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비행 夜間飛行 - 홍콩을 날다
이소정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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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47. 홍콩이 중국에 영구 귀속되는 해이다.

그러므로 홍콩이라는 유통기한 짧은 단편영화를 하루라도 빨리 보길 원한다면, 서둘러야 한다. 홍콩은 수천 개의 유기물이 용솟음치는 작은 용암이며, 거대한 비디오아트이며, 온갖 언어와 냄새와 표정과 추억이 떠다니는 섬이다.   P.7

홍콩, 어느 골목에서는 <중경삼림>을 만나고, 어느 식당에서는 <화양연화>, 어느 밤거리에서는 <천장지구>가 떠오르는 나라이다. 내가 홍콩에 여행을 다녀온 지 어느 새 십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홍콩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에서 홍콩까지의 거리는 1,292마일, 세 시간 반 조금 넘는 비행시간, 한 시간의 시차. 한 번쯤의 터뷸런스를 견디고 열 번쯤의 건조함을 이겨내면 후덥지근한 공기와 마주하게 되는 그 곳. 홍콩이라는 가깝고도 먼 나라에 내가 알고 있던 것들,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이 쌓여 책을 덮자 마자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저자는 오랜 시간 홀로 홍콩을 다니며 여행 일기를 쌓아 왔다고 한다. 그렇게 발품을 팔아 수집한 정보들은 그녀의 홍콩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수년 간 취재한 홍콩에 대한 정보와 감상으로 탄생한 이 책은 여느 여행 에세이와는 전혀 다른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화양연화, 아비정전, 희극지왕, 타락천사, 캐리비안의 홍콩섬, 열혈남아 등... 홍콩의 옛 영화들을 거리로 불러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있는 이 책은 '여행 가이드'가 아니라서 더 매력적이었다. 

 

홍콩을 생각하면 몰려드는 거대한 이미지들. 그건 어느 오래된 단편영화 같기도 하고, 미숙한 바느질로 엮어놓은 천쪼가리 같다. 사자성어를 영어로 풀이해 놓은 작은 책의 페이지, 코카콜라 박스를 뒤집어 식탁으로 스는 사람들, 빙글빙글 손잡이를 돌려 열어야 하는 빨간 택시와 창문으로 보이는 금빛 빌딩들.... 이 모든 걸 찢고 오리고 붙이고 매달아서 거대한 콜라주를 만들고 싶다.   p.85~86

계획 없이 무작정 홍콩에 왔던 날, 눈 감고도 다닐 수 있는 침사추이였지만 적당한 가격의 숙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돌고 돌아 어느 허름한 건물 5층에 있는 숙소를 찾았는데, 창문 하나 제대로 없는 답답한 방과 족히 30년은 되어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보면서도 저자는 생각한다. 꼭 홍콩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고급 호텔이 줄 수 없는 이런 불안한 느낌이 자신을 영화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만든다고 말이다. 그리고는 언젠가 너무나 지쳐 창 밖을 볼 힘도 없을 때, 사진 속 왕페이와 양조위의 눈빛이 나를 구원해 주겠지, 하고 가져온 사진들을 꺼낸다. 감기 때문에 쓰러져 자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렇게 그녀는 양조위가 거닐었을 법한 거리를 찾기 위해 또 한 번 기운을 내서 밖으로 나간다.

대부분의 이러한 에피소드들이 독자인 내가 느끼기에도 정말 영화 같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서 너무 설레었다. 사실 홍콩은 여행지로서는 이미 너무 많이 알려진 나라이고,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가본 곳이다. 대충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홍콩에 관련된 수많은 정보들이 뜨고, 주변에 홍콩 한 번 안 가본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 보여지는 홍콩은 완전히 새롭다. 저자의 애정 넘치는 시선으로 바라본 홍콩은 너무도 매력적이고, 너무도 깊이 있고, 향수에 빠지게 만들고, 영화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그야말로 책을 덮자 마자 홍콩행 티켓을 끊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런 책이다. 다시, 홍콩에 가야겠다. 저자처럼 새벽의 고요한 홍콩을 맞이하기 위해, 야간비행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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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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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오늘 새벽에는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어요. 변소에 가려고 마당에 나왔다가요. 초승달에 낀 흰 달무리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순두부 같아 나도 모르게 입을 벙긋 벌렸어요. 그것을 먹으려고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 심장이 생기기 전에…….  p.7

잠잠히 흐르는 물결 위에 열다섯 소녀가 편지를 쓴다. 아기를 가졌지만,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다고. 글자를 배우지 못해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지만 물결로 검지를 가져가면 글자가 저절로 써진다. 그만큼 간절하고, 막막하고, 무서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오늘이 며칠인지 날짜를 모른다. 해가 뜨면 낮이고, 지면 밤이라는 것만 안다. 밤이 되면 송장놀이를 해야 한다. 나는 죽었어, 나는 죽었어, 나는 죽었어... 자신이 죽어 땅속에 누워 있다고 생각하려 애쓰며, 배릿한 흙냄새가 맡아질 때까지 소녀는 주문을 외우고 또 외운다. 낮이 되면 함께 있는 언니들과 함께 삿쿠(일제강점기 군용 콘돔)을 강물에 씻는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역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속상할 만큼 미약했다. 나는 김숨의 이 작품을 읽으면서 속이 상했다. 마음이 아프고, 분했고, 화가 났다. 이들이 겪어야 했던 시간들은 단어 그대로 끔찍했고, 고통스러웠고, 치욕스러웠다. 작가 역시 취재한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위안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용기'를 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처참한 지옥의 풍경을 정확하게 글로 묘사해내기란 차마 힘들다는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웠을 테니까. 나 역시 그저 독자의 입장에서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외면하고 싶은 진실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입으로 삼킨 것은 토할 수 있는데, 눈으로 삼킨 것은 토할 수 없다. 눈도 입처럼 토할 수 있다면, 나는 내 몸에 다녀간 군인들의 얼굴을 토하고 싶다. 가장 처음 내 몸에 다녀간 군인의 얼굴을 가장 먼저. 처음 내 몸에 다녀간 군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얼굴이 쓰고 있던 뿔테 안경은 기억난다. 그 얼굴을 토하다 안경이 부러지고 깨지면 어쩌지? 깨진 뿔테 안경 조각이 내 눈동자를 찌르면?

나는 얼마나 많은 얼굴을 토해야 할까. 너무 많은 얼굴을 토해야 해서 눈가가 짓무르고 눈동자가 터져버릴지 모른다.   p.101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 군인에게 납치를 당해, 직업소개소로부터 사기를 당해, 부모나 양부모가 팔아 넘겨서 위안소까지 오게 된 10여 명의 조선인위안부들의 삶이란 너무도 끔찍했다. 열세 살 때 중국으로 끌려와 열다섯 살인 지금 위안소에서 아기를 갖게 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눈을 부릅뜨고, 마음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부여 잡아야만 겨우 읽을 수 있었다. 김숨 작가는 2016년 출간된 장편소설 <한 명>에서 '위안부' 피해자가 세상에 한 명뿐인 상황을 가정해 이야기를 그려 냈었다. 당시 생존자는 40. 2018년인 지금 <흐르는 편지>가 출간된 시점, 27명의 피해자가 생존해 있다. 이는 우리가 이 처참한 비극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국가적 차원에서 저질러진 극단적이고 유례없는 성폭력'이라는 점에서 너무도 참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이다. 어느 정도 미루어 짐작했던 고통보다 이 작품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실상이란 예상을 훨씬 넘어서는 무시무시한 지옥이었다. 특히나 죽음과 그리도 가까이 살고 있는 어린 소녀가 그 속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한 삶에의 의지가 나를 이 끔찍한 고통으로부터 외면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듯한 기분도 든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절대 이 부끄러운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현실과 너무도 먼 이야기라 전혀 실감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그들의 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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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 삶을 은유하는 영화 그리고 여행
박준 지음 / 어바웃어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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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시를 마무리하는 게 인생의 숙원인 사람도 있다. 그는 평생 시에 매달렸지만 누군가는 평생 회사에 매달렸고, 누군가는 평생 여행에 매달렸다. 어떻게 살아왔건, 무엇을 이루었건 세월이 지나면 귀한 시간을 무심히 흘려 보냈다고 자책한다. 사람들은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며 산다. 그마저 뒤늦게 깨닫는다. 후회하지만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후다.   p.50

때로 어떤 문장은 복병처럼 흘러가는 삶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혹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나를 기다리는 또 다른 생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라면 내가 꿈꾸던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문장들. 하루하루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나날 속에서 일상을 헤치고 튀어나온 그것은 가끔 이렇게 마음을 흔들어 놓곤 한다. 그리하여 기꺼이 그 복병에 매료되어 일상을 뒤로 하고 싶을 때, 나는 영화관에 가거나 여행을 떠난다. 영화라면 우리를 단 두어 시간 만에 일상을 벗어난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주니까. 여행이라면 언제고 집이 아닌 곳에 있다는 사실에 위로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니 말이다.

이 책은 네 개의 여권에 5백여 개가 넘는 스탬프를 찍었지만, 여전히 다른 세상이 궁금해 길 위에 선다는 저자가 여행을 떠나 다른 세계를 거닐 듯 영화 속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한 편의 영화로 중앙아시아로, 남유럽으로, 북아메리카로, 오세아니아로 떠나는 이 여정은, 그야말로 영화를 보며 떠나는 세계일주이다. 저자는 이 책을 한낮의 꿈 같은 이야기이자 로드무비 같은 책이라고 말한다. 영화를 보며 영화 속 시공간으로 빠져 들어가 낯선 이들을 만나고, 주변을 거닐기도 하며, 때로는 지난 여행과 영화가 겹쳐 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영화가 촬영된 장소를 찾아가 영화의 감동을 재생, 증폭하려 하거나, 줄거리를 좇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저자는 영화 속 그곳에 자신의 지난 여행을 살포시 겹쳐 놓는다. 그렇게 스물일곱 편의 영화에 찍힌 바람의 지문을 좇는 여정은 그 어떤 여행에 관한 에세이보다 특별하다.

 

그녀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묻지 않았다. 낯선 이에게 이렇게라도 마음을 열어주어 고맙다. 그러고 보니 탄자니아 커피는 견고한 커피다. 기름이 잘잘 흐를 만큼 프렌치 로스트 레벨까지 볶아도 맛이 흔들리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 사는 게 좀 쉬워질 줄 알았다. 잘 사는 건 고사하고 흔들리지는 않을 줄 알았는데 웬걸, 어림도 없다. 이런 기대를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닌가 보다.   p.81

뉴욕이건 클리블랜드이건 마이애미이건... 도착하기만 하면 찬란하고 뜨거운 태양을 만나리라.. 낯선 세계로 떠나기만 하면 지금보다는 더 좋을 것 같지만.. 사실 현실의 여행은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들은 종종 여기 아닌 다른 곳을 꿈꾸지만 그곳에 있을 함정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저자는 한때 세상 최고의 도시라고 생각하며 꿈꿨던 뉴욕에 처음으로 갔던 당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당시 상처받았던 자신의 마음을 영화 <천국보다 낯선>에 오버랩시킨다. 파라다이스를 찾아갔지만 언제나 이방인에 불과했던 영화 속 그녀를, 자신을,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을. 그리고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 나온 그 카페를 실재 모하비 사막에서 찾아가 보기도 하고, 그리스의 테살로니키 바닷가 산책로를 걸으며 영화 <영원과 하루>를 생각하며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다. 포르투칼 리스본의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감행했던 일탈에 대해 생각한다.

네 개의 여권에 5백여 개가 넘는 스탬프를 찍는 삶은 어떨까. 저자는 '길 위에 서면 여행하기 전에 내가 알았던 세상이 얼마나 작았는지, 때로는 얼마나 허구인지 알게 된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으로 전력을 다하는 탐험으로서의 여행, 그 가치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듯 언젠가 여행도 끝이 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여행은 마치 끝나지 않는 그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좀 더 길 위에 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누구에게나 삶은 유한하고, 눈 깜짝할 새 흐르는 게 인생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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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소녀 Wow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위즈너 그림, 도나 조 나폴리 글,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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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그런 말 안 믿으니까. 언제나 "인어 같은 건 없어." 라거나 "너도 이제 현실을 알아야지.. 나이값 좀 하렴."이라고만 말해. 그러면 애들은 "나 정말 봤다니까!" 아니면 "나한테 손 흔들어 줬어!"라고 말하지. 아이들은 믿고 싶어 하거든.  P.19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붉은 건물 '오션 원더스'는 대형 수족관이다.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아쿠아리움 같은 장소를 떠올리면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특별한 비밀이 하나 있었다. 바로 물 속에서 숨을 쉬는 소녀 '인어 소녀'라는 신비한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인어 소녀는 사람일까. 물고기일까. 이 곳의 주인이자 스스로를 바다의 왕이라고 말하는 넵튠 아저씨는 소녀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존재라고 말한다. 손님들에게는 인어 소녀의 모습을 완전히 노출하지 않고, 숨바꼭질 하듯 슬쩍 지나가는 모습만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는 인어 소녀에게 인간들은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 그들 앞에 나서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저 슬쩍 보여주는 신비주의 전략으로 더 많은 손님들을 끌기 위해서이지만, 인어 소녀는 아저씨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믿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족관에 갇혀 문어와 물고기들과 소통하고, 넵튠 아저씨가 들려주는 옛 바다 이야기에만 만족하며 살던 인어 소녀는 평범한 여자 아이인 리비아를 만나 친구가 되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넵튠 아저씨의 말만 듣고, 그가 알려주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었던 인어 소녀는 조금씩 그가 정해놓은 규칙을 깨고, 자유로워 지고 싶어 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비밀을 풀고, 수족관 창문 너머 진짜 바다에 대한 갈망에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한다. 과연 인어 소녀가 꿈꾸던 바깥 세상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넵튠 아저씨가 숨기고 있는 비밀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어 공주 이야기의 세련된 현대판 버전 같은 느낌도 들고, 두 소녀의 우정을 흥미로운 판타지 동화로 그려내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그 동안 만나왔던 그래픽노블이 예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문맥적으로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거나, 글은 적고 그림은 너무 상징적이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면, 이 작품은 너무 쉽게 술술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픽노블로서의 매력과 그림 동화로서의 재미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바다는 계속 밀려왔다가 스르르 빠져나가고 있어. 모래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영원히 계속해서 모래를 잡으려는 것처럼. 이 물은.... 다르네.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아. 눈을 감으면 내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느낌이야.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어딘가에.   P.110

이 작품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이자 '칼데콧 상' 수상작가인 데이비드 위즈너의 첫 그래픽노블이다. 어른들의 만화라고도 불리는 그래픽 노블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띠고 있다. 만화책의 한 형태이긴 하지만 보통 소설만큼 길고 복잡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렇게 문학성 높은 만화로 예술적 성향이 강한 작가주의 만화들이 대부분이었던 그래픽노블이 데이비드 위즈너라는 작가를 만나,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더 접근이 쉬워졌다는 느낌도 든다. 일반 문학작품과 달리 그래픽 노블은 조금 더장르화된 영역이라 대중적인 느낌은 덜한 것이 사실이었는데, 이 작품 정도의 수준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나 데이비드 위즈너는 직접 대역 배우들과 아이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촬영하고 관찰해서 물고기들과 인어 소녀를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캐릭터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다. 비현실적인 '인어'라는 환상적인 존재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스토리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이라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하기 쉽다는 점도 장점이다. 거기에 신화 속에 등장하는 마법 같은 이야기들을 재해석하는 책들을 꾸준히 써온 작가이자 언어학자인 도나 조 나폴리의 글이 더해져 더욱더 매혹적인 환상 동화가 탄생했다. 어른들이 읽기에도 매력적이고, 아이와 함께 읽기에도 무리가 없을 만한 작품이라 아직 그래픽노블이라는 장르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적극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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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한 남자 스토리콜렉터 6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한이 옮김 / 북로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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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브니는 총을 들었고, 버크셔를 쐈으며, 그러고 나서 그 자신도 쐈다. 그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었다. 분명하지 않은 것은, 왜 그가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였다.   P.15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한 곳인 전 세계 FBI의 거점 후버 빌딩 앞, 값비싼 맞춤 양복을 입은 60대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50대 후반의 왜소한 체구를 가진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마쯤 뒤에서 2미터의 거구인 에이머스 데커가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FBI 합동 작전 부서에서 일하는 데커는 회의에 참석하러 후버 빌딩으로 가는 중이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져 갔고, 데커는 두 사람 뒤로 3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남자가 여자의 뒤통수에 베레타 권통을 겨누었고, 데커가 미처 막을 새도 없이 남자는 방아쇠를 당겼다. 보안 요원들이 우르르 달려왔지만, 남자는 미소 지으며 자신의 턱 아래에 대고 두 번째 방아쇠를 당긴다.

그 모든 일을 벌인 남자, 윌터 대브니는 FBI의 민간 도급업자로 프로젝트 회의에 참석하러 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거대한 부와 성공적인 커리어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아름다운 부인과 자식들까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그는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희생자인 앤 버크셔는 가톨릭 고등학교 대체 교사로 그와는 아무런 연결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무차별 살인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일까. 이상한 것은 그녀가 지역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여교사의 봉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수백만 달러짜리 아파트에 살았고, 거의 운행도 하지 않은 10만 달러도 넘는 차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10년 이전의 행적은 전혀 알아낼 수 없었다. 과연 그녀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며, 그녀는 어떤 이유로 FBI를 찾았다가 살인사건에 뒤얽힌 걸까? 부검으로 윌터 대브니가 뇌종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말기암으로 시한부로 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저지른 행동에 대한 설명은 전혀 되지 않는다. 특별한 기억력과 공감각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해왔던 에이머스 데커가 이번 작품에서는 목격자인 동시에 사건을 파고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거 이상하네요."

"분명, 이 여자는 모든 게 다 이상해요."

"그럼, 무차별 살인은 아닐 수 있겠네요. 어쩌면 대브니가 그녀를 쏜 특별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P.116

이 시리즈의 독특한 주인공 에이머스 데커는 195센티키터, 몸무게는 135킬로그램에서 180킬로그램 사이를 오가는 거한이다. 그는 대학 4년 내내 미식축구 선수였고 내셔널 풋볼 리그에 진출했으나, 첫 번째 출전한 경기에서 사고로 선수로서의 경력이 끝났다. 경찰로서 20년 근무했지만, 어느 날 오랜 잠복근무 끝에 귀가했다가 아내, 처남, 그리고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15개월 동안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그의 삶은 처참히 무너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범인이 스스로 경찰서에 들어와 자백을 한다. 데커는 그와 관련된 사건 해결에 활약한 것을 계기로, FBI 미제 수사팀에서 일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그 동안 전작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데커는 미식축구 경기 중에 당한 사고로 잠깐 동안 죽었다 살아난 대가로 가지게 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과잉기억증후군이란 어떤 기억을 찾으려고 할 때 머릿속의 영상 저장 장치를 켜면, 눈 앞에서 그 형상들을 마치 녹화된 비디오 카메라를 돌려 보기라도 하듯이 찾아 볼 수 있다. 그런 능력은 아무것도 잊지 못하도록 만든다. 거기에 더해 데커는 공감각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하는 수사란 일반적인 범죄 수사의 패턴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이 시리즈 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괴물이라 불린 남자>에 이어 <죽음을 선택한 남자> 역시  군더더기 없이 속도감 있는 전개로 이 두툼한 페이지의 끝까지 달려가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매끈하게 잘 빠진 플롯, 탄탄한 구성과 특별한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시리즈로서 가져야 하는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었다. 1996년 데뷔작 <앱솔루트 파워> 이래로 지난 20여 년간 30권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며 뛰어난 작품 완성도와 대중적 재미로 사랑 받는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는 판매부수로만 봐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함 범죄소설가이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무려 1 3천만 부나 판매되었으니 말이다. 대중성과 작품의 완성도를 동시에 만족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님에도, 그의 작품은 언제나 재미와 수준을 함께 보장해준다. 그리고 절대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를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야말로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이 작품은 무더운 여름, 북캉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다. 시원한 맥주와 재미있는 스릴러 한 권이면 에어컨도 필요없다. 더위때문에 잠 못드는 당신을 위한 최고의 선택!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를 당신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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