에 대해 알려 준다.

 

 

10대 아들이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 일들은 아주 많다.

우리는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감춘다. 말하기 너무 어렵거나 설명하기엔 너무 창피한 일들을.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한다. 현실을 직시해보면 우리가 하는 생각 대부분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p.287

 

이야기의 배경은 컴퓨터 게임들이 이제 막 가정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1987년이다. U2는 아직 히트곡이 하나밖에 없는 별 볼일 없는 밴드였고, 실베스타 스탤론의 '록키'와 제인 폰다의 에어로빅 비디오, 맥가이버 등이 인기있던 시절이었다. 이메일 한 통을 보내면 4시간 후에나 확인이 가능했고, 컴퓨터 잡지에는 독자들이 직접 자신의 컴퓨터에 타자로 입력할 수 있는 베이직 코드들이 가득 실렸던 시절이었다. 주요 플롯은 빌리와 친구들이 <플레이보이>를 구하기 위해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그 과정에서 빌리가 가게 사장 딸인 매리와 함께 프로그램과 기계어에 대해 공부를 하고, 대회에 출품하기 위해 임파서블 포트리스 게임의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10대 소년들이 열광하는 <플레이보이>를 갖기 위한 프로젝트도 흥미롭지만, 컴퓨터 천재 소녀가 등장해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매우 유쾌하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1980년대를 완벽하게 재현해내고 있는 배경 자체가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카세트테이프가 등장하고, 전화기에는 선이 달려 있고, <플레이보이>가 야한 책의 최고봉이었던 그 시절은 촌스럽지만 어딘가 낭만적이고, 우스꽝스럽지만 유쾌하고, 시종일관 밝은 에너지가 넘쳐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마법을 발휘한다. 14살 소년, 소녀들의 모험을 그리고 있는 성장 소설로도 매력적이고, 80년대를 완벽하게 재현한 복고풍 스타일로 향수에 젖게 만드는 이야기로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컴퓨터의 초기 모델과 프로그래밍에 대한 디테일적인 묘사가 뛰어나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도 굉장히 영리한 작품이다. 80년대를 겪어 보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80년을 통과한 이들이라면 기분 좋은 추억을 떠올리게 해줄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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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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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세상은 이렇다, 는 말은 무섭다. 어떤 노력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다 그렇고 그런 놈들이란 말도 무섭다. 결국 가진 자가 더 큰소리를 치며, 부당한 권력이 부정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세상이 당연하단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잔혹한 시대에 신앙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바로 이런 나쁜 상식에 대한 도전을 실천하는 힘이 아닐까. '원래 그렇다'는 그 말에 대한 도전 말이다.   -1 p.198

이야기는 안개 덮인 무진에서, 작은 방에 37일째 감금되어 잦고 심각한 구타와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한 남자로부터 시작한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지난 6년 통산 312번째, 최근 2년간 일어난 129번째의 비슷비슷한 죽음이었으니까. 대체 이곳 무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작품은 <높고 푸른 사다리> 이후 5년 만에 발표하는 공지영 작가의 신작이다. 그리고 올해로 등단 30년째인 공지영 작가의 열두 번째 장편소설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 작품의 집필을 위해 약 5년간 사건의 현장 속에 뛰어들어 취재해 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소설 <도가니>가 그랬듯. '야만의 현장'을 본 작가의 눈이 뜨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다.

한이나는 대장암 수술을 받기 위해 무진 가톨릭 대학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무진으로 내려온다. 이나의 엄마는 한때 서울에서도 초청 개인전을 열 정도로 잘나가는 화가였다. 여전히 그녀의 그림 값은 많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대신 팔리지 않았다. 인터넷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이나는 엄마와 함께하는 이 지상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휴가를 좋은 기억으로 채우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죽을 사러 내려간 병원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최별라를 만나고, 백진우 신부 때문에 딸이 죽었다는 그녀의 억울한 사연을 듣게 되면서 이곳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10년 넘게 기자로 일해왔기에, 그녀의 사연 속에 뭔가 도사리고 있음을 짐작한 것이다.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아온 백진우 신부를 따르던 최별라의 딸이 의문의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스토리 속에는, 어린 시절 이나의 친구였던 이해리가 있었다.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는 이해리가 백진우 신부의 애인이고 돈이 다 그리로 간다며, 이 근방에서 유명한 여자라는 것이다.

 

 

"저도 이십 년 만에 고향에 왔는데 제가 없는 동안 빌딩도 올라가고 카페들은 번쩍이고 백화점까지 생겨났지만...... 사람들의 말은 더 거칠어지고 고함은 더 커지고 폭력은 더 일상화한 것 같아요. 지옥으로 들어선 것 같아요. 헬로! 헬 무진! 정글 같아요.... 바닥의 사람들이 제일 먼저 희생되지요. 소망원 사람들처럼.... 그리고 아이들, 여자들, 약자들... 그러나 그들조차 서로 잡아먹고 있어요. 오늘 그 사람들처럼.... 무진에서는 늘 그랬어요. 인간이 인간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요.   -2 p.73

해리네 아버지는 온 동네가 다 아는 주정뱅이였고, 해리는 툭하면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으며 자랐다. 가출한 오빠는 아버지가 출타하면 그 틈을 타서 해리를 때리고 돈을 빼앗아가곤 했다. 유독 이나를 따랐던 해리는 고등학교 시절 서울로 올라간 이나에게 자신도 대학에 가고 싶다며, 부모님께 이야기해 등록금 좀 대달라고 하라고 부탁을 했고, 이나는 그 편지를 다시 반송해버렸다. 그리고 십여 년이 흘렀고, 다시 돌아온 무진에서 들려오는 해리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페미니스트의 감성을 건드리는 미혼모에 약자였고,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괴롭히고 무시하며 짓밟는 장애인들과 버려진 아이들의 어머니였으며, 온 국민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성추행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 백신부에 이해리에게 피해를 당한 증언자들이 속속 이나에게 연결된다. 이해리에게 남편과 재산을 모조리 빼앗긴 장애인 복지시설 운동가, 죄 없이도 옥살이를 하고 여전히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인테리어 업자, 이해리와 백 신부의 농간으로 사업에 실패한 양식업자 등.. 이나의 기억 속에 있던 그녀와 이들이 지목하는 사람이 모두 한 사람이 맞는 것일까.

세상은 얼마나 악한가, 세상은 얼마나 뻔뻔한가. 이나가 파헤치는 백신부와 이해리의 비리와 가톨릭 무진 교구의 장애인 수용 시설인 소망원의 비극은 개인의 악이 사실은 집단의 악을 구성하거나 대표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악은 원래 지루하고 공허하다. 그리고 기껏해야 변명한다. 이거 원래 이러는 거야. 하지만 가끔은 세상의 모든 '원래 이미 그렇다고 정해진 것들'을 깨버릴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 작품은 원래 불행한 사람이 있는 세상에 대한, 나쁜 상식과 불행에 대한 도전이다. 당연히 선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비리와 부패, 욕망, 그리고 무엇보다 부정한 형태가 지속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보다 뿌리 깊은 악에 대해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은 그래서 시종일관 어둡다. 불의를 고발하려는 작가의 의도와 메세지는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남은 희망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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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팬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6
제임스 매튜 배리 지음, 정지현 옮김, 김민지 그림 / 인디고(글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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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모두 자라 어른이 된다. 딱 한 명만 빼고 말이다. 아이들은 머지않아 자신들이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웬디 역시 우연한 계기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p.12

고전 명작을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함께 다시 읽는 즐거움을 주는 인디고의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리커버북 그 여섯 번째 책이다. 기존 시리즈보다 판형이 커져 가독성을 높였고, 클래식한 패턴과 고급스러운 골드 프레임으로 표지가 더 고급스러워졌다. 개인적으로 인디고의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에서 <어린 왕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 등을 그린 김민지 작가의 일러스트를 좋아했다. 이번 <피터팬>에서도 김민지 작가의 컬러 일러스트 50여 컷이 함께해 이야기 속으로 환상적인 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고 있다.

 

 

이 작품은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 피터팬과 모험을 동경하는 따뜻한 마음씨의 웬디, 그들과 함께 떠나는 신비의 섬 '네버랜드'를 배경으로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세계를 낭만적이며 신비하게 묘사하는,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여전히 매혹적인 작품이다.

어느 날 밤, 런던에 사는 달링 부부의 세 남매, 웬디와 존과 마이클이 잠든 방에 피터 팬과 팅커 벨이 찾아온다. 피터는 요정 가루를 이용해 세 아이들이 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들은 하늘을 날아 네버랜드로 향한다. 사실 아이들에게 네버랜드는 만들어 낸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늘을 날아 그곳에 도착한 그들에게 네버랜드는 현실이었다. 네버랜드는 쇠갈고리를 차고 있는 후크 선장, 집을 잃어버린 소녀들과 호수의 인어들, 그리고 장난꾸러기 요정들이 있는 섬이었다. 웬디와 존과 마이클은 만들어 낸 이야기 속의 네버랜드와 진짜 네버랜드가 어떻게 다른지 직접 체험하며 알게 된다. 그들이 경험하게 되는 모험 이야기는 너무도 흥미진진하다. 어린 시절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과 네버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잠못들며 설레었던 그 기분 그대로,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났지만 마음만은 오래 전 그때처럼 두근거렸다.

  

 

"웬디, 갓난아기가 처음으로 웃으면 그 웃음이 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서 깡충깡충 뛰어다녀. 그게 바로 요정이 되는 거야."

 

빤한 이야기였지만 대부분 집에서만 지낸 웬디에게는 흥미롭기만 했다.  p.58

 

피터팬과 웬디의 모험이야기를 읽으면서 설레임 가득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책 속에 삽입되어 있는 일러스트가 제대로 한 몫을 하고 있다. 사실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에 삽입되어 있는 일러스트는 따로 한 장씩 떼어놓고 보더라도 작품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답다. 따스하고 포근한 색감과 터치로 그려낸 세밀한 이미지들은 아무렇게나 페이지를 펼쳐도 바로 현실을 잊고 추억에 빠져 들도록 만들어 준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소장용으로도, 누군가를 위한 선물용으로도 최고의 책이다.

"난 어른이 되었어. 피터. 스무 살하고도 훨씬 더 먹었어. 오래 전에 어른이 되었어.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피터팬과 네버랜드에서 엄청한 모험을 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모두 어른이 된다. 몇 년이 지나도록 무심한 피터는 웬디를 찾아오지 않았고,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웬디는 이미 결혼한 여인이 되어 있었고, 호기심 가득한 딸 제인도 생겼다. 제인은 피터팬에 대한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고, 끊임없이 그 시절에 대해 웬디에게 질문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른이 된 웬디는 여전히 어린 소년인 피터를 다시 만나게 된다.

 

더 이상 날 수 없는, 그래서 네버랜드로 갈 수 없는 웬디는 제인을 피터와 함께 보내준다. 매년 봄맞이 대청소하는 것만 도와 주고 오겠다는 제인은 어느 새 자유자재로 날며 피터와 함께 네버랜드로 간다. 물론 언젠가는 제인도 평범한 어른이 될 테고, 그때는 그녀의 아이가 피터와 함께 네버랜드로 갈 것이다. 그렇게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 피터팬과 네버랜드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가 어른이 된 우리의 마음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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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 우리가 몰랐던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 역사
로베르트 융크 지음, 이충호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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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태양 에너지가 가벼운 원자들의 파괴가 아니라 융합을 통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처음으로 내놓았다. 이 개념의 발전은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소폭탄 개발로 곧장 이어졌다.

물론 그 당시 원자를 연구하던 이 두 젊은 학생은 그 연구가 이처럼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p.60~61

올해 있었던 4·27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북한의 비핵화였다. 그리고 미국 국무부는 남북이 9월 안에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 대북 문제에 대한 한미 간 공조를 강조하며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비핵화 문제 해결은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연히 남북관계의 개선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문제 해결과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 이런 시점에 미국과 독일의 핵무기 개발과정을 기록한 최초의 간행물이었던 로베르트 융크의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이라는 책이 출간된 것은 의미 심장하다. 1956년 처음 출간될 당시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이 책은 1961년 한국어판으로 번역되었다가 절판된 후 이번에 재출간됐다. 이 책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에게 국제 사회가 핵무기를 바라보는 시각을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원자폭탄을 만들고 사용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과학자의 관점에서 원자폭탄의 탄생과 투하 과정까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어려운 과학 이론이나 이해할 수 없는 용어들이 난무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읽기에도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1945년 미국에서 첫 번째 원자폭탄 실험이 있었다. 산을 환하게 비춘 섬광과 함께 폭탄이 폭발하고,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 오펜하이머는 이 순간 경전의 한 구절을 읊는다. '천 개의 태양의 빛이 하늘에서 일시에 폭발한다면, 그것은 전능한 자의 광채와 같으리라.'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융크는 원자폭탄의 역사에 대해 쓰면서, 이 문구를 이용해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이라고 제목을 지었다. 천 개의 태양보다도 밝은 에너지를 가졌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져서 수십만 명의 인명을 살상했으며, 냉전의 시대를 열면서 미국과 구 소련 사이의 군비경쟁을 낳음으로써 인류를 절멸시킬 위기로 까지 몰고 간 원자폭탄이란 존재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화창하고 따뜻한 어느 가을날 저녁, 두 사람은 어둠이 깔리고 나서 한참 지날 때까지 천천히 거닐면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주위에는 나무들이 높이 솟아 있었고, 산들거리는 바람은 노래를 부르며 새빨갛게 물든 가을 단풍을 잠재웠고, 졸졸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인류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를 파괴하거나 위태롭게 할 권리가 있을까? 1939년에 바이스코프는 실라르드와 함께 긴급한 행동을 요구한 집단의 일원이었지만, 군인에게 무기를 주면 군인은 그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유혹을 억누르기 어렵다는 교훈을 경험을 통해 배웠다.   p.451

1920년대 유럽의 물리학자들은 서서히 베일을 벗던 원자와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뮌헨과 괴팅겐의 젊은 물리학자들은 원자의 실체를 놓고 논쟁을 하고 이론을 만들었고, 이들의 이론과 실험에 의해서 원자는 숨겨놨던 강력한 힘을 조금씩 드러냈다. 이 책은 원자폭탄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일상과 주변의 구체적인 정황들을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시대 배경과 원자폭탄의 탄생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로베르트 융크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미국과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핵무기 개발과 관련을 맺은 60명이 넘는 과학자들과 30명이 넘는 관계자들을 인터뷰했으며, 이를 통해 이들의 개인적 경험과 견해를 생생하게 담을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원자 폭탄은 무엇 때문에, 어떻게 개발되었는지, 악마의 일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어떤 시도를 했는지 등등의 의문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해소할 수 있다.

공포 정치를 자행하는 독재 정권 하에서 독일의 핵물리학자들이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원자폭탄 제조를 막으려고 시도한 반면, 두려워할 만한 강요를 전혀 받지 않은 민주주의 국가의 동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신무기 개발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사실은 역설처럼 보이기도 한다. 로베르트 융크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발견에 대한 희열로 가득했던 그들의 순수한 열정이 원자폭탄 투하라는 결과에 이르기까지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무엇을 놓쳤는가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통렬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과학자들은 예전부터 국가들의 안녕을 증진시키는 대신에 국가들의 상호 파괴를 위한 신무기를 제공한다는 비난을 자주 받았다. 과연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사심 없이 한 발견을 인류가 다른 목적에 사용한 용도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것일까. 1차 세계 대전의 마지막 해인 1918년부터 동유럽 국가들이 소련을 중심으로 바르샤바 동맹 체제를 구축하면서 냉전이 심화되었던 1955년까지의 일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최선의 선택이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그 아이러니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핵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그 어느 나라보다도 핵무장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해서 한번쯤 고민해봤다면, 핵무기 개발에 관한 놀라운 논픽션인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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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어 사전 - 보리라고는 보리차밖에 모르는 당신을 위한 최소한의 맥주 교양
리스 에미 지음, 황세정 옮김, 세노오 유키코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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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맥주 한 잔이 절실한 요즘 날씨, '보리라고는 보리차밖에 모르는 당신을 위한 최소한의 맥주 교양'이라는 귀여운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을 만났다. 워낙 맥주 종류도 많거니와, 편의점에서 한참 수입 맥주 세일도 하고 있는데도 제대로 아는 맥주라고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수입 맥주 네 캔에 만 원, 혹은 여섯 캔에 만 원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럼에도 늘 사던 것만, 먹던 것만 사다 보니 아쉽기도 했었다. 그런데 책을 통해서 '맥주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조금 더 특별하고 나에게 맞는 맥주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약간의 맥주 지식만으로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맥주를 마시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맥주 교양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맥주의 역사부터 스타일과 풍미, 페어링, 맥주 공정, 맥주에 관련된 인물과 명언, 세계 유명 브루어리, 브루 펍까지 맥주에 관한 시시콜콜한 맥주어들을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읽을 수 있어 흥미롭다. 특히나 사전 형식을 취하고 있어 맥주어 하나하나 가볍게 읽으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어느새 맥주어 삼매경에 빠지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맥주의 풍미를 나타내는 용어, 집에서 맥주를 맛있게 즐기기 위한 방법, 독특한 모양과 각각의 기능이 설명되어 있는 다양한 맥주잔들, 맥주를 사랑한 명사들의 명언들, 칵테일 만드는 방법 등... 맥주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유용한 팁들이 가득하다.

맥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맥주와 마피아는 어떤 관계일까? 러시아어로건배는 뭐라고 할까? 세상에서 가장 크고 비싼 맥주는? 세상에서 가장 독한 맥주는? 런던에서 맥주 홍수가 일어났다는 건 진실일까, 거짓일까? 스타우트에 어울리는 안주는 무엇일까? 바이젠에 어울리는 샌드위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필스너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맥주잔은 어느 것일까? 어떻게 해야 맥주를 가장 예쁘게 따를 수 있을까? '맥주어'를 맥주와 관련된 쓸데없지만 알아두면 은근히 유용한 어휘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 맥주 전문가가 될 생각까진 없는 일반인들에게도 필요한 정보들이 많은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맥주와 지적인 안주의 콜라보레이션이 눈길을 끌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안주 요리들이 정리되어 있는 항목도 재미있었고, 맥주의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치즈의 조합도 흥미로웠다. 알 듯 말 듯 궁금했던 맥주에 관한 지식들을 쏙쏙 골라서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귀여운 그림들이 가득해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제는 펍이나 편의점에서도 그 수많은 맥주 중에서 그날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골라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맥주에 관련된 이렇게 시시콜콜한 맥주어들 덕분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를 더욱 재미있게 해줄 수도 있을 것 같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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